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살전 5:16-18)

  • 잡초 잡초
  • 290
  • 0

첨부 1


성도님들께서도 아시는 대로, 성경은 우리 인생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기록한 책입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도 가장 근본이 되는 뜻은,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뜻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와를 꾄 뱀을 저주하시면서 메시야를 보내어 인생들을 구원하실 뜻을 계시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하나님의 뜻은 신약시대에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복음 3장 16절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말씀하기를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고 했습니다. 당연히 이 같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나아가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성경에는 진실하게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도 계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2)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같은 하나님의 뜻을 알 때 기쁨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에는 인류의 구원을 비롯해서 여러 방면의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이 시간 저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신 말씀에 근거해서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적인 삶과 관련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라시는 뜻이 무엇인지 말씀해 드림으로써 피차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항상 기뻐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선뜻 동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항상 기뻐하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에 그런 삶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나 현실은 항상 기뻐할 형편이 못되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라고 반문하고플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항상 기뻐하라”고 하였지, 기뻐할 일이 있으면 기뻐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적으로 기뻐할 일이 없어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납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다시금 자세히 읽어보면 놀랍게도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이 그 안에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구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바로 이것이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도대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기에 그처럼 위대한 일이 가능한 것일까요?

먼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 받은 것을 생각할 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사실이지, 우리가 하루에 기뻐할 일이 몇 번이나 되는지 세어 본다면 그리 많지 않음을 알 것입니다. 기쁜 일 보다는 걱정을 안겨주는 일이 더 많이 생기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기쁜 일이 생길 때만 기뻐한다면 대부분의 시간을 찡그린 얼굴로 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라면 사정이 다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은 구원을 생각할 때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 찬송가는 존 뉴톤이라는 사람이 작사한 것인데, 그 내용이 너무나 은혜롭습니다. 그러나 존 뉴톤의 지난날의 삶을 되돌아보면 노예선의 선장이라는 흉악하고 어두운 과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난날 그는 아프리카에 가서 흑인들을 사냥해다가 배에 실고 아메리카에 가서 팔아서 돈을 벌었던 사람입니다. 그처럼 흉악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회심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존 뉴톤은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자괴감에 젖어서 산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가 받은 구원을 간증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그랬더니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쳤다는 말씀과 같이,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성경은 예수 믿고 변화된 우리의 실상에 대하여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고 말씀합니다. 이전에 하나님을 거역하던 나는 죽었고,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 생명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 하듯이, 우리는 받은바 구원의 은혜를 되새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떤 형편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 받은 사도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했더니 많은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허다한 병자가 낫고, 귀신이 쫓겨나갔습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서 사도들을 잡아들여 공회 앞에 세우고 밤새도록 심문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죽이려고 했으나 교법사 가말리엘이 만류하여 다만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엄금하고 풀어주었습니다. 언제 예수님 때문에 목숨이 떨어질지도 모를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행전 5장에는 이 같이 진술합니다. “40)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예수님께서는 “11)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1-12) 하셨는데, 사도들은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핍박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핍박 중에서도 기뻐하다니, 그러나 주님께서 주실 생명의 면류관을 생각할 때 어떤 핍박도 너끈히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핍박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왕에 핍박을 피할 수 없다면 기쁜 마음으로 받는 편을 택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핍박 받는 성도들에게 이 같이 권면했습니다. “12)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

그리고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쓴 편지인 빌립보서 4장 4절에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사도들이 말로만 기뻐하라고 권면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핍박 중에서도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조건부적이고 찰나적입니다. 그 조건이 사라지면 기쁨도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은 환경이나 조건을 초월하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떠한 시련과 핍박도 이겨낼 수 있으며, 주님을 위해 많이 수고할지라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피곤하기는커녕 새 힘이 솟아납니다. 그런즉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함으로 어떤 형편과 조건에서도 항상 기뻐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언뜻, 이 말씀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잠도 자지 않고, 다른 일도 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무릎을 꿇고 있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기도하는 마음 상태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길을 가거나 일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언제라도 기도할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면서 때로 기도하고픈 욕망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서 기도의 욕구를 불러일으켜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더러 기도하라고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기도하고픈 욕망을 억누르지 말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심령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힘 있게 깊은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흔히,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 시간의 많은 부분을 구하는데 할애합니다. 그렇더라도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필요한 것이 있거든 언제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로 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구하는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는 것만이 기도는 아닙니다. 우리는 기도로써 무엇을 구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과 교통을 나누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고 사랑의 사귐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있을 때 항상 마주 쳐다보면서 대화하지는 않습니다. 마주 대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함께 소파에 앉아서 티비를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티비만 보는 것이 아니고, 무슨 할 말이 있으면 그 때 그 때 티비를 보면서도 말을 주고받습니다. 이처럼 티비를 보면서도 서로 교통을 나누는 것이 가능합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자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합니다. 저의 생각은 설교를 작성하는데 몰두하고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서 설교문을 써 내려가면서 동시에 마음속으로나 입술로 기도합니다. 그렇게 하면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설교 준비를 끝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하신 것은 우리와 더불어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과 끊임없이 사귐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그런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5장에 보면, 에녹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21)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23)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한 것입니다. 그것도 일생의 5분지 4 이상을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매일같이 하나님을 만나 대화하면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니 에녹의 삶이 얼마나 은혜로 충만했을까요?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결국 하나님께서는 에녹을 죽음을 겪지 않은 상태에서 천국으로 데려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것은,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시편 84편에 “1)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10)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간절히 동경하는 시인의 심정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가 기도생활에 힘쓸 때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어서 영혼의 갈증이 해소되고 은혜가 충만한 삶을 영위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심은,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는 뜻입니다. 성도들은 기도를 통해서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고 했습니다. 영적인 싸움은 완력으로나 총이나 미사일과 같은 무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의 능력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대적들에게 잡히시던 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되기까지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 아버지께 올리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는 주님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졸며 자다가 대적들이 들이닥치자 주님을 버리고 도주하고 말았습니다. 기도하지 않다가 그 같은 처참한 패배를 당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의 강림이 매우 가까운 때를 살아갑니다. 영적으로 매우 혼미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단과 사이비한 자들이 일어나서 할 수만 있으면 믿는 자들을 미혹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서 기도에 힘쓰지 않으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마귀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대로 기도에 힘씀으로 언제나 깨어서 마귀를 대적하는 능력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하심은, “모든 일에 감사하라, 어떤 형편에서든지, 무슨 일을 만났든지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세요. 좋은 일을 만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것입니다. 사업이 잘 된다든가, 직장에서 승진을 하였다든가, 자녀의 성적이 올랐다든가,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든가, 하여간 형통한 일을 만나면 감사해야겠지요.

그러나 살다보면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사업이 부도가 날 수도 있고, 실직할 수도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의 속을 썩일 수도 있고, 하는 일마다 잘못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불평하고 원망하기는 쉬워도 감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수로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가 그 답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간에 우연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짐을 믿고, 범사에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선지자 요나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니느웨에 가서 심판을 선포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가 그만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선장이 선객들을 모이게 하여 제비를 뽑았더니 요나가 걸렸습니다. 그 때 그는 이 풍랑이 자기 죄 때문이니 자기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요나는 바다에 던져졌고, 그만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물고기에게 삼킨바 되었습니다.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으니 얼마나 캄캄하고 답답하고 절망이 되었을까요?

그러나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2)…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4)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찌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5)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6)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끝맺습니다.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을 거역했으나 그를 회개의 자리로 몰아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있는 사람은 징계의 매를 맞으면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반면에, 믿음이 없는 사람은 큰 복을 받고서도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했더니, 하나님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 믿음이 없는 사람인지 아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입술에 감사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없어서는 아니 될 요소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무조건 구하면 응답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감사가 빠진 기도라면 응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러기에 시편 50편에 이르기를 “14)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했습니다.

감사가 빠진 기도는 항변이요 원망처럼 들립니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나처럼 감사의 기도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현실이 어렵고 희망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하신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성도들에게 모든 것을 감당할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지 마시고, 그 대신 감사의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은혜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상고한 본문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말씀해 줍니다. 만일 우리가 그 뜻대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한량없이 부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가장 잘 사는 길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사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미소 지으신다면 우리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16)항상 기뻐하라 17)쉬지 말고 기도하라 18)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 여러분 모두, 이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시고 실천하십시오. 그리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양인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