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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생명 축제를 위한 전도설교 시리즈(3) : 불가능한 전도는 없다! (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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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는 아무나 하나?

여러분, 혹시 지난주 설교 제목 기억하십니까? 성도들이 지난주 설교제목을 기억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지난주 설교제목은 "전도 아무나 하나?"였습니다. 이제 기억나세요? 지난 주 설교는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전도는 아무 교회나 하는 것이 아니다. 전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혹시 이 설교를 듣고 이런 오해를 하신 분 있습니까? "목사님, 지난 주 설교 듣고 위로 받았습니다. 저는 그동안 전도를 잘 못했는데 지난 주 설교 들어보니 전도는 정말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자격이 있어야 하더군요. 그러니까 저 같은 사람은 전도 못하는 것이 당연하더군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설교를 이렇게 오해하면 안 됩니다. 지난 주 설교의 핵심은 오히려 누구나 어느 성도나 어느 교회나 전도체질로 바꾸어 누구나 다 전도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물론 여러분 중에는 이렇게 설교를 잘못 들은 분이 한 분도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이런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전도, 아무나 하나?"라는 지난주 설교제목은 오히려 전도는 누구나 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오랫동안 기도하며 열심히 준비한 새생명 축제가 한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늘은 새생명 축제를 한 주 앞두고 전도는 누가 언제 어디서 하는 것인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전도는 누구나 해야 한다

첫째로, 전도는 누가 하는 것인가? 전도는 '누구나' 해야 합니다.

전도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이것입니다. "전도는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이다." 혹은 "전도는 특별한 훈련을 받은 사람만 해야 한다. 나는 상관없는 일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아닙니다. 전도는 결코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8:19~20에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너희' 즉, 전도하고 모든 족속으로 예수님의 제자를 삼아야 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몇몇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은사가 아닙니다. 은사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받은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들만 받은 것인데 전도는 은사 받은 사람이나 특별한 훈련 받은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믿는 사람들이 다 해야 하는 절대적인 사명입니다.

이와 비슷한 오해가 "전도는 하면 좋지만 안 해도 할 수 없다. 전도는 선택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아닙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전도는 해도 좋고 안 하면 할 수 없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권고사항도 아니요 선택도 아닙니다. 전도는 주님이 엄히 명하신 참으로 엄중한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를 하면 가장 큰 상급을 받거니와 반대로 전도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열왕기하 7:9에 보면 북왕국 사마리아 성 밖에 살던 네 명의 문둥병자가 사마리아를 포위한 아람 군대가 물러간 것을 알고 저들만 아람 군대가 남기고 도망한 음식을 실컷 먹고 재물을 취하다가 하는 말이 나옵니다. 제가 읽습니다. "문둥이가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하고." 여기서 아름다운 소식이란 굶어 죽어가는 사마리아 백성들에게 아람 군대가 물러가고 양식이 남아있다는 생명의 소식입니다. 오늘날 바로 이 생명의 소식이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인 복음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이 생명의 소식인 복음을 우리만 알고 있다면 반드시 벌이 우리에게 미칠 것이라는 절박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전도는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이며 예수 믿는 사람, 복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할 사명입니다.

전도는 언제든지 해야 한다

둘째로, 전도는 언제 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도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도는 특별한 때가 있다." 새 생명 잔치나 교회에서 전도에 관한 행사를 할 때만 전도하면 된다는 분도 있고 또 어떤 분들은 전도를 하긴 해야 하는데 자기가 지금 직장 일 때문에 너무 바쁘니까 나중에 퇴직해서 시간이 나면 하겠다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전도를 하다가 길이 막히면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때가 아닌가보다. 나중에 좋은 기회가 되면 전도하자."

아닙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십시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전도는 지금 당장 해야 합니다. 지금 안 하면 안 됩니다. 왜냐? 오늘 본문 3절과 4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우리 주변에 안 믿는 사람들에게 지금 당장 전도 안 하고 바른 길로 인도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그들이 바른 교훈이 아닌 진리가 아닌 허탄한 이야기와 그릇된 이단을 따르게 되어 영원한 멸망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나는 전도의 때를 놓치고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안 믿는 남편을 전도하려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 문이 안 열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때가 아닌가보다 싶어 나중으로 미루었습니다. 그랬는데 그토록 건강했던 남편이 갑자기 아프더니 의식불명이 되어 돌아가시더라는 것입니다. 전도를 미루다가 내 남편의 영혼 구원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또 어떤 분은 옆집 사람을 전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아무 종교도 갖지 않았는데 안 그래도 요즘 마음이 곤고해서 무엇이라도 종교를 좀 가져야겠다고, 기왕 종교를 가지려면 하나님을 믿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이랍니다. 얼마나 잘 되었습니까? 이제 전도만 하면 되겠는데 내가 갑자기 분주한 일이 많이 생겨서 "나중에 시간 나면 하지"라고 미루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나서 찾아가 보니 이미 그 분은 다른 이단 종파의 전도를 받아 그 이단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설득을 해보았지만 자기는 그 교회가 너무 좋다며 그새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는 특별한 때가 없습니다. 전도는 언제나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쓰라'는 말은 '형편이 좋든지 나쁘든지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군인이 전쟁을 할 때 상황이 좋든지 나쁘든지 상관없이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자세를 뜻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들입니다. 내 형편이 어떻든지 상관없이 반드시 복음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내가 물질적으로 어렵더라도, 내 형편이 별로 좋지 않더라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갚아주십니다. 내 모든 형편과 문제까지도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또한 전도는 지금 해야지 나중으로 미루어서는 안 된다는 뜻도 됩니다. 전도를 나중으로 미루었다가 평생 후회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전도는 미루지 말고 바로 지금 해야 합니다.

전도는 어디서나 해야 한다

세 번째로 전도는 어디서 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 이런 오해가 있습니다. "전도는 어떤 특별한 장소에서만 하는 것이다." 선교란 아프리카 같은 오지나 선교의 불모지, 혹은 먼 곳에서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따라 합니다. "나는 지금 이곳에 파송된 선교사다." 꼭 먼 나라에 파송되어야만 선교사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도 지금 내가 다니는 직장, 내가 사는 아파트 통로, 가족과 이웃들과 친구들 속으로 파송된 선교사입니다. 사도행전 1:8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이란 가장 가까운 곳, 즉 내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전도란 내 가장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해서 점점 더 확대되는 것입니다. 내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디인가? 물론 내 가정과 가족입니다. 그리고 내 이웃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입니다. 그러므로 먼데서 전도 대상자를 찾기보다 안 믿는 내 가족으로부터 시작해서 내가 사는 아파트 통로와 이웃들을 내 전도의 최우선 대상으로 삼기 바랍니다.

또한 전도는 어디서든지 해야 합니다.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서나, 내가 만나는 사람이면 누구나 내 전도대상자입니다. 내가 가는 시장 가게, 내 옆집,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 등 내가 가는 곳, 만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복음을 전해야 참다운 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전도할 마음이 없다면 시장에 가서 무조건 값을 깎을 수 있지만 가게 주인을 전도하려면 잔돈을 안 받고 돈을 더 주어서라도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늘 무심코 지나치는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도 전도할 마음이 생기면 맛있는 것 생기면 가져다 드리고 겨울에 양말이라도 한 켤레 사드리려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이것이 자세의 변화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즉 어디를 가든지 전도할 준비를 갖추고, 누구를 만나든지 전도할 마음을 가지고, 늘 전도를 위해 준비된 자세로 사는 것입니다.

지난번 전도세미나에 갔다가 윌로우크릭 교회 빌 하이벨스 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빌 목사님은 쓰레기를 버리러 집밖으로 나갔다가 우연히 옆집에 이사 온 남자를 만났다고 합니다. 교회 나오라고 전도를 해보았지만 워낙 완강하게 거부해서 우선은 그 남자가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는 시간에 맞춰 자신도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그 사람과 취미 얘기부터 시작해서 자식 얘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마음 문을 열었고 몇 년이 지나서야 성탄절 예배 때 처음 교회를 나오게 되었으며 결국 그 사람을 신실한 성도로 만드는데 7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전도에는 접촉점이 필요한데 그는 쓰레기 버리는 장소를 접촉점으로 삼은 것입니다. 전도에는 특별한 장소가 따로 없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전도의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세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본문 2절과 5절은 전도자의 자세에 대해 말씀합니다. 2절을 먼저 읽지요.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전도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래 참음과 인내도 필요합니다. 여러분, 기도와 인내를 뿌리면 불가능한 전도는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남들은 다 예수 믿어도 저 사람만은 절대 안 믿을 거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기도를 뿌리고 인내를 심으면 놀랍게도 그런 사람의 마음조차 녹아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번 새생명 축제에 오기로 약속한 분들 중에는 이런 분들이 몇 분 계십니다. 절대 안 믿을 거라던 분들이 놀랍게도 병을 통해, 가정환경을 통해, 자녀를 통해 그 마음 문이 열리고 이번 새생명 축제에 교회 오기로 약속했습니다. 이 모두가 안 믿는 남편을 위해, 불신 가족을 위해 인내로 기도한 분들과 그 분들을 위해 내 일처럼 함께 기도해 온 성도들과 구역 식구들의 인내가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는지 몰라도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남편구원을 위해 40년 넘게 매일 눈물 뿌리며 새벽마다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하시더랍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얼마나 인내의 씨를 뿌리고 계십니까?

계속해서 5절을 봅니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때로는 전도하다가 문전박대도 받고 모욕도 받고 고난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6절부터는 이렇게 어려운 전도를 헸을 때 우리에게 주어질 전도자의 상급이 나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사도 바울은 평생 전도하면서 한 영혼 구원하는 일을 위해 살았습니다. 이 전도를 사명으로 한 삶을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삶'이라고 화상하면서 이제 자신의 삶이 서서히 마무리되어 가는 이 시점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위해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바라봅니다. 바울은 바로 이 의의 면류관, 주님이 마지막 날에 주실 영원한 상급을 바라고 평생 전도자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우리도 이 전도자의 길을 걸어갑시다.

다음 주일은 우리가 오랫동안 기도하며 준비한 새생명 축제입니다. 태신자가 몇 분이나 초청되어 올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몇 분이 오느냐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우리들 자신의 자세가 변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새생명 축제를 준비하면서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합니다. "목사님, 정말 부담됩니다." 저는 속으로 "할렐루야! 성공이다." 하고 외쳤습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속에 부담이 생기고, 전도해야한다는 의무감이 생기고, 전도에 빚진 자된 마음이 생기고(빚지고 마음이 편하면 되겠습니까?), 전도하지 않고는 마음이 불편해서 견딜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면 일단 새생명 축제는 성공입니다. 하지만 이 새생명 축제를 잘 마치더라도 일회성 행사로만 끝나고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전도는 남의 일이고 전도하려는 마음이 불타지 않는다면 실패입니다.

마지막으로 지난주에 이어 또다시 김종렬 권사님이 남긴 말로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도 혼자 오셨습니까?" 다음 주에는 반드시 우리가 이 말을 듣지 않도록 여러분의 손에 누군가를 잡고 함께 오기 바랍니다. 그 분이 부담스러워 안 온다고 하면 "나를 봐서라도 꼭 한 번만 나와 달라"고 사정 사정 해서라도 데리고 오십시오. 우리 자세가 이 정도가 안 되면 전도 못합니다. 다음주에 여러분의 태신자와 함께 만납시다. (이하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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