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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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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아는 어떤 권사님이 있습니다. 그 권사님은 나이 육십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권사님은 돈을 벌기 위해서 최근까지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일터에서, 또 가정에서 정말 무척이나 바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지만 시댁 식구들로부터 별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걸핏하면 트집을 잡고 권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권사님의 남편도 나름대로 효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어머니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늘 권사님만 책망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때로는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권사님은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모든 것을 참고 견딜 수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시편 119편 71절 말씀과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을 묵상하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선지자 하박국은 마음이 심히 괴로웠습니다. 견디다 못한 그가 하나님을 향해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하박국 1장 13절 말씀입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오죽 답답했으면 하나님을 향해서 방관하시지 말라고, 잠잠하시지 말라고 따지 듯이 외쳤겠습니까? 그는 죄악을 범하는 자가 오히려 이 땅에서 잘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깝게 외쳤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합 1:2)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참으로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것만 봐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정직한 사람이 손해를 보고 성실한 사람이 오히려 더 어렵게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반면에 꾀를 부리고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들은 떵떵거리며 잘만 살고 있습니다. 이런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세상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참고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오직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 가운데서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답답한 마음으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게 사는 자들이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 “어째서 악인들이 더 잘 살고 있는가?”

  선지자 하박국이 활동하던 시대는 앗수르 제국이 망하고 새롭게 일어난 강국 바벨론이 유다 나라를 침공하던 때였습니다. 나라 전체가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나라의 존립 자체가 매우 위태로운 가운데 있었습니다. 또한 국내적으로도 온갖 불법과 부조리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선지자 하박국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악에 대한 심판을 촉구했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십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선지자 하박국이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선지자가 이르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이시여...”(합 1:12 상반절) 그런데 그 거룩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합니까? 거룩이란 구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결코 죄를 눈감아 주실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와 거룩은 양립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선지자 하박국도 바로 그 점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합 1:13 상반절) 무슨 말입니까? 선지자는 속히 심판하실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만 아니고 세상 만민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사랑이란 참으로 묘한 것 같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상대에 대해서 매우 너그럽지만 그 상대가 배신할 것 같으면 엄청난 분노로 돌변하지 않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인간을 그토록 사랑하시는 하나님도 그 인간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끝내 죄 가운데 머물 것 같으면 결국은 벌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그 벌을 잊고 계시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에 대해서 원망 섞인 호소를 늘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갈대아 사람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 것을 보시면서도 거룩하신 하나님이 잠잠하십니까?” “왜 바벨론이 여러 나라를 무자비하게 짓밟아 망하게 하는 것을 사랑의 하나님이 방관하십니까?” 한 번 대답해 보시라고 다그치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합 2:1)

  그러나 그것은 우리 인간의 생각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은 이미 눈앞에 닥쳤습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벌하실 것이며 그 때도 그리 멀지 않았다고 친히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하박국 2장 3절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물론 죄악이 넘쳐나는 세상과 죄인들의 형통함을 지켜보고 있는 선지자 하박국은 매우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결코 그 고통을 모르고 계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정하신 때에 행동하실 것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그 때가 더디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악인이 계속 활개치고 떵떵거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계획하신 때에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것입니다. 악인들의 불순종한 일들과 죄를 범한 것들 모두를 결국에는 심판하시고 벌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그렇다면 죄악이 들끓고 있는 이 세상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걷는 신앙의 길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신자라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Believer, 즉 믿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아닙니까? 철저히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 바로 그가 신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삶의 방식은 오직 믿음뿐인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우리의 판단은 그다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참을성도 그리 강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부조리한 현실을 바로잡아 나가시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불평하거나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 손으로 직접 고치겠다고 연장을 들고 나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원망과 불평은 결국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을 나타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표시 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결코 다른 것을 믿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신뢰한다면 우리는 또한 기도하며 그 말씀대로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삶이란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그 하나님께 모든 것을 기도로 맡기고 그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바른 길로 걸어야 합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썩어가는 세상에서 소금으로 녹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결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대적하여 이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믿음으로 살아야 하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될 것입니다.

  흑인 민권 운동가 마티 루터 킹 목사의 전기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킹 목사가 몽고메리에서 버스 보이콧을 주도하고 있을 때 사람들로부터 많은 협박을 받았습니다. 킹 목사는 너무 두려워서 그만 그 일에서 손을 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바로 그 때 그는 분명히 들었습니다. “킹 목사! 정의와 평등을 위해 일어서라! 보라,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 음성을 듣고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다시금 용기를 얻고 그 일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흉탄에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웠던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 이들 때문에 그 꿈, 즉 인종 차별이 없는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되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모든 어려움을 참고 주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은 이 역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결코 악인의 형통함을 그냥 보고 계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주님이 모든 것을 회복시키실 그 날을 기다리며 어두운 이 세상을 향해서 밝은 빛을 비춰야 합니다. 빛의 자녀답게 바른 길로 걸어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가슴으로 품고 단 한 명이라도 더 주님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며 빛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그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석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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