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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 (엡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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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아이 시절에 울고, 웃고, 떠들 때에는 시간이 기어가듯 느꼈습니다.
내가 소년이 되어 하얀 백마를 타고 오시는 왕자님을 그리면서, 달콤한 꿈속에서 살 때에는 천천히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내가 성인이 되자 느리게만 느껴지던 시간이 달음박질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나의 머리카락이 반백이 되면서 부터는 시간에 날개를 달아 놓은 듯이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을 24시간 시계에 비유하면서,
30세가 되면 벌써 인생이 오후 1시 30분이고,
마흔이 넘어 가면 오후 4시 30분이고,
오십이 되면 저녁 8시가 넘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50을 가리켜서 쉰 냄새가 난다고 하는가 봅니다.

그 누구라도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것이 인간에게 정해진 운명이라면?
내가 살아가는 삶이,
이게 전부라면...
이렇게 살려고 밤잠을 안자고 공부를 하고,
뛰어 다니고,
욕을 먹고,
긴장하고,
갈등하면서 살았는가?

정말 인생이란 무엇인가?

저기에 있는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볼볼볼 하면서 기어 다니는 마티즈를 바라봅니다.
그 어느 것 하나도 현대 그룹의 창업자였던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무덤 속까지 동행할 수 없었습니다.

요즘은 개를 업고 다니시는 분들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아마 부잣집에서 살고 있는 개인가보죠.
그 좋은 집에서 살다가,
사람의 품속에 안겨서,
입에 떼어 주는 고기를 받아먹으면서,
죽은 다음에는 스테인레스 관에 입관이 되어, 양지 바른 곳에 고이고이 묻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개 팔자에 비해 우리 인간의 모습은 너무나도 불쌍합니다.
그저 고민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조심해야하고,
불안합니다.
정말 우리가 개 팔자보다도 못하다는 말입니까?

사람이 죽는 것으로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애완견보다 못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요 3:16을 다 같이 외워 보세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5:11에서도
“또 증거는 이것이니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 것이니라”

그렇다면 인간에게만 있는 영생이란 무엇일까요?

평화로워 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롬 5:10에서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다” 하였습니다.

원수들을 보세요!
과거의 상처들,
과거의 아픔들,
옛 날의 모욕을 절대로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곱씹고,
되새기고,
다짐하면서,
1년이 지나면 1년 전에 하고,
5년이 지나면 5년 전에,
10년이 지나도 10년 전에,
심지어 죽으면서도, 눈을 못 감고는 자식에게 말하기를
“이 원수를 꼭 갚아다오” 하면 대물림을 합니다.

원수에 대해서 말하기를
“원수를 저주하며,
원수를 갚으며,
원수를 쫒아내며,
미워하며,
심지어 원수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흔적도 남기지 말라”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모습입니까?

그러나 교회에 다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이 살벌함이 다 사라질 수 있습니다.
눅 6:27-31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다.

네 이 뺨을 지는 자에게 저 뺨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저희 집에는 누님이 세 분 계셨는데 그 중 두 분이 키가 매우 비슷해서 종종 옷이나 장신구 때문에 언성을 높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어어!
엄마 내 옷 못 보셨어요?
어떤 옷?
아니 제가 어제 저녁에 사온 건데, 이거 어디 갔지?
뭐 가긴 어딜가요.
비슷한 사람이 입고 간 거죠.

그러면 아침부터 톤이 높아집니다.
아이 신경질 나!
너 저녁에 들어오기만 해봐라. 너 죽고, 나 죽는거야.
이게 어디 한 두 번이냐 한두 번!
벌서 세 번째다 응!
그날 저녁!
어떻게 됐겠어요?
몰래 입고 간 사람은 대역 죄인이 되고,
윽박지르는 사람은?

피를 나눈 형제간인데도 옷이 아니라 스타킹 하나를 가지고서도 대판 싸움을 벌리고, 옷장에 열쇠까지 잠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로 예수님을 믿으면,
진짜, 진짜 신앙인이 되면,
친자식을 두 명이나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자기의 자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에요?
바로 나환자촌에서 그들의 고름을 입으로 빠셨던 손양원 목사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소망의 성도들도 원수가 변하여, 형제가 되어 질 수 있는 영생의 성도들이 될 수 있습니다.
평화하게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의 사랑 비칠 때에 기쁨 오네
근심, 걱정 물러가고 기쁨 오네
기도하게 하시며 희미한 것 물리쳐
주의 사랑 비칠 때 기쁨 오네”

영생이란? 죽음의 지배에서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생이란? 추악한 악령의 세력에서 해방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세요.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에 묶여서 삽니다.

이사도 아무 때나 아무 날이나 못해요.
잠을 잘 때에도 동, 서, 남, 북이 어딘지 매일 재야하고요.
신발조차도 함부로 버리지 못하고,
머리 빗 까지도 날을 받아야 하고,
자동차를 사서 본네트와 문을 열어놓고, 돼지머리 앞에서 절하고,
시집 장가 갈 때에는 궁합을 보서 허락이 떨어져야 가고

그러나 예수님을 믿어 보세요!
동, 서, 남, 북을 잴 필요가 없구요,
남들이 손 없는 날을 정해도 우리는 까딱하지 않습니다.
일 없습니다.
왜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는데 누가,
그 무엇이 우리를 건드릴 수 있겠습니까?
아멘입니까?

저는 믿음이 없기 전에는 언제나 두려웠습니다.
죄의 모습들이 떠오를 때마다 불안하였습니다.
불안하고, 긴장할수록, 실수는 더 많아지고,
그러니 더욱 찌그러져 가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모신 후에는 분명하게 변화되었습니다.
징계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용서하여 주시는 아버지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또 다시 기회를 주시면서 일어서게 하시고,
나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영생이 아니라,
용서하시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내가 자유 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히 현세에서 내세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병이 들었기에,
두렵고,
무섭고,
떨릴 때면,
이렇게 소리칩니다.
“아버지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엡 2:8에서도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도 이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시기를 주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세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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