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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안을 주는 사람 (몬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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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며 평안을 주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사람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만나고 나면 낙심이 되고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평안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십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실망과 낙심을 주는 사람은 아닌가요?
여러분을 만나는 사람들이 여러분으로 인해 기쁨과 위로와 평안을 얻고 있습니까?

요14:27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전혀 다릅니다.

세상의 평안은 물질적인 것이 지배합니다.
어떤 사람이 돈이 없습니다. 건강을 잃었습니다. 사업이 무너졌습니다. 진로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돈을 구해주었습니다. 건강을 회복하고, 사업이 번창하고, 진로가 열렸습니다. 그러자 두려움과 불안이 사라지고 평안이 찾아옵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평안입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평안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순간의 위기와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지만 진정한 평안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누릴 수 있는 진정한 평안입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적인 문제로 두렵고 근심과 걱정이 많습니다. 돈이 없고, 건강이 필요하고. 사업이 번창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로가 막혀 답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을 얻으면 모든 근심과 걱정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여전히 문제는 존재합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일들은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평안합니다. 두려움과 걱정이 없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주시는 평안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록 음악 기타 연주자였던 지미 헨드릭스는 마약중독이 되어 무대 위에서나 밖에서 난폭하게 행동하며 문란한 삶을 살았습니다.
1970년, 어느 공연의 마지막에 가서 지미는 자기의 기타를 부숴 버렸습니다. 로버트 맥기와 도날드 사포가 쓴 '평안을 찾아서'란 글에 의하면 관객들은 소리치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열광하던 박수갈채가 갑자기 그쳤습니다.
지미가 무릎을 꿇은 자세로 움직이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던 것입니다.
이윽고 그는 정적을 깨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에 누구 참된 평안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무대 뒤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 갑작스런 초청에 응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며칠 후에 그는 약물과용으로 죽었습니다. 평안, 참 평안이 지미 헨드릭스에게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 평안을 아십니까? 참 평안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지미에게는 돈과 명예가 있었고 맘껏 자기탐닉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참 평안을 그 속에서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참 평안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만 있습니다. 그분을 통하여 우리는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묻겠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까?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여러분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주님의 평안이 여러분에게 임하고 주님 안에서 누리는 참 평안을 누리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위로받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주님의 위로가 그 심령에 있고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평안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주시는 평안,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세상에 위로와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고 평안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세상에 평안을 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슬픔과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사람들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의 평안을 주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영생교회 성도 여러분, 슬픔과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는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에게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내게 있는 것으로라는 말씀에 관심을 기우려야 합니다.
내게 있는 것을 줄 수 있습니다. 내게 없는 것으로는 결코 그 무엇도 줄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지셨던 평안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네게 주노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평안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렇듯 우리가 받은 주님의 평안을 세상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기 위해서는 평안이 내게서 넘쳐흐를 수 있도록 먼저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내게 넘치게 채워져야 합니다.

쥐어짜서 내놓은 것으로는 오래할 수 없습니다. 내 안에 차고도 넘치도록 충만해져서 흘러넘치는 가운데 내어줄 수 있는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안에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이 넘치도록 채워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차고도 넘쳐흐르는 주님의 평안으로 세상에 평안을 주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주님의 평안으로 내 속을 충만하게 채울 수 있을까요?

제가 요즘 읽은 책 가운데 내려놓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몽골에서 활동하는 이용규선교사가 쓴 글입니다. 그는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마친 인재였습니다.
그는 세상적인 출제와 명예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몽골의 오지로 선교사가 되어 떠났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안에 있었던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주님이 내 안에 채워졌다고.’
나를 비우지 않고는 결코 주님이 내 안에 채워질 수 없음을 그는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가득한 모든 욕망과 욕심과 이기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자 했던 그것까지 내려놓아야 합니다. 나를 비울 때 거기 주님의 평안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하나가 있었습니다.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이삭을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의 평안이 아브라함에게 임했고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내려놓을 때 오히려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내가 어떻게 해보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절망하였다면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진정 내려놓았을 때 그때부터 하나님이 붙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이삭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포기 할 수 없는 이삭은 무엇입니까? 
때로는 자녀일수도 있고, 돈일수도 있습니다. 명예일 수도 있고 자존심일수도 있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교만일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그 비어진 자리에 주님의 평안이 가득히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평안이 넘쳐 흘러 평안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되고 있는 빌레몬은 성도들에게 평안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7절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다른 사람에게 평안을 주고 기쁨과 위로를 준 사람이 빌레몬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부유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교만하지 않았고 항상 겸손하였습니다. 성도들에 대한 사랑이 많았습니다. 그의 사랑으로 성도들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고 평안을 얻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평안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 사랑이 많고 믿음이 돈독한 사람이 평안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5절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을 들음이니”

빌레몬은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빌레몬이 사랑한 것은 물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닙니다. 빌레몬이 사랑한 것은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셨으며 가난한 이웃들이었습니다.
빌레몬은 예수님을 많이 사랑했고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빌레몬은 믿음으로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안에 주님을 향한 사랑이 풍성하고 믿음이 돈독한 사람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없이는 결코 진실한 형제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빌레몬은 사랑으로 행하는 믿음의 교제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가까이 가도록 해주었습니다.  이처럼 성도의 교제가 아름다워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행하는 믿음의 교제는 서로의 유익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영생교회는 성도의 교제가 아름다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유익이 되고 기쁨과 위로를 주는 평안이 넘쳐흐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과 믿음이 돈독한 빌레몬 같은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에 빌레몬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빌레몬을 찾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얼마든지 평안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원자 되신 주님이 여러분에게 참 평안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작은 사랑을 실천해 보십시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진실한 사랑으로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어 보십시오. 평안을 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행하는 작은 사랑의 실천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된 위로와 평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주님께 한 것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우리 주변에 사랑이 필요한 곳에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저 죽어가는 세상의 사람들에게 신실한 주님의 사랑의 모습으로 다가가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은 참된 위로와 평안을 얻게 될 것이고 그들의 삶에 새로운 소망이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둘째, 자기를 희생하고 헌신할 줄 아는 사람이 평안을 주는 사람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자기의 욕망과 이기심, 분노와 미움들, 모든 쓰레기 같은 더러운 세상적인 것들을  모두 비워내고 주님의 평안을 그 안에 넘치게 채웠으니 무엇인들 내어주지 못할 것입니까? 낮아져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기꺼이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또 내어주는 헌신과 희생으로 낮아지고 섬기는 그 모습에서 사람들은 기쁨을 얻고 위로를 받으며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빌레몬은 자기의 모든 부요를 함께 나누었고 기꺼이 헌신하고 봉사했습니다. 빌레몬은 자기 집을 예배의 처소로 헌납하였고 목회자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돕는 동역자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서슴없이 이렇게 요구합니다.
22절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이 요구는 웬만한 관계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도의 교제를 통해 얻어진 신뢰가 있었기에 요구할 수 있고 또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면 자기를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려놓지 못한다면 희생할 수도 없고 포기할 수 도 없고 헌신된 삶을 살 수도 없을 것입니다.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절대 물러서지 않는 사람 안에는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이 채워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평안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 평안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희생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지 않으시렵니까?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는 사람이 되지 않으시렵니까? 
자기희생을 감수하고 헌신할 줄 아는 사람으로 참 평안을 주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 평안을 주는 사람은 겸손하여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겸손하여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사람이 평안을 주는 사람입니다. 겸손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의 종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평안을 주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에서 겸손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결코 순종할 수 없습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자기주장을 고집하고 어떻게 하든지 관철시키려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21절 “나는 네게 순종함을 확신함으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나의 말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바울은 빌레몬의 순종을 확신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나의 요구 보다 더 행할 것을 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자라고 미련해서 하는 순종이 아닙니다. 비굴하게 잘 보이고 아첨하기 위해 하는 순종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기로 결심했기에 믿음으로 행하는 순종입니다.
그 순종의 사람 속에 평안이 넘칩니다. 주님의 평안은 순종하는 자에게 더욱 넘치도록 채워지는 것입니다.

예수생명전도축제 5주째입니다.
우리가 다시 인식해야 할 것은 전도는 하나님의 소원이며 우리의 목표라는 것입니다.
전도를 위해 태신자를 정하고 기도하였다면 그리고 그에게 사랑을 베푼다면 틀림없이 열매가 맺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자가 갖추어야 할 삶의 자세는 평안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안을 주는 사람으로 생명의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전도되어 주님 앞으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평안을 주는 사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이 가득히 채워지고 그 평안을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가게 하는 평안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평안을 주는 사람, 당신은 진정한 전도자입니다.
(이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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