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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시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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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팡이와 막대기” 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나 생각이 먼저 떠오르십니까? 아마 ‘노인’이라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지팡이나 막대기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경우를 생각하는 것이죠. 그리고 어떤 분들은 등산을 떠올리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산을 오르거나 내릴 때 막대기나 지팡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드물기는 하지만, “막대기나 지팡이”라고 하면 ‘때리는 것’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맞고 자란 사람들이나, 지팡이나 막대기 혹 그 비슷한 것으로 호되게 맞아 본 특별한 경험이 있는 분일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도 막대기나 지팡이를 ‘때리는 것’과 관련하여 말씀한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도 시편 23편을 지은 다윗과 관련된 말씀에 그것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앞으로 다윗이 잘못을 범한다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을 들어서 다윗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삼하7:14). 이 경우,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이란 자녀들끼리 서로 갈등하고 미워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함으로서 그들을 지켜보는 아버지 다윗의 마음이 아파하는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평생의 친구가 그를 배신하는 일과, 가장 사랑했던 아들이 자신을 배반하는 일이 다윗의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밧세바와의 죄를 지었을 때 선지자 나단이 호되게 그의 양심과 영혼을 때림으로서 하나님의 종이 다윗에게 “사람 막대기”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도 본문이 말하는 “막대기와 지팡이”는 우리의 잘못을 깨우쳐 바른 길로 가게 하기 위한 징계의 의미일까요?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어떤 의미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떠올리고 있을까요?

1)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는 …

구약성경에 약 190회 정도 나오는 “지팡이”는 허리에 차는 곤봉과도 같은 것입니다. 향을 만드는 도구(사28:27), 무기(삼하 23:21), 양떼를 모으거나 계수할 때(레 27:32, 겔 29:37)나 양을 보호할 때(시23:4, 미 7:14)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비유적으로는 종(출 21:20), 미련한 자(잠10:13, 26:3), 자녀(잠13:24, 22:15, 23:13-14, 29:15) 등을 훈계하고 교정하는 징계나 형벌의 도구로도 쓰였습니다.

그 다음이 막대기인데, 이 막대기는 ‘지지한다, 의지한다’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일반적으로 사람이 집고 다니는 것, 즉 우리가 ‘지팡이’로 떠올리는 것입니다. 본문이 말하는 막대기는 지팡이보다 긴 것으로서, 옛날 목자들은 자신의 키보다 더 길며 그 끝이 굽어져 있는 것을 사용했습니다. 막대기의 기능은 이중적인데 짐승들이 양들을 공격할 때 그것으로 짐승들을 내리치거나 던져서 쫓아내는, 양들을 보호하는 용도였습니다. 또 다른 경우는 양떼들이 잘못할 때나 엉뚱한 길로 갈 때, 이 막대기로 그런 양들을 가볍게 때려서 바른 길로 이끌었고, 양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끌어올리는데 사용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다른 길로 가는 양을 지팡이의 구부러진 끝을 사용하여 잡아당기기도 했습니다.

이상에서 보는 대로 “지팡이와 막대기”는 목자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양을 위한 도구였습니다.

2) 다윗에게 지팡이와 막대기는 …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이 “지팡이와 막대기”라는 말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것 역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는 ‘때로는 나는 벌하고, 또 때로는 나를 공격하는 세력을 물리치는 하나님의 도구’라는 의미일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다윗의 지난 경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즉 다윗이 오늘 본문에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짤막하게 고백하고 있지만, 이 고백이 있기까지는 여러 차례 목자이신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의 효력을 체험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양떼를 탈취하려는 도적이나, 혹은 사자나 곰 등 사나운 짐승들의 습격을 받았을 때, 다윗은 목자로서 그들과 싸워서 자기 양떼를 지켰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다윗이 가지고 있던 지팡이와 막대기는 큰 효력을 발휘했을 것입니다. 또 양떼를 이끌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게 되었을 때, 벼랑이나 웅덩이로 떨어지는 양들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양들이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면, 다윗은 막대기의 갈구리로 그들을 거기서 끌어올렸을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통하여 목자였던 다윗은 자기가 지니고 다니는 지팡이와 막대기가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목자이신 하나님의 양인 자신의 경우에도 적용을 해 보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양으로서 목자이신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의 효력을 경험했고, 그것은 그의 생애에서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평생에 적들에게 둘러싸여 힘들었을 때나 곤경에 처했을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때마다 다윗은 목자이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고, 그렇게 부르짖을 때마다 하나님은 그의 목자로서 그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다윗이 소년 시절이었을 때, 블레셋 군대의 장수로 전쟁을 이끌었던 거인 골리앗과 맞서 싸웠지 않습니까? 그때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우실 것을 확신하면서 그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의 이마를 겨냥하여 던진 물맷돌이 정말 골리앗의 이마에 맞아 넘어졌는데, 바로 그 순간에 다윗이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보이지 않으나 자신과 함께 사나운 짐승과도 같은 골리앗과 블레셋을 쫓고 계시는 지팡이와 막대기를 드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즉 다윗이 자신의 힘으로 골리앗을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거기에 작용하여 골리앗을 이기게 하신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울이 십 수 년을 자기를 죽이려고 추격해 올 때, 모든 백성이 사울의 편에 서서 밀고자가 되고, 완전무장을 한 군사들이 자신을 공격해오고, 심지어 동굴에 꼼짝없이 갇히기도 두어 차례 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위기의 순간을 만났지만, 다윗은 그때마다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목자가 지팡이와 막대기로 자기 양을 지키는 것처럼, 그렇게 위험한 순간마다 보이지 않으나 강력한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자신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시34:4,6).”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시 28:7).”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27:1-3)”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윗은 그의 평생 동안에 목자이신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의 위력을 충분히 경험했습니다.

2.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말은 바로 “지팡이와 막대기”가 다윗을 ‘보호한다’는 것이 아니라 “안위한다”는 말입니다. 즉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온 대로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 그리고 다윗이 평생에 경험한 지팡이와 막대기는 일종의 ‘보호’의 의미였는데, 뜻밖에도 오늘 본문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안위(나함)”라는 말은 ‘애석해 하다, 유감으로 생각하다, 위로하다(comfort)’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안위”란 다른 사람에 대해 슬픔, 동정, 위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즉 “안위”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신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힘들고 어려울 때면 목자이신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떠올렸고 그때마다 그는 정말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사방에서 적들이 그를 공격해 올 때, 부하들이 자신을 배신할 때, 자녀들 때문에 속이 썩을 때, 스스로의 죄로 인하여 괴로울 때, 여러분 그럴 때면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하게 보입니까?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요. 여러분, 사실 이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바실레이야 슈링크의 <사랑의 승리>라는 글에 1970년대 중국의 문화혁명 때, 중국 정부로부터 엄청난 핍박은 받은 기독교인들의 간증이 소개되어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지하 교회를 섬기던 어떤 장로님이 끌려가서 죽도록 매를 맞고 풀려난 뒤에 간증한 것을 소개한 것이 있는데요. 그 장로님은 감옥에 끌려가 240대의 매를 맞았다고 합니다. 살라고 때리는 게 아니라 죽으라고 때리는 것이니 정말 죽도록 아팠습니다. 매일같이 맞고, 쉬었다가 또 맞고, 쉬었다가 또 맞고, 그렇게 계속해서 240대를 맞았는데, 그렇게 맞던 중에 그 장로님을 스데반을 생각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 얼굴이 천사의 얼굴 같았고 그 눈앞에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다는 바로 그 장면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자기에게도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는데,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가까이 오셔서 자기를 그 품에 안으시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안으시고 상처를 어루만져주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는 하나도 아프지가 않았습니다. 아무리 때려도 안 아프더랍니다. 그뿐 아니라, 맞을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위로입니다. 모진 고난과 십자가 형벌로 온 몸이 상처로 뒤덮인 그가 오셔서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를 껴안으시는 것, 바로 이것이 위로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울 때, 물질로, 사람 때문에, 뜻하지 않은 사고나 질병이 여러분을 고통스럽게 할 때, 게다가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을 때, 바로 그때 위로의 주님을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론 멜(Ron Mehl)이라고 하는 사람이 쓴 「The Cure for a Troubled Heart」라고 하는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론 멜에게는 몇 명의 자녀가 있는데, 특별히 아들 하나가 큰 고민에 빠져있었습니다. 그 아들은 근심, 걱정, 상심, 실의, 그리고 절망감에 빠져서 방향을 잃은 배처럼 헤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괴로워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괴로워하는 아들에게 ‘왜 그러냐?’라고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물으면 더 괴로울까봐, 더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 였습니다. 게다가 아들의 고민은 아버지인 자신이 나서서 어떻게 해결해 줄 수도 없는 성격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너무도 괴로워서 절망에 지친 아들을 버려둘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어떻게 위로할까?’를 고민하던 그는 밤이면 아들이 자는 방으로 가서 그가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그냥 그 옆에 누워있었습니다. 눈을 빤히 뜨고 천장을 쳐다보면서 옆에 있는 아들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지만 좋은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대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누웠다가 나왔습니다. 그 다음날 또 아들이 자는 방에 들어가서 옆에 누웠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리고 또 나왔습니다. 그렇게 여러 날을 아들 방에 들어가 옆에 누워서 밤을 지새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가 들어 와서 조용히 옆에 눕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말이 없어도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자신 때문에 무척이나 괴로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내 중심, 내 마음을 이해해주시는 아버지가 계신다.’ 아들은 거기서 용기를 얻어 마침내 절망에서 떨치고 일어나 새로운 일을 새롭게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는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는 선한 목자입니다. 여러분이 힘들어 고통 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처럼, 힘들고 어려울 때, 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위로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다윗은 자신이 인생의 골짜기, 깊고 어두운 날을 보낼 때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자가 되셔서 ‘지팡이와 막대기’, 아니 ‘그보다 더 강력하고 효력 있는 것들’을 가지고 자신을 돌보신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아니 길 긿은 양 한 마리를 찾고 또 찾으시는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곁에 계신다는 것 때문에, 그는 정말 크고도 놀라운 위로를 받았고, 그 위로로서 다시 일어설 수가 있었습니다. 때로는 세상이 더 커 보이고, 사람이나 원수의 공격이 더 강해 보이고, 자신의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는 것을 믿었고, 그 믿음은 그대로 그의 현실이 되었던 것입니다.

3. 자기 백성을 위로하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지팡이와 막대기”가 무엇이냐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 주위에 있는 하찮게 보이는 것을 들어서 여러분을 돌보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는 양으로 하여금 자기 곁에 목자가 있음을 알려주는 표시이듯이, 여러분 곁에는 하나님께서 목자로서 곁에 계심을 알려주는 것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곁에는 여러분의 목자이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현재 여러분이 있는 자리가 어디든지 목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여러분을 위로하시며, 여러분을 끌어올려 높고 영광스러운 곳에 세우실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길을 잃었거나, 상심하고 낙심한 가운데 있거나, 아니면 깊고 어두운 골짜기에 떨어진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거기 계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계신 증거들, 즉 지팡이와 막대기를 빨리 찾으시고, 그것으로 위로받으시기 바랍니다. 목자 되신 주님을 가르쳐 주고 깨닫게 해주는 여러분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바라보시면서, 그것으로 위로받고 힘을 내어 주저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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