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나를 따르라! (눅 5:27~28)

  • 잡초 잡초
  • 333
  • 0

첨부 1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까요? 다시 말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무엇을 가장 귀중하게 생각해야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무엇보다 예수님을 최고로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추구하는 것이 달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고 저 사람 변했어...” 그런 말을 듣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말을 듣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가치관이 달라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삶의 우선 순위가 달라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소중하게 생각하던 것이 달라져야 합니다. 삶 전체가 예수님을 믿기 전과 판이하게 달라져야 합니다. 만약 누군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별로 차이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면 거기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때문에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은 항상 스스로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내가 과연 무엇을 믿고 있는가?” “내가 과연 누구를 따르고 있는가?”

  오늘 봉독한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려는 우리에게 좋은 본을 보여 주는 한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세리 레위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따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주님이 말씀하시자 세리 레위는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 조건 없이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태복음 9장이나 마가복음 2장의 기사를 봐도 주저하거나 머뭇거렸다는 표현은 전혀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는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즉시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는 주님이 말씀하시자 그 즉시 주님을 따라갈 수 있었을까요?

  먼저 그는 예수님이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때문에 그 즉시 주님을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재물도 어느 정도 모았을 것입니다. 권력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전에는 그런 것들을 갖게 되면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런 것들을 손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었습니다.

  특히 사람들로부터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누군가 현대인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천 년 전에 그 쓰라린 고통을 경험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남달리 많은 사람을 대하면서도 오히려 철저히 버려진 외톨이와 같은 신세였으니 레위는 얼마나 가슴이 쓰라리고 아팠겠습니까?

  그런데 그 레위에게 예수님이 다가오셨습니다. 레위도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이미 다 듣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눈길조차 주기 싫어하는 그를 주님은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를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사람 취급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제자로 부르셨다는 말입니다. 그의 생애 전체를 통해서 가장 귀한 분에게 듣는 가장 감격스러운 초대의 말씀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면 의외로 어려운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특히 마땅히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좋지 못한 습관들을 버려야 합니다. 재물과 권력, 명성과 지위에 대한 욕망과 집착도 버려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버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마땅히 버려야 할 것들을 미련없이 버릴 수 있을까요?

  레위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본문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그가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때문에 지금까지 소중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모두 다 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고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가지고 있는 재물보다, 권력보다, 지위나 명성보다 더 소중한 분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그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어린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 주면 처음에는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하루 종일 그 장난감을 붙잡고 놓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더 좋은 장난감이나 더 재미나는 장난감이 생길 것 같으면 어떻게 합니까? 전에 가지고 놀던 그 장난감은 금방 던져 버리지 않습니까? 더 좋은 것이 생기면 전에 좋아하던 것들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손에 쥔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더 귀한 것 앞에서는 다 버리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더 귀한 것, 아니 가장 귀한 것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그 무엇보다 주님이 더 귀하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은혜로 알았기 때문에 그 즉시 따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직업은 세리였습니다. 그 당시 세리는 로마 제국의 심부름꾼이었습니다. 세리들은 당국이 매긴 금액 이상으로 돈을 징수하여 그 남는 돈을 착취하였습니다.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창기나 이방인처럼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세관에 앉아 있던 레위도 역시 그렇게 취급받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를 부르셨습니다. 사람들이 멸시하는 자리에 앉아 있을 때 주님이 그를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레위를 인정하셨던 것입니다. 세상은 그를 버렸지만 주님은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

  지극히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인정해 주신다는 것을 알 때 그 은혜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은혜는 스스로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죄인임을 깨닫는 사람, 자신의 죄를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 자신의 약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사람과 같은 그런 사람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말입니다.

  레위는 스스로 창기와 같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주님이 그를 부르셨을 때 큰 은혜로 알았던 것입니다. 일찍이 사도 바울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로마서 5장 20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자신의 연약함과 자신의 죄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상대적으로 주님의 은혜가 크게 느껴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같은 죄인이라도 단순히 죄인인 나를 용서해 주신 주님의 은혜와 죄인 중에 괴수인 나를 용서해 주신 주님의 은혜는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어찌 보면 신앙의 성숙도는 자신의 약함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하는 것과 비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레위는 자신의 사명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 즉시 주님을 따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아무 의미 없이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확실한 목적을 두고 인간을 지으셨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쓰시려는 목적에 맞는 삶을 살 때 참된 가치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방에는 큰 그릇이 있고 작은 그릇도 있습니다. 접시가 있고 냄비도 있습니다. 많은 종류의 주방 기구들이 있지만 모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그릇은 국을 담기 위해서, 밥그릇은 밥을 담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만약 찻잔이 밥그릇으로 쓰인다면 그 가치는 사라지게 됩니다. 찻잔은 차를 담을 때, 즉 목적에 맞게 쓰일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맞게 쓰일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사명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아는 사람입니다. 또한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목표가 분명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부르셨을 때 세리 레위는 자신의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주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를 알고 감격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주님을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여기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분명히 깨닫고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석공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