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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 가장 먼저 할 일 (막 16: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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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여러분들 중에는 오늘 처음 나오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생전 처음 교회에 나온 분들도 계실 것이고 한 때 교회생활을 하다가 쉬었다 다시 오늘 시작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또 마지못해 한번 끌려 나온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시간이 얼마 지나서 생각해 보면 오늘의 이 발걸음은 여러분 인생 가운데서 엄청난 축복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교회에 나오신 것은 교회 좋으라고 오신 것이 아니고 여러분 자신들을 위해서 오시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분부의 말씀이고 당부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유언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이 말씀 속에 3가지 당부가 들어 있습니다.

유언의 말씀

유언적인 말씀은 다른 말씀보다 의미가 크고 뜻이 있고 상징성이 크고 소중합니다. 그래서 생전에 불효자들도 부모님의 유언은 그대로 지키려고 합니다. 유언은 그만큼 의미가 크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유언적으로 말씀하고 당부하신 최후의 요구입니다. “너희는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 예수님은 여기서 전도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언이 이렇게 중요한 뜻을 지니는데 오늘은 부모의 유언도 지키지 않는 시대입니다. 부모가 생전에 유언을 했어도 좋은 유지를 남겼어도 자녀들이 이해타산을 따져서 손해 보는 일 같으면 따르지 않습니다. 부모가 생전에 평생 모은 재산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학교에 기부한 재산을 자식들이 소송을 해서라도 찾아갑니다. 남궁억 선생은 “나 죽은 뒤 무덤을 만들지 말고 내 시체를 사과나무 밑에 거름되게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후손들이 그 말씀을 따르지 않고 무덤도 엄청 크게 해 놓고 비석도 세워놓고 그 비석에 그 유언을 기록해 놓았다고 합니다. 아마 그 시대는 생소한 일인지라 자손들이 죄송한 마음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아무튼 남궁억 선생은 선각자입니다. 주님이 이 유언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이 복음을 전파하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유언적인 말씀으로 마지막으로 형제를 구원하고 이 세상을 구원하라는 당부의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무로 주심

그것이 전도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라.” 주님은 이 전도하는 일을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의 의무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의무, 사명, 먼저 할일은 전도하는 일입니다. 전도하라고 했는데 안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그 때는 복을 못 받느니, 하나님으로부터 혼나느니 하는 차원의 생각을 하지 말고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전도를 안 하면 내가 전도 안한 그 사람들이 지금 세상에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전도 안하는 동안 그 사람이 그냥 죽으면 멸망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멸망의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하나님이 그 사람의 멸망의 책임을 나에게 물으실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내가 전도 안하는 동안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무슨 큰 죄나 사건을 저지를 지도 모릅니다. 전도는 그런 차원에서도 해석해야 합니다. 얼마나 중요하면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유언으로 당부하셨겠습니까. 

그러면 전도는 무엇입니까. 전도는 한마디로 “주는 것”입니다. 주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함께 있어주고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의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 그것이 가장 필요한 것을 주는 삶입니다. “같이 있어 주는 일”은 돈을 주는 일 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같이 있어 주는 일은 모든 것 즉 시간, 돈, 정성, 마음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같이 있어주어야 할 때 안 있어주는 것은 죄를 짓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분부나 뜻을 거부하는 것만이 죄가 아닙니다. 전도하지 않아서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큰 죄를 짓는다면 내가 전도하지 않는 것은 결국 사회에 큰 문제를 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전도하지 않는 동안 그 사람이 죽는다면 그 영혼의 구원받지 못함이 내게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때로 내가 전도해야 할 사람이 전도 받지 못해서 사회에 큰 죄를 짓는다면 그것도 내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하지 않는 것이 죄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고재봉이라는 이름을 아십니까. 1961년에 있었던 큰 사건을 저지른 주인공입니다. 이 고재봉이가 군대에서 상관의 잘못으로 대신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합니다. 그런데도 상관이 감옥에 찾아오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감옥에서 이를 갈았습니다. 출소 후에 이 사람이 그 집에 찾아갑니다. 그런데 그 집 사람들은 이사 가고 엉뚱한 사람이 이사 와서 살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도끼로 잔인하게 부인과 노모와 아이들까지 무참하게 살해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군법회의에서 사형언도를 받게 됩니다. 그에게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안국선 목사라는 분이 끈질기게 그를 전도를 했지만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넣어주었더니 어느 날 연락이 왔습니다. 찾아가니까 이 사람이 하는 말이 “나 같은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물론이다”라고 대답하니 이 사람이 그때부터 믿기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이 사람이 다음과 같이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그 고백이 우리들이 들어야 할 고백입니다. “우리 동네에도 교회가 있고 군대에도 교회가 있고 전국 처처에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하나 나에게 예수 믿으라고 권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분노로 온 몸이 타 들어가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더라면 나는 오늘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줄 수 있을 때 주어야 그것이 전도이고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 삶이 주님의 명령을 이행하는 삶입니다. “내일 다시 와라, 내일 해야지” 그것이 아닙니다. 그러는 동안 고재봉이라는 사람이 탄생하게 됐고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누군가가 좀 더 일찍 그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의 마음과 생각과 인생 속에 예수가 들어가고 하나님의 자녀 됨의 삶을 살게 했더라면 우리사회에 그런 끔찍한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전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말씀은 전도의 시급성을 알리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고 반드시 먼저 할 일입니다.

19세기 미국에서 제 2의 영적 대 각성을 일으켰던 찰스 피니라는 전도자는 전도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한발자국만 앞으로 나가면 나이아가라 폭포의 수십 길 낭떠러지에 떨어질 위험에 처해있을 때 순진한 목소리로 아무런 긴박감도 없이 ‘얘야 멈출래’하고 말하겠는가, 아니면 긴박하게 ‘스톱, 멈춰’ 하고 외치겠는가?” 하고 질문했습니다. 그것이 전도입니다. 전도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명이고 먼저 할 일입니다.

믿으면 구원받음

본문을 보면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전도의 값이 바로 이 점입니다. 정죄 받는 다는 말씀은 멸망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구원과 멸망”, 얼마나 심각한 말씀입니까. 믿으면 구원받고 믿지 않으면 멸망을 받습니다. 이 구원과 멸망의 갈림길은 너무 큽니다. 개중에는 순순히 전도 받고 세례 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복입니다. 그렇게 순전한 마음을 타고난 것도 은혜이고 복을 받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믿고 세례를 받으면 몇 가지 받는 복이 있습니다.

하나는 “현재의 천국”입니다. 천국은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현재 누리는 천국도 엄청난 은혜입니다. 내가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인도함을 받고 살아가는 복을 입게 됩니다. 나는 그때부터 하나님의 자녀 됨의 복을 받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고아처럼 살아가던 내가 든든한 아버지를 둔 자녀처럼 세상을 자신있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현재의 천국을 누리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예수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고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그때부터 나의 인생은 주님께서 책임을 지시고 인도하시고 보장하십니다. 그러니 얼마나 큰 은혜이고 복입니까. 우리의 인생 가운데 누군가가 힘 있게 나를 인도하고 후원해 주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함께 하심” 그것이 복이고 은혜입니다. 그것이 신앙 안에 들어와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현재의 천국의 복입니다. 

  미국의 부흥사 윌리엄 케일은 고통스러운 문제에 봉착하게 되어 밤새워 기도했습니다. 그때 온 정신과 마음에 온통 걱정이 엄습해서 근심으로 가득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베개를 끌어안고 몸부림을 치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할 일이니 너는 자거라, 내가 대신 깨어 있을 테니까” 그것이 신앙생활의 복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이생의 복입니다. 그것이 현재의 천국을 누리는 복된 삶입니다. 옛날에는 모든 문제를 나 혼자 풀어가며 살았는데 이제는 내 문제를 주님께서 풀어주십니다. 그것이 이생의 복입니다.

또 하나는 “미래에 주어질 천국”입니다. 내가 인생을 다 마치고 나면 나에게 천국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 약속은 성경에 38번이나 나와 있습니다. 천국은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비전입니다. 천국 없는 사람은 목적 없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온 마음과 관심을 이생에 집중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이 약속되어 있는 사람은 저 천국에 목적을 두고 뜻을 두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삶이 지극히 전향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너를 생각하게 되고 모두를 생각하게 되고 하늘의 뜻을 생각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천국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좀 유별난 학교 중에 거창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이 학교는 입시위주의 학교가 아니고 전인교육을 하는 학교입니다. 철저한 기독교정신으로 만들어진 학교입니다. 그리고 철두철미 기독교 정신을 요구합니다. 이 학교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장차 직업을 선택하는 정신 10계라는 정신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 계명을 보면 한결같이 미래를 보고 창조의 삶을 염두에 둔 이상입니다.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로 가지마라 그 대신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가라, 장래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곳을 가라,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을 수 없는 곳으로 가라, 한가운데가 아니고 가장자리로 가라, 부모나 아내가 결사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는 내용들입니다.

이상이 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진로를 선택할 때 참고하라고 가르치는 열 가지 계명입니다. 얼핏 보면 이 안내는 아이들의 장래를 망치게 하는 안내처럼 생각됩니다. 그런데도 그 학교 졸업생 중 90%가 대학에 진학을 합니다. 그것은 모두 천국에 뜻을 두고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뜻과 안목과 사고와 삶의 가치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고 거기에 생명력이 들어있고 힘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는 이런 능력과 힘과 용기와 생각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전도하면 다 듣는 것이 아닙니다. 열 명중 8-9명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불행입니다. 이 세상이 복음화가 안 되는 것이 그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믿지 않으면 결국 멸망당해서 지옥에 간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지옥 간다고 말하면 웃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웃음은 비웃는 웃음입니다. 오늘 같은 시대에 무슨 지옥이냐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 믿습니까. 수양하려고 믿습니까. 수양하기는 불교가 훨씬 더 좋습니다. 우리는 솔직해야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위급한 상황에 빠져 보십시오. 죽음 직전까지 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도 지옥하면 웃음이 나오겠습니까.

어느 동명이인이 아래윗집에서 살았습니다. 아랫집 사람이 아프리카로 여행을 갔습니다. 그 사이에 윗집 사람이 죽었습니다. 아프리카로 여행간 사람이 자기 집에 부인에게 전보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전보가 하필 윗집 초상집 부인에게 배달되었습니다. 보니까 자기 남편에게서 온 전보였습니다. “여보, 나 무사히 도착했소, 그런데 여기 와 보니 말 그대로 끔찍하게 덥구려.” 그러니 그 엽서를 받아들고 그 부인이 얼마나 섬뜩한 마음을 가졌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에 보면 경고하는 메시지들이 참 많습니다. 기회 있을 때 마다 믿으라고 경고를 하십니다. 믿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줄기차게 경고하십니다. 사물을 통해서 경고하시고 사건을 통해서 경고하시고 선지자들을 통해서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경고를 무시하면 언젠가 큰 일이 발생합니다. 그러니까 큰 사고를 당하는 것입니다.

1912년 세계 최대의 해난사고를 일으켰던 영국의 호화유람선 타이타닉호가 2,208명을 태우고 대서양을 건너고 있습니다. 이 배가 대서양 바다위에서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할 때까지 육지 경계초소로부터 빙산을 조심하라는 경고전문을 5차례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무전사가 그 소리가 귀찮다고 “조용히 하라, 나는 바쁘단 말이야, 이 배는 하나님도 가라앉게 할 수 없는 큰 배란 말이야“하고 떠들었습니다. 그리고 35분 뒤에 하나님도 가라앉게 할 수 없다고 큰소리치던 그 배가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경고전문을 보내고 계십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그 경고를 들은 척도 안합니다. 그러니까 어느 날 그 거대하던 배가 물속으로 가라앉듯이 건강하던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순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부하였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이 말씀은 전도를 받고 하나님을 믿으면 그 은혜로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갈 것이요 믿지 않으면 멸망당해서 결국 지옥에 갈 것이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전도하는 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고 더 시급한 일이고 무슨 일 보다 더 먼저 하여야 할 일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먼저 믿게 된 것을 감사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처음 나오신 분들은 오늘이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큰 복을 받고 은혜를 입은 날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예수를 보내신 것은 누구도 멸망하지 않고 구원받게 하려고 주신 은혜입니다. 주님과 함께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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