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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하면 전도합니다 (눅 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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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전도합니다. 눅 15:8-9

앞으로 다음 주이면 터치 153 새 생명 축제가 열립니다. 이 축제는 믿지 않는 우리 이웃들에게 복음을 들려주고,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고귀한 기회를 드리고자하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가 그 일을 중단하면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하나님' 하면 문 밖에 나가서 잃은 자식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먼 산을 쳐다보시는 아버지 모습을 그리지 않습니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일은 자기가 구원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두손들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을 찾아 나오는 일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십니다. 그 기쁨을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성경이 누가복음 15장입니다. 일찌기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신구약 성경 가운데 단 한 장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누가복음 15장을 선택하겠다. 왜냐하면 누가복음 15장만 있으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은 양의 비유, 잃은 돈의 비유, 잃은 아들의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잃은 양은 무지해서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잃은 돈은 환경 때문에 잃어버림을 당했습니다. 잃은 아들은 자기 판단과 결단에 의하여 집을 나갔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세 가지 중 어떤 경우도 반역자나 배신자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잃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누가복음 전체에 흐르는 그 이야기의 한 토막인 것입니다. 어떤 여인이 10드라크마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1개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세어도 9개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방을 사방으로 뒤지면서 찾고 나중에는 빗자루로 쓸면서 찾다가 결국 고생 끝에 찾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자기 혼자 가만히 그 기쁨을 주제할 수 없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우리 함께 즐거워하자." 하면서 잔치를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드라크마는 어느 정도 액수이겠습니까? 그 당시에 로마 화폐로는 데나리온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데나리온 은전과 헬라권에서 원래 사용하던 드라크마 은전과는 값어치가 비슷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듯이 한 데나리온은 일꾼들이 하루 노동해서 버는 품삯입니다. 한 데나리온 받으면 일반적인 수준으로 받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5~10만원 정도 내외가 될 것입니다. 드라크마도 그와 똑 같은 정도의 액수입니다. 따라서 적은 돈이 아닙니다. 은전 하나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만한 가치를 가진 것이면 잊어버린 사람이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결국 찾고서는 기뻐했습니다. 그것을 놓고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주석을 달았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10절)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이 기뻐하듯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누가복음 15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면 몇 가지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잃은 양을 얻은 주인이 기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굉장히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 특징은 더불어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양을 찾아왔습니다. 드라크마를 찾았습니다. 방탕하던 둘째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그것을 보고 주인이,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했냐면, 이웃을 청하고 친구를 청해서 함께 잔치할 정도로 기뻐하는 모습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여기에 나오는 기쁨은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기쁨입니다. 15장 32절을 보면 탕자가 돌아온 것을 보고 자기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3중적인 강조 아닙니까? '즐거워한다'는 말만해도 대단한데, 거기에다 '기뻐한다'는 말까지 하고, 그것도 모자라 '마땅하다', '당연하다'는 말까지 덧붙였으니 이 기쁨은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앉아서 주체하지 못하는 기쁨, 막 춤이라도 추어야 되고, 소문이라도 내야 되고, 사람들을 붙들고 그 기쁨을 전해야 되는 특별한 기쁨인 것입니다. 이 기쁨을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자기가 찾고 있는 죄인이 돌아오는 것을 볼 때에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15장을 보면 12번이나 '기뻐한다. 즐거워한다'는 말이 계속 반복되어 나옵니다. 성경 어디에도 이만큼 기뻐한다는 단어가 반복되어 나오는 장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잃은 양이 돌아오는 것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한 영혼이 예수 믿고 구원받아도 하나님께서 이처럼 기뻐하시는데 작정자 300여명 가운데 대 부분이 예수 믿고 돌아왔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직접 눈으로 보진 못하지만 아마 지금쯤 천국에선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군 천사들과 먼저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과 더불어 지금쯤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너희들 동성교회를 아느냐? 이번에 터치 153 새 생명 축제를 통해 몇 명이 예수 믿기로 작정한 줄 아느냐?' 하고 말씀하시면서 천사들이 팡파레를 불고 야단났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기뻐하시는데 우리가 기뻐하지 않고 시큰둥하고 앉아 있으면 되겠습니까? 절대로 안됩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십시오.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우리는 이 아침 잃은 동전을 찾는 한 여인의 집념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을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이 집념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저는 이 말씀만 붙잡으면, 생각나는 한분이 있습니다. 전에 미아리 교회에서 사역할 때 장순옥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의 전도한 한 형제가 당시 서울 대학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었는데 심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심방 일행이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와서 저와 심방대원이 먼저 내렸는데 보니까 권사님이 안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고 온 택시를 돌아보는 순간, 차마 보지 못할 광경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 분이 상당히 뚱뚱한 분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백금녀라는 별명도 있었는데, 차안에서 엉덩이가 하늘을 치솟고 무엇을 찾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제가 하도 챙피해서 "권사님! 바빠요. 빨리갑시다. 아니, 잠깜만 기다려요." 나의 재촉하는 소리를 들은 채도 안 해요. 권사님이 차안에 거스름돈을 주고받다가 100원짜리 동전이 차 시트 밑에 들어갔는데 그것을 찾으려고 필사의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권사님은 당시 교회에서 제일 잘사는 부자입니다. 그런데 그 100원짜리 동전을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온통 머리가 산발이 된 채,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가지고 자신의 손에 그 100원짜리를 높이 들고 기뻐하는 그 모습이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이 말씀만 보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 집념이 얼마나 강하신지, 잃은 것을 끝까지 찾고야 말리라하는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한 영혼을 건지고 살리기 위해서 우리는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뚝심과 인내심이 있어야 합니다. 잃어버린 동전을 찾는 여인에게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동전 하나를 찾기 위해 가구와 살림살이를 다 치우고, 등불을 켜고, 빗질을 하면서, 끝까지 수고하는 부지런함을 배워야 합니다. 한 영혼을 살린다고 하면서 적당히 기도하고 적당히 전도해 보다 안되면 "에라, 나도 모르겠다!" 하면서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주저앉아서는 결코 한 영혼을 살릴 수 없습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어떤 때는 시간을 내야합니다. 어떤 때는 돈을 써야합니다. 자존심을 접어두고 접근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큼 가치 있는 일도 없습니다. 양 한 마리, 동전 하나를 찾기 위해서도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자라면, 그 주님의 심정을 끌어안고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한 생명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려는 포기 할 수 없는 열정을 갖게 되지 않습니까? 분명한 것은 사랑하면 전도합니다. 아-멘.

몇 해 전에 TV에서 "내 남편을 찾아 주세요"아는 논픽션 프로가 방영 된 적이 있습니다. 김영숙이라는 여인이 정신 장애 남편인 이광식씨를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내 남편을 찾아주세요" 라고 적힌 전단을 뿌리면서 온 거리를 헤맵니다. 사연인즉, 지난날 그녀는 장애인 보호기관 교사로 일했습니다. 거기서 지금의 편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헌신적인 구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은 생활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갖은 애를 써가며 살림을 꾸려 가보지만, 모든 게 여의치 않아요. 그래서 처녀 시절 다니던 장애인 보호기관 교사로 취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남편은 장애인 보호소로 다시 보내려는 줄 오해하고 도망을 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이 부인은 남편을 찾으려고 거리에 미친 듯이 다니는 것입니다. 기자가 물었습니다. "도망 가버린 남편을 왜 찾습니까?" 그녀는 대답합니다. "남편은 내가 아니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내가 안하면 하루 세 끼 챙겨 먹지도 못합니다. 내가 아니면 도저히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울먹이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 이제 나도 그가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사랑의 힘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도대체 정신장애 남편을 찾아 어쩌자는 것입니까? 사랑한다는 말한 마디 못하는 남자, 그 고마움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찾아서 무엇하자는 것입니까? 이에 비하면 우리의 사랑이라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 아닙니까? '내 남편을 찾습니다.' 하며 헤매는 바보 같은 여인을 보며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이 바보 같은 사랑으로 나를 찾아 헤매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나를 사랑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주님 역시, 이 더럽고 추악한 냄새가 나는 이 세상 한 복판에 당신의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죄악으로 물들고 오염된 나하나를 건지기 위해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뛰어드신 것입니다. 뭐 자격을 따지지도,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으시고 그냥 달려와 십자가에서 나의 더럽고, 역겨운 냄새로 진동하는 나의 죄를 그대로 끌어안으시고, 희생 제물로 나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있는 그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십니다. 내가 뭔데, 도대체 나란 인간이 뭐길래, 하나님께서 외아들 독생자를 아무 조건 없이 주셨는지, 그 은혜 앞에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까? 그분이 아들을 죽이기까지 하고 내 생명을 살리시고 투자해 주셨다면, 오늘 우리 인생은 살만하지 않습니까?

이 은혜를 맛 본 사람들은 정말 미친 듯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바치며 살아갑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에 가장 지구상에 불쌍한 나라는 '방글라데시'라고 배웠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동전 한푼,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불쌍하게 보이기 위해서 다리를 자르고, 팔을 잘라서 아이들을 밖에 내어놓는 다는 겁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동전 하나씩 던져 준다는 거지요. 그런 보고를 듣고 신학교 다니던 정성균이라는 신학생이 학교 동산 언덕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 나는 방글라데시에 재물이 되겠습니다. 그렇게도 매일밤 매일밤 방글라데시를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하더니 결국은 방글라데시에 선교사 되었습니다. 모슬렘 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얼마나 매를 맞았는지 팔 다리가 부러지기를 여러 번, 풍토병에 걸려서 가족들이 죽기도 하고 물이 맞지 않아서 이빨이 다 빠져 이빨이 하나도 남지를 않았습니다. 그가 결국은 젊은 나이에 목숨을 방글라데시에 묻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빙점'의 저자 미우라 아야꼬는 병상에서 수년간 고생한 사람이지만, 병상에서도 복음 전할 길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비록 몸은 병들었지만, 병든 몸을 가지고 복음을 위해서 할 일은 없을까?"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종이를 잘라서 병상 옆에 놓아두었다가 기도하고 성경 읽으면서 은혜 받은 구절이 있으면, 얼른 적어서 창문 밖으로 던지고 또 던졌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그 종이 조각을 주워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미친 듯이 살았습니다. 정신나간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부패하고 병든 세상과 족속으로부터 생명을 건지는 일보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 하나님나라 백성을 만드는 일보다 더 귀중한 일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우리가 전도, 전도, 외쳐도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전도 안 합니다. 아무리 외쳐도 눈 한번 꿈쩍 안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면, 전도합니다. 하지 말래도, 그만 하라해도 전도합니다. 방법이 문제가 아닙니다.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9-10절을 볼까요?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이 여인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것일까요? 드라크마 하나를 찾았는데 잔치를 벌입니다. 한 개의 값어치가 고작 한 5만 원 정도밖에 안 되는데 말이죠. 아마 잔치 비용은 50만 원이 들었는지, 100만원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물질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잃었던 한 영혼의 소중함 앞에 놀라운 축제가, 잔치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은 목자가 기뻐했던 것처럼 동전 한 잎을 찾아 낸 여자가 친구들과 동네 사람들을 모아서 기쁨의 잔치를 벌입니다. 바로 이 기쁨 하나로 그 동안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집니다. 여러분, 잃어버린 영혼 한 사람을 되찾는 일에 이 세상 그 어떤 기쁨과도 족히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기쁨, 영혼의 기쁨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나는 우리 교회가 잔치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잔치하는 교회, 거기서 우리 성도들의 배역이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는 보냄 받은 주의 종들입니다. 이 세상을 향하여!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이 땅의 선교사로 보냄 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크리스챤은 이 세상을 향해 날아가는 미사일과 같다'고 했습니다. 세상을 향해 발사되지 않는 미사일은 자폭입니다. 자기도 다치고 교회도 다칩니다. 복음의 폭탄은 세상을 향해 날아가 세상 한복판에서 터져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만 힘 주고 자리다툼이나 하면 교회는 병이 듭니다. 성도들이 뛰어 놀아야 될 마당은 마을입니다. 직장입니다. 학교입니다. 세상 한복판입니다. 아파트 한가운데입니다. 영국의 죤 스토트라는 신학자는 「죄스러운 침묵」이란 책에서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크리스챤들이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크리스챤들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세상 사람들을 정복할 마음을 잃고 살아가는 것은 신앙적인 자패증에 걸린 것이다."

우리의 주님, 우리의 왕 되신 하나님께서 잔치 집에 손님 채우길 얼마나 원하시는가를 표현하는 한 단어가 우리가 함께 한 본문 앞장인 14장에 23절에 나옵니다. '강권하여'하는 말입니다. 물리적인 힘을 써서라도 구원하라는 겁니다. 슬랭영어에서는 '팔을 비틀어서라도'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강에 뛰어들겠다는 사람이 내 곁에 있으면 대화보다도 팔을 비틀어서라도 우선 살려놓고 봐야 합니다. 달리는 고속 기차에 뛰어들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설득할 겨를이 없습니다. 옆구리를 발로 걷어차서라도 살려놓고 봐야 합니다. 이것이 강권하는 것입니다.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그래서 전도엔 시간이 무시되어집니다. 장소가 무시되어집니다. 방법이 무시되어집니다. 대상이 무시되어집니다. 무조건 데려다 천국을 채우라는 겁니다. 이것이 강권하는 것입니다. 이제 한 주간 우리 모두 열정을 다하여 드라크마를 찿는 여인의 심정을 가지고 태신자를 초청하고, 가정에 믿지 않는 식구들을 초청하고 하는 최선의 사역을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핑계꾼들 앞에서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길과 산울가로 나가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터치 153 새 생명 축제' 이것은 모든 성도들이 동참하는 잔치입니다. 동성가족들은 반드시 태신자를 품고 기도해 주십시오. 모든 목장과 기관은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 힘을 모으십시오. 부지런히 이 일을 이루어 가십시오. 무엇보다 15번의 만남인 새벽에 나와 부르짖으십시오. 이번 축제가 계속되는 동안 한 명이라도 전도를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예수를 믿는다면서 한 명도 전도하지 못한, 사람 전도의 열매를 갖지 못한, 사람 이번 기회에 힘을 한번 다해 보십시요. 준비된 영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있고 면류관을 쓰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면류관이 무엇인가? 내가 복음을 전해서 열매를 맺었을 때에 그것이 면류관이 되는 것입니다. 면류관의 보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천국의 면류관 보석은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다시 말씀드립니다. 사랑하면 전도합니다. 아-멘.

여러분 자리에서 모두 다 일어나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성령님은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요청하고 있습니까? 오늘이 여러분의 인생에 마지막 날이라고 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내어 놓으라 말씀하십니까? 여러분이 한 영혼이라고 구원해야 한다고 하면 그가 누구입니까? 가장 절박한 영적인 문제를 가슴에 안고 다같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시간 가지길 원합니다. 다 함께 입을 열어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시다. 아-멘."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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