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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령한 복 (창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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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이요. 우리교회 전교인 총동원주일, 그리고 성찬식이 있는 귀한 날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하나님 앞에 예배하도록 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나오게 하신이도 하나님이시오. 은혜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예배함에 있어서 은혜 충만하게 받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몸을 지켜주시옵소서. 마음 문을 열어 주시옵소서. 큰 은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찾아 나오는 발걸음이 형통하게 인도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제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게 하시고, 복되게 하시고 승리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 마음 아시고, 그 믿음 아시고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지금 교육관에서 예배드리는 유치부, 아동부, 중고등부 학생들에게도 같은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의 복은 크게 2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물질적인 복과 또 하나는 신령한 복이 있습니다. 물질적인 복은 돈 벌어서 부자 되는 것, 명예 얻어서 대접받는 것, 권력을 얻어 힘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질적인 복은 예수를 믿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부자도 있고 권력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복은 예수를 믿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복입니다. 이것은 돈이나 지식이나 권력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복은 세상에서 주지 못하는 축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안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고 즐거워 할 수 있고 어려움 중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면 다 낙심합니다. 그러나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승리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그 신령한 복을 충만히 받아서 날마다 주의 은혜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신령한 복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신령한 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오실 때에, 예수님 앞에 나오실 때, 예수를 믿을 때에 하나님 앞에 어떤 소원을 가지고 나오셨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가지고 나오는 소원이 무엇입니까? 그럼 뒤집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교회 나올때에 어떻게 사랑하시고 어떻게 축복하시고 어떻게 은혜를 주시고, 축복하시기를 원하시겠습니까?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꿈이 무엇입니까? 내가 예수를 믿을 때 나를 향하신 비전과 꿈과 기대와 소원과 축복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내가 교회 나올 때, 정말 내게 주시고 싶으신 것, 세상이 줄 수 없는 것!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신령한 복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령한 복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살았습니다. ‘에덴’이라는 말은 ‘기쁨의 동산’입니다. 왜? 에덴이 기쁨의 동산이겠습니까? 그곳에 먹을 것이 많아서 기쁘겠습니까?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하기 때문에 기쁜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갑니다. 그런데 천국가면 좋은 것이나 맛있는 것을 먹어서 좋겠습니까? 멋있는 옷을 입거나 좋은 집에서 살 수 있으니까 좋겠습니까? 하늘나라는 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왜 십자가에 죽어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벌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함께 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고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그런 땅이냐가 중요합니다만,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곳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겠다.'는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나라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중요한 것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사람이 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을 보세요. 형들에게 팔려서 노예가 됩니다. 또 그곳에서 잘못되어서 감옥에 갇혀서 죄수가 됩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의 변함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함으로 그의 삶이 형통하였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은 하나님과 함께 함을 통해서 이 보디발의 아내가 성적인 유혹을 한다고 해도, 출세의 기회를 준다고 해도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득죄 하리오. 과감하게 거절을 합니다. 그래서 감옥에 갑니다. 내가 출세하는 것보다 부자가 되는 것보다 잘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자체를 귀하게 여깁니다. 감옥에 가서도 불평하거나 원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환경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축복으로 승리할 줄로 믿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하시니까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바로 임금이 요셉을 국무총리로 임명할 때 이유가 몇 가지에요? 딱 하나입니다. “이 사람보다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이 어디 있으리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보고 함께 하시기기 때문에 그를 국무총리로 세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간절한 소망은 딱 한 가지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야곱이 금의환향을 합니다. 많은 재산을 얻어서 고향에 돌아올 때 자기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형 에서가 군대 400명을 이끌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수를 갚겠다는 것입니다. 형의 마음을 녹여보려고 자기의 재산 절반을 갖다 주지만은 이 마음이 동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아내와 자식들, 조카들을 데리고 가서 보이지만 감정도 동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이 야곱은 혼자서 얍복강 가에 가서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시면,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아니하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축복을 하시는데 내가 에서의 400명의 군대보다 열배가 많은 4,000명의 군대를 주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가지고도 안되니까 내가 그를 감동시켜서 무너뜨리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축복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네 이름은 야곱, ‘속이는 자’였는데 이제는 네 이름을 ‘이스라엘’,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로 바꿔주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를 보세요. 야곱아 이스라엘아 하면서 말씀하기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하시지 않으십니까? 네가 불 가운데로 간다고 하더라도 불이 너를 사르지 아니하시고 네가 물 가운데로 간다고 해도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하게 하시리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나를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 그것이 신령한 복이요, 세상에서는 얻지 못하는 하나님의 축복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데 은혜를 받아서 어떻다는 것입니까? 뭐가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내가 돈을 벌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그런데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정말 은혜를 받았는지 안받았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은 벌었는데 은혜는 못 받더라구요. 뭐냐 내가 재수가 좋아서. 돈 벌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감사함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지요. 은혜를 받은 사람은 말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가지고도, 가졌어도 교만하지 않습니다. 겸손합니다. 봉사하고도 내가 잘했다고 하지 않고 겸손하게 “내가 했나요? 하나님이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돈 많은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은혜 받은 사람을 가까이 해야지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이 은혜 속에서 날마다 날마다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

아프리카의 유명한 선교사 리빙스턴선교사가 16년 동안 아프리카 정글 속에서도 모진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복음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었는지를 물어봤더니 그는 딱 두 가지만 말을 합니다. 요한복음14:18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 마태복음 28:20절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신령한 복에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는 신령한 복은 영혼이 잘되는 복입니다.

신령한 복은 영혼이 잘되는 복입니다. 사람은 육체와 영혼, 둘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육체가 영혼을 다스리거나 영혼이 육체를 다스리는 경우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라고 말을 합니다. 육체가 건강하면 정신도 건강할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육체가 건강하다고 정신이 건강한 것입니까? 우리가 잘 입고 잘 살고 잘 먹고 좋은 집에 산다고 그 정신도 건강할까요? 그러면 조폭들은 건강하지 못해서 조폭입니까? 다들 건강합니다. 교도소에 가보면 병든 사람들이 가득합니까? 건강한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건강이 우리 영혼을 건강하게 만든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마귀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혼이 육체를 다스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 영혼이 잘돼야 합니다. 정신이 올바로 배겨야 합니다.

제례시장이 변화가 되가지고 대형마트와 겨룰 정도입니다. 손님도 많고 수입도 잘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시장 대표와 인터뷰를 하는데 제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시장이 변하려면 환경이 변해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시장을 변화시킨다고 다 부숴서 새 건물을 진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상인들의 의식이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생각이 올 바라야, 의식도 제대로 돼야 시장이 잘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잘 짓고 프로그램이 좋아야 잘 되는 것 아닙니다. 교인들의 의식이 바로 서야 프로그램도 프로그램이 되는 것입니다. 수 만 명이 모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의식이 바로 서야지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돼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영혼이 잘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귀가 영혼을 꽉 잡으면 큰일 납니다. 귀신들린 사람들을 보세요. 육체는 건강한데 귀신들이 그 영혼을 붙잡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데로 보면 거라사의 귀신은 어떻게 합니까? 귀신들린 사람은 자기 몸을 막 해합니다. 그리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해하고 못되게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쇠사슬로 묶어 놓습니다. 무덤 옆에서 삽니다. 사람들에게 왕따가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마귀에게 영혼을 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이 붙들어 주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영혼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방패라는 말은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아 내가 너의 상급이다.’ 아브라함은 이 시간 두려웠습니다. 나와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시는데 자신이 없지요. 그래서 자기 몸종 엘리에셀을 자기 양자로 삼아서 제산을 상속해서 자기의 대를 이어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100세의 나이에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들 이삭을 통해서 자기의 대를 이으려고 했더니 하나님도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네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이것을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생각에는 아들 이삭이야말로 내 대를 이어갈 상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아들 이삭을 재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재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을 이삭의 아버지라고 합니까?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까? 여러분 아브라함이 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입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상급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앞에 바쳤습니다. 히브리서를 보니까 아브라함이 이 아들을 죽이면 다시 살리던지 아니면 다른 자식들 주실 줄로 믿었습니다. 여러분 ‘이삭이 상급’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상급’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시편16편에 “하나님은 나의 산업이시오. 나의 분깃이시오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십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교회는 참 좋은 신앙인들이 많습니다. 좋은 장로님들 많습니다. 어느 한 가정을 여러분에게 소개하려고 하는데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겁니다. 1남 3녀를 두셨습니다. 제가 20년 전에 이분 가정을 볼 때 너무나 어렵고 힘들게 살았습니다. 자녀 넷을 키우기까지 얼마나 힘이 드셨겠습니까? 저 멀리 성남에서 여기까지 올 때에 자가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추운 날씨 속에서도 비바람이 부는 날에도 주일에 예배를 빼먹으면 그것이 죽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시고 온 가족이 교회에 오셨습니다. 그런 가정에서 남들 가정의 자녀들 다 대학 보낼 때 이 가정의 자녀들은 대학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시오, 하나님만이 우리의 살길이라”고 믿었습니다. 자녀들이 피아노를 배우고 오르간을 배우고 남의 곁눈질로 배우고 사정하면서 배워서 하나님의 교회 헌신하고 봉사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목사님! 나는 예배당 근처에 가서 우리 한남제일교회에 새벽제단을 쌓고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예배당 근처에 이사를 와서는 얼마나 지극정성인진지.. 그래도 생활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 자녀들이 시집 장가를 갈 때가 됐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유명한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많은 재산을 가진 것도 아니고, 정말 내놓을 것이 없지만 중매를 하는 사람들마다 “이들만큼 신앙 좋은 자녀들이 어디 있습니까?” 교회봉사 잘하고 부모위해 잘 한다고 중매를 하는데, 얼마나 좋은 가정에 시집들을 가는지..이제는 사위가 장로가 되고, 본인들이 권사가 되고, 안수집사가 되고, 교회 봉사를 얼마나 잘 하는지 모릅니다. 아들은 목사가 되고. 지금 와서 그 가정을 보니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아무리 보아도 이 가정이 이렇게 살 수 있게 된 것은 돈이 있어서도 아니고, 세상적인 명예나 권력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이 가정의 힘이었고 하나님만이 이 가정을 살리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이 힘이시고 하나님만이 살려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세상이 주시는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여러분 이런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교회는 추수감사절을 하고 전교인 총동원주일을 하고 성찬식을 합니다. 세 가지 주제가 오늘 합해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준비하는데 무엇을 가지고 설교를 할까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세 가지의 공통점이 “신령한 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성찬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것」입니다. 또 추수감사절을 지내면서 감사를 드리며 사는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 나온 분들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오늘 전교인 총동원주일을 맞이하면서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하나님 온 땅의 만민들이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듯이 경외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문제는 과연 하나님이 나의 지극히 큰 상급이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큰 상급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삭개오가 왜 뽕나무위로 올라갔습니까? 삭개오가 나무위에 올라간 이유는 예수님을 조금 더 가까이 보기 위해서입니다. 삭개오는 멀리서도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군중 속에서도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예수님을 더 가까이 보기 위해서 뽕나무위로 올라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리고에서 예수님을 따라갔지만 주님의 축복을 받고 기적의 주인공이 된 것은 바로 삭개오 밖에 없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지극히 큰 상급이요”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가까이 하십니다. 여러분 주님 앞에 가까이 나오는 것입니다. 앞자리에 앉는 것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찬을 참여하면서도 이 성찬에 능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감사헌금을 드리면서도 마지못해서 내는 것이 아니라 이것에 하나님의 능력과 상급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총동원주일에 온 가족이 예배당에 나오는 것을 통해서도 우리의 마음속에 여기에 하나님의 능력과 힘이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신령한 복을 받아 누릴 자격도 있고 하나님이 예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두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 영혼이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세상 것을 다 잃어도 하나님만이 나로 하여금 승리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믿음을 유산으로 넘겨줘야 합니다. 오늘 이런 유산을 물려줘서 우리 자손대대로 은혜와 축복이 있는 그런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창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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