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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는 은혜의 공동체 입니다 (히 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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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은혜의 공동체입니다.
히4:14-16

1. 들어가는 말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입니다.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회복된 것이 바로 은혜 때문입니다.
필립 얀시라는 사람이 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라는 책이 있습니다. 영국에서 비교종교학 회의가 열렸을때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이 무엇인가라는 토론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성육신의 교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반대하는 사람은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다른 종교에도 있다는 근거를 말하였습니다.

다음 다른 사람이 ‘부활의 교리’에서 기독교신앙의 독특성을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반대하는 사람이 죽은자의 환생의 교리는 기독교의 전유물만은 아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때 유명한 영국의 c.s 루이스 교수가 일어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종교에서 찾을 수 없는 기독교만이 제공하는 일관성있는 메시지는 은혜입니다‘라고 하자 모든 이들이 여기에 동의햇다고 합니다. 저는 이 주장이 옳다라고 봅니다.

다른 종교에는 좋은 견해와 좋은 충고가 많이 있습니다.
"선하게 살아라,깨끗하게 살아라,올바르게 살아라,정직하게 살아라" 도덕과 윤리적인 가르침을 강조합니다.내가 무언가 한만큼 신에게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고 자격이 되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말고도 윤리와 도덕을 선한 행실을 강조하는 종교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왜 기독교는 타종교를 인정하지 않습니까?왜 기독교는 독선적입니까?”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모든 종교는 비록 하나님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사람들을 착하게 바르게 살도록 인도하는 윤리적인 가르침과 도덕적인 가르침이 있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런측면에서 종교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종교로는 기독교가 유일합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종교는 인간의 선과 행위를 앞에 세우지만 기독교는 먼저 하나님의 일하심과 은혜를 앞세우는 종교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은혜라는 말은 바로 자격을 따지지 않고 주어지는 호의입니다. 기독교의 과거는 은혜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예수님의 구속하심의 은혜가 오늘의 우리를 여기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과거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로 우리가 택정함을 입었습니다. 은혜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은혜로 구속함을 입었습니다. 은혜로 영생의 기업을 받았습니다.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은혜로 성령과 교회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엄청난 축복들을 은혜로 주셨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돌리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중요한 것은 기독교는 과거의 종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은 일하시고 계십니다.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계십니다.하나님은 지금 은혜를 받기를 소원합니다.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 뿐만 아니라 은혜의 현재가 있어야 합니다.은혜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어야 합니다.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습니까?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대면한 초대교회에서는 지금 은혜의 자리가 멀어져 있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이유가 다 있습니다. 내적으로는 믿음이 부족해서였고 외적으로는 거짓교사들과 환난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해서 믿음의 집중력이 떨어져서 자꾸 은혜의 자리에서 멀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히브리서기자가 대면한 초대교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나와 우리는 어떻습니까? 교회는 은혜의 공동체여야 합니다. 지금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지금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1.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14절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지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아무나 나갈 수 없습니다.그래서 구약에는 하나님의 보좌의 상징인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그리고 대제사장일지라도 지성소에는 일년에 한번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곳은 위엄과 두려움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위엄과 두려움의 보좌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은혜의 보좌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이 보좌 앞에 이젠 누구든지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자유롭게 열린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란 바로 하나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굳게 갖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우리가 계속적인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근거는 오직 예수님 때문입니다.그런데 특별히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일을 계속하는 데 있어서 계속해서 승천하셔서 대제사장으로 일하시는 예수님을 굳데 믿을 것을 강조합니다.과거에 은혜의 사역을 감당하신 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이 아닌 현재 살아서 하늘에서 믿는 자들을 위하여 대제사장 사역을 감당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볼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바라보아야 예수님이 바로 살아계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복음서에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구원사역을 하신 과거의 사역뿐만 아니라 현재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계속해서 은혜의 보좌를 통하여 은혜를 입도록 하나님 앞에서 중보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우리는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사역을 지금 계속해서 감당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십자가에 못박히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지금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우리가  최후에 원수 마귀 이기고 주님 만날때가지 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도와주실 것입니다.히10:12-14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자신이 제물이 되어 거룩하게 한  그리스도인들을 영원히 도와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도와주는 구체적인 사역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히7: 24-25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이렇게 지금도 하나님 앞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시면서 예수님의 사역이 나를 향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굳게 믿고 바라보아야 합니다.과거에 나를 위해 이땅에 오신 예수님의 은혜로운 사역이 진행된 것을 우리는 눈으로 보지 못했습니다.말씀을 통해 알았고 은혜를 힘입어 믿었습니다.이제 지금도 나를 위해 사역하시는 그분의 은혜로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보았을 때 하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 그 예수님께서 나를 기억하시고 하늘 보좌 우편에서 나를 도와주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허물과 죄를 위해 십자가에사 대속의 사역을 감당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이제는 나를 위해 기도하시면서 나를 하늘 보좌에서 나를 돕고 계시는 그분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은혜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끝까지 신앙 생활은 오직 예수님께 집중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붙잡는 시작은 바로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히3장 1절 “그러므로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합니다. 그분을 생각하여야 은혜가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 주님의 행동 주님의 말씀 모든 것을 오직 예수님에게 집중하시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예수님을 집중하는 방법은 바라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12장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하신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합니다.
그분의 우리의 신앙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믿음의 경주자로서 좌우를 바라보면 결국 낙오자가 되고 퇴보가 되고 맙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는 자꾸 그분보다는 사람을 보고 환경을 보게 됩니다.그러면서 신앙의 낙오가 되고 맙니다. 여러분 은혜로운 믿음생활을 지금 여기에서 계속하기를 원하시면 자꾸 안좋은 모습이 보일때 적당히 넘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2. 지금 연약함이 있기에 지금 은혜의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15절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훌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라고 합니다.
대제사장 예수님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분이라고 합니다.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체휼’이란 말을 ‘동정’이라고 번역했습니다.이 말은 헬라어로 ‘쉼파데사이’라고 하는데 ‘함께 수난당하다’는 뜻이 있습니다.우리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함께 느껴주시면서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분도 우리와 같은 인간의 연약함을 체험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연약함이 있습니다.인간이기에 연약함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내적으로 우리는 누구에게도 말할수 없는 상처를 안고 아픈 삶을 살아가는 분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육체적인 장애의 연약함을 갖고  어렵게 살아가는 분도 있습니다.또 어떤 분들은 가정적으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이 잇습니다.
가정마다 개인마다 연약함들은 다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연약함을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나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가지고 있는 인간의 연약함들은 극복하기에 한계가  있습니다.나의 연약함을 아내도 남편도 식구들도 해결해 줄 수가 없습니다.오히려 사람들은 나의 연약한 부분을 공격하고 정죄하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 연약함조차도 감사해야 합니다.
연약함을 통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조차도 이용하여 우리에게 은혜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바울이 육체의 연약함을 놓고 떠나가도록 하나님께 3번 간구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고후12:9)고 했습니다.그래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고 합니다.바울이 연약함을 오히려 기뻐하고 극복한 것은 바로 은혜 때문입니다. 바울에게 역사한 그 은혜가 오늘 우리에게도 임합니다. 바울이 그 연약함 때문에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 은혜로 승리했다면 오늘 우리도 그대로 그 삶이 필요합니다.

연약함을 가지고 보좌 앞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가지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면 그것이 단번에 없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그 연약함을 갖고 나아가는 그 사람이 더욱 은혜의 하나님을 복되게 체험하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100% 완전함을 가지고 나아갈 때 나를 받아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내모습 이대로 주님 앞에 나아오는 것을 원하십니다.
모든 약점과 상처와 아픔을 갖고 도움을 구하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이땅에 계실 때 우리 연약함을 치유해주시던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서 하늘에서 우리를 도우시고 있습니다.

히13:8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느니라"고 합니다.
이  땅에 오셨던 그 은혜의 예수님이 지금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처음 사역을 시작하실 때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으셧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력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하심이라" .
지금도 주님은 은혜로 약한 우리를 넘어진 우리를 은혜로 함께 하여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4복음서에서 보면 예수님이 접한 많은 사람들을 보면 전부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앞에 간음 중에 현장에서 잡힌 여자가 나왔습니다. 어쩌면 그 여인은 음란의 악한 습관이 너무나도 견고하게 있었고 그부분의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그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시면서 받아주셨습니다 .  또 남편이 6명을 둔 사마리아 여인을 주님은 만났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의 약점을 알고도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않고 심령에 갈급한 그 여인이 메시야를 만나도록 도와주시고 주님을 증거하도록 축복하여 주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 앞에 나온 연약한 자들이 주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바로 내모습 이대로 주님 앞에 은혜를 받으러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의 주님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연약함을 아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원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연약함을 정말 약함으로 인정해야 합니다.그리고 주님 앞에 나를 내려놓고 그분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의 약함을 인정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은 바로 자존심입니다. 자존심이 강하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만약에 내가 세상의 어떤 학벌이나 명예 권세를 앞세우는 자존심이 있으면 은혜를 받기가 어렵습니다.
정직하게 나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모습 이대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주님의 위로와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3.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자리를 갖아야 합니다.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때를 따라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때를 따라"란 말에서 때란 바로 카이로스를 의미합니다.”적절한 기회“란 말입니다.
이것은 "적절한 기회를 따라“ 나아가라는 것은 시간을 아껴 나아가라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은 항상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돕은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고후 6:2 “보라 지금은 은헤받을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라"고 바울은 강조합니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돕는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비참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받기 위하여 시간을 내어서 우리를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는 헌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일차적으로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예배드리는 것은 바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기도의 자리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기회를 우리 삶에 있어서 언제나 담대하게 갖아야 합니다.이미 히브리서가 쓰여지던 초대 교회 때 예배 생활에서 멀어지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그래서 히브리서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강조합니다. 말세가 가까울수록 예배드리는 기회를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그만큼 유혹이 많기 때문입니다.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이 자리를 이 기회를 갖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 삶의 시간의 우선순위를 은혜의 자리를 갖는데 두시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과의 관계를 맺는 공적인 예배의 자리와 기도의 자리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은혜 안에 거하는 주님의 백성들의 최소한의 끈입니다. 그 은혜의 끈을 놓치게 되면 은혜에서 멀어지면서 결국 세상의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이 많습니다.
먼저 은혜의 자리를 회복하고 갖아야 할 줄믿습니다.

가끔 주일날 예배의 자리를 갖지 못한 분들에게 다음주일에 오시면 어떻습니까? 하고 질문을 할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왠지 낯설고 예배드리는 것이 좀 어색한 기분이 든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주일예배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새벽기도회를 나오시는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나오시던 분이 나오지 않으면 오히려 그것이 어색하고 불편해야 합니다.오늘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자비와 긍휼에 풍성한 은혜를 위한 자리를 우리 모두가 더욱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경에 보면 연약한 인생들이 은헤의 보좌를 통해 영광의 하나님을 대면하면서 얼마나 위대한 인물로 얼마나 생명력넘치는 인생이 되었습니까?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많은 믿음의 영웅들이 소개됩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모세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이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순종하고 고난받고 충성한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위로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매일 매일 없었다고 가정하여 보십시오.
우리는 매일 햇빛을 필요로하듯이 매일 주님의 은혜가 없으면 조금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교회는 은혜로 존재합니다. 먼저 교회가 구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무슨 사역을 하든지 무슨 일을 만나든지 먼저 은혜를 앞세우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먼저 주님의 은혜를 맛보아야 합니다 .
이시간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왔습니다.이 시간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시고 더욱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가슴을 채워주고 나의 영을 새롭게 하는 하나님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소서" 하나님을 소원하시면서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매일 사모하고 구하시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춘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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