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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회복 (시 8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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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기를 생각하는 계절, 사색하는 계절이라고 합니다. 자연의 결실을 바라보면서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앞으로 두 달 여 채 남지 않은 이 한해를 정리하고 반성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이 우리 모두의 마음입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지난 한 해의 신앙생활을 반성해보고 생각해 보려는 기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특히 우리들 중에는 신앙에 성장이 없고, 뜨거움이 없고 한 해 동안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도리어 퇴보했다고 느껴지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금년의 마지막을 전도를 통해 신앙의 열매를 맺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간 전도부흥회를 통해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의 소중함을 알았고, 전도하는 일에 자원하여 전도 특공대를 구성하기도 했고, 전도를 위해 물질을 드리고 헌신을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의 분위기와 전혀 상관이 없는 분이 계십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어떤 것입니까? 이 시간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나의 신앙은 문제가 없는가? 나의 신앙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항상 말씀 드리는 것인데 신앙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신앙의 성장을 나무가 자라는 것으로 많이 비유해 왔어요. 예수님 비유에 “작은 겨자씨가 뿌려져 줄기가 나오고 가지가 뻗어 크게 자라 새들이 깃들게 되었다” 그랬습니다. 신앙은 그렇게 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80:8 이하에서도 신앙공동체 이스라엘을 한 포도나무로 비유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신앙이란 나무와 같이 성장하는 것인데 우리의 신앙은 항상 자라는 것만이 아닐 때도 있습니다. 성장을 머무를 때도 있고 오히려 퇴보할 때도 있는 거예요. 자라나던 가지가 겨울을 만나 잎이 떨어지고 성장을 멈추는 때도 있고 어떨 때는 가지가 다 잘려 밑둥만 남을 때도 있습니다. 구약 성경 여러 곳에서 이런 밑둥을 그루터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잎이 다 떨어진 가지, 또 밑둥만 남은 그루터기라 하더라도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닙니다. 그곳에서 새싹이 나오고 다시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성경에서 보여주고 있는 희망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를 보면, 이런 과정의 반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시 80편의 시가 바로 작벌당한 상태의 포도나무가 다시 원상태의 회복을 위해 간절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즉,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가 이방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상태에서 하나님이 손수 심으신 이 포도나무와 포도원이 원수들의 손에 의해 불에 타고 그 나무줄기가 모두 뽑혀지도록 망하게 되었으니 다시 이 포도원을 회복시켜 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겁니다.

시의 배경은 그런 민족적인 것이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오늘날 우리들의 개인적인 신앙에도 적용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시에서 우리 개인의 신앙이 머물러 있거나 퇴보하는 것을 느낄 때, 어떻게 해야 회복이 가능한가를 듣고자 하는 것입니다.

먼저 일반적인 회복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이전의 상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먼저 본래의 상태, 원상태가 무엇이었나를 정확히 알아야 회복이 가능합니다. 다음은 본래 상태는 어떤 것이었는데 어디로부터 떨어졌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리 원상태를 잘 알고 있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떨어지게 되었는지를 모르고서는 회복할 수가 없지요.
또 중요한 것은 현재의 나의 상태 떨어진 상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현재의 잘못된 상황을 인정해야 비로소 원 상태로의 회복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흔히 과거의 영화에 집착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집착하다보면 회복이 정말 힘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업을 하다가 완전히 망한 후에 원상태로 회복을 하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그런데도 회복이 잘 안됩니다. 그 이유는 현재 지금의 상황에서 시작하지 못하고 과거에 아직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참 잘 살았을 때는 이렇게 저렇게 자가용도 굴리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는데……. 라고 하는 생각 때문에 현재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영화를 누릴 때처럼 살려고 하니까 자연히 생활에 언밸런스가 생기는 겁니다. 안정치를 못해요 항상 불안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원상회복이 가능하겠어요. 악순환만 계속되는 거지…….

회복의 시작은 현재의 상태를 솔직히 시인하고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 맞게 출발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에베소 교회에 관한 예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비교적 교회 내의 악한 세력과 거짓 사도를 가려내어 끝까지 싸우는 수고와 인내에 대해 칭찬을 받았지요. 그러나 한 가지 책망을 받은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겁니다.

모든 실천적인 행위는 있으나 사랑에 근거하여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계시록 2:5에 뭐라고 경고하고 있느냐면 “그러므로 네가 어디서 빗나갔는지 생각하여 뉘우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만일 그렇지 않고 뉘우치지 않는다면 내가 가서 너의 등경을 그 자리에서 치워 버리겠다.”

신앙의 회복을 촉구하는 겁니다. “어디서 떨어졌는지 알아보고,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라”는 거예요. 갑자기 회복이 안 된다는 거죠. 뉘우치지 않는다면 즉 현재의 상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촛대를 옮기겠다. 절대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악화를 자초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제 본문을 살펴봅시다. 본문 말씀들은 신앙의 회복을 위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첫째, 신앙의 회복을 위해서는 먼저 지금의 상황이 아무리 극한 상황에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나는 하나님의 선택하신 자’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면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1) 지금까지 자기가 믿어왔던 신앙에 대해 회의를 품으며 근본까지 흔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2) 어려울수록 더 의지하고, 자기를 돌아보며 신앙이 뿌리를 확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부류 중에 후자의 경우에만 신앙회복이 가능하다는 얘깁니다.

본문 15절을 보세요.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 있게 하신 가지입니다” 시인의 이런 고백은 풍요롭고 좋은 태평시대의 고백이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 이방 민족에 의해 완전히 짓밟힘을 당했을 때 했던 고백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나는 주의 심으신 포도나무입니다. 주를 위해 힘 있게 하신 가지입니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또 1절을 보면 ‘주는 나의 목자요 나는 그의 양’이라고 말합니다. 비록 징계 가운데 신앙이 낙후된 상태에서 괴로워할 때라도 주님은 목자시고 내가 그의 양이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을 때 그 신앙을 원상태로 회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려울 때든지 평안할 때든지 항상 여러분의 생각이 ‘나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야’ ‘하나님은 나의 목자 나는 그의 양이다’라고 고백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신앙이 퇴보한 현 상태에서 겪는 괴로움과 고난을 하나님의 면책이요,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으로 받을 때 신앙회복이 가능합니다.

본문 4절 이하를 보세요. 시인은 자기 민족이 수난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노로 인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들이 눈물 양식을 먹고 눈물을 마시며 이웃에게 다툼거리와 웃음거리가 되는 것 모두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 8절부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가나안에 심으셨고, 거기서 넓게 퍼지고 흥왕했으나 그 이스라엘이 이방인에게 짓밟히며 수욕을 당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다 ‘주께서 하신 일’이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그런데 이 시인의 고백은 이스라엘이 이렇게 폐허된 것이 하나님이 하신일이니까 하나님이 책임져야 한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시인이 모든 것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을 원망했다면 그 뒤에 나오는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기도는 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인은 계속 하나님께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하며 간구하고 있잖아요.

16절을 보세요. 나무가 타버리고 작벌을 당하게 된 것이 무엇 때문이라 했습니까? 주의 면책을 인하여 망했다고 했지요. 시인은 현재의 폐허 상태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데 그것은 자신의 잘못으로 온 하나님의 면책이다. 하나님의 징계라고 인정하는 겁니다. 우리는 생활의 실패를 경험할 때 그 원인 그 책임을 외부에서 찾으려하지 말고 일차적으로는, 책임의 소재를 내 안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 예) 본가 아버님 이야기

어느 훌륭하신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만이 완전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독실한 신자라고 할지라도 우상을 섬긴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솔직한 고백이라고 봅니다. 완전하게 선한 사람은 없어요. 우리 모두는 패배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을 보세요. 그는 훌륭한 인격과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애를 더듬어 보면 실패를 한두 번 한 것이 아닙니다. 가뭄이 들고 양식이 떨어져 애굽에 내려갔을 때 자기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사라의 몸에서 그의 후손이 나올 것이라고 약속해주셨지만  그 약속이 더디 이루어지자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라의 몸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얻어 그의 후손을 삼으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패배가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왜? 패배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더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실패를 모르면 교만해지고 딱딱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패를 경험할 때 인간의 한계를 느끼고 겸손해지고 부드러워지는 것입니다.

모세가 어디서 그 위대한 믿음이 생겼습니까? 그것은 패배로부터 생긴 거예요. 한번은 그가 이성을 잃고 죄를 범했습니다. 살인을 한 그는 도망을 쳤습니다. 80이 다되어서도 돈 한 푼 없고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한때 궁궐에서 살았지만 현재 양치기의 일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방랑생활을 계속하던 어느 날 그는 불타는 가시덤불을 보았는데, 이상하게도 가시덤불은 불에 탄 흔적이 없습니다. 그래 가까이 가서 보려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순종했더니 승리의 삶을 살 수가 있었던 겁니다.

그가 패배에 대한 꾸지람을 참지 못했다면 결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가 없었을 겁니다. 누구나 패배를 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패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패배가 우리 삶속에 찾아왔을 때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알게 되며 우리의 실수와 잘못을 시정하는 계기가 되며 가르침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루어진 일이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 때 거기에 회복을 위한 소망이 있게 됩니다.


세 번째로, 신앙의 회복은 인간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할 때 가능합니다.

본문 17절을 보면 시인은 주의 우편에 앉는 자, 주를 위해 힘 있게 하신 인자의 위에 주의 손을 얹어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자,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의뢰할 때 연약한 인간의 회복이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한번 죄에 빠진 인간은,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해도 원상회복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회복이 가능한가? 지금까지의 실패의 원인을 인간의 죄성과 약함에서 발견하고 ‘나는 못하나 하나님이 은혜주시면 할 수 있습니다.’하고 고백할 때 회복이 가능합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을 때 그리고 우리의 목적이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할 때, 우리 모두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 삶을 통하여 놀라운 음악을 연주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삶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쓰실 수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신앙의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본문의 18~19절의 시인의 고백과 같이 “주께서 회복시켜 주시면 다시는 주를 떠나지 않겠다.”는 결단과 함께 회복을 위해 간절히 간구하고 노력해야 온전한 회복을 이룰 것입니다.
이것은 회복을 위해 어떤 조건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이 오직 성령의 능력 안에서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해를 마무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서 여러분의 신앙에 대해 깊이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현 상태에 머물러있다고 또는 퇴보되었다고 또는 여러분의 삶이 패배의 연속이라고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 신앙의 회복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1)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선택하신 자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 현재의 실패와 고난의 이유를 외부에서 찾지 말고 자신에게서 찾으시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3)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십시오. 우리를 회복시키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십시오. 그리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이 여러분을 붙드시고 본래의 상태로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신앙의 회복과 더불어 더 나은 성장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이 해의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의 열매를 거두어 드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주님은 저희가 어떤 경우에 처해있을지라도 여전히 목자이시며 저희들은 양이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삶속에서 저희는 간혹 실수하고 유혹을 당하여 주께로부터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희를 붙드시어 주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하시고 주의 채찍과 징벌의 이유를 속히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부족과 죄악을 주님 앞에 내놓을 수 있게 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온전히 회복되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널리 이룰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들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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