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참 그리스도인의 표징 (롬 2:23~29)

  • 잡초 잡초
  • 610
  • 0

첨부 1


  오랜 전 남대문 시장의 한 가게에 이런 광고문이 붙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가게는 정말 순 진짜 참기름만 팝니다.” 정말, 순, 진짜, 참 모두 같은 말 아닙니까? 오죽 가짜가 많으면 이런 광고문을 붙였겠습니까?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 얼마나 가짜가 많은지 모릅니다. 가짜 식품, 가짜 화장품, 가짜 약품, 가짜 가방, 가짜 시계, ...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살 때 각 나라 사람들마다 묻는 말이 다 다르다는 겁니다. 미국 사람은 “그 물건 돈을 얼마 내면 살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영국 사람은 “그 물건 얼마나 오래 쓰냐?”고 묻고, 프랑스 사람은 “그 물건 최신 유행이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한국 사람은 어떻게 물을까요? “그 물건 진짜냐?”

  여러분, 가짜는 무엇이든 나쁜 것입니다. 그런데 특히 사람이 가짜이면 정말 곤란합니다. 가짜 경찰, 가짜 공무원, 가짜 의사, ... 그러면 얼마나 많은 부작용이 생기겠습니까? 가짜는 없어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만큼은 가짜가 있으면 큰일 납니다. 만일 믿는 신자가 가짜라면 어떤 나쁜 결과가 생기겠습니까?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구원받지 못 합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장차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대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삽니다. 세상에 대해서는 전도의 문을 가로막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킴으로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을 방해합니다.

  지금 우리 한국 땅에는 약 1천만 명 가량(통계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의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전 국민의 약 20%에 달하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 중에서 얼마나  참 그리스도인일까? 의구심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 정도의 비율이면 이 나라와 이 사회를 엄청나게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증거가 보이지 않습니다. 비근한 예로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에 그리스도인의 비율이 전체 그리스도인의 비율보다 훨씬 높습니다. 그런데 정치는 그 모양 그 꼴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 국회의원들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혹시 득표에 도움이 되니까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적어놓은 사람들이 많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우리나라 1910년대 3.1운동 전후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인은 전체 인구의 1%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당시 국가와 사회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했다고 합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고 그래서 예수 믿는 신자에게 돈을 꿔줄 때는 영수증도 받지 않고 꿔줘도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에 비하면 오늘 한국교회는 다수가 되었지만 그 영향력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또 그 힘이 크지도 못합니다. 요컨대 참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짜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이 오히려 큽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오늘 우리 각자 자신의 신앙에 대해 점검해 보면 좋겠습니다. 과연 나는 참 그리스도인인가? 그래서 나 자신만큼은 참 그리스도인으로 구원과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이 되기 바랍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이 1세기 당시 유대인들의 신앙의 거짓됨을 비판하고 참 신앙이 무엇인지 가르쳐줍니다. 유대인을 겨냥한 것이지만,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겨냥한 것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참 그리스도인은 과연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고 우리 자신이 그런 참 신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1] 표면적 그리스도인 : 명목상 그리스도인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자부심이 강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부심이 도를 넘어 문제가 됐습니다. 자기들만 하나님의 선택받은 참 백성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자부심을 가졌던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이름, 율법(구약의 십계명 등의 말씀), 그리고 할례 등입니다. 특히 할례는 생후 8일째 사내아이의 생식기에 하나님 백성의 표시로 수술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요즘은 위생적 이유로 그런 수술(포경수술)을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당시 종교적 이유로 시행했습니다.(창세기 17장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최초로 명령하셨음) 그들은 이런 것들로 인해 자신들은 자동적으로 천국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합니다.
  이런 것들은 어디까지만 외적인 표시, 즉 형식일 뿐입니다. 그것에 걸맞은 내용이 있어야 참 신자입니다. 그들은 겉모습만의 표면적 유대인이요, 이름뿐인 명목상 유대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믿지 않는 이방인들 앞에서 하나님을 욕되게 한 것입니다. 24절 보면,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당시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나머지 이방인들을 가리켜 지옥의 땔감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전혀 참 신자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인데(29절下), 그들은 하나님의 인정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참과 거짓의 감별사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겉과 속을 두루 감찰하는 눈입니다. 사람의 눈은 속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마찬가지 표면적인 그리스도인, 명목상 그리스도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얼른 보기에는 어엿한 그리스도인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히틀러 시대의 독일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독일은 명목상으로는 거의 전 국민이 신자로 되어 있는 소위 ‘국가교회’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악한 인물이 판을 쳤다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실상은 참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만 가득했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늬만 그리스도인, 형식만 그리스도인, 외양만 그리스도인, 명목상 그리스도인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큰 비극입니다. 겉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교인 명부에 이름이 등록되어 있다고 해서, 성경책을 들고 다닌다고 해서, 교회를 출입한다고 해서, 심지어는 교회에서 봉사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구원받고 천국 가는 것은 아닙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의 설교 중에 이런 제목의 설교가 있습니다. <Almost Christian> ‘거의 그리스도인’이란 뜻입니다. 겉보기에 그럴 듯하지만 사실은 참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결코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런 예들 들어보죠. 대학입시에 ‘거의 합격’이면 어떻게 된 겁니까? 불합격입니다. 차점으로 떨어졌다면 어떻게 된 겁니까? 불합격입니다. ‘수석 불합격’도 불합격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거의 그리스도인’은 불신자입니다. 우리는 결코 이런 명목상의 신자가 되면 곤란합니다.

[2] 참 그리스도인의 표징 : 내면적 그리스도인에게 나타나는 변화의 증거들

  그러면 참 그리스도인의 표징, 즉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거는 과연 어떤 것입니까? 한 마디로 ‘변화의 증거들’이 있어야 합니다. 

  ① 내면의 변화 : 중생, 회개, 믿음
  28절~29절 보면 할례는 육신이 아니라 마음에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 ”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육신에 표시는 하는 것이지만 마음에 진실한 변화가 없으면 헛것이라는 뜻입니다. 
  세례도 마찬가지 마음의 세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세례식 이전에 문답을 통해 신앙 고백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것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그 고백도 만일 건성으로 하는 것이라면, 그 세례는 무효입니다. 설사 세례 받고 세례교인 명부에 올라간다 해도 하늘나라 생명책에는 올라가지 못합니다.

  세례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중생(重生), 죄 씻음, 연합 등입니다.
i) 중생 : 중생은 새로운 탄생이란 뜻으로 영적 출생을 말합니다. 요3:5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구약의 할례도 8일째 시행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7+1 즉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영적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백성 된다는 의미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ii) 회개 : 중생하고 나면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됩니다. 자기 죄를 인정하고 뉘우침으로 회개합니다. 

iii) 믿음 :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생깁니다. 바로 그 믿음으로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② 외면의 변화 : 말씀 순종, 인격 성화, 사명 충성
  내면의 변화가 생기면 그 다음으로는 그것이 자연스럽게 외면으로 표출됩니다. 
i) 말씀 순종 : 믿음으로 예수를 주님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게 되면 당연히 그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바울 유대인들이 책망을 받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할례를 받았어도 율법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므로 그것이 헛것이라는 겁니다. 본문 25절~26절.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예수님도 순종의 중요성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7:20~21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씀을 보면서 혹시 행위 구원이 아닌가 하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다만 구원받은 참 신자라면 중생하고 회개한 변화의 증거로 행위의 열매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참 감람나무와 돌 감람나무를 비교해 보십시오. 겉모양으로는 그게 그겁니다. 그러나 돌 감람나무는 온전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아무리 겉모양으로 그리스도인이라도 말씀 순종의 열매가 없으면 가짜입니다.
  그래서 이런 조크가 있습니다. 천국에 분실물 센터가 있는데, 거기에는 입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 없는 입들입니다. 그 주인들은 다 지옥에 가 있습니다. 천국에는 입만 와 있고, 지옥에는 입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말씀 순종이 없는 신자는 가짜 신자입니다.

ii) 인격 성화 : 말씀에 순종하다 보면 저절로 점진적으로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곧 성화의 과정입니다. 
  한국교회 초대 역사 가운데 걸출한 인물 중 김익두 목사님(金益斗 1874∼1950)이 계십니다. 그분은 일반 백과사전에 나올 정도 유명한 분입니다. 그는 본래 황해도 신천 지역의 주먹이었습니다. 미국인 선교사 스왈렌의 감화를 받고 기독교에 입교한 후, 평양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전국을 누비는 부흥사로 많은 이적을 행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6.25 때 공산군에게 총살당한 순교자이기도 합니다. 이 분이 예수 믿고 변화된 직후의 일입니다. 회개하고 예수 믿은 후 새로운 사람을 살겠다는 다짐의 표시로 신천  장터에서 부고장을 돌렸습니다. 그 내용은 “김익두 사망!”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책 들고 전도하고 있었는데, 불량 청년들이 사기 쳤다며 “죽기는 뭘 죽어!” 하며 바가지로 물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물을 털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김익두가 죽었기에 망정이지 살아 있다면 너희들은 벌써 요절났을 거다.”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물론 우리가 모두 다 이렇게 큰 변화를 갖지는 못합니다. 성격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  변화의 모습이 각각 다릅니다. 하지만 점진적일지라도 일관성 있는 변화는 필수적입니다. 그 변화는 향기와 같아서 주위에 영향을 끼칩니다. 세상에서 절대 속일 수 없는 게 냄새입니다. 좋은 냄새이든 나쁜 냄새이든 숨길 수 없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그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변화됨으로 예수님을 닮은 거룩한 향기가 풍겨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예수의 향기’(고후2:16)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iii) 사명 충성 : 내면에 중생을 체험하고 예수 믿으면 받은 은혜에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하면 “주의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기대하는 바 사명에 충성을 다하게 됩니다.

  특권층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이 대개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됩니다. 그 이유는 특권만 누리고 그에 따르는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책임을 다하면 특권을 누려도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영국의 경우를 보십시오. 영국 왕실에 예산이 얼마나 많이 소요됩니까? 그래도 영국 국민들은 흔쾌히 여깁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왕실 사람들이 특권을 누리는 한편 책임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전쟁이 나면 왕자들이 먼저 참전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는 국민들은 당연히 왕실 사람들을 존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특권층입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선택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모든 특권만 누리고 사명과 책임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정상입니다. 우리가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명과 책임에 충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이 시간 다시 한번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참 그리스도인인가?” 자가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많은 그리스도인이 있지만 대다수가 명목상 그리스도인이라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정말 순 진짜 참 그리스도인이 있습니까?”라고 소리치며 찾아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릅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은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