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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여호와께 감사하라! (시 11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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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사의 날

자, 오늘은 추수감사절, 감사의 날입니다. 저를 한 번 따라 해 보실까요? “여호와께 감사하라!” 예, 감사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를 지켜주시고, 살게 하시고, 열심히 일하게 하시고, 그 만큼 거두게 하신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지금 감사할 마음이나 생각이 들지 않거나 내키지 않는 분들이라도, 오늘 이 예배와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추수감사절의 노래

1)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한 후 부른 노래

시편 118편은 성전에서 벌어진 행사, 즉 의식에 불려지던 찬양의 가사입니다. 그리고 이 찬양은 서로 주고받는 노래였습니다. 먼저 1절부터 4절은 성전으로 예배하러 가는 무리들이 성전으로 올라가기 전 줄을 지어 서면서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5절부터 18절은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즉 성전으로 올라가는 무리들이 길에서 합창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19절은 성전 문 앞에 서서, 그 성전 문을 향하여 “내게 의의 문을 열지어다. 내가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20절부터 27절에 있는 대로 그때 성전 안에 있던 레위인들이 성전문을 열면서 이 무리들을 영접하면서 답가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성전에 도착한 무리들이 화답을 하고, 성전으로 들어가 28, 29절은 전체 무리들, 즉 레위인들과 제사장들과 예배하러 온 무리들이 모두 다 함께 합창을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과 형식의 시를 누가 지었으며, 언제 지어졌으며, 어떤 때에 불리어졌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선 하나님께 예배하러 성전으로 올라가는 무리들이 합창을 하는 것으로 보아 예배와 관계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 시를 누가 지었느냐에 대해서는 다윗이 지었다고 보는 이들도 있으나 이 주장은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성전을 오르는 자들이 성전에 도착하여 부른 것인데, 다윗 때는 아직 성전이 없었고, 레위인들 역시 성전에 상주하면서 섬기던 때가 아니었기에, 이런 식의 노래를 짓는 것이나 부르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시편은 누가 지었는지를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편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만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다가, 두 차례에 걸쳐서 귀환한 후, 성전을 건축하여 낙성식을 행할 때 사용된 노래입니다(스 6:15 이하). 이 주장은 19, 20절을 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는데요. 19, 20절은 이미 여호와의 전이 완성된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편 118편은 성전이 완성된 후에, 성전을 건축하는 동안 일어났던 여러 가지 반대들, 사마리아인의 음모, 백성들의 반대, 페르시아 왕들의 변덕 등이 암시되어 있어 이 견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온 후 온갖 고초를 다 겪으면서 성전을 건축한 뒤, 그 영광을 보고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신 하나님께 무명의 신앙인이 노래한 것입니다.

2) 그때 이후로 장막절에 불려진 노래

이렇게 성전 낙성식에 불리어진 이 노래는 그 다음부터 주로 “장막절”에 불리어졌습니다. 장막절 첫 6일 동안은 하루에 한번 씩 이 노래를 불렀고, 그리고 제 칠일에는 7번 이 노래와 더불어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장막절은 어떤 절기입니까? 장막절은 민수기 28, 29장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수장절”이라고도 하여 가을 추수를 다 마친 후 지키는 감사절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장막절은 지키는 방법이 아주 독특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고생했던 것을 기억하기 위하여 실제로 집의 옥상이나 주변에 장막을 치고는 그 속에 들어가 일주일을 기거하면서 보내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시편 118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감사절에 부른 노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추수감사절에 어떤 노래를 부르십니까? “넓은 들에 익은 곡식”, “산마다 불이 탄다 고운 단풍에”, “날 구원하신 주 감사” …. 이런 노래들이 구약 시대에도 있었다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 찬송을 불렀겠지만, 구약 성도들은 오늘 본문이 그들이 부를 수 있는 최고의 추수감사절 노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노래했을까요?

3.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

먼저 1절부터 4절을 보시면, 시인이 “이스라엘”, “아론의 집”,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간절하게 권하고 촉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설교를 시작하면서 여러분에게 권한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서 “감사(토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손을 편다(야다)’는 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가 ‘고맙습니다’라고 할 때는 대부분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이 말하는 감사는 ‘손을 들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감사는 늘 찬양과 함께 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손을 쭉 뻗어서 감사해야할 것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감사

1절부터 4절의 주된 내용은 “주의 자비하심”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비가 무엇입니까? “자비”는 우리가 잘 아는 “헤세드”라는 말입니다. 헤세드의 기본적인 뜻은 ‘아주 힘 있고 권세 있고 모든 것에서 최고 최상인 자가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되는 상대방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낮고 천한 자를 자신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 것이 헤세드입니다. 그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때로는 그의 이 헤세드를 받는 상대방조차도 그러한 사랑이나 관심이나 존중을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전능자가 힘들여 가면서 수고하면서 자기 자식을 십자가에 매다는 그 고통을 감당하면서, 낮고 천한 자를 사랑하시고, 그를 높여주신 것이 바로 이 헤세드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이 가장 먼저 감사하는 것이 바로 이 헤세드입니다.

근대 교회 찬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이작 왓츠는 그 키가 서양 사람으로서는 너무나도 작은 150 센티미터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눈도 작고, 피부도 창백한 잿빛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요. 그러다보니 그는 스스로를 ‘벌레 같은 존재’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이런 그가 자기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살 찢고 피 흘려주신 예수님을 믿은 후에 변화되었고, 그 은혜와 그 사랑에 감격해서 감동적인 찬송을 썼습니다. 그것이 바로 141장입니다.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박히셨으니/ 웬 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흘리도다.”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고 쓸모없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아이작 왓츠는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신 주님으로 인하여 목회자가 되었고, 그 은혜와 사랑을 노래하는 삶을 살다가, “영국 찬송의 아버지”, “근대 개신교 찬송의 아버지”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감사의 날인 오늘, 무엇보다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이 놀라운 사랑에 대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자기 생명을 바치실 만큼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벌레처럼 보잘 것 없는 인생, 그야말로 별 볼 일없는 인생을 사랑하사 복 주신 주님을 경험한 아이작 왓츠는 주님과 십자가의 은혜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간혹 친구를 위하여 죽는 사람이 있고, 민족이나 국가적인 대의를 위하여 죽을 수는 있으나 나 같이 보잘 것 없는 죄인 위하여 죽어주신 주님의 은혜는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그러니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2) 지난 세월에 대해 감사

오늘 본문이 감사하는 두번째 내용은 무엇입니까? 5절부터 14절은 지금까지 체험한 하나님의 자비, 특별히 돌보심에 대한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페르시아 왕인 고레스의 명을 따라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유대인들과 혈육적으로 동질성을 가진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를 받았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페르시아 왕에게 유대인들이 성전을 건축하면 페르시아에 반역을 하게 될 것이라고 거짓 보고를 했습니다. 이로 인해 성전 건축은 중단되었고, 그때 유대인들이 받은 고초는 이루 말 할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사마리아 만이 아니었습니다. 10절 이하에서 볼 수 있는 대로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열악한 환경, 사람과 일들이 마치 하나님의 백성들을 에워싸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에워쌌다”는 것은 그야말로 몇 겹으로 둘러싸고 꼼짝 못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열방이, 엄청난 무리가 에워싸는 것 같은 환경, 나 홀로 고립되고, 나 혼자 뿐인 것 같은 외롭고 괴로운 수많은 세월이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벌처럼 에워쌌다”는 말은 정신없이, 쉴 새 없이, 그리고 끈질기게 괴롭히는 적들이나 그런 상황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랬을 때에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셨고,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게 하셔서, 이와 같이 기적적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찬송가 460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우리가 살아온 지난 삶을 돌아볼 때에 우리가 기도해서 얻은 기적도 있지만, 우리가 기도하지 않았음에도 더 많은 기적과 하나님의 놀라운 돌보심으로 오늘 여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여러분들도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자비하심으로 인하여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셔서 응답하시고, 여러분으로 하여금 사람을 바라보거나 신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봄으로서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크고 놀라운 것들을 얻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앞으로 베푸실 자비에 미리 감사

오늘 본문의 세 번째 감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앞으로 일어날 일, 그것이 어떤 상황일지라도 지금 이 자리에서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시인은 “열방이 나를 에워쌌으니(10) … 저희가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11) … 저희가 벌과 같이 나를 에워쌌으나(12) … 네가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13)”라고 말합니다. 즉 현재가 여전히 힘들다는 것이고, 이와 같은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과 이스라엘의 형편이 지금보다 나아지거나 좋아질 것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여전히 힘들고 어렵겠지요. 황무지 같이 버려진 땅에 돌아와 다시 나라를 재건하는 그들의 형편이 달라져야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뭐라고 노래합니까? 10절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10)” 11절에서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12절에서도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그리고 13절에서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셨도다”, 14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도 힘든 일이 수없이 많겠으나 하나님으로 인하여 그것을 극복하고 처리하고 넘어설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포로에서 돌아 온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해오면서 승리를 맛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승리로 감사하는 성도들은 그 감사가 과거의 것으로 머물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미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과 앞으로 그들 앞에 아무리 많은 대적들이 겹겹이 에워싸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수많은 원수들이 그들을 에워쌀지라도, 그때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능히 이기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진정한 감사입니다. 지금보다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 앞으로 일어날 일이 지금보다 더 악하고 괴롭고 힘든 상황일지라도 그것을 통하여 나타나게 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기대하면서 감사하는 것, 나아가 모든 상황, 범사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이 성도의 감사입니다. 여러분의 감사가 이런 데까지 이르게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4. “여호와께 감사하라!”

사람은 누구나 현재 자기가 가진 것에 영향을 받습니다. 돈이나 재산, 건강, 일의 성취 정도, 자녀들의 성적(?) …. 특별히 감사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현재가 넘치고 좋으면 그것으로 감사는 더욱 많아지겠지요. 그러나 오늘 본문은 무엇으로 감사하라고 말합니까?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인한 감사하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지난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라’고 합니다. 세 번째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하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감사가 이와 같은 감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에 더 많은 감사로 충만하게 채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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