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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가문의 장자 (마 1: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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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특권의식에 젖어있는 유대인들은
한 인물을 평가함에 있어서 족보와 혈통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을 기록한 마태가
      족보를 제일 서두에 내세운 것 자체가 유대적 특징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인물을 소개할 때에 꼭 그 가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 여호수아라든지
      유다 지파 갈렙 또는 베냐민 지파 사울같이
      꼭 족보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그만큼 족보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성경 딤전1:4절에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라 ]고 합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는 양반 상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집안에서 국회의원이 나오고 장관이 나오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도는 믿음의 족보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이 서두에 족보를 기록한 이유 속에서
        구원의 진리를 발견하는 말씀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먼저 왜 마1장에 예수님의 족보를 먼저 기록하고 있습니까?
1. 왜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을까요?(1-2절)
신약성경의 첫 장인 마1장에는
[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 고 시작합니다.
세계란 족보란 말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마태복음 1장의 낳고, 낳고 하는
    그것도 외래어로 된 이름들을 대할 때
    별로 흥미를 가지지 않고 대충 지나갑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느 책이든 앞부분에 제일 중요한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 구절들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말에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구원으로 연결되는 족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1장을 대할 때 우리도 이 족보에 들어가야 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본래 인류의 족보는 아담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담이 사탄의 계략에 속아 범죄 함으로 
    인간의 피 속에는 타락의 피가 흐르게 되었고
    아담의 후손들은 다 저주를 받아 멸망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요8:44절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 났으니 ] 합니다.          <2>
이 말은 예수 믿기 전에 아담의 후손인 우리는
    모두가 사탄에게 붙들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많이 배우고 선하게 산 사람이라고 해도
      예수님 족보에 들지 못하면 지옥행 열차를 타고 있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불쌍히 여기어 구원의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족보를 만드시기로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죽어가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을 불러내셨는데
      그가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우상의 도시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남다른 특출함이 있어서 선택되어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구원의 족보를 만들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인 인간은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즉 어떻게 해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마3:9절 [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혈통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눅19:에 보면 세리장 사캐오가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했을 때
주님께서 사캐오에게
[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
합니다.
즉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는 것은     
갈3:29절 [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 함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의 주인으로 즉 구원의 주로 영접하면
    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담의 후손인 인간은 족보를 옮겨야 삽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아담의 후손은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죄의 삯인 사망을 면치 못합니다.
        지옥 갈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요5:24절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할렐루야~!
우리가 예수 믿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된 것
가장 귀한 축복 중에 축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 가운데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유다까지는 알겠는데
그 다음부터는 베레스 라든지 헤스론, 람 그리고 아미나답, 나손 등
  이런 이름들은 우리들에게는 소위 무명의 인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왜 별로 한 일도 없는 인물들을 왜 기록해 놓았을까요?
2. 유다 지파의 무명의 이름들을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3-4절)
물론 족보이기 때문에 그렇지마는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그렇고 그런 사람들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구속사에는 굉장히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왜? 신앙의 가계를 이어주는 인물
  즉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어주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베레스부터 나손까지는
    애굽의 종살이와 그리고 광야생활을 거쳐나오는 동안
    그래도 유다지파의 족장으로서 장자의 가문을 이어왔다는 것입니다.
비록 고생한 사람이었지마는
    믿음의 가게를 이어온다는 것 하나님 보시기에 귀중한 삶입니다.
신앙의 가계를 이어가는 믿음의 조상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터어키나 이라크 같은 무슬람 지역에 가보면
    희소하기는 하지만 군데, 군데 크리스천들이 있고 교회가 있습니다.
이들이 누군냐 하면 바로
    이라크 북쪽 쿠르드족 지역에 가면
    예수 믿는 요나 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정말 놀랍고 귀한 일입니다.
믿음의 가계를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비록 유명한 사람을 살지 못했지마는
    믿음의 가계를 이어가면 다윗 같은 인물이 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저히 이름이 오르지 못할 이해가 안 되는 여인들이 나옵니다.
3. 왜 유다지파의 족보에 두 여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까?(5절)
본문에서 여인의 이름이 세 명이 나오는데
유다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은 다말과
        살몬과 결혼한 라합, 그리고 보아스와 결혼한 룻입니다.
그 가운데 다말은 유대인 여인이지만
라합과 룻은 이방여인입니다. 이방 여인이 예수님 족보에 오른다는 것
    이것은 유대인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성경에 보면 라합과 룻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라합을 살펴보면                           
라합은 여호수아 시대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의 첩경인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
    여리고 성에 살던 기생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을 숨겨 주고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함락할 때
창문에 붉은 줄을 내려놓을 것을 약조함으로
여리고 성이 함락될 때 라합의 가족들은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합니다.
    예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자들은 모두가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잘나고 못 나고, 신분이 천하고 귀하고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단지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밖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나의 주로 믿으면
    다 구원받고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룻에 대해서는 구약 성경 룻기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룻 역시 이방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흉년이 들어 고향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거기서 두 아들의 며느리로 모압 여인들을 자부로 맞이했는데
두 아들이 다 죽게 되었습니다.
두 자부에게 친정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지마는
둘째 자부 룻은 기어코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 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거기서 보아스를 만나 재혼을 하게 되고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이는 세상을 끊고 하나님께로 온 것을 의미합니다.
라합과 룻이 예수님의 족보에 오른 것은
아무리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삶을 정돈하고 예수를 믿게 되면
    구원받을 수 있고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됨을 말합니다.
예수 믿는 다는 것 바로 족보를 바꾸는 것입니다.
저주의 가문에서 축복의 가문으로 족보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럼 성경에 왜 이 두연인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기록을 하고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사에 중요한 인물이요
    또한 놀라운 축복의 받은 축복의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4. 두 여인이 받은 축복은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6절, 참조/히11:31절)
성경에 나오는 여리고성 그리고 모압 땅은 저주 받은 땅입니다.
만약 라합과 룻이 그기에 살았더라면 저주받은 삶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저주 중에 저주가 뭡니까? 지옥가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저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오름으로 저주가 끊겨졌을 뿐만이 아니라
    놀라운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5>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집안은 계속 잘 안 풀리는 것을 봅니다.
이런 집안은 뒤로 넘어져도 코 깨어진다는 말과 같이
  안 풀리는 집안은 이상하게 집안 전체가 흑암의 권세가 가득합니다.
이상하게도 아버지가 술주정꾼이면 아들도 술주정꾼
        아버지가 노름꾼이면 아들도 노름꾼,
  그리고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면 자식도 바람을 피우는
      대물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신질환이나 질병이 집안에 만연한 가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맥을 못 추고 꿈도 없고 시들시들 망합니다.
이렇게 흑암의 권세가 집안에 판을 치는데도               
사람들은 눈을 뜨지 못하고 계속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한다거나
      우상에게 빌러 갑니다.

예수님 당시 헤롯이란 왕이 있었습니다.
헤롯은 유대인이 아닙니다.그는 이두메인으로 에돔 족속이었습니다
그는 저주받은 족속에 속합니다.
에서가 누구입니까? 야곱의 형 아닙니까?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장막에 거했지마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헤롯은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죽이려한 인물입니다.
①헤롯왕은 하나님이 동방박사를 보내 예수의 탄생을 알려주었지마는
  같이 경배하지 못하고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두 살 이하의 모든 아기를 다 죽였습니다.
②헤롯 안티파스 -  유대인 행세를 한 사람입니다. 세례요한 순교
③헤롯 아그립바1세 -  야고보 순교행12장에 충이 먹어 죽습니다.
④헤롯 아그립바2세
헤롯 아그립바2세는 그의 가문의 마지막 세대였습니다.
그들은 한나라의 통치자였으나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왕위를 잃고,
베수비우스 산에 있는 한 농토를 구입하여
평생을 수치스러운 유배생활로 마감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농사짓기에 너무나 좋지 않은 곳입니다.
    왜냐면 화산이 폭발하여 모든 땅을 삼켜 버렸고
    동시에 헤롯가문의 종말을 고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저주를 깨트리기 원하셨습니다.
헤롯 가문의 모든 세대를 다루셔서 마음을 돌이키려 하셨지만
그들은 모두다 하나님을 거절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다 사라졌습니다.
이두메인도, 에돔인도 다 저주에 삼켜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방인이면서
    복음과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저주를 자처하는 가문의 예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고                       
아담의 족보에서 예수의 족보로 바뀌게 되면 저주가 끊어지고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의 창설자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
그가 스물 세살 되던 해 그 스스로가 말하는
    `무서운 대지진`이란 경악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 부친이 범한 두  가지 죄를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그 하나는 그 부친이 소년 시절에 너무나도  가난하여
      유틀란트의 황량한 벌판에서
        양을 치면서 심한 추위와  굶주림에 못 견디어,
언덕에  올라가
    그토록 가혹한 생을 주신 하나님을 저주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그 부친의 전처가 병으로 죽자
  그의 하녀를 강간하여 임신하게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키에르케고르는 그 하녀가 낳은 8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1813년 5월 15일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그렇게 출생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형제 다섯 명이 요절했던 것은 하나님의 벌이었고,
      자신도 34세 이전에 죽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스물세 살 때 자기 아버지의 두 사건으로 인하여 받은 충격을         
스스로 `대지진의  체험`이라고 말하였는데,
그때부터 그의  삶은 걷잡을 수 없는 타락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를 원망하고 탕아생활을 계속하던 중
    죄책감에 못 견디어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25세 때  `레기네 올센`이라는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면서
      오랜 세월의 방탕은 끝나게 되고 마침내 약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연인은 한없는 행복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그에겐 순간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극단적인 종교적 사랑과(아가페)
    여성에 대한 사랑(에로스)에 대한 갈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아가페를 택하는 자기 결단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그때 유명한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글을 씁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절망이라는 것입니다.
    절망을 이기는 길은 바로 예수 믿는 신앙이라고 합니다.
비록 42세를 일기로 그의 삶을 끝마치게 됩니다만
그의 비문에는 그가 이미 생전에  남겨 놓은 이런 글이 있습니다.
` 나는 생명샘 가에서 예수와 영원히 속삭이리라.`
혹시 우리 집안에 이런 저주가 흐르고 있지 않습니까?          <7>
혹 아직도 흑암의 권세가 집안을 누르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족보를 바꾸시기 바랍니다.
이제 예수 가문에 속하시기 바랍니다.
전도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족보를 바꾸어야 산다는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전도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이 저주의 줄이 끊겨진다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꼭 전하시기 바랍니다.
요1서3:8절에
[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고 합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바로 이런 권세를 주었습니다.
요1:12절에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를 주셨다 ]고 했습니다.
권세가 뭡니까? 힘입니다. 바로 마귀의 저주를 물리칠 수 있는 힘입니다.
예수 믿고 족보가 바뀌어 졌다면
      반드시 이 자녀의 권세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조엘 오스틴(긍정의 힘 저자)
“우리 가문은 오랫동안 가난과 패배의 저주 속에 살아왔다…
과거의 장애물을 과감하게 뛰어넘자고 결심하니
우리 가족을 그토록 괴롭히던 가난의 저주가 드디어 풀렸다 ”

▼ 그리고 라합과 룻이 예수님의 족보에 오른 후에
    저주 안 받은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라합과 룻이 신약적인 표현으로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고 겨우 구원만 받았다면
  성경에 그렇게 많이 지면을 할애하여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히11:31절에 보면
[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 합니다.
이 구절도 단순히 이해할 구절이 아닙니다.
히11:은 믿음의 장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선진들 즉 믿음의 장자들을 열거한 장입니다.
겨우 구원받은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올라올 수 있습니까?
천상교회의 장로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 놀라운 영적인 축복입니다.
내일 가족 여러분,
장자적 신앙에 눈이 뜨여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영적인 축복뿐만이 아니라 세상에서도 많은 복을 누렸습니다.
5-6절에
[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웃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으니라 ]
물론 살몬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읍니다만
보아스에 대해서는 룻기서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아스는 룻2:1절에
[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보아스라 ] 합니다.
유력하다는 말은 우리말로 하면 뼈대있는 양반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고을에 부자였습니다.
보아스가 유력한 자 그리고 부자라는 말은
아버지 살몬도 유다 족장이요 부자였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설명이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저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지 못했다면 저주의 땅에서 끝나버리는
인생이었겠지만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되고 하나님을 섬기게 되니
하나님께서 저주만 끊겨진 것이 아니라
        놀라운 복을 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먼저 환경을 바꾸는 일보다 더 소중한 나를 바꾸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예수 믿고 족보가 바뀌어 지면 삶도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나 바뀌어 지면 세상도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애플 컴퓨더 창시자 <스티브 잡스>는
그의 회사가 성장하려면 통솔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경험이 풍부한 중역을
고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펩시콜라에서 일하고 있는< 스컬리>라는 중역을 스카웃하기로
    그를 만나 설득하였지마는 쉽게 승낙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스컬리를 자신의 아파트 옥상에 불러 만나서
최후 결단을 내리자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당신은 설탕물이나 팔면서 여생을 보내겠소
      아니면 세계를 한번 바꾸어 볼 기회를 잡겠소? ]
이 말을 들은 스컬러는 충격을 받고 애풀사로 오기로 결단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지금 내게 제의 합니다. 
달콤한 삶 속에 여생을 허비할 것인가
  아니면 족보를 바꾸어 아브라함 처럼 복의 근원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복을 안겨다 주는 예수의 가문이 될 것인가?
결단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마태가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17절을 기록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5.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17절을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럼 내가 예수 믿고 예수님의 족보에 몇 대 손이 되었습니까?
17절을 보면
[ 그런즉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 합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함에 있어서
세대별로 쭉 나열하지 않고 14대씩 세 단위로 분활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족보를 쓸 때에 열네 대씩 쓰는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특정한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대인의 풍습을 쫓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 이주까지 열네 대요
그러면 바벨론 이주부터 예수님까지 몇 대입니까?
여러분들이 세어 보시면 알겠지마는 열세 대입니다.
그런데 왜 열네 대라고 합니까?
여기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읍니다만
그러나 한 대를 빠뜨려 놓은 것은                     
마태가 단순한 예수님의 족보로 기록하기 보다는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족보로 기록했기 때문에 한 대를 빠뜨려 놓았다는
    견해도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열네 대는 예수 믿는 우리 모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모두가 한 대로서 형제들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까지 포함하는 하나님의 족보는 완성되는 것입니다.
<결론>
이 세상의 족보는 하나님 앞에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담의 족보는 다 멸망하고 맙니다.
아담의 가문에는 저주가 흐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믿고 예수 가문에 속하게 되면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끊겨집니다.
    흑암의 권세가 물러갑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 가문의 장자의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확신하고 누리며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이 예수님 족보의 세 번째 열네 대인 것을 확신하면서
권세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복의 근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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