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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 (출 34: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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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 연보궤 앞에 앉아계셨습니다. 연보궤는 성전입구에 있었습니다. 예배하러온 사람은 먼저 연보를 해야 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연보합니다. 부자는 많은 액수를 넣습니다. 그러다가 한 과부가 왔습니다. 두 렙돈을 넣습니다. 아주 적은 액수예요. 잠잠히 보고 계시던 예수께서 큰 소리로 말하셨습니다. “아멘.”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말하십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 구차한 중에 생활비 전부를 넣었구나.” 성경 어느 곳에 보아도 하나님이 인간의 행동을 보고 “아멘”한 곳은 여기뿐입니다. 복음서에서 “진실로”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어로 보면 “아멘”입니다. 예배하는 사람이 반드시 가져야할 신앙의 자세를 여기서 발견합니다.

두 렙돈, 내나 안 내나 차이가 없는 액수입니다. 그냥 통과해도 상관없습니다. 그 만큼 과부는 가난했으니까요. 그러나 하나님 입장에서는 세상적인 눈으로 보아 많고 작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예물은 그 사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물을 보시고 그 사람이 누릴 축복을 주십니다. 도대체 예배에서 헌금은 어떤 일을 하는가요?

1. 하나님은 자신을 주셨다

기독교가 특별한 게 무엇일까요? 줍니다. 하나님은 먼저 주십니다. 하나님 속에만 생명이 있습니다. 모든 좋은 게 있습니다. 세상에서 좋은 게 무엇인가요? 아름다움인가요? 건강인가요? 풍요로움인가요? 모두 하나님의 그림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주기도문도 고백하지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다 주셨어요.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에서 힘들게 삽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주는 것을 받지 못해서입니다. 주어도 못 받는 게 인생입니다. 죄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라.”(사59:1,2)

왜 일이 그렇게 안 됩니까? 왜 삶의 짐이 그렇게 버거운가요? 왜 몸이 그리 힘들과 아픈가요? 늙어서요? 돈이 없어서요? 세상이 악해서요?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되어서 그럽니다. 죄가 하나님과 나 사이를 하늘과 땅만큼 멀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이 올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상황입니다.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하겠습니까?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외아들을 주셨습니다. 우리 대신 아들이 벌을 받게 하셨습니다. 저주를 몸에 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 몸을 주셨습니다. 자기 생명도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들은 삶의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아직도 삶이 힘듭니까? 문제보다 십자가를 바라보세요.

그러면 저주의 그림자가 걷히기 시작합니다. 무언가 꽉 막혔나요? 사업이 도무지 안 됩니까? 가정에 구름이 덮였나요? 삶이 너무 고달파요? 마음의 눈을 열어 보세요. 구름 뒤에 빛나는 태양이 있어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나 자신을 보세요. 일어날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전과는 다른 존재입니다. 세상을 이길 힘을 받았어요.

그뿐 아닙니다. 하나님은 외아들만 준 게 아닙니다. 하나님 전체를 다 주셨습니다. 내가 받지 않은 게 뭐가 있는지 말해보세요. 돈이 부족한가요? 병이 그대로 있나요? 외로우세요? 괴롭히는 문제가 여전히 있나요? 믿음으로 내 자신이 전과 다른 존재임을 확인하세요.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와 계십니다. 흑암과 혼돈 가운데 창조하시는 분입니다.

예배는 이 사실을 확인하고 하나님께 하는 반응입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축복하셨기에 그 하나님 앞에 나와 경배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자기 전체를 주셨어요. 예배는 그 하나님을 받는 행위입니다. 감사하며 기뻐하며 받으세요. 받은 내용을 확인하며 적용하세요. 어떤 상황에서나 하나님처럼 복된 존재로 일어날 수 있어요. 그러니 예배마다 오세요.

신앙은 정신적인 위로만 주나요? 문제는 현실이고 하나님은 정신적인 존재인가요? 사람은 변하지 않고 상황은 무거운가요? 그것들을 믿지 마세요. 예배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현실보다 더 믿습니다. 해결을 눈으로가 아니라 믿음의 마음으로 봅니다. 하나님은 내 자신보다 현실보다 훨씬 실제적이고 구체적입니다. 하나님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2. 나의 전체로 반응하라

이제 하나님 입장만 볼 게 아니라 예배하는 내 입장을 봅시다.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 속에는 모든 보화가 다 있습니다. 생명과 건강, 풍요로움, 기쁨, 소망, 영광. . . 말해 보세요. 세상에서 좋은 것, 또 무엇이 있나요? 하나님 속에 다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자신을 주십니다. 예배는 놀라운 축복의 현장입니다.

예배마다 나와야 합니다. 예배마다 기뻐해야 합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다 그러했습니다. 세상에서 잘 되는 사람들도 다 그러합니다. 자신 전체를 주셨고 지금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고 누리기 위해, 하나님의 영을 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축복을 받기 위해, 예배마다 참석합니다. 그런 줄 알고 열심히 나오는 사람은 복됩니다.

하나님이 예배를 얼마나 강조하시는지 모릅니다. 월삭과 안식일과 절기 때마다 나오라고 하십니다. 안 나오면 이스라엘이 아니라고 선언하십니다. 우리도 그래요. 신자라면 모든 예배마다 나오도록 중요도를 분명하게 정해야 합니다. 사업이 바쁜가요? 다른 중요한 일이 있어요? 예배보다 중요합니까? 당신은 축복의 많은 부분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의 가장 완벽한 모형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함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와서 예배하라고 하십니다. 예물은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아예 하나님이 지정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백 살에 낳은 이삭을 드리라고 합니다. 이삭이 모리아 산으로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올라갔으니 이미 상당히 자란 청소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백 살이 훨씬 넘었습니다. 젊은 이삭이 반항하면 못 당합니다. 그러나 이삭은 순종합니다. 묶입니다. 제단에 누워 칼을 받습니다. 그렇게 예물로 드리면서 아브라함도 이삭도 자신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사랑만 깨닫지 않아요. 하나님 향한 내 사랑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습니까?

제단에 올라갔다 내려온 이삭, 백 살에 낳은 외아들을 드렸다가 다시 받은 아브라함, 모두 예배의 수혜자입니다. 이 제사를 통해서 이삭도 아브라함도 전과 같을 수 없게 됩니다. 과거의 자신은 죽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은 본래 아브람이었지만 이제 후로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이후의 이삭은 거룩한 산 제물이 되었습니다.

예배는 그냥 참석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제단에 올라갑니다. 오늘날에는 십자가가 그 제단입니다. 죄 많은 나, 한 많고 문제 많은 나는 죽습니다. 약하고 병든 나는 죽습니다. 동시에 병도 가난도 나의 늙음도 그칩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나로 다시 일어납니다. 모습은 같아도 다른 나입니다. 새사람입니다. 거룩한 존재입니다.

이처럼 완전한 새사람이 되려면 나의 전체를 드려야 합니다. 이삭은 자신을 제물로 드립니다. 아브라함은 자신보다 더 소중한 아들을 드립니다. 정말로 죽고 다시 일어나는 마음으로 합니다. 세례가 그렇습니다. 물에 잠겨 죽고 다시 일어납니다. 새사람으로 다시 삽니다. 죄를 짓고 넘어졌나요? 다시 병들었나요? 예배에 와서 새사람으로 일어나세요.

3. 예물로 증명하라

그냥 예배만 나오면 되나요? 하나님 명령입니다. “너는 빈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 그냥 나오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성전에서 먼 곳은 사흘 길입니다. 온 가족이 양을 준비해 데리고 왔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예물이기에 조심하며 돌보았습니다. 아주 가난한 사람들은 비둘기로 대신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세입니다. 나의 전부를 드리는 것처럼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나의 전체를 대신하는 예물입니다. 커피 한 잔 생략하고 적당히 드리는 게 아닙니다. 잊어먹고 그냥 들어와 앉았나요? 어떻게 잊을 수가 있습니까?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나를 대신하는 예물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주시고 외아들도 주셨는데 나는 아무 것도 안 주나요?

만약 예물을 드리지 않았다면 예배는 큰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전부를 받고 나는 그냥 넘어가나요? 이건 대단히 실질적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드렸습니다. 이삭은 하나밖에 없는 자기 목숨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일단 받으시고 양을 대신 죽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예물 없이 거룩한 존재, 하나님 같은 존재는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위해 들어오면 제일 먼저 연보궤를 만납니다. 전에는 설교 후에 연보채를 돌렸습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한다면 연보궤가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연보를 넣은 뒤에 성전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네 모든 처음 것들은 다 내 것이다. 양도 나귀도 장자도 그렇다. 그들을 대속하기 위해서 빈손으로 내게 오지 말라.”

“잊어먹고 안 드렸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큰 손해를 본 것입니다. 예물이 거룩해질 때 드린 나도 거룩하다 인정을 받습니다. 예물은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자기를 어느 정도로 생각하는지에 따라서 예물도 달라집니다. 자신 소중하고 자신이 존귀할수록 바치는 양도 많아집니다. 외아들을 드리고 목숨을 드린다면 받는 축복도 최고입니다.

예물은 믿음으로 드립니다. 자신이 소중한 만큼 드려야 합니다. 과부의 적은 액수는 사실상 생활비 전부였습니다. 그리하여 과부는 자신의 생활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예수께서는 큰 소리로 “아멘” 하셨습니다. 과부의 생활은 하나님의 책임이 되었고 과부의 삶은 거룩한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과부와 같은 심정입니다. 같은 자세로 드리세요.

과부처럼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드려보세요. 그렇게 나는 죽습니다. 가난도 병도 가정도 모든 문제도 함께 죽습니다. 헌금은 연보궤에 넣지만 나의 문제는 십자가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십니다. 책임지십니다. 과부처럼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하세요. 빈손으로 예배 나오지 마세요. 절대로 손해 보는 일 하지 마세요.

QT를 위한 질문

1. 기독교의 특별한 점이 무엇인가요?(1/1)
2. 사람들이 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지 못하나요?(1/2,3)
3. 예배가 무엇인가요?(1/6-8)
4. 왜 예배마다 나와야 하나요?(2/2,3)
5. 예물을 드리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나요?(2/5)
6. 예배에 참석하고 나면 나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요?(2/6-8)
7. 왜 예배에 빈손으로 오면 안 되는지 말해봅시다.(3/3-5)
(김기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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