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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을 목표로 달려오셨습니까? (전 1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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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목표로 달려오셨습니까?
본문 : 전도서 12:9~14 

여러분, 2006년, 무엇을 목표로 하고 여기까지 달려 오셨습니까?
요즘 자동차를 운전할 때 네비게이션을 많이 사용합니다.
네비게이션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목적지를 정확하게 입력해야 합니다.
목적지를 제대로 입력하지 않으면 오히려 해가 됩니다.
네비게이션이 없는 것보다 못한 결과가 됩니다.
여러분, 삶의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무엇이라고 입력하였습니까?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 이것을 목표로 삼고 달려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13절을 다시 봅니다.
일의 결국은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여기 “결국”이라는 말은 “결론”과 같은 뜻입니다.

「새 번역」성경은 13절을 “할 말은 다 하였다. 결론은 이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라.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의무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두꺼운 책을 읽을 때 급하면 결론 부분만 읽으면 그 책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 결론 부분을 다시 읽으면 그 책을 소화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전도서의 결론입니다.
전도서는 열두 장, 212절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다양합니다.
그 모두가 이 말 하나 하기 위한 것입니다.

제가 지금 결론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책을 읽는데 다른 것 그만 두고 결론만 보려고 하지 마세요. 그것은 저자의 수고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효과적인 방법도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그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암기는 알 수는 있어도 이해는 되지 않습니다.
재판을 하는데 피고가 진술하려면 판사들이 ‘결론만 말해요!’ ‘묻는 말에 대답만 해요!’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 판사, 좋은 판사 아닙니다.
이야기할 때 ‘결론이 뭐야? 결론만 말 해!’ 하는 것은 좋은 대화법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과는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싶지가 않아집니다.

수학 공부를 하는데 공식을 그저 외워서(이런 것을 깡으로 외운다고도 하고 ‘쌩’으로 외운다고도 하는데) 문제를 풀려고 하면  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공식이 잘 응용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외운 공식은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왜 그런 공식이 나오는지 잘 이해하고 외우면 응용이 잘 됩니다.
그 공식이 잘 기억됩니다. 잊어도 쉽게 복원할 수 있습니다. 

이번 주일 목요일에 수능고사가 있는데 수험생들에게 좋은 점수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힘들게, 성실하게, 고민하면서, 최선을 다 해 수험준비를 해 온 과정이 의미 있고, 보람 있고,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지금 전도서의 결론을 가지고 말씀드리고 있는데 전도서의 중간 내용도 잠시 후에 잘 살피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경외”라는 말에서 “경(敬)”은 ‘존경한다,’ ‘공경한다’는 뜻입니다.
“외(畏)”는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경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존엄하심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을 표현하는 말인데 하나님께 대해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를 표현하는데 가장 적절한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억지 존경이 아닙니다. 괴롭고 불안한 감정이 아니라 거룩한 존경심을 말합니다.
구약에서는 경외란 말이 흔히 경건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이렇게 이해하면 좋습니다.

믿음에는 행동이 따라야 됩니다. 실천이 있어야합니다. 
한국의 성도들이 믿음 부분에서는 점수가 높은데 실천 부분에서는 점수가 그리 높지 못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래서 평균 점수가 좀 낮다는 것입니다.
많은 성경들이 앞부분에서는 이론을 말하고 뒷부분에서는 실천을 말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교리와 윤리가 한 쌍을 이루고 있습니다.
전도서의 결론도 같은 구조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잘 믿고,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실천을 말합니다.

전도서의 저자는 솔로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4장 32절을 보면 솔로몬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천다섯 편의 노래를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잠언은 격언, 금언과 같은 뜻입니다.
구약성경의 잠언서와 전도서는 그가 말한 것의 일부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라는 것은 그 모든 잠언, 그 모든 노래의 결론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솔로몬의 결론이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솔로몬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지혜로웠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솔로몬의 재판은 모든 법관들이 연구대상이 되는 명 재판입니다.
박학다식했습니다.

열왕기상 4장 33절은 솔로몬의 지혜에 대해서 “그가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물학자 이상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 요약된 부분을 에센스(essence)라고 하지요.
솔로몬의 그 많은 지혜의 에센스가 ‘하나님을 잘 믿어라’ 이것입니다.

솔로몬은 많은 것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특별히 부귀영화를 많이 체험했습니다.
솔로몬이 누린 부귀영화에 대해서는 전도서 2장에도 일부 기록되어 있습니다.
갖고 싶은 것 다 갖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마음에 드는 여자들 다 처첩으로 삼고, 살고 싶은 집 다 짓고, 그랬습니다.
그 모든 체험의 결론이 ‘하나님을 잘 믿어라!’ 이것입니다.
솔로몬이 언제 전도서를 기록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저는 그의 인생 노년에, 삶이 거의 끝날 때, 깊이 후회하면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전도서를 기록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젊어서는 하나님을 잘 경외했거든요.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했더니 ‘종은 작은 아이입니다. 그저 듣는 마음을 주셔서 재판을 잘 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대단히 겸손했습니다(왕상 3:4-9).

그런데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방 출신 처첩들이 가지고 온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나라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이 원성이 높아졌습니다.
요즘 한국, 미국, 모두 레임덕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데 솔로몬 통치 말기에는 그 이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솔로몬이 죽은 다음에 결국 나라가 둘로 갈라졌지요.

그런 것들을 바라보면서 후회하는 마음으로, 뉘우치는 마음으로 ‘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기에 힘쓸 때는 모든 것이 잘 되었는데 그것을 소홀히 하니까 이렇게 되는구나!’ 하면서 “일이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했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14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하고 전도서를 끝맺었는데  ‘나도 내가 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심판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는 마음으로 이런 말을 했을 것입니다.

여기 하나님을 잘 믿어야 한다는 것은 추상적이거나 감상적인 말이 아니고 솔로몬이 그의 체험적 지혜를 모두 짜 내어서 한 말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몇 해 전의 일입니다.
교회에서 한방무료진료를 실시할 때의 일이라고 기억되는데 1여선교회의 연세 많은 권사님 한 분이 진료 받으러 온 동리 주민 한 분을 대상으로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식당에서 그 분을 앉혀놓고 ‘에그,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이것, 저것, 다 겪고, 이 일, 저 일, 다 해보고, 이것저것 다 따라보아 다녔는데 그저 하나님 믿는 수밖에 없습디다. 하나님 믿으세요!’ 그러니까 상대방이 그저 ‘네, 아, 네’ 하더군요.
백발이 성성하고 얼굴에 온갖 풍상이 서린, 연세 많은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꼼짝을 못하고 듣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솔로몬의 이 결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 연세 많은 성도님들,  1, 2, 3 남녀선교회 회원들, 여러분이 전도하시는 것이 아주 효과적인 전도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을 삶의 목표로 하고 달리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모든 것이 헛된 것이 됩니다!

전도서에는 헛되다는 말이 참 많이 나옵니다.
전도서 1장 2절은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한 절에 ‘헛되다’라는 말을 다섯 번이나 하고 있습니다.
본문 앞의 8절을 보세요.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전체에는  ‘헛되다’라는 말이 29번 나옵니다.

헛되다는 것, 허무주의는 기독교의 교훈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이 세상은 가치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기록, 창세기 1장에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옵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은 값어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신학용어로 ‘가치의 선언’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 특히 그 가운데 있는 사람은 가치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여러분, 혹시 허무주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얼른 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이상하게 ‘이 세상은 모두 헛되다’ 는 식의 가르침이 많았습니다.
찬송가에 그런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예전에는 「합동찬송가」를 사용했는데 합동찬송가 562장은

이 세상의 소망 구름 같고 부귀와 영화도 한 꿈일세
사망의 바람에 이슬 같이 되나 나의 귀한 목숨 영원일세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아마도 일제통치를 겪고, 6․25를 겪고,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어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신학이 발전하면서 교회는 그런 생각을 고치기 위해서 많은 힘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 소개해 드린 찬송가, 현재의 찬송가에서는 빠졌지요.

지금 우리가 부르는 “저 높은 곳을 행하여‘ 이 찬송이  예전에 쓰던 「합동찬송가」에는 310장에 있었는데 그 때는 2절 가사가

  괴롬과 죄만 있는 곳 내 어이 여기 살리까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어떻게 달라졌지요?

  괴롬과 죄가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

“괴롬과 죄만 있는 곳”이 “괴롬과 죄가 있는 곳”으로 “내 어이 여기 살리까”가 “나 비록 여기 살아도”로 고쳤습니다.

지금 「21세기 찬송가」가 새로 나와서 우리도 머잖아 이 찬송가를 사용해야 할 텐데 이 찬송가에서는 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작년인가 권사님 한 분이 은빛대학에서 ‘허사가(虛事歌)’라는 노래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허사가는 이성봉(李聖鳳)이라는 유명한 부흥사가 만들어서 집회 때마다 부르던 노래입니다. 1절 가사가

  세상만사 살피니 참 헛되구나 부귀공명 장수는 무엇하리요
  고대광실 높은 집 문전옥답도 우리 한 번 죽으면 일장의 춘몽

이렇게 되어있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전체가 12절로 되어 있는데 1절에서 11절까지는 정말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조목, 조목 말하고 있습니다.
중간의 한 절만 더 소개해 드리면, 5절입니다.

  홍안소년 미인들아 자랑치마라 영웅호걸 열사들아 뽑내지마라
  유수 같은 세월은 널 재촉하고 저 적막한 공동묘지 널 기다린다

그런데 끝 절인 12절에 이르러서는

  우리 희망 무엔가 뜬 세상영화 분토같이 버리고 주님 따라가
  천국낙원 영광중 평화의 생애 영원무궁 하도록 누리리로다.

이렇게 좋은 소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아마도 전도서를 읽고서 이 허사가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솔로몬이 ‘헛되다’라는 말로 전도서를 끝냈으면 전도서는 성경에 들어오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솔로몬은 이단사상가로 낙인이 찍혔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아도 전도사에 ‘헛되다’라는 말이 좀 많은 것이 말썽이 되기도 합니다.
솔로몬이 말하는 ‘헛되다’라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지 않는 것은 다 헛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서 1장을 여시기 바랍니다. 소제목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대개의 성경이 소제목들은 파란 글씨로 인쇄되어 있어서 구별하기 쉽습니다.
1장 앞을 보세요. “모든 것이 헛되다”
2장 앞을 보세요, “즐거움도 헛되다.” 
2장 18절 앞을 보세요, “수고도 헛되다”
5장 10절 앞을 보세요, “재물과 부요와 존귀도 헛되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지 않는 삶은 모든 것이 헛됩니다.
즐거움도 헛됩니다. 수고도 헛됩니다. 재물과 부요와 존귀도 헛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는 삶은 모든 것이 보람 있습니다.
즐거운 일은 더 즐거워집니다. 정말 즐거워집니다.
수고의 열매들을 기쁨으로 수확하게 됩니다.
재물, 부요, 존귀 다 가치 있는 것들이 됩니다.

여러분, 삶의 목표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으로 정하시고 달리시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2장 16절에서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삶의 목표를 그렇게 정하고 달릴 때 우리의 달음질이 헛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수고도 헛되지 않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날에, 오늘 본문 14절이 말하는 심판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게 됩니다.
여러분, 2006년의 남은 부분을 그렇게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삶의 남은 부분을 그렇게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지난 금요일과 토요일 알파 코스 2기 주말 수양회가 교회에서 있었습니다.
알파 코스는 만찬, 찬양, 조크, 토크, 소그룹토의, 여러 가지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말 수양회에서는 세족식도 하고 성찬식도 하였습니다.
주말 수양회 마지막 토크의 제목이 ‘어떻게 하면 남은 삶을 최대한 선용할 수 있을까?’ 였습니다.
여러분, 정말 어떻게 하면 남은 삶을 어떻게 최대한 선용하며 살 수 있을까요?
그 토크를 맡아서, 남은 생애를 로마서 12장 2절의 말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뭐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말씀대로 살기에 힘쓸 것을 권했습니다.

세월을 아끼며 하나님의 일에 힘쓰고, 자기의 소유에 대해서는 청지기라는 것을 알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에 힘쓰며 손을 깨끗이 하기에 힘쓰면서 살라고 했습니다.
내 생애가 언제  끝날지 모르니, 하나님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를 부르실지 모르니 오늘이 나에게 주신 마지막 날인 것처럼 여기며 살라고 권했습니다.
남을 미워하지 말고 살라고 권했습니다.
여러 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 남은 생애, 삶의 목표를 바로 정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으로 정하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남은 삶을 최대한 선용하며 살아가는 길입니다.

목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 지금이라도 수정해야 합니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지난 시월 하순 숭의교회에서 감리교 총회가 있었습니다.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숭의교회에 가는데 장로님 한 분을 모시고 출발했습니다.
숭의교회에 종종 갔기 때문에 가는 길을 압니다.
경인고속도로 끝에서 우회전해서 숭의로타리에 가면 숭의교회 종탑이 보입니다.
이 성전 신축공사를 할 때 처음 계약한 회사가 인천원흥건설인데 그 회사 본사가 숭의로터리에 있어서 더 잘 압니다.
제 차에 네비게이션이 달려 있습니다.
지난 7월에 생일 선물로 교역자와 직원들이 달아 준 것입니다.
이왕이면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받고 싶어서 네비게이션의 목적지에 ‘인천숭의교회’라고 입력했습니다.
그냥 ‘숭의교회’라고 입력해야 하는데 정확하게 한다고 ‘인천’을 넣었습니다.

‘인천숭의교회 숭의3동’이라고 나오기에 그것인 줄로 알았습니다.
인천공설운동장 부근까지는 잘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부터 ‘왼쪽으로 가십시오,’ ‘우회전 하십시오’ 네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따라 가니까  숭의교회가 나오지 않습니다.
인천 시내를 서너 번 돌았습니다.  30분 넘게 허비했습니다.
짜증이 나고 진땀도 났습니다.
나중에 화물차 운전기사에게 물어서 찾아갔습니다.
뒤에 확인해 보니까 인천숭의교회와 숭의감리교회는 다른 교회입니다.
제가 입력한 인천숭의교회는 숭의3동에 있고, 가야 하는 숭의감리교회는  숭의2동에 있습니다.
한두 번 돌고서 ‘뭔가 잘못되었다’ 하고서 지도를 보든지 하고서 목적지를 바르게 입력했으면 그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입력한 목적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지금이라도 바꿔 입력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 이렇게 입력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수험생을 위한 안수기도회가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수험생들이 많이 나와 있을 것입니다.
그 수험생들, 12절 끝부분을 보면서 무릎을 칠 것입니다.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어쩌면 내 처지를 이렇게 잘 알아줄까?’ 할 것입니다.
지금 수험생들 대단히 피곤하지요.
성경은 모든 사람의 모든 처지를 이렇게 잘 알아줍니다.
그것을 조금 전문적인 말로 ‘성경은 삶의 모든 정황을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말합니다.
수험생들의 그 피곤을 싹 씻어주는, 한 방에 날려주는  비결이 있습니다. 잘 들으세요.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기 위해 힘써 공부하고 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기 위해 수능고사를 친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기 위해 대학에 간다.’

이렇게 마음을 먹기 바랍니다.
또 예수 잘 믿는 학생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지난 9월에 저희 교회에서 공부 잘 하는 방법 세미나를 했습니다.
그 때 강사가 제일 강조한 것이 무엇입니까?
동기부여입니다. 
나는 왜 공부를 하는지 바른 동기를 갖게 하면 공부가 저절로 잘 된다는 것입니다.
그 강연원고를 정리해서 교회 신문 「푸른 풀밭 맑은 시내」14면에 실었습니다,
저 밖에 있으니 가져가서 보시기 바랍니다.
핵심 부분을 제가 읽어 드립니다.

동기부여로 단기간에  일생을 바꾸어 의사, 변호사, 설계사가 되게 한 사례가 많이 있다.

공부는 어디로 하는가? 머리만으로 한다는 답변은 한참 뒤떨어지거나 낙제점 답변이다. 공부는 머리보다는 엉덩이로 하고 엉덩이로 하기 보다는 가슴에서 시작된다. 즉, 공부할 마음, 동기부여가 가장 우선이란 말이다. 즉,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를 알고 공부하려는 뜨거운 열정이 없이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는 것은 불길 없는 부엌에서 밥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공부 잘하는 공식은 공부= 동기부여 + 엉덩이(인내) + 머리이다. 동기부여가 확실하면 공부하려고 기를 쓰게 된다. 지독스럽게 하겠다는 학생이 있다. 동기부여가 잘 된 학생이다.  분명히 공부에는 왕도가 있다.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  공부를 잘하는 길을 요약하면, 동기부여 - 공부하는 방법 이해/ 터득 - 생활 실천 및 생활화 - 반복적 자극 및 감정관리, 이렇게 정리할 수가 있다.

전 과목 100점을 혹은 만점을 얻기 위해서는 ①절대 필수적인 요항(要項)이 동기부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려는 마음, 굳은 결심 ②공부 잘하는 방법 ③그 마음을 반복해서 다잡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도 과제로 남게 된다.

공부의 동기 가운데 제일 고상하고 강력한 동기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 구체적인 것이 하나님의 명령들을 경외하고 그 명령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수험생들, 남은 나흘 그런 자세로 공부하세요.
내년에 수험생이 되는 고2학생들, 그런 자세로 수험준비에 착수하세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실천하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세요. 실천에도 힘써 온전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세요.

경외라는 말은 신구약성경에 참 많이 나옵니다.  170번이나 나옵니다.
이스라엘 여러 왕들이 이야기를 적은 열왕기상하, 역대상하에도 이 말이 많이 나옵니다.
열왕기상하, 역대상하에서는 그 왕의 이야기를 적은 다음에 그 왕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평가의 기준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 왕은 좋은 왕, 그렇지 않으면 악한 왕’ 이것입니다.

우리나라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는데 힘쓴다면, ‘나는 내 힘으로 다 될 줄 알고 열심히 해 보았는데 그것이 아닙디다. 전능하신 분을 믿어야겠습디다. 그분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면서 겸손한 자세를 취한다면 그 분에 대한 평가가 조금은 달라질 지도 혹시 모르겠습니다.

왕들만 그런 것이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 복 받습니다. 칭찬을 받게 됩니다.
이웃을 위해, 사회를 위해, 시대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는 사람,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통의 바퀴 안에 들어 있는 다람쥐와 같습니다.
열심히 뛰어도 제자리걸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그의 명령들을 지키시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을 삶의 목표로 하고 올해의 남은 시간들을, 나의 삶의 남은 부분을 달려가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관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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