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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롬 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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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이 가보지 못하고 실제 자기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로마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서 보낸 편지가 로마서입니다. 당시는 오늘날처럼 교회의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로마교회란 로마에 있는 교회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어느 정도는 모이고 있는 로마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사람에게 문안을 하다가 마지막에 편지를 끊으려고 하는 무렵에 또다시 하나님의 종 사도바울에게 문득 떠오르는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어느 교회든지 든든히 서 가게 되면 반드시 어둠의 세력들이 손이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고린도교회 뿐만 아니라 편지를 받고 있는 로마교회에도 또다시 손이 미칠까 싶은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17절) 라고 강력하게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접수 하신 사도바울의 편지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이 편지를 조금 객관적으로 보게 되면 로마교회의 교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 즉 하나님의 교사인데 이렇게 강하게 말씀을 하실 수가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18절에서는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라고 말하는데 그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배만 섬긴다고 강력하고 정의해버렸습니다. 사실 로마교인들도 말뜻을 알아듣고 '아멘' 하고 섬길 만하기 때문에 섬기고 말씀 들을 만하기 때문에 말씀을 듣는데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이 이런 말씀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 교회에서 어떤 이들에 대해서 여러분들의 목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에 여러분들은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성경의 이 말씀을 당연하게 받지만 만약 오늘날 이런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기에서 바로 여러분의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잘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빨간 테두리를 두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19절에는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라고 시작하는데 여기서 왜 순종 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까? 바른 것을 잘 분별하고 판단하시는 여러분, 즉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의 진실한 종의 말씀에 대해서 순종 하시는 여러분 이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기뻐한다는 것인가요? 내가 권면해 드리면 여러분들이 순종 할 것이기 때문에 제가 기뻐합니다 라고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여러분들이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어떤 종이 와서 ‘제가 악한 것을 말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들을 때 악한 것 같으면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일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은 분명하게 잘 분별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하든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여 악한데 끌려가지 않기를 원한다고 말씀 하고 계십니다. 사도바울은 ‘여러분들은 제 말씀을 듣고 순종 할 것이기 때문에 제가 기뻐합니다.’ 라고 아직 얼굴도 알지 못하고 관계도 없는 교회에 이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20절에는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라고 편지를 쓰고 있는데 이 말씀은 17절의 권고 말씀의 결론으로 잡고자 합니다. 여기서 생각 할 것은 우리 나름대로 잘 분별하고 잘 결단하고 잘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우리들이 어두움으로부터, 거짓교사들로부터, 거짓 선지자들로부터 이길 수 있는 것은 기도입니다. 우리로서는 아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됩니다. 우리가 하려면 실패하고 맙니다. 어두움은 더 합니다. 온갖 수를 다 부리기 때문입니다. 축구 경기의 승부차기를 보면 골키퍼들이 라인 밖에 나오지 못하고 머리싸움을 하는데 다 안다는 것입니다. 어두움들은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을 상대했기 때문에 우리 힘으로는 제대로 할 수 없고 기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들의 힘으로 하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린 모든 노력을 해야 합니다. 노력마저도 포기하고 거부할 건 절대로 아니지만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이 해주셔야지만 내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7절 말씀과 20절 말씀을 보게 되면 거짓교사, 거짓선지자로 나타나는 사람들의 문제, 교회를 흔드는 문제가 다 사탄의 노릇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눈 있는 사람들은 제대로 보고 알아야합니다. 이러한 경우마다 모든 것을 사탄이나 마귀로 보면 문제가 되겠지만 ‘저런 일은 마귀다 어두움이다 사탄이다 악한 영이다.’ 라는 것을 얼른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여러분 가정에서 분쟁이 일어났을 때 한걸음 더 나아가서 보아야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얼마나 분쟁이 심합니까? 이런 것을 볼 때 대통령이, 야당이 너무 심하다거나 언론이 너무 심하다고 말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는 누구를 비판 하고자 하는 의도가 하나도 없지만 사람들은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르려고 하고 국민끼리 서로 갈등 하도록 만드는 무서운 죄를 어두움들이 사람들에게 시킵니다. 이럴 때마다 얼른 보실 것은 어두움이 다 사탄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싸우는 것은 어두움이 하는 것입니다. 분쟁하는 것, 분리하는 것 모두 어둠이 합니다. 하나님 나라인 교회에서 분리를 생겨나게 하는 것은 사탄이라는 말씀입니다. 17절을 돌아서 다시 보면 교훈을 거슬려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은 바로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나누고, 떠들고 싸우는 일들을 빨리 끝내게 할 수 있는 것은 사탄, 어두움이 쫓겨 나가야합니다. 그러면 이 사단은 누가 쫓아낼까요? 20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쫓아 내셔야 합니다. 나라 일에 대해서도 가정에 대해서도 ‘하나님이여, 하나님께서 저것을 쫓아 내 주십시오.’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성경 맨 처음에 그리스도를 예고한 말씀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사도바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아래에서 상하게 시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나올 때에 가슴속으로 ‘아멘’ 이라고 화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내가 승리하려고 하는 것은 어림없습니다. 이미 우리 주님께서 승리 하신 것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로마서 8장1절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승리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에 예수께서 하신 승리가 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 3장 15절 그리고 로마서 8장 1절과 2절을 함께 뭉뚱그려 이 승리는 이미 내 것이라고 받아들이시는 것입니다. 따로 가져오는 것도 따로 승리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래전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이 있었을 때에 이미 선포하셨던 그 말씀, 그 승리를 나의 것으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여기에 동참하시면 됩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 라고 하신 말씀을 ‘아멘’ 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불교와 가장 크게 차이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불교는 자꾸 수도를 해야 하지만 우리는 ‘아멘’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수도하는 것이 쉽습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무언가를 하는 의미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기독교는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멘’하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재미가 없습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도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는데 우리가 자녀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인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한 승리가 바로 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너희 발아래에서 라고 말씀하시고 상하게 하시리라 라고 말씀하시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자면 헬라어에서는 ‘쑨트립쎄이’ 쑨은 함께이며 트립쎄이는 밟았다 즉 함께 밟았다. 라는 뜻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께서 밟으실 때에 사단의 머리를 여러분도 함께 짓밟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통쾌한 일입니까? 이미 예수님께서 밟으실 때 같이 밟았기 때문에 받아들이시기만 하면 됩니다.

20절에는 ‘속히’ 라는 말씀을 쓰고 있습니다. 두 가지의 뜻을 보면 ‘기왕에, 이미 already, 라는 뜻이 있고 한편으로는 ’아직 즉 yet‘ 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가 밟을 때, 십자가에서 마지막 죽으실 때에 이미 승리를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현실적으로 우리들에게 덜 다가 온 것이 있습니다. yet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둘을 같이 보는 것 신학에서는 긴장 관계라고 봅니다. 이미와 아직의 긴장 관계 속에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둘 다를 누릴 수 있으면 좋습니다. 기왕에 이미 이겼고 완전히 주님의 승리에 동참함을 통해서 완전히 이기는 것 승리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긴장관계입니다.

우리가 급하고 안타가울 때에 기도 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유대인들은 ‘마라나타’ 라고 많이 노래합니다. 여기서 ‘타’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속히 오시옵소서’ 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의 요한계시록 20절에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마라나타’입니다. 하나님이여 오시옵소서 말씀인데 기왕에 오셨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게 안타까움이 있지 않습니까? 나의 완전한 승리로 오지 않은 여기에 그 긴장 관계가 있습니다. 이미 오셨지만은 아직 까지도 완전한 것으로 나에게 임하지 아니하신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같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볼 것이 있습니다. 속히 하나님이 발아래에서 상하게 하셨다 라는 말에서 사도바울의 마음을 읽을 수 읽는데 그것은 사도바울의 개인적인 신앙 신념이고 소망입니다. 이방 선교에 대한 것으로 그 일로 말미암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글을 쓰면서 선교를 하는데 이렇게 힘쓰고 애쓰는 이방 선교를 통해서 이방을 깨고 선교가 조금 더 빨리 이루어 질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겠습니다만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함을 통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은 비록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도움도 안 되겠지만 이방선교를 위해서 힘쓰고 애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단을 발아래 굴복을 시키는 역사가 앞당겨 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서 사탄의 세력을 물리쳐야하는데 어떻게 하든지 사탄의 힘이 적도록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사탄의 세력이 점점 좁아 들어갑니다. 여러분, 모든 애를 써서 전 세계적으로 작게는 여러분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라도 어떻게 하든지 복음을 전하려고 해야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마음을 가지고 전하려고 애를 쓰기만할 뿐 하나님께서 전하시게 됩니다. 우리 눈에 결과가 있든 없든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예수 믿게 하려고 모든 노력을 다 하는 것이 사탄을 그리스도 발아래, 우리 발아래 상하게 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죄와 악으로부터 이길 수 있을까요? 내가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승리 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동참 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확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리하신 것이 이미 나의 것이라고 믿는 믿음, 이것이 큰 믿음입니다. 그러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은 내가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전도 하시는데 나는 도구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합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의사든 목사든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치료하시는데 의사는 동참 하는 것이고 선교나 교회에도 하나님께서 동참하시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도하시고 혹시 교통 하시면서 여러분이 하실 바가 있으면 하겠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선교를 자꾸 하다 보면 우리가 한다는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승리, 치료, 선교에 동참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들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태도입니다. ’내가‘ 가 아니고 이미 다 일하신 주님 앞에 도구만 되고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의 대표적인 예로 요나가 있습니다. 요나는 도망을 갔습니다. 끌려와서 그냥 ‘예수를 믿으세요. 안 믿으면 죽습니다. 망합니다.’ 라고 성의 없이 말했는데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옷을 벗고 베옷을 입고 금식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성의 없이 복음을 전했는데 전부 돌아오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습니까? ‘저 사람들도 살아야 할 내 피조물이다. 하나님이 하신다.’

특별히 20절에 ‘평강의 하나님께서’ 라고 말씀하시는데 사탄을 물리치는 것 사탄을 우리 발아래 상하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왜 평강이라고 쓰셨을까요? 크게 말하면 교회가 지향해야 할 바가 평화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적게는 어두움을 물리치는 최고의 길이 평강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도, 가정도, 나라도 평화가 있으면 날아가 버립니다. 사탄이 좋아하는 것이 싸움입니다. 악은 절대평화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사탄을 물리치는 데는 평화입니다.

본문 21절에는 ‘나의 동역자 디모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선교 동역자요 보조자이며 선교여행을 할 때 늘 함께 했던 동반자이고 믿음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의 모든 서신에 함께 글을 쓴 사람이 디모데였습니다. 디모데에 대해서 가장 잘 쓰고 있는 말씀이 내가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 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빌2:19~20) 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디모데는 일을 똑똑히 잘 하지 못했습니다. 민첩하지도 못합니다. 그럼에도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최고의 동역자로 생각하는 것은 뜻을 같이 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바로 오늘날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찾으시고 교회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디모데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경 전체에서 충성스럽고 신실한 종들을 말씀 하실 때에는 똑똑하고 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잘 이해하고 하나님과 같은 마음으로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를 사도바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사도바울의 마음을 알고 함께 할 자가 바로 디모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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