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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 속에 시작하신 착한 일을 이루라 (빌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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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6)
 
  우리는 다양한 사건들을 경험하며 그 사건들에 반응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건의 결과를 보고 걱정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며 때로는 절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사건 안에서 무엇을 보느냐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한 신실한 신앙인이 현실을 보고 탄식하는 말을 들어보았습니다. 그 분은 자기의 현실의 희망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잘못되었고 문제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분에게는 그렇게 현실을 보는 한에서는 결코 새로운 가능성이나 희망을 찾을 수 없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보는 관점이 잘 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삶은 삶의 과정 속에서 문제점이나 절망적인 것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로 보는 데서 우리는 새로운 삶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주역이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가장 어려운 때에 기록한 서신입니다.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바울은, 자신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여 아낌없이 돕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사하기 위해서, 또한 바울의 투옥을 염려하는 빌립보 교인들을 위로하고 그 일로 실망하지 않도록 권면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믿음을 바로 세워주기 위하여 빌립보서를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감옥의 환경과 그리스도인들이 핍박받는 현실 중에도 그 어려움 현실만을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자기 자신과 빌립보 교인들 가운데서 끊임없이 계속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 고 말씀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 6절의 말씀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을 보도록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기독교 신앙의 심오한 진리가운데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셨다는 것이며, 그리고 그 일을 완성시키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착한 일은 선하고 아주 좋은 일입니다. 이 착한 일은 5절의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는 말씀에서와 같이 복음에 관한 것임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임을 말씀하고 입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이 하나님의 형상을 세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본성적 형상’(natural image), '도덕적 형상'(moral image), '정치적 형상'(political image) 입니다.   

  본성적 형상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이해(understanding)할 수 있는 이성의 능력과 의지(will)와 감정(passion)과 선택할 수 있는 자유(liberty, powerof choice)의 기능을 말합니다. 정치적 형상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우주와 만물을 다스리고 관리하여 지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덕적 형상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의로움'(righteousness)과 '참 거룩함'(true holiness)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타락하기 전 처음 인간은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만족하고 온전하며 행복한 존재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인간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인 자신의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웨슬레는 인간이 타락함으로 본성적 형상과 정치적 형상은 부분적으로 파괴되었고 도덕적인 형상은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보았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형상이 손상되었기에 이해력이 상실되어 우둔하고 미련하게 되어 선악의 기준과 하나님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이성적 의지 대신에 욕망에 사로 잡혔고,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도 없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도 없는 무감각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슬픔과 증오와 분노와 두려움과 수치심이 지배하는 감정이 되었고, 세속적이며 관능적이고 악마적인 열정들이 인간의지에 달라붙어서 참 자유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정치적인 형상이 손상을 입음으로 사랑으로 관리하고 돌보는 능력보다는 지배적이고 착취하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덕적 형상이 파괴됨으로 인간은 죄 아래 사는 인간이 되었고, 거룩함을 잃어버린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웨슬리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악마적인 형상 동물적인 형상을 가진 인간이 되었다고 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인간 아담 안에서 타락으로 파괴된 인간의 형상을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하나님은 인간들 안에 착한 일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역사입니다. 곧 복음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구원의 일이 이루어지도록  먼저 은혜를 베푸십니다. 웨슬리는 이것을 ‘선재적 은총’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자신에 대하여 질문하게 하십니다. 죄에 대한 죄책감을 일으키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갈망,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을 만들어 내십니다. 복음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건을 일으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심으로 구원받은 사람으로의 확신과 기쁨을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구원과 함께 그리스도의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한순간 태어나듯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남도 짧은 시간에 일어납니다.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는 거듭남은 죄와 죽음에서 의의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생명을 다시 찾는 것이다. 거듭남으로서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탄의 세력에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옮겨집니다. 거듭남으로서 세상사랑에서 하나님 사랑으로, 교만한 마음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완악한 마음에서 온유한 마음으로, 세속적 감각적 악마적인 마음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마음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거듭남의 경험과 함께 어린아이가 계속 자라듯이 서서히 성숙해 가는 거룩해져 가는 과정을 밟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기까지 자라 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우리 안에 남아있는 죄악성을 매일매일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로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의 사람이 되도록 우리 속(in)에서 착한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그 영광스러운 날에 완전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승리하도록 끝까지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행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그 착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과 동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역은 함께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함께 수고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애쓰시고 노력하시는데 우리는 이 하나님의 수고하심에 함께 노력하는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회개하고, 믿음으로 받아드리고, 순종함으로 동역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깨닫게 하시고 자극시키시며 감동시키시고 충만하게 하시도록 일하시는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나는 내 안에서 누구와 동역하고 있습니까? 혹, 악은 아닙니까? 혹 유혹의 역사는 아닙니까? 혹 사단의 역사는 아닙니까? 이러한 것들과 동역해서는 절대로 아니 됩니다. 이 사회에는 해서는 안 되는 악한 일만 찾아서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악과 사단과 동역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안에서 성령으로 착한 일을 만드시는 그 하나님과 동역해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평안과 기쁨을 가지고 즐겁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사랑을 창조하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남을 평가하고 판단하며 정죄 하고 심판합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무거운 마음으로 눌러놓고는 어둡고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이렇게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서 사랑을 창조하시는 착한 일을 행하시는 그 하나님께 함께 동역함으로 우리 안에 사랑이 차고 넘치게 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면서도 어두움 속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오히려 불편하고 어려운 관계 안에 있는 것도 봅니다. 무엇이 우리를 어둡게 하고 서로를 불편하게 합니까? 그것은 ‘나’라는 것 때문입니다. 나만 수고한다는 것, 나만 옳다는 것, 나만 유별나다는 것, 그것 때문이 아닙니까? 그 ‘나만’이라는 것은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과 역행하게 하는 자만이고 불만이며 불평이 아닙니까?
  내 안에서 착한 일을 행하시는 그 하나님의 일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잃어버려서 아니 되는 하나님과 동역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교만, 의지, 분노 불신앙, 욕망 등의 죄악성을 뽑아버리도록 착한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과 동역 하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경고와 탄식을 외면 할 때에 내적 죄악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되고 신앙도 사랑도 상실하게 되며, 급기야는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 안에서 경고하시고 탄식하시며 도우실 때 그 분의 착한 일에 열심을 다하여 동역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했습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 하였도다” (딤전 6:11-12)
  이 권고는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동역하는 생활을 하라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신앙의 삶을 실패의 것이 되도록 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이루시는 그 하나님과 동역 하는 성도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착한 일을 이루시는 이의 뜻을 이루고 있다는 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셔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까지 계속해서 이루어 가시는 분이심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시작하신 후에 그것을 끝내지 않은 채로 버려두시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이 하나님을 확신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지금도 착한 일을 이루고 계심을 확신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을 확신할 수 있을 때 드러나는 삶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감옥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이루시는 그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 하나님을 보았기에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만드시는 그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을 확신할 때에 나타나는 삶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① 죄를 미워하게 됩니다. ② 거룩한 삶을 갈망하며 거룩하게 살아가고자 합니다. ③ 기도하며 찬송하며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④ 그리고 복음을 전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선행을 베풀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아브라함의 인생 가운데 착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확신하는 아브라함을 말하면서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확신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아울러 자신에게 착한 일을 이루시는 주님께 대한 확신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롬 4:20-24)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딤후 1:11-12)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이루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안에서 그 착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확신하시며 그 하나님과 동역하시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이루어 가시니 하나님의 착한 일을 이루어 가시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김성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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