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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괴로우신 하나님(말 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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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라기 2장 10절 - 17절
제목  괴로우신 하나님

800년대 중국의 시인 백거이는 부인고(婦人苦), 아내의 괴로움이라는 시를 썼어요.
긴 머리 곱게 빗어 올리고, 정성들여 고운 눈썹 다듬네.  새벽 화장 벌써 몇 번째인가, 낭군은 보고도 곱다 않는데 죽어 같이 묻히길 바래보지만 낭군은 백년해로 가볍게 아네.
남편 죽어 혼자되면 여자는 죽도록 외로이 살아야만 하니 그 신세 숲 속의 대나무 같아.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한번 꺽이면 다신 살 수 없으니 말라 죽어도 절개는 지켜야 하네
남자는 아내가 죽어도 마음에 상처야 있겠지만 마치 문 앞의 버들과 같이 봄이 오면 다시 무성해지고 바람 불어 가지 하나 꺽이어진들 다시 또 가지 하나 생겨난다네.
낭군께 간곡히 부탁드리니 바라건데 재삼 새겨 듣기를 부디 아내의 괴로움 알아 이제부턴 가벼이 여기지 말길

낭군께 간곡히 부탁드리니 부디 아내의 괴로움 알아 이제부턴 가벼이 여기지 말길

그래요.  사람들은 누구나 살면서 괴로움을 안고 살아가지요.  이 괴로움이라는 것은 관계가 주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에게 괴로움을 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내가 괴로움을 받기도 합니다.  내가 아내에게, 남편에게, 자녀들에게 괴로움을 주기도 하고, 아내나, 남편이나, 자녀들 때문에 내가 괴로움을 받기도 하지요.
백거이의 시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낭군께 간곡히 부탁드리니 아내의 괴로움을 생각해주세요.  아내에게 간곡히 부탁드리니 남편의 괴로움을 생각해 주세요.  당신에게 간곡히 부탁드리니 내 괴로움을 생각해 주세요. 
어때요.  우리는 누구에겐가 괴로움을 주는 사람들은 아닌가요?

17절 말씀을 보니까 “너희가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고도”라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괴로우시다는 거예요.  누구때문에?  너희 때문에.  여기에서 너희가 누구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괴로우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괴로우실 것이라는 생각은 한번도 안해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괴로우시다고 말씀합니다.  그것도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바로 나 때문에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괴롭게 하고 있는 겁니다. 
문제는 뭐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눈물로 제단을 적시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괴롭게 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들이 열심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괴로우시데요.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괴로우시데요.  우리가 눈물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괴로우시데요.  우리가 열심히 성경공부를 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괴로우시데요. 
이해가 되질 않아요.  왜 하나님께서는 괴로우신지?  도대체 왜 하나님께서는 괴로우신거예요?  내가 보기에는 괴로우실 일이 하나도 없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괴로우신거예요? 
13절 말씀을 보세요.  나는 열심히 제물을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받질 않으셨어요.  외면하셨어요.  괴로우면 누가 괴로워야해요?  내가 괴로워야하는데, 하나님께서 괴로우시다는 거예요.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하나님의 전을 적셨어요.  그런데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돌아보지도 않으셔요.  괴로우면 누가 괴로워야 해요?  내가 괴로워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괴로우시데요.  그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묻는 겁니다.  왜?  Why?  하나님!  왜그러시는 겁니까?  도대체 제가 어떻게 했길래 괴로우시다는 거예요?  물어보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괴로우신 이유 두 가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의 이익만을 쫓는 삶이어서 괴롭다고 말씀하십니다.
14절 上입니다. “이는 너와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찍이 증거 하셨음을 인함이니라”  쉬운 번역으로 보니까 “네가 젊은 날에 만나서 결혼한 너의 아내를 배신하였기 때문이며”  아내를 배신하고 이방여인과 결혼한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괴롭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오랜 바벨론 포로 생활을 정리하고 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파괴되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웠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전 다윗 왕의 영광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리던 메시야만 오시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기다리던 영광은 없고, 갈수록 삶은 힘들어 갑니다.  이 때 한 두 사람, 결국은 이스라엘 사회에 이방 여인과 결혼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심지어 결혼했던 사람도 이방 여인과 결혼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결혼합니다.  이게 하나님을 괴롭게 한다는 것이지요.
대학 다닐 때 친구.  군대를 가기 싫어 했던 친구.  군대 안가는 방법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어.  마지막으로 알려 준 방법.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하면 된대.  졸업하고 군에 갔다 와서 한참 후에 소식을 들었는데.  미국에서 산데.  미국 시민권자랑.  물론 군대는 안갔다고 그러고요. 
요즈음 동남아나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돈을 벌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많지요.  많은 사람들이 불법체류자라고 그래요.  경찰에게 잡히면 강제로 쫓겨나요.  그런데 이 사람들 한국 사람과 결혼하면 안쫓겨나요.  결혼이라는 것이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힘이 된다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랬어요.  살려고 살려고 발버둥 쳐도 어려움을 벗어날 수 없었어요.  그래 생각한 것이 이방여인과 결혼하는 거였지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아내를 버리고 이방여인과 결혼하는 거예요.  자기 아내와 이방 여인과 비교해 보니 이방 여인이 훨씬 나아.  나에게 성공의 기회도 줄 수 있어.  그러니 이방 여인과 결혼하는 거예요. 

그런데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어요.  하나님께 눈물로 예배를 드렸어요.  기도를 했어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전히 종교적으로는,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을 찾아요.  하나님을 버린 바 없어요.  단지 변한 것이 있다면 이방 여인과 결혼했다는 것 하나 뿐이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예배와 제물을 외면하셔요.  왜냐하면 이방여인과 결혼한 것이 단순히 아내만을 버린 것이 아니었던 거예요.  하나님과의 약속도 버린 거고요.  하나님의 말씀도 버린 거예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약속도 말씀도 뒷전이었던 거예요.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의 중심은 뭐였어요?  자신의 이익이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신앙인 것처럼 보였어도 사실은 자신의 이익이 먼저였어요.  그래 하나님께서 괴로우신 거예요. 

자기 생활은 어떻더라도,  자기 마음은 어떻더라도,  자기 삶의 자세는 어떻더라도.  예배만 잘 드리면 되는 줄 알았어요.  기도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제물만 많이 드리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일상적인 삶 속에서 나의 이익만을 쫓는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괴롭게 한다는 거예요. 

오늘날 한국교회가 그래요.  세계적으로 기도 열심히 하기, 헌금 잘하기, 성경공부 잘하기로 소문났어요.  연구 대상이예요.  그런데 일상적인 삶을 보면 믿는 사람이나 안믿는 사람이나 별 차이 없어요.  어떤 목사님이 가정에 대한 설교를 하고 나니까 사모님이 이불이랑 베게랑 들고 강대상으로 가더래요.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강대상에 계신 목사님하고 살고 싶대요.  집에 있는 남편하고 살고 싶은 것이 아니고.  강대상에서 말씀하시는 것 보면 그럴 듯 한데 집에서는 안 그런다는 거잖아요.  교회에서는 그럴 듯한데 집에 오면 안 그런다는 거잖아요.  삶이 신앙을 안 따라 주는 거예요.  신앙은 신앙대로 가고, 삶은 삶대로 가는 거에요.  지난 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한국 교인들처럼 계산 속 빠른 사람이 없다고 해요.  손해 안 보려고 해요.  신앙은 신앙이고 내 이익은 이익인 것이지요.  이익을 생각할 때는 신앙을 잠시 접어요.  문제는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그러는 것이 아니고, 신앙이 있는 사람들이 그렇더라는 거예요. 

미국에서 대학 총장을 지내고, 커다란 교육 재단의 대표로 계신 분이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여관을 운영한데요.  그런데 이 분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버릇이 있다고 해요.  10일이고 20일이고.  물어 보았데요.  도대체 어디에 가십니까?  “구두 닦으러 다니기도 하고, 세차장에 아르바아트로 취직하기도 하고, 청소부로 일하기도 하고, 접시도 닦고” 그런데요.  “왜 그러십니까?”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경험하지 않으면, 그들이 사는 모습을 가까이서보지 않으면 내가 어디고 가는지 잊기 때문에 그럽니다.”  대학 총장하면 고고하게, 영예롭게만 살아도 돼요.  그런데 그렇게 살면 스스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게 된다는 거예요. 
내 이익만을 쫓으며 살면 삶의 방향을 잊어버리게 돼요.  그러기에 내 삶의 중심을 잡기 위해서, 방향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것이지요. 

남아공에 있을 때 집사님 댁에 골프 연습공이 있었어요.  공에 줄이 달려서 치면 날아 가는데 멀리 날아가지 않아.  줄을 내가 있는 곳에 매어 놓고 공을 쳐요.  그러면 줄 길이만큼만 공이 날아 가요.  그러면 다시 당겨 치고. 치고 그랬어요.  우리를 하나님 말씀에 붙잡아 매야 돼요.  그래야 내 이익을 찾아 날아가더라도 내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다가 돌아오고 가다가 돌아오고 그래 중심을 찾고 내 길을 찾을 수 있는 거지요.

2.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 때문에 괴롭다고 말씀하십니다.
17절 上입니다.  쉬운 번역으로 읽어 드릴께요.  “너희는 말로 나 주를 괴롭혔다”  그래요.  말로 우리의 입술로 주님을 괴롭혔데요.  도대체 뭐라고 그랬는데요?  17절 中입니다.  “주님께서는 악한 일을 하는 사람도 모두 좋게 보신다.  주님께서 오히려 그런 사람을 더 사랑하신다.  공의롭게 재판하시는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을 더 좋아하시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들 더 사랑하신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공의롭지 못하다고 말하고 있어요.  이 말이 하나님을 괴롭게 한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이스라엘 사람들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법도 해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인 자기들의 삶과 하나님을 모르는 이웃의 삶을 비교해 보면 이웃들의 삶의 형편이 더 좋아요.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인데 더 잘 살아요.  자기들은 하나님을 믿는데도 제대로 풀리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 이야기 하는 거지요.  하나님은 악한 사람들을 더 사랑하시는군요.  하나님은 정의롭지 못하시군요.
어제 ‘저 푸른 초원위에’를 보니까 최수종이 암에 걸렸어요.  그 이야기를 들은 주인집, 술을 먹으면서 하늘을 쳐다보고 그러더라고요.  ‘하나님 주무시는 겁니까?  하나님이 계시면 이럴 수 있는 겁니까?’
우리들이 그래요.  평소에는 하나님 한번도 안 찾더니, 평소에는 하나님 한번 의식하지 않더니, 평소에는 하나님 말씀 무시할대로 무시하더니.  내가 생각하기에 좀 어려우니까 ‘하나님 도대체 뭐하시는 겁니까?  계시기는 하는 겁니까?’ 그러고 있어요.  왜 그래요?  내 마음대로 안되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안되니까 그러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않아요.  하나님의 계획은 생각하지 않아요.  오직 내 뜻과 내 생각만 있는 것이지요.  이게 이기심이고 교만입니다.  나 중심에서 생각하는 거.  하나님을 괴롭게 한다는 말씀이예요. 

언제 내 인생에 중심에 하나님을 모셔놓고 살아 본적이 있어요?  우리는 그냥 형식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어요.  교회는 열심히 다녔지요.  헌금은 열심히 했지요.  기도도 가끔 했지요.  그런데 삶은, 생각은, 마음은 온통 딴 곳에 있었어요.  내 이익만 쫓는 삶을 살았어요.  밤이면 불을 향해 뛰어 드는 불나방처럼, 그게 죽는 길인지도 모르고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내 이익을 위해서만 뛰어 들었어요.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을 찾으나 실제로내 삶에는 하나님이 없었던 거예요.  그래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고 괴로우신 겁니다.  내 계획만 있었어요.  그래 시간표 짜놓고 한참 가고 있는데 내 계획만 생각하며 한참 가고 있는데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해요.  계획대로 안돼요.  뜻대로 안돼요.  그러니 하나님께 비수를 꽂아요.  하나님 계시기는 하는 겁니까?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물어보지도 않고 저 혼자 멀찌감치 가더니, 뒤에서 아무리 그 길 아니라고 아니라고 잡아도 뿌리치고 저 혼자 가더니 그 길이 아니니까 ‘하나님 계시기는 하는 겁니까?’ 그래요.  그래 하나님께서 괴로우신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신앙,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시다.  혹 우리의 삶이,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삶의 자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있나, 아니면 하나님을 괴롭게 하고 있나?
내가 오늘 한시간의 예배 드린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은 아니예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 예배는 우리보다 더 잘 드렸어요.  그들은 눈물 흘리며 예배를 드렸어요.  우리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께서 계셔야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라는 말씀이예요. 

오늘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너희 삶, 생각, 계획, 뜻, 말, 너희의 모든 것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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