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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넬료를 통한 교훈 (행 10: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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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자신만만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나름대로의 약한 부분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어떤 고정관념 때문에 생기기도 하고 어떤 자격지심 때문에 생기기도 합니다.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보니까 너무도 쉽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사람 나름대로의 어떤 자격지심 때문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무엇이 된다 안 된다고 하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 말씀이 아닌 내 고정관념 때문에 그런 것은 또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격지심에 빠져서도 안 되고 어떤 고정관념에 매여 있어서도 안 됩니다. 오직 자유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 사랑받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큰 벌을 받을 거야 하는 사람일지라도 사실 그 속마음은 벌이 아닌 용서를 통한 은혜와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까? 고넬료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본문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베드로를 찾는 고넬료의 사람들을 먼저 봅니다.
자기가 본 환상이 무슨 뜻일까 하고 베드로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와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문 밖에서 “베드로라는 시몬이 여기 계십니까?”라고 소리쳐 물었습니다. 베드로가 아직 그 환상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성령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세 사람이 너를 찾고 있다. 일어나 내려가거라. 그들은 내가 보낸 사람들이니, 주저하지 말고 그들을 따라가거라.”
베드로가 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 말했습니다.
“내가 그대들이 찾는 사람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 사람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희는 고넬료라는 로마 백부장이 보낸 사람들입니다. 고넬료는 의로운 사람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유대인들에게도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한 거룩한 천사가 고넬료에게 당신을 집으로 모셔다가 당신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분부하였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들을 집 안으로 불러들여 묵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고넬료가 어떤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이미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본다면 단순히 고넬료를 칭찬만 하고 있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입니다. 이방인 군대인 로마 군대의 백부장입니다. 로마 주둔지를 관할하는 부대의 백부장이라고 한다면 그 위에도 한 단계 위인 천부장이 있을 것이고 주둔 사령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점령지의 신앙에 물들어서 그들의 신을 믿고 있다고 할 때 로마 군인들치고 이를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저 사람은 출세하기는 다 틀려먹었네. 아니 그들의 신이 그렇게 위대하다면 어떻게 우리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저렇게 하나님을 믿고 있단 말이지?” 하면서 비웃는 사람도 상당히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노골적으로 고넬료를 적대시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가이샤라에 사는 유대인들이라면 두 종류일 것입니다. 로마 주둔지이니까 그들을 도우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 지역 주민으로서 꿋꿋하게 여호와 신앙을 지키고 있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로마에 협조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고넬료가 참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물론 그런 사람도 있었겠지만 반대로 자기들이 비록 로마에 협조는 하고 있을망정 속으로는 로마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겉으로는 참 잘한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비난의 화살을 퍼부어대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하나님 신앙을 지키며 로마에 협조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유대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비록 점령군이기는 해도 그런 사람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다는 것이 저들을 놀라게 하고 또 그의 하는 일을 보면서 정말 존경할만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반대로 그런 저의 진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 고넬료 스스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롭게 살고 있지만 그의 가족들은 그렇다고 해도 그의 부하들 모두가 다 고넬료와 같은 생각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결국 고넬료는 그만큼 외롭게 자기의 신앙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왜 고넬료라고 한들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겠습니까? 분명히 듣고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주둔지를 관할하는 백부장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에 대해서도 누구보다도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넬료는 사람들을 사도들에게 보내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역시 유대인들의 생각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 어여삐 보셨습니다. 그래서 환상 가운데 천사를 통해 그로 하여금 베드로를 청하도록 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비록 로마 군대의 백부장으로 일하고 있지만 그는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을 있는 그대로 실천해서 가난한 자들을 돕고 항상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던 것입니다. 그라고 해서 주위 사람들의 분위기를 왜 모르겠습니까? 칭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놓고 비아냥대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왜 그가 모르겠습니까? 어쩌면 그 때문에 당하는 부대 안에서의 불이익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꿋꿋하게 자기의 신앙을 지켜나갑니다. 그리고 기도하며 가난한 자들을 돕기에 힘썼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넬료의 삶이 모든 사람들을 다 감동시켰겠습니까? 그에겐들 비난받을만한 모습이 전혀 없었겠습니까? 고넬료에게 섭섭한 마음을 갖는 사람이 전혀 없었겠습니까? 그럴 때마다 고넬료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으며 저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보다도 고넬료가 힘들었던 것은 아무리 자기가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고 항상 기도에 힘쓰고 있었고 가난한 자를 돕기를 계속해서 많은 유대인들로부터도 존경을 받고 있었다고는 하나 왜 나는 유대인으로 태어나지 못했을까 하는 일종의 자격지심이 항상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하나님을 믿고 유대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고 해도 여전히 그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자기의 집에는 오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항상 겉으로만 맴도는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를 하나님이 기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고자 원하셔서 천사를 보내어 그가 감히 꿈꾸지도 못하던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를 만날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열어 주셨던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몰라줘도 좋습니다. 아니 가장 가까이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고 욕해도 좋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진심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누군들 실수가 없겠습니까? 그리고 아무리 내가 잘한들 모두의 눈에 다 그렇게만 보이겠습니까? 하나님이 그토록 칭찬하는 욥을 끝까지 비난하며 훼방하던 사단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찾는 자의 길은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 길에서 나도 모르게 벗어난 것을 깨닫게 될 때의 참담함이란 정말 견딜 수 없는 괴로움과 고통의 시간들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 그 아무도 몰라준다 해도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는 자를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이 정말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면 이처럼 여전히 안타까운 눈길로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 주님의 위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이런 고넬료를 따르는 가족들이 있었고 그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부하들 중에도 고넬료와 함께 하나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야말로 고넬료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그들로부터도 볼멘소리가 들려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먹장구름이 짙게 드리우는 듯 한 날들인들 왜 없었겠습니까? 그럴 때 정말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고넬료를 생각해 보십시오. 홀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고넬료 그러나 그를 하나님이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고넬료를 잊으신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때가 되어 천사를 보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기도를 들으셨고, 네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운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너를 기억하셨다”고 하실 때 고넬료가 얼마나 기뻤을 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짙은 어둠이 물러가고 밝은 새 아침이 오듯 그 역시 밝은 새 세상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든 힘들고 지친 분들에게, 때로는 눈물과 한숨으로 지샐 수밖에 없는 분들에게 이런 은혜의 시간이 열려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그럼 베드로의 생각은 어떠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주셨던 마지막 명령을 우리는 대사명이라고 부릅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로 20절에서 주님께서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비록 지금 예루살렘 밖에서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해 순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저의 활동 범위는 유대인들에게로 국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뿌리 깊은 유대인들의 전통 의식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고넬료의 집에 가서의 베드로의 말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뭐라고 말합니까?

이튿날 베드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과 함께 고넬료의 집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욥바에서 온 형제 몇 명도 베드로를 따라갔습니다. 그들은 다음 날, 가이사랴에 도착했습니다. 고넬료는 친척과 친구들을 불러 놓고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안으로 들어가자, 고넬료가 그를 맞이했습니다. 그는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베드로가 그를 일으켜 세우며 “일어나십시오. 나도 사람일 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와 말하면서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들을 향해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유대인이 이방 사람을 사귀거나 그의 집에 찾아가는 것은 유대 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어떤 사람도 속되거나 부정하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저를 불렀을 때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따라온 것입니다. 자,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유대인이 이방 사람을 사귀거나 그의 집에 찾아가는 것은 유대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이렇게 따라 나선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어떤 사람도 속되거나 부정하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자기를 불렀을 때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따라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유대인이 이방 사람을 사귀거나 그의 집에 찾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베드로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것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유대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으로서의 베드로 자신도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의 집을 방문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가라 하셨기 때문에 온 것일 뿐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이요 그렇기 때문에 이방 사람들과는 사귀어도 안 되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방 사람의 집을 찾아갈 수도 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그렇게 심한 핍박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예루살렘에 숨어 지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와 같은 곳에서도 놀랍도록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지 그들을 직접 만나서 그들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알아보려고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서 베드로를 깨우쳐 주시지 않았더라면 어찌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을 방문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렇듯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고정 관념이라는 것이 참으로 무섭습니다. 아니 그건 고넬료의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주시지 않았던들 그가 베드로를 청한다는 것을 생각인들 했겠습니까?
하지만 이젠 이런 모든 고정관념이라든가 자기 자격지심을 버려야 됩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그래서 나는 안 된다고 하는 자격지심을 이제는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누구는 어때서 안 된다고 하는 고정 관념들을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 앞에 나를 내세워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세우시면 누가 안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떳떳하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었느냔 말입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베드로 역시 그런 고정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고넬료 역시 자격지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는 천사를 보내 주시고 베드로에게는 환상을 통해서 이를 깨우쳐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 고정관념이 깨어졌고 자격지심이 사라지도록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이 택해주시고 하나님이 자녀삼아 주셨는데 더 이상 무엇 때문에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하고 무엇 때문에 우리가 괴로워하고 무엇 때문에 외면하고 힘들어 한단 말입니까? 나의 도움이 되기 위해서 나를 찾아주시는 하나님을 우리 모두가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은혜 아래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귀한 성도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봅니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지가가 믿어오던 바가 잘못되었음을 지금 고백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관습으로는 이방인과 사귀어도 안 되고 이방인의 집에도 들어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도 부정하다거나 속되다고 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고넬료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넬료 역시 천사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따랐습니다. 더 이상 자기의 자격지심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순종하여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고넬료는 친척과 친구들을 불러 놓고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베드로에게 보낸 뒤 나흘 째 되는 날입니다. 그러니까 고넬료는 사람들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를 청하고는 곧바로 친척과 친구들을 자기 집으로 불러놓고 자그마치 나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참으로 지루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사흘째부터는 사람들이 암만 해도 안 오는 것 아냐 하면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넬료는 침착하게 베드로가 반드시 올 것이라며 친척과 친구들을 달랬을 것입니다. 마치 여리고 성의 라합처럼 말입니다.

라합이 가족과 친지들을 자기 집에 불러 모아 놓고 일주일 동안이나 그 집에 머물도록 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처음 하루 이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가오는 순간부터 긴장해서 지켜보았을 것이요 이제 곧바로 모든 것이 끝날 줄로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아무 소리 없이 성을 한 바퀴만 돌고 돌아가 버리기를 매일 계속 할 때 어찌 같이 있던 사람들이 불평하며 나는 가겠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도 라합은 그들을 끝까지 자기 집에 있도록 만들었고 그 결과 그 집에 있던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지금 고넬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빠르면 하루에도 다녀올 수 있는 길입니다. 반나절이면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하지만 오후 세시 경 기도하다가 환상 가운데 천사의 말을 듣고 즉시로 사람들을 보냈다고 하면 다음날 저녁쯤이면 넉넉히 돌아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로마 군대의 속성상 게으름을 피울 입장도 아닙니다. 그런데 고넬료가 이만 때쯤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 오후 세시 쯤 도착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도 나흘째 되는 날 그 시간까지 그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끈질기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고넬료는 환상 가운데 하나님의 명을 받고 즉시로 사람들을 불러 욥바로 보냈고 도중에 밤이 되어 다음날 도착한 때가 열두시쯤이었습니다. 이들을 불러들여 저들로 하루를 머물도록 하여 쉴 수 있도록 배려를 하고서 다음날 출발하여 고넬료의 집에 도착한 것이 그 다음날 바로 고넬료가 환상을 보았던 바로 그때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이들이 중간에 하루를 더 지체했던 것입니다.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믿음과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그리고 나흘째 되는 날 오후 세시 경까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사람들을 모아놓고 끈질기게 참고 기다리는 믿음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고넬료와 베드로에게서 배울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도착하여 집 안으로 들어올 때 고넬료가 어떻게 합니까?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 절을 합니다. 이는 로마 장교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사람의 눈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았기에 베드로를 하나님을 맞이하는 것처럼 그렇게 절하며 영접하여 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나도 사람이니 일어서시오 하고 베드로가 저를 일으켜 세운 후 자기가 이렇게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할 때 고넬료가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을까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눈물이라도 왈칵 쏟았을 지도 모릅니다. 목이 메어서 말도 제대로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고넬료 역시 자기가 베드로를 청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보여주신 환상을 따라 순종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제 우리 모든 사람은 주님께서 당신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모든 말씀을 들으려고 하나님 앞에 모였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여기 고넬료의 고백을 통해 우리는 고넬료의 믿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듣겠다고 말하고 있고 사람 앞이 아닌 하나님 앞에 모여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토록 고넬료를 사랑하시는가를 우리는 여기서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구 앞에 나와 있습니까? 바로 이 자리 우리는 사람 앞에가 아닌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모든 말씀을 듣는다는 자세로 하나님 앞에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과 믿음으로 주의 말씀에 순종할 때 고넬료에게 베푸셨던 놀라운 은혜와 충만한 복이 이제는 저와 여러분들의 것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순종하는 믿음, 끈질기게 참고 기다리는 믿음, 서로를 배려하는 믿음, 그리고 항상 하나님이 주의 종을 통해서 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모이기에 힘쓰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어 함께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서로를 용납하며 하나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귀한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힘들게 만듭니까? 이제는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 그 어떤 고정관념도 자격지심도 다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고넬료를 기억하시듯이 그렇게 우리들을 기억하시도록 살아야 하겠고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기도를 들으신 것처럼 또한 우리의 기도도 들으시도록 그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곧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 앞에 항상 기도할 분 아니라 주님이 어떤 말씀을 주셔도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하고 주님의 말씀 앞에서 내 모든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고넬료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홍인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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