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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생명 축제를 위한 전도설교 시리즈(2) : 전도, 아무나 하나?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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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토양을 바꾸라

지난 2006년 4월 21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새만금 방조제가 공사시작 15년 만에 드디어 완공되었습니다. 길이 33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이 새만금 방조제는 전북 군산과 부안을 연결해서 갯벌과 바다를 간척함으로 여의도의 140배 규모인 4만 100ha의 국토를 확장하기 위해 1991년 시작되었습니다. 정부에서는 세계 최대의 간척공사로 대한민국의 지도를 바꾸어 놓을 대공사라고 선전했지만, 시민단체나 환경단체들은 '세계 최대의 환경파괴공사'라고 비난하면서 맹렬하게 반대해왔습니다.

저는 이 분야에 문외한이어서 도대체 왜 이런 대공사를 왜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문제는 이 방조제 공사가 15년 만에 마쳤다고 해서 곧바로 토지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단 방조제 안에 몇 년 동안 담수를 유입하고 바닷물을 밀어낸 후 엄청난 양의 흙을 부어서 농업용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농업용지를 만들어도 또 당장 농사를 지을 수는 없다고 합니다. 간척된 토지에는 염분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 토지에 계속해서 인공적으로 담수를 공급해서 이 염분을 제거해야만 비로소 농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 새만금 간척지에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최소 20년의 염분제거 기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정말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 들지요. 하지만 최소한 이것 하나만은 분명합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고 투자도 많이 해야 하지만 이 작업을 거치지 않고는 결코 간척지가 농토로 바뀔 수 없고, 이런 노력이 없으면 그 땅은 아무 것도 살 수 없는 그야말로 죽음의 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과 노력이 투자된 간척지에서 생산되는 쌀은 다른 곳에서 재배한 쌀보다 맛이 좋다고 합니다. 간척지의 염분제거를 위해 계속 물을 흘러가게 했기 때문에 다른 논에 비해 벼가 질소 거름기를 지나치게 흡수하지 않아서, 쌀에 단백질이 많이 축적되지 않아 밥맛이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는 저는 이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지만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 간척지 하나를 잘 가꾸어 농사를 지을 토양으로 바꾸어가는 데도 이렇게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이 필요한데 교회의 토양을 바꾸어 나가는 데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

미국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는 세상에는 네 가지 체질의 교회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사람 중심' 교회입니다. 고린도교회가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 분란이 일어난 것처럼 어떤 교회는 목사중심 장로중심으로 나뉘고, 교회를 개척한 초기멤버와 나중에 들어온 새로운 멤버들 간에 특정한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전통 중심' 교회입니다. 오래 된 교회일수록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나는데 무슨 일을 해도 "우리 교회 전통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전에 이렇게 해왔습니다."라며 전통을 가장 중요시하는 교회입니다. 세 번째는 '재정 중심'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무슨 일을 하려고 들면 언제나 "그거 얼마나 듭니까?" 하고 묻는답니다. 네 번째는 '건물 중심'의 교회입니다. 어떻게든 웅장한 건물을 지어 승부를 보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 건물이나 시설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건물 없이도 성장하는 교회가 많은 것을 보면 반드시 건물만이 핵심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렇게 네 가지 체질의 교회가 있다고 하는데 저는 여기에 한 가지 체질을 더하고 싶습니다. 바로 '우리끼리'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우리끼리 즐거운 교회입니다. 우리끼리 워낙 오래 한 교회 다니다보니 우리끼리 마냥 좋고 즐겁습니다. 그래서 이런 교회는 대개 친교중심의 교회인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예산도 보면 주로 친교행사, 회식, 연말시상 이런 데에 예산을 제일 많이 씁니다. 우리끼리 잘 놀고 밥 먹고 상주고 재미있게 지내는 일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교회는 전도가 가장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끼리 잘 지내고 있는데 누가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너무 어색하고 힘들다"고까지 말합니다. 이런 교회가 정말 있느냐고 물으실지 모르지만 정말 있습니다. 저는 그런 교회에도 있어봤고, 또 실제 어떤 구역은 새신자가 왔으니 잘 관리하라고 말하니까 구역장 하는 말이 "목사님, 우리 구역은 오래 같이 지내다보니 너무 좋은데 다른 사람이 안 끼어들었으면 좋겠어요." 하는 경우도 제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사람 중심'이거나 '전통중심,' '재정중심,' '건물중심,' 특히 '우리끼리 중심' 교회의 공통점이 무엇이냐?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이런 잘못된 중심들이 마치 염분, 소금기처럼 교회의 토양에 깊숙이 박혀있어서 좀처럼 제거되지 않습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려고 하면 사람이 방해가 되고 전통이 가로 막습니다. 특히 새신자들이 와도 그 교회 오래 된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텃세 때문에 좀처럼 정착하기 힘듭니다. 그러다보니 농사가 안 되는 것입니다. 열매가 열릴 리 없습니다. 생명사업이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우리끼리 잘 지내다가 결국 마치 죽음의 바다인 사해처럼 고인 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이 염분을 빼내고 교회의 토양을 바꾸어야지요. 농사가 가능하게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끔 교회의 체질을 바꾸어야지요.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결코 사람중심도 전통중심도 재정중심도 건물중심도 아닌, 특히 우리끼리 중심이 아닌 생명중심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전도중심 교회로 체질을, 교회의 토양을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우리 교회는 부흥성장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생명이 없는 죽음의 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전도는 아무 교회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많다고 전도하느냐? 아닙니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모든 교인이 전도에 관심이 없으면 전도 못합니다. 재정이 많거나 건물이 잘 지어져 있으면 전도 되느냐? 아닙니다. 그 재정과 교회 건물이 전도를 최우선으로 사용되지 않으면 전도 못합니다. 세상에 교회는 참 많지만 전도는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다. 그 교회의 토양과 체질이 전도 중심적으로, 생명 중심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전도 못합니다. 우리 효자교회의 토양과 체질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체질을 바꾸라

전도를 하려면 이렇게 교회의 체질이 바뀌어야 하는데 아울러 우리들 자신이, 그 교회 성도들 개개인이 바뀌지 않으면 전도 못합니다. 성경은 전도 아무나 하는 것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전도를 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첫째, '영혼을 사랑' 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4:19에서 사도 바울은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은 한 영혼을 살리는 일이 해산하는 수고와 같다고 고백하는데 여기 아이 낳아본 분들 아시지만 아이 낳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습니까? 그런데 한 영혼을 돌보고 살리는 일, 전도해서 예수 믿게 하는 일이 모두 해산하는 수고와 같다고 할 정도로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왜 이런 수고를 해야 합니까? 한 영혼에 대한 깊은 사랑과 관심이 없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한 영혼을 향한 진실하고 뜨거운 사랑이 있어야만 전도를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우리가 한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세 가지를 투자해야 합니다. 우선 기도를 투자해야 합니다. 내가 전도하고자 하는 영혼을 위해 매일 전심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마음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가끔 남편이 수십 년을 전도해도 교회 안 온다고 하소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그 안 믿는 남편을 정말 사랑합니까? 그렇다면 매일 단 하루도 안 빼놓고 그 남편의 영혼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기도 없이는, 눈물의 기도 없이는 전도는 불가능합니다. 또한 관심을 투자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생활과 신앙에 관심을 깊이 기울여야 합니다. 그 사람의 가정은 어떤 형편인가, 자녀들은 어떤 상황인가를 살피고 또 일단 교회에 한 번 나온 후에도 성수주일을 잘 하는가 매주 살피고, 말씀과 기도생활은 잘 하는가?를 살피고 함께 기도제목을 나누고 신앙이 커가도록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물질을 투자해야 합니다. 진정한 헌신은 몸, 시간, 물질이 함께 드려져야 합니다. 지난 수요일 우리에게 전도 간증을 해준 김종렬 권사님도 뭔가 먹여야 나온다고 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없다면 소박한 것이라도 좋으니 그 집에 갈 때마다, 만날 때마다 빈손으로 가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가난해서 자기 밭에서 무공해 상추를 키워 가져다주었더니 정말 좋아하더라고 합니다. 이런 마음이 있어야 전도가 됩니다.

둘째, '전도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11에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권면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전도를 하려면 한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를 향해 내 마음이 뜨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녀가 사랑을 하면 한 겨울에 난로 없어도 살 수 있다는데 우리는 전도하고자 하는 영혼을 그렇게 뜨겁게 사랑하고 그 사랑하는 영혼을 위해 열심과 열정을 품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를 하려면 참 부지런해야 합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시간을 많이 투자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시간을 제일 많이 투자하십니까? 낚시에 시간을 제일 많이 투자한다면 여러분은 낚시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TV드라마(7공주)에 시간을 제일 많이 투자한다면 여러분은 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TV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우리가 한 영혼을 위해 열심과 열정을 품는다면 당연히 그에게 열심을 내야 합니다. 부지런히 만나고, 부지런히 밥 사주고, 부지런히 대화하고,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찍어서 그 영혼을 주 앞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게으른 사람을 참 싫어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셔서 우리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열심을 품은 분인데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특히 전도를 해서 한 생명을 구원하려면 열심을 품어야 합니다. 전도, 남이 시킨다고 건성건성 하면 안 됩니다. 내가 그래도 목사인데, 장로인데, 권사인데 해서 '겨우' 체면치레 할 정도로 전도해서는 안 됩니다. 그야말로 내 모든 정성과 열심을 투자해야만 한 영혼이 변화됩니다.

셋째, '한 영혼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5:14에서 주님은 "만일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전도를 할 때 맹인이 되면 안 됩니다. 여기서 맹인이란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 아니고 영적인 눈이 안 보여서 그 사람의 미래를 볼 줄 모른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전도를 할 때 무엇보다 그 사람의 영적인 눈을 뜨고 그 사람의 영적인 미래를 보시기 바랍니다. "저 사람 참 성질 고약하네. 어쩌면 저렇게 예수 믿으라고만 하면 화를 내고 성질을 부리나?"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그 사람의 영적인 미래를 보시면 이렇게 됩니다. "저 사람 참 성격 화끈하네. 예수 믿으면 정말 화끈하게 잘 믿겠는 걸?" 하고 말입니다. 한 사람의 영적인 미래를 볼 수 있게 되면 "야, 저 옆집 여편네 참 욕심도 많지. 저런 사람 전도하면 골치 아프겠어." 하지 마시고 "저 사람 욕심이 많아서 예수 믿으면 믿음에도 욕심 가지겠는 걸? 야곱처럼 하나님 은혜 받는 데는 최고로 욕심 많은 사람 되겠어."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한 사람의 영적인 미래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오기까지 우리는 아나니아라는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를 절대 잊으면 안 됩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눈이 멀어 유다의 집에 있을 때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를 찾아갑니다. 그는 사울을 위해 안수함으로 그 눈을 뜨게 한 후 세례를 베풀고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소개합니다. 분명히 사울이라는 자가 그리스도인들을 극렬하게 핍박한 사람인 줄 아는데도 왜 이렇게 했는가? 사도행전 10:15에 보면 아나니아는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해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합니다. 아나니아는 장차 사울이 바울 되어 주님을 위해 이방인의 사도로 크게 쓰임 받을 줄 알고 보았기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전에는 비록 핍박자였고 지금은 비록 눈멀어 비참하게 앉아있지만 "장차 이 사람이 나보다 훨씬 더 잘 믿고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주의 일군이 될 거야"라는 기대감과 비전을 가지고 그를 만난 것입니다.

여러분, 따라합시다. "내가 전도한 새신자는 나를 그대로 닮는다." 새신자들을 보면 그 사람을 전도한 사람과 양육한 사람과 똑같이 신앙생활 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전도자나 양육자가 기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면 새신자도 기도 열심히 하고, 전도자나 양육자가 전도 열심히 하면 "원래 신앙생활은 저렇게 하는 건가보다" 하고 그 새신자도 전도 열심히 하는데, 전도자나 양육자가 뺀질뺀질 하면 새신자도 똑같이 뺀질뺀질한 성도가 됩니다. 그러므로 전도자가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느냐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아무쪼록 영혼 구원의 비전을 가지고 내가 전도할 저 사람이 정말 신앙생활 잘 해서 장차 바울처럼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 받을 사람, 분명 나보다도 더 크게 쓰임 받을 사람인 줄 믿고 전도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전도할 때 힘이 납니다.

전도는 아무나 하나?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전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아무 교회나 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토양이 전도에 맞아야 하고 체질이 전도체질이 되어야만 가능한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 교회를, 우리 구역을, 우리 자신을 전도체질로 바꾸어서 우리 안에 새 생명이 자라고 열매 맺는 역사를 일으키시겠습니까? 아니면 "난 이대로 살다가 죽을래." 하고 생명사업을 포기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원한다면, 그리고 지난주 설교처럼 천국에서 가장 큰 상급을 받기 원한다면 전도합시다. 전도를 위해 우리 교회 체질도 바꾸고, 우리 구역 체질도, 내 체질도 완전히 바꿉시다. 해가 떠도 전도, 달이 떠도 전도, 살아도 전도, 죽어도 전도로 바꿉시다.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 4:14~15에 보면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했습니다. 전도하려면 스승 정도로는 안 됩니다. 아비의 마음, 어미의 마음을 가지고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내가 전도한 새신자는 내가 힘들게 낳은 내 영적인 자식입니다. 낳을 때는 힘들지만 잘 키워서 나중에 어엿한 어른이 되어 그들이 자식을 낳는 것을 보면 얼마나 대견하고 기쁠까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 내가 낳은 자식보다 손자 손녀가 더 예쁘다면서요? 맞습니까? 그러니 이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라도 꼭 전도합시다. 이번 11월 19일 새생명 축제가 정말 좋은 기회입니다. 마지막으로 김종렬 권사님이 남긴 말로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도 혼자 오셨습니까?" "오늘도 혼자 오셨습니까?" (이하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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