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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말할 수 없는 감사의 제목 (고후 9: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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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감사의 제목 (고후9:6-15)

  본문 끝 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합니다. 여기서의 바울의 감사는 단지 자기 자신이 받은 은혜에 대한 개인적인 감사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했습니다. 그가 여기서 감사의 제목으로 삼은 그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 즉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고 사람의 말로는 이루 다 형용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바울 자신의 사역을 통해서 온 세상에 전파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복음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복음 안에서 무너지고 사라지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장벽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 대단히 상징적인 실례로서 예루살렘교회는 이방인교회에 영적인 도움을 주고 이방인교회는 예루살렘교회에 물질적 도움을 주며 서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는 역사입니다. 이 모든 놀라운 역사를 목도하고 체험하며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러한 감사를 드리게 된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갈2:8-10에 보면 사도 바울의 이러한 언급이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여기서 바울은 예루살렘교회의 기둥 같은 지도자들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기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들이란 예루살렘교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왜 가난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하루에 새로 믿게 되는 신도의 수가 수천 명에 이를 만큼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지만(행2:41, 47, 4:4, 6:7), 다른 한편으로 돌보아야 할 과부들의 수가 사도들이 감당할 수 없도록 급증하는 현상 등으로 재정적인 여건이 악화되었으리라 봅니다. 아마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유대교 권력층의 박해도 예루살렘교회의 경제적 어려움에 한 몫을 했을 것이며, 게다가 유대지방에 들었던 엄청난 흉년으로 인해서 그 형편은 더 악화되었을 것입니다. 행11:27-30은 그 사정을 우리에게 엿보게 합니다: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여기서 우리는 경제적으로 곤궁에 처한 예루살렘교회를 도와달라는 사도들의 호소가 있었고 이에 사도 바울은 흔쾌히 그리고 열심히 응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해 사도 바울이 어떻게 힘을 썼는지를 보여주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기록에서 바울이 자기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각 지방의 교회에 예루살렘교회를 도울 것을 요청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고전16:1-2를 보면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여기서 “성도를 위하는 연보”란 다름 아닌 예루살렘의 성도를 위하는 연보를 말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고린도교회에 연보를 하는 방법까지도 구체적으로 일러주고 있음을 우리는 봅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에 앞서서 갈라디아 지방에 있는 교회들에게도 이미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연보를 명령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아데네와 고린도가 있는 그리스 남부 아가야 지방의 교회들뿐 아니라 빌립보와 데살로니가가 있는 북부 마게도냐 지방의 교회들에게도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연보를 권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은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연보의 모금상황에 관해 상당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먼저 고후8:1-5를 봅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여기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마게도냐의 교회들이 어떻게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헌금을 했는지를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환난의 많은 시련과 극심한 가난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으로 풍성하게 연보를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간절히 자원하여 힘닿는 대로 했을 뿐 아니라 그 이상을 했고 그가 기대한 것보다도 많이 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마게도냐 지방 교회들의 사랑과 열심을 소개한 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고후8:7-14를 봅니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일에 관하여 나의 뜻을 알리노니 이 일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말과 지식으로만 풍성하지 않고 사랑의 실천에 있어서도 풍성한 진실한 믿음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예루살렘교회를 돕는 일을 마게도냐 지방의 교회들보다 일 년이나 먼저 시작하고도 오히려 그들보다 성과가 미흡한데 이제는 힘을 내어 그 일을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풍족하게 도울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을 돕는 것은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니고 오히려 그들 자신에게 유익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가 물질적으로 예루살렘교회의 부족함을 채워주면 예루살렘교회는 영적으로 고린도교회의 부족함을 채워줄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로마서에서는 예루살렘교회를 돕는 일이 유익할 뿐 아니라 마땅하다고 사도 바울은 쓰고 있습니다. 롬15:25-27을 봅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예루살렘교회를 돕는 일에 있어서 고린도교회의 분발을 촉구하는 사도 바울의 말은 9장에서도 계속됩니다. 그 1절부터 봅니다: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성도를 섬기는 일”은 물론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을 경제적으로 돕는 일입니다. 그 일의 필요성에 대하여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바로 앞의 2-5절입니다: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가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가 준비하지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바울은 여기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질책과 호소를 겸해서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를 돕는 일을 고린도교회를 위시해서 아가야 지방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했다고 마게도냐 지방의 교회들에게 자랑을 했기에 그들이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분발해서 거액의 헌금을 이미 모았는데 막상 부유한 고린도교회는 헛소문만 낸 꼴이 되어서는 고린도교회뿐 아니라 바울 자신도 신뢰를 잃고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터이니 빨리 약속한 연보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연보하는 자세를 가르칩니다. 그 요점은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것입니다. 연보는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크게 사랑을 베풀기를 원하면 원할수록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는 말로 다 할 수 없이 큰 것인데 그 큰 은혜를 받은 우리 또한 힘껏 큰 감사로 응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7절에서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은 우리에게 그의 아들조차 기꺼이 내놓으셨습니다. 아들을 내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못 주실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는 롬8:32에서는 또 이렇게 썼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그것이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입니다. 그것이 말할 수 없는 감사의 제목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범사에 감사해야 할 이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고기를 사가지고 집에 돌아가는데 갑자기 개 한 마리가 달려들어 그 고기를 물어 낚아채갔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말하기를 “하나님, 고기는 잃었어도 입맛은 잃지 않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했답니다.

  “주는 것은 잃는 것이 아니라 씨를 뿌리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후8:9를 다시 인용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려고 당신의 모든 부요함을 버리시고 스스로 가난해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입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자기가 가진 부요함으로 남을 또한 부요하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 지방의 교회들이 예루살렘교회를 돕는 일을 하면서 “먼저 자신을 주께 드렸다”(고후8:5)고 했습니다. 물질적으로든 영적으로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우리 자신을 일차적으로 주님께 드리는 일입니다. 또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행위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형제와 이웃을 돕는 일을 통해서입니다.

  본문 6절에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10절에서는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라” 했습니다. 사랑의 씨앗을 많이 뿌리고 널리 심기를 기뻐하는 이들에게는 원하는 만큼 더 많은 의와 평강과 희락의 열매를 거두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크면 클수록 더 큰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항상 모든 일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기회가 그만큼 더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남을 도우며 섬길 수 있는 기회를 감사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그런 마음의 소유자들에게 더욱 더 감사가 넘치는 행복한 삶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가까운 목사님에게서 엊그제 들은 최근에 있었던 실화 하나를 소개합니다. 어느 부부가 나이가 많이 들자 세 아들에게 재산을 분배해주고는 시설 좋은 실버타운에 들어가 살았답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세상을 떠났답니다. 그러자 혼자 남은 남편이 맏아들부부를 불러 앉히고는 혼자서 실버타운에 살기 싫으니 같이 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답니다. 그런데 그 아들부부가 아무 말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 둘째 아들부부를 불러서 같은 제안을 했답니다. 그런데 그 둘째 아들부부도 아무 대답을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으로 셋째 아들부부를 불러 그들의 의향을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그 막내아들부부가 하나 같이 하는 말이 형님들이 계신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저희와 사시겠다는 말씀이시냐 하면서 막내인 자기들에게 아버님 모실 기회를 주시니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다며 그 아버지를 모셨답니다. 그 아버지께서는 막내아들네와 불과 서너 달 사시고 돌아가셨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에게는 자식들이 몰랐던 어마어마한 재산이 있었고 그 아버지는 그 전부를 막내아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시고 세상을 떠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돕고 섬기며 살기를 기뻐하고, 돕고 섬길 수 있음을 감사할 줄 아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은혜와 복을 더하실 줄로 믿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행복한 삶을 누리는 우리가 됩시다. 우리 모두 행복한 삶 때문에 감사할 뿐 아니라 감사함으로 더 행복한 삶을 누리는 주의 백성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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