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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 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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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 집사가 부부 싸움을 하였습니다. 남편이 가정 일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가지를 긁다가 싸움이 되었습니다. 속이 상해 시장바구니를 들고 장을 보려고 나섰습니다. 여자들은 쇼핑이 스트레스를 푸는 한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시장에서 이것저것 둘러보는데 누가 뒤에서 소리칩니다. "아주머니, 사과하고 감사하세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부부싸움을 하고 나온 줄 누가 알았지? 사과하고 감사를 하라니?"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는 과일장사가 한 말이었습니다. "사과하고 감 사세요." 그 순간 이집사는 그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아! 남편에게 사과하고, 오히려 감사해야지." 이집사는 사과하고 감을 샀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사과를 내놓았습니다. "사과하니까 사과드세요." 그 다음 감을 내놓았습니다. "감 드세요. 감사드려요." 어리둥절한 남편에게 말합니다. "아까는 제가 미안했어요. 바깥일에 신경 쓰실 일도 많은데, 제가 감사해야죠." 그랬더니 남편이 설거지까지 해주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감사할 것을 찾으면 얼마든지 감사한 일이 있지만 원망, 불평할 것을 찾으면 또 태산같이 원망과 불평할 일도 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께 부름 받은 신앙인의 생활덕목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 사랑, 그리고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감사를 거듭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감사가 삶의 기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성도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감사라는 말은 히브리어 '야다' 와 '토데' 의 합성어입니다. '마음의 샘 줄기' 라는 뜻입니다. 즉 마음에 감사가 샘 줄기처럼 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약에는 '카리스' 라는 말이 쓰입니다. 이는 '은혜' 라는 뜻입니다. 은혜를 깊이 깨달을 때 감사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가 영어로는 'thanks' 인데, 이는 '생각한다' 의 뜻을 지닌 'think' 에서 나온 것입니다. 감사는 깊이 생각할 때 저절로 나오는 행동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모습을 보면 믿음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 앞에 '주께 감사드리세' 를 찬양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주께 감사드리세. 날 위해 이 땅에 오신 독생자 예수. 나의 맘과 뜻 다해 주를 사랑합니다. 날 위해 이 땅에 오신 독생자 예수. 내가 약할 때 강함 주고 가난할 때 우리를 부요케 하신 나의 주 감사. 내가 약할 때 강함주고 가난할 때 우리를 부요케하신 나의 주 감사 감사." 감사하는 자가 되려면,


첫째로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정원을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왕이 있었습니다. 왕은 정원에 있는 모든 나무, 풀 꽃 하나 하나까지 정성으로 돌보았습니다. 어느 날 왕이 정원에 나가 보니 모든 나무들이 시들어 있는 것입니다. 왕은 문 옆에 서 있는 떡갈나무에게 물었습니다. "떡갈나무야, 무슨 일이 있었니? 도대체 왜 다들 시들어 있는 거니?" "나무들이 서로 자기가 다른 나무보다 못하다고 실망하고 있어요. 소나무는 자신이 포도나무처럼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요. 포도나무는 복숭아나무처럼 똑바로 서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낙담하고 있습니다. 제라늄은 라일락처럼 날씬하지 못하고 향기도 없다고 불평입니다." 그런데 모두 시들어 있는 중에 유독 생기 있고 아름다운 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꽃은 바로 팬지(Heart-peace)였습니다. 왕은 팬지에게 물었습니다. "팬지야, 다 시들어 가고 있는데 너는 작은 꽃이지만, 꿋꿋하게 피어있는 것을 보니 짐의 마음이 매우 기쁘구나!" "감사합니다. 저는 원래 볼품이 없는 꽃이잖아요? 왕께서 떡갈나무나 소나무나 복숭아나무, 혹은 라일락을 원하셨다면 저를 뽑아 버리고 그것들만 심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왕께서 저를 심으신 이유는 저를 보시며 마음에 평안을 느끼려함인 것을 저는 압니다. 그래서 저는 왕께서 보시며 마음의 평안을 느끼시도록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여 꽃을 피웠습니다."

본문 15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은 '에이레네' 라는 단어로 '평화, 평안, 화목' 을 뜻합니다. 히브리어 샬롬과 같은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평강입니다. 그러므로 땅의 것으로 인해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이웃과 더불어 평화의 사람(peace maker)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여기의 '한 몸' 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의미합니다. 즉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 각 성도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주장되면 교회의 평강이 이루어지며, 개인의 평강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감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편치 못하면 감사가 없습니다. 오히려 불평 불만이 나옵니다. 그런데 감사하는 마음은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생각과 목적을 가지면 감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할 때 감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기분이 좋다는 마음의 차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는 차원입니다. 그리할 때 죄사함의 기쁨과 구원의 기쁨과 일하는 기쁨으로 감사하는 자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우찌무라 간죠(內村鑑三)는 가장 존경받는 일본인 10인 중의 한사람입니다. 그의 시 "괴롭지 않았더라면" 의 내용입니다. "만일 내가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을, 만일 모든 형제 자매들도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을, 만일 우리 주님이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을." 그에게 괴로움은 감사의 조건이 되었으며 자신이 당하는 육체의 가시가 오히려 은혜의 조건이 된 것입니다. 우찌무라 간죠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질을 앓다가 듣는 것과 보는 것과 눈꺼풀 움직이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 마비된 적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일하러 나갈 때 성경을 펴두고 가시면, 돌아오실 때까지 그 페이지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불편함이 오히려 말씀을 깊이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고린도 후서 12장을 종일 읽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몸의 가시를 제하여 달라는 간절한 소원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니라" 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도리어 감사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자신의 약함 속에서 감사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찌무라 간죠는 일생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바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후에 그는 책과 방송을 통해 완악한 일본인들을 회개시키는 사도로 쓰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항상 감사하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아무리 이해심이 많고 열심히 뛰어난 행동을 한다 해도 하나님을 향한 높은 감사가 없다면 생명있는 신앙생활은 불가능하다."

본문 16절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의 삶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충만한 삶에서 가능합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불평하는 사람과 함께 불평합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함께 하여야 합니다. 감사를 가능케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만이 나로 하여금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 가르치고, 권면하고,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교회를 섬기는 일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내 안에 풍성히 거하시는 말씀들이 나로 충성된 자로 만들어 주십니다. 본문의 '풍성히 거하여' 라는 의미는 하나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 편안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되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 불편하면 안됩니다. 말씀이 편안히 거할 때 그 곳에서 감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오십이 넘은 여류작가에게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이 군 입대 신체검사를 하다가 몸에 이상을 발견하였습니다. 정밀 검사를 받으니 치료하기 힘든 악성암에 걸렸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병원에서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을 웃기고 울리던 강인한 작가가 아니라, 자식을 사랑하는 한 어머니요, 약한 여자로 돌아온 여류작가는 자식을 치료하려고 많은 노력을 다 했지만 세상의 방법으로는 불가능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의지할 길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매달려 간구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자기보다 먼저 가려는 자식을 부여안고 하나님께 절규했습니다. "하나님 왜 데려 가십니까? 살아 계시다면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은 묵묵부답이셨습니다. 결국 아들은 스므 살의 꽃다운 나이에 펴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아들을 장사지내고 서재에 돌아와 앉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녀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아픔이 무엇으로도 표현될 수 없는 아픔이라고 여겼지만, 예수의 아픔에 족히 비교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생명의 유한성과 절대자에게 대한 인간의 의존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은혜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만나게 되는 새로운 문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마음에 감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펜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써냈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은 것입니다. 그때 발표된 작품이 '한 말씀만 하소서' 란 자전적 소설입니다. 그녀는 바로 여류작가 박완서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을 때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능력을 힘입으려면 연약함을 담당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사탄의 결박에서 헤어 날 수도 없으며 죄의 사슬을 끊지 못함을, 영생도 얻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지도 못함을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 17절입니다.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여기의 '힘입어' 는 '디아' 라는 헬라어로 "통하여, 말미암아, 때문에, 의해서" 라는 뜻입니다. 성도들은 예수의 능력을 통하여 감사하게 됩니다. 예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감사하게 됩니다. 예수 때문에 감사하게 됩니다. 예수의 능력에 의해 비로소 감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의 그릇에만 복을 채우십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환경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모두가 원망하고 불평한다 해도 감사해야 합니다. 부디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인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풍성한 감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감사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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