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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차원이 있는 감사생활 (대상 16: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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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를 감사에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을 갖게 되면 전에는 없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신앙생활이 깊어질수록 입으로 감사를 많이 하게 됩니다. 사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이시고 그분이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고 믿는다면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좋은 일은 좋은 일이니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지 않게 느껴지는 일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믿는다면 또한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 주일에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려고 합니다. 일 년의 삶을 지켜 주셨고, 한 해의 농사를 축복해 주셔서 올해도 풍년을 맞이하였습니다. 한 해 동안 사건과 사고도 많았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이 시간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은 추수에 대한 감사뿐만이 아니라 1년을 돌아보면서 물질로 감사하는 날인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17:11절 이하에 나오는 고침 받은 열 문두병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람이 감사하는 확률이 얼마나 되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10명의 문둥병자를 고쳐주셨을 때, 주님에게 돌아와서 감사한 사람은 단 한명에 불과했습니다. 그 사실은 사람들이 은혜 받는 것이 열이라면 감사는 하나 정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추수감사절을 정하고 교회적으로 모든 성도들이 함께 감사를 하도록 하는 것은 좋은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의 마음 중에 가장 쉽게 늙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곧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의도적으로 훈련하지 않으면 쉽게 입술에서 잊히게 됩니다. 의도적으로 감사를 해야 합니다. 체스터튼(G. K. Chesterton)이라는 사람은 “나의 주된 인생관은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연습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감사를 의도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성자로 불리는 내촌감삼은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내가 가장 절실히 감사하고 싶은 것은 나의 오늘까지의 생애가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내가 멋대로 드리는 기도를 받아주셨다면 나는 거만하고 인정머리 없는 밉상스러운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아! 실로 감사할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두 물리치시고 나의 원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셨다. 그분은 내가 원하지 않는 길로 나를 끌어가시어 내가 구하지 않은 일을 나에게 주셨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또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만일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질병이나 실패 그리고 배신이나 죽음으로 저주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그리고 성경을 읽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막힌 귀로, 또한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도록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분명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셔야 가질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사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1. 감사하는 마음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믿음이 떨어지면 불평과 원망이 자주 많이 나옵니다. 이 불평과 원망의 요소가 감사의 싹을 짓밟습니다. 요즘 현대의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샤머니즘적인 신앙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이 잘 되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좋아 합니다. 그러나 일이 좀 잘 안되고 힘들고 어려우면 짜증을 부리고, 믿어도 소용이 없다고 하면서 마치 하나님께서 무엇을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처럼 하나님 탓을 하고, 교회를 탓하고 주의 종들을 탓합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미신이고 우상입니다. 아니 신앙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철부지 어린아이의 신앙입니다.

우리 신자들이 굳건한 믿음과 성령의 충만해서 살아가면 마음에 넉넉함이 있고 감사함이 넘칩니다. 그래서 찬송시인은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노래했습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거친 들도 초막도 천국이 됩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믿음의 열매로 그의 신앙을 증거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2. 감사하는 마음은 축복 받은 마음입니다.

감사는 분명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아무나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신다면 여러분들은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원망과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입만 열면 불평불만이 튀어나옵니다. 때문에 사람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이미 축복 받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큰 꿈과 야망을 가지고 살아가던 젊은이가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하여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이제 세상 모든 꿈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시장에 갔다가 두 다리가 없어 타이어 조각을 의지하여 구루마를 밀고 다니며 노래를 하고 물건을 파는 사람을 보고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나는 멀쩡한 다리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는 아직도 내게는 다리 하나가 더 남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남은 다리 하나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에 남은 다리 하나를 주님께 드리기로 서원하였습니다. 잘린 다리에 고무로 의족을 해 끼고 선교훈련을 받고 아프리카 선교사로 헌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택한 아프리카는 아직도 식인종들이 들끓는 지방이었습니다. 어느 지역으로 이동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식인종이 덤벼들었습니다. 그는 칼로 다리를 베는 흉내를 내면서 식인종들에게 고무다리를 던져 주었습니다.

식인종들은 아무리 그 다리를 씹어 보려고 해도 씹히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때 식인종들은 그 선교사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 앞에 엎드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보존하고 그 지역에서 식인종들을 평정하고 성공적인 선교를 이루었다는 선교 사화(史話)가 있습니다. 그때서야 그는 하나님께서 왜 자기의 한 다리를 잃게 하셨는지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감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민족의 과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문화생활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행복한 삶입니까? 전에 없던 풍요를 누리고 문화를 누리며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만족하고 행복하고 감사합니까? 그런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늘 부족을 느끼고 불만하며 갈증을 느끼고 살아갑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인간의 행복이나 만족함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래서 하늘이 주시는 축복인 줄 믿습니다.

3. 감사하는 마음은 더 큰 감사를 불러들이는 마음입니다.

확실히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일이 더 많이 생깁니다. 감사하는 곳에는 또 기적이 일어납니다. 불평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불평꺼리가 늘어납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감사의 조건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는 것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해와 달이 필요 없는 영원한 천국을 주신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는데 지금까지 감사하던 것들 보다 월등 한 감사의 조건을 점점 더 많게 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본문은 다윗이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해서 드린 감사의 시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언약궤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법궤라고도 불렀습니다. 그 속에는 아론의 싹이 났던 지팡이와 십계명 돌비와 만나가 든 항아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적인 권위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사울이 왕이었을 때에 그 언약궤가 무려 70여 년 동안 변방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왕이 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놓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감격했습니다. 감사가 넘쳤습니다.

그때 다윗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 대상16:34-36절을 함께 봉독하시겠습니다. “34)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35)너희는 이르기를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서 건져 내시고 모으시사 우리로 주의 성호를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할지어다. 36)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하매 모든 백성이 아멘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

다윗은 참 기막힌 인생을 살았습니다. 초라한 목동으로 시작하여 골리앗을 이기고 사울의 칼날아래에서 보호하심을 입고 마침내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참 기적과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안치시켜 놓고 나서 이 감격의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면 감사가 넘치는 삶을 경험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4.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음을 아는 사람이 감사합니다.

첫째로 과거를 생각 할 줄 아는 사람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초라했든지 화려했든지 누구나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를 생각하되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은 대개가 나쁜 경험, 억울한 경험, 뼈아픈 경험들을 기억하고 삽니다. 그러나 자신이 지난날에 절망적인 그런 상황에서 은혜를 입고, 치료를 받은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고난 가운데서 살려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어떻게 지금 원망 불평을 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지키라! 맥추절을 지키라!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출34:18-22절)고 하신 것은 당부가 아니라 명령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꼭 하시는 말씀이 “너희가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 했던 것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 말은 "과거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과거의 쓰라림을 잊지 말고 그 고난 가운데서 인도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과거를 생각하면 뼈가 저렸을 것입니다. 지나온 생애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과거를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똑같은 감회에 젖을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지난날을 생각하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축복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자신을 돌아 볼 줄 아는 사람이 감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의 삶은 “구원의 삶”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일입니까? 밀턴은 말년에 소경으로 살았습니다. 에디슨은 귀머거리가 되어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결같이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을 받고 보니 귀머거리, 소경인 것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에디슨에게 하나님은 발명왕으로, 밀턴에게는 실낙원으로 보상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감사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고 상급입니다. 다윗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감사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지금은 한 나라의 임금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기적 같은 일입니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현재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누가 감사 할 수 있습니까? 과거를 거울삼아 미래를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이, 주님의, 큰 은혜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정과 우리 사업과 우리 교회와 이 민족을 붙잡아 주셔서 이렇게 살아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장을 지켜 주셔서 한 평생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의 미래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분명히 우리의 앞날도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길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고 만족함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과거를 거울삼아 미래를 믿음과 소망 중에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믿는 대로 될 줄 믿습니다.

모쪼록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이 자라 갈수록 더 큰 감사함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귀하신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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