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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의 미련한 것 (고전 1:1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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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동 선생의 시 중에 <조선의 맥박>이란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그 줄거리인즉 일제 말엽, 민족의 운명이 암울하였던 시절에,
  조선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지만,
아침 여덟 시 반경, 책가방을 들고
    학교로, 학교로 몰려가고 있는 젊은 생명들의 움직임이
    바로 조선의 건강한 미래를 상징하는 조선의 맥박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 맥박을 올바르게 짚어볼 줄 아는 사람은 비관적인 현실의 문제에 대하여       
너무 낙심할 필요가 없음을 양주동 박사는 말해 주는 것입니다.
한의원을 찾아 가면 한의사는 먼저 우리들의 맥박부터 짚으며
우리들이 건강한지 병들어 있는지를 짚어 봅니다.
오늘 교회의 맥박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교인들 가슴속에 복음의 감격과
    복음에 대한 열망 즉 전도가 교회의 맥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를 해 보면 가장 불평이 무엇인가 하면
    왜 예수쟁이들은 굳이 예수만 믿으라 하느냐? 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 예수만 믿으라고 합니다.
구원이 무엇이냐? 구원은 하나님과 관계회복입니다.
하나님과 관계회복은 타락한 인간의 공로와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복음의 능력만이 가능합니다.
복음의 능력을 힘입어 구원 얻고
    복음의 능력을 덧입어 전도하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복음이란 무엇인가?
1. 복음이 무엇입니까?(18절)
오늘 본문말씀에서 복음을 십자가의 도라고 합니다.
복음(Gospel)이란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을 번역한 것입니다.
‘유앙겔리온’이란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무때나 쓰인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의의가 있는 다음 같은 좋은 소식을 지칭할 때 주로 쓰인 것이다.
  ① 외국과의 전쟁에서의 승리로 이제 평화가 왔다는 소식
  ② 죄인의 사면 및 각종 의무와 채무의 면제 소식
  ③ 새 왕의 출생과 즉위의 선포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된 소식이란
        예수님 자신이 우리에게는 복된 소식입니다.
예를 들어 내 아들이 저 멀리 가서 고생 끝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
그 소식이 나에게 복된 것이 아니라 그 아들 자체가 복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여러 가지 소식이      <2>
우리에게는 복된 소식이 아닐 수 없지만
예수 자신이 우리들에게는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활이 복음이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재림이 복음이고,
    예수님의 전부가 우리에게는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우리에게 어떻게 전해졌는가 하면
      십자가의 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십자가의 도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십자가에 집약된 진리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고전15:2절에
복음을 헛되이 믿지 아니하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고 합니다.

그런데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은 다릅니다.
복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기쁜 소식으로 듣기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 복음에 대한 세상사람들과 우리들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18-20절)
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보면 세상 사람들은 그런 것 너나 믿으라고 합니다.
왜 너나 믿어라 하는가? 왜 기쁜 소식을 미련한 것이라고 하는가?
복음의 능력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고물장사 하는 한 청년이                       
옥 반지 하나를 헐값에 사서 10년 동안 자기가 끼고 다니면서
  친구나 만나는 사람마다 이건 골동품이야 나의 보물 제1호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픽 웃었습니다.
하루는 호주머니가 궁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끼니나 때우려고
    반지를 팔러 보석상에 들어갔습니다.
보석상 주인이 반지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 자리에서 만 불을 줄려고 합니다.
이 고물장사 청년, 눈치 하나는 빨라서 팔지 않고
  골동품 전문가에게 가져갔더니 100만 달러가 넘는 골동품이라고 합니다.
반지에 돋보기로 자세히 보니 불어로 조세핀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18세기 영웅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무명의 시절에 아내 조세핀에게 생일 선물한 반지였습니다.
옥반지가 보배인 것을 안 청년은 그 후부터 사는 게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예 복음을 받지 못해서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날 교인들마저도 복음, 복음 하면서도 그 진가에 눈이 뜨여지지 못한 것 같습니다.
복음은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인 줄 믿습니다.
복음의 능력에 눈이 뜨여지기를 바랍니다. 복음의 눈이 뜨여지면 삶이 달라집니다.

왜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합니까?
세상의 힘으로는 어떠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1) 속죄의 능력이 있습니다.
옷에 묻은 얼룩은 세제로 지을 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에 붉게 물든 죄는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지을 수 없습니다.
롬6:23절 죄의 삯은 사망이라, 죄 지은 자는 망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홍같이 진홍같이 붉게 물든 죄를 지을 수 있는 유일한 표백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뿐입니다.
이 보혈의 능력을 믿고 죄 씻기를 원한다면
  십자가의 예수 앞에 회개할 때 흰 눈같이 양털같이 회개될 믿습니다.
찬202장 3절 눈보다 더 희게 맑히는 것 주의 보혈의 능력밖에 없다고 합니다. 
 
2)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구원의 능력이 뭡니까?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민21:4절 이하 에돔 광야의 불뱀사건은 바로 구원의 사건을 말합니다.

3) 삶의 회복의 능력이 있습니다.
  레25:8절 이하 희년제도는 바로 삶을 회복케 하는 복음의 능력입니다.

4) 특히 사랑과 용서의 능력이 있습니다.
  기독교 배경을 가진 작품 벤허가 있습니다. 유명한 영화이지요. 
  전통적인 유대교인이었던 벤허가 우발적인 사고로 졸지에 노예가 됩니다.
친구 친구의 배신과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문둥이가 됩니다.
노예선이 침몰될 때 생명을 구해준 댓가로 로마 호민관의 양아들이 됩니다.
복수의 칼을 품고 유다로 돌아온 벤허는               
배신한 친구의 죽음을 보고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유대인의 왕 예수라는 사람의 사형집행이 있다고 하여
    그곳에 갔다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를 만납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와 눈빛이 마주칠 때
자기도 모르게 [ 오 주님이시여 ] 라는 말이 터져나옵니다.
순간 마음 속에 증오가 사라집니다.
문둥병에 걸렸던 어머니와 누이가 깨끗함을 입습니다.
복수의 증오심으로 어둡게 살아온 그가 다시 거듭난 것입니다.
바로 복음의 능력, 사랑과 용서의 십자가의 도를 체험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 즉 복음은 결코 미련한 것이 아니라
  내게 새 생명과 새로운 삶을 안겨다 주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습니다.
그런데 왜 세상사람들은 이 복음을 외면합니까?              <4>
19절은 사29:14절의 인용으로서
[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
이 말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방법으로                   
      인간의 지혜를 채택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계시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아무리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이라도
              복음에 눈이 뜨여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골1:26절, 28절 에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추었던 것인데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
복음은 비밀입니다.
비밀은 아무리 그가 지혜가 있고 이 세상 학문에 능한 선비이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변사라 할지라도
비밀은 비밀을 알고 있는 주인이 가르쳐주지 아니하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비밀 앞에서
지혜있는 자, 선비, 변사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는 것입니다.

비밀 - Secret - 요사이 비밀번호 많이 사용하지요
열쇄, 금고, 예금통장, 전화입력, P. C통신 등등...
그런데 통장에 억 만금이 들어 있어도 비밀번호 모르면 무용지물입니다.
    비밀코드 모르면 아무 쓸모 짝 없는 것입니다.
    복음의 비밀 자기가 모르면서 하나님의 바보짓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구원의 비밀코드인 복음에 눈이 뜨여지게 하신 것
        가암사~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복음을 믿는 자에게
    마16:19절에 천국 열쇠를 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의 비밀을 가르쳐 주는데 
    하나님이 직접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사자를 시켜서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3.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입니까?(21절)
즉 전도라는 통로를 통해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21절 [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바로 전도하는 사람입니다.
왜 전도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입니까?
  그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사람도 살리는 일을 하면 그렇게 흐뭇할 수 없어요.        <5>
저는 목사이지만 영혼구원 뿐만이 아니라
    죽어 가는 생명 몇 사람 살리는 일을 해봤습니다.
하나님께서 내일교회 목사 시키려고 남다른 경험하게 한 거지요.
물에 빠진 사람 3번이나 건져봤어요
교통사고 나서 죽어 가는 사람 두 번이나 병원에 싣고 갔어요,
그리고 길에서 부상당한 어린이, 밤중에 술에 만취되어 쓰러진 아가씨.
    등 등 시간 뱄기고 돈 손해나고 얼마나 귀찮습니까?
그래도 조금도 후회하는 마음 없고 생각만 해도 흐뭇해요.
왜?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혼 살리는 일을 전도라는 미련한 방법을 통해 하신다고 합니다.
전도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숨 쉬어야 하고 잠 자야하고 밥 먹어야 하듯이
    전도를 통해 영혼을 구원하시는 것이 변함 없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하는 사람
    하나님이 귀히 보십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며 존귀케 하십니다.
    천국의 그랑프리는 전도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롬10:15절 [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
하나님이 아름답다고 하면 그의 인생 아름다운 인생인 것입니다.

전도는 하나님 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큰 기쁨이 됩니다.
마치 가정에서 가장 큰 경사는 바로 자식의 출산이듯이
성도에게도 신앙의 가장 큰 기쁨은 전도입니다.

양병무(인간개발연구원장) 교수의 간증입니다.
나의 주요한 업무 중의 하나는
  사회지도층 인사와 기업체 임원들에게 리더십 코스를 교육하는 일입니다.
교육은 매주 2시간씩 16주 동안 진행되는데
교육기간이 4개월이나 되다보니
        끝날 무렵에는 인간적으로 대단히 가까워진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교육생과 수료식 파티를 하는데
교육생 중 서울대 K교수님이 있었는데
    K교수는 인품이 훌륭해서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분입니다.
이런 분 예수 믿으면 얼마나 좋겠나 싶었는데
그러나 마음 한 쪽에서는 괜히 얘기를 꺼냈다가
    분위기가 어색해지지나 않을까하는 두려움도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하나님께 기도했데요.                  <6>
“하나님 우리 교수님이 예수를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저에게 담대함과 지혜를 주세요”
기도를 하니까 용기가 솟아 났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교수님, 이제 교회 한 번 나가시면 어떠세요?”
“글쎄, 나도 가고 싶기는 한 데 쑥스러워서요”
“댁이 어디인데요?” “양재동이요”
“그러면 그 곳에 제가 아는 교회가 있으니 가르쳐 드릴게요”
그의 반응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50대 중반의 서울대학교 교수로서
이름을 대면 알 수 있을 만큼 사회적으로 지명도가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왜 교회에 가기를 권면하는지 솔직하게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나면 너무 행복하다. 세상이 달라집니다.
이 복음을 전해 주고 싶습니다. 특히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그런데 이 교수님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예수 믿고 가장 기뻤던 일이 바로 교수님 전도한 일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복음은 나눌 때 감격이 더 넘쳐납니다.
복음을 전하는 신앙의 삶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복음에 대해 각각 제 목소리를 냅니다.
세상에는 크게 복음을 받지 아니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4. 복음에 대한 유대인과 헬라인의 반응은 어떠합니까?(22-23절)
22절 [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 못밖힌 그리스도를 전한다 ] 고 합니다.
표적은 기이한 현상을 의미하는데
신약에도 유대인들은 종종 예수님을 찾아와 표적을 구했습니다.
마12:38절 이하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찾아와       
[ 선생님,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 하니
[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 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 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 하시며
예수 십자가의 죽으심을 믿는 것이 표적 중에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에 나와도 복음과 상관없이 주여 믿습니다. 하는 사람
          예수 십자가의 도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1)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 같은 사람은 복음은 거리끼는 것이라 합니다.
  거리낀다는 말,  헬 - 스캔달론 -스캔들 - 반갑잖은 소식이지요. 
  오늘 교회 안에도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 같은 교인은          <7>
    십자가의 복음은 듣기 싫어하고
    하나님 믿습니다 하면서 축복, 능력, 기적이라면 혹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십자가에 죽은 예수 스캔들이 아니라
      예수 생명이요 능력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이란 말은 아주 종교적이란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히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가 있고 힘이 있다 할지라도
    사람이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종교적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유대인들입니다.
확실히 유대인들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자들입니다.   
유대인들의 이런 믿음은 출애굽에서 절실히 싹텄습니다.
힘도 없고 백도 없이 남의 밑에서 종노릇 할 수밖에 없었던 하찮은 무리,
인간의 힘의 극치를 자랑하는 피라미드의 나라 애굽의 권력에 눌러
    피를 흘리며 종살이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 했기에
이 기적을 믿는 믿음이 뼈에 사무쳤던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인 바울은 기적을 믿는 유대인의 믿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 아니하고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밖힌 그리스도                     
    즉 십자가의 도를 통해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2) 이방인 즉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 합니다.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고 했는데               
    헬라인들은 지혜를 사랑하는 일을 삶의 목표를 삼은 사람입니다.
    즉 철학을 삶의 목표로 삼은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사람의 지혜를 순화하고 또 순화하면               
    그 속에서 우주의 원리를 발견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저희들 지식보다 한 수 아래 인 것입니다.
          복음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미련한 짓이란 바보짓이란 말입니다.
문제는 오늘 얼마나 많은 교인들조차도 전도라고 하면             
          하나님의 바보짓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똑독한 사람들은 복음을 반갑잖은 소식,
또는 하나님의 바보짓이라고 하지만                   
당시 헬라 철학에 정통한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밖힌 그리스도를 전한다. 즉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왜? 복음만이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십자가의 도를 전합니까?                          <8>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5. 신자들에게 복음은 어떻게 나타납니까?(24-25절)
24절 [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
사랑하는 내일 교우 여러분
복음만이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이상 어떤 표적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이상 어떤 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를 나의 주구로 믿을 때
  구원을 얻을 뿐만이 아니라
  내게 새 생명이 주어져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줄 믿습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 귀에 복음이 듣기워져야 합니다.
복음이 내 귀에 듣기워지면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복음의 능력에는 크게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복음을 믿음으로 사람을 구원시키는 능력입니다.
또 하나는 구원시킨 사람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헌신된 일꾼을 만드는 능력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의 능력은 개인을 구원 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교만과 고집을 꺽고 예수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게 합니다.
    그리고 능력 있느느 일군으로 거듭나게 합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죄와 타협하거나
    세상 사람들과 차별성 없는 삶을 사는 것도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자신이 먼저 체험하여야
      다른 사람에게도 그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전도가 어려운 것은 내 자신이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고대의 로마나 헬라사회의 조각가는 인기있는 직업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대 사회에서도 조각품이 인기가 있다 보니
    훌륭한 작가의 작품은 고가였습니다.
그런데 조각품 전시장 앞에 [ 사이니 케러 ] 라는 글을 써놓은 가계가 있습니다.
[ 사이니 케러 ] 란 왁스를 바르지 아니함, 이란 말인데
조각가들이 실수하여 흠집을 내며 왁스로 그 흠집을 때운다고 합니다.
왁스로 흠집을 때우는 솜씨가 훌륭하여
    사람들이 쉽게 분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치 있는 조각은 사이니 케러 즉 왁스가 발라지지 아니해야 합니다.<9>
오늘 성도의 삶 - <사이니 케러>가 되어야 합니다.
오직 복음의 능력만이 우리에게 구원을 안겨다 주며
    십자가의 예수만이 우리의 삶에 생명을 안겨다 주심을 믿습니다.
그러니 예수 잘 믿는 삶이란 단순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순수한 작품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 얻고 내가 믿고 구원 얻은 예수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삶이 예수 잘 믿는 삶인 줄 믿습니다.

<결론>
오늘 하나님 말씀은
세상 사람들은 복음을 반갑잖은 소문
              하나님의 바보짓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복음의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은 것처럼
복음을 자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 손에 붙들려지는 내일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좋은 교인 하고 신앙이 좋은 사람하고는 다르다.
그 다른 점이 무엇인냐? - 전도라는 것입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은 전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119선나전도주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나님 가장 기뻐하는 일이 바로 전도입니다.
    내가 먼저 복음의 감격을 회복하고
          복음을 전하는 신앙이 좋은 교우들 되시기 바랍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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