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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는 구원의 공동체입니다 (엡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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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강동교회를 찾아주신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교회란 어떤 곳일까요?
혹시 처음 교회를 오신 분들은 건물을 교회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란 건물이 아니고 구원받은 사람이 교회요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다른 것은 몰라도 구원에 관한 비밀을 보여주는 곳이 되어야 하고 구원받은 열매가 무엇인지를 나타내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목욕탕이 우리의 육체의 때를 벗겨주는 곳이라고 한다면 교회는 우리의 영혼의 떼,우리의 마음의 떼를 벗겨주어 새사람되게 하는 곳입니다.
종종 교회를 말하면 나같은 죄인 나같은 허물이 많은 사람이 어떻게 교회를 다닐 수 있지!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나는 돈이 없어서 교회생활을 할 수 없고 나갈 수 없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죄인이 오는 곳입니다. 교회란 돈이없고 문제가있는 사람들의 오는 곳입니다. 교회는 인생의 죄와 허물과 문제를 구원하는 종교인 곳입니다.

이 세상에는 크게 2가지 종류의 종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행함의 종교입니다.땅의 인간들이 위의 신을 찾아가는 종교입니다.인간자신에게서 시작을 하고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무언가를 행함으로 신에게 가까이 가려는 종교입니다.그래서 점점 더 착하고 바르고 도적적인 사람이 되게 합니다.

둘째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행함으로 인간이 신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신이 행한 것들을 인간이 믿음으로 구원받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과 부활하심을 믿음으로 죄에서 구원받습니다. 죄로부터 구원받은 사람들은 죄에서 자유함을 받고 죄로 인해서 심판하지 않는 구원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기독교는 바로 구원의 종교입니다.
교회는 바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어떤면에서 교회를 다지지 않지만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더 착한 사람 있을 수 있습니다. 더 양심적으로 바르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윤리로 도덕으로 양심으로 살아도 죄를 용서받지는 못합니다. 오직 죄에서 구원받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바로 바로 구원받는 것에 있습니다. 교회는 바로 구원의 공동체이며 구원받을 사람들을 향해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여 구원할 공동체입니다. 이 세상 어떤 학교에서도 어떤 단체와 다른 것이 있다면 교회는 용서의 복음이 있고 구원의 기쁜 소식이 있는 곳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문제는 구원의 문제입니다.
지금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 당신 착하게 사십시오. 당신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당신 스스로가 되십시오.이런 류의 말과 이런 류의 교훈 도덕 윤리는 필요없습니다. 지금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바로 생명줄을 던저 물에서 생명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시간 지금 여기에서 가장 원하시는 뜻은 바로 지금 구원받으라고 하십니다.
구체적으로 기독교의 구원은 무엇입니까?

1. 구원은 새로운 생명의 부활입니다.

구원받기 이전의 인간의 삶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상태입니다. 여기서 사람의 상태가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죽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반쯤 죽어있는 상태가 아니고 전적으로 부패하여 있다는 상태입니다.
예수님믿기 이전의 사람들의 영혼은 전적으로 죽어있습니다.여기서 죽음은 단절을 말합니다. 영적인 죽음이란 바로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된 상황입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왜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었습니까? 인간들의 허물과 죄로 그렇게 되었습니다.하나님과 교제를 단절시킨 인간들의 허물과 죄가 무엇입니까?  불신앙과 불손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죄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이 죄입니다. 인간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와 같이 하나님 없는 사람은 하나  님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오늘날도 세상은 세상 뉴스라든지 세상의 과학자의 이론이나 학문의 이론은 잘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을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이런 불신앙은 하나님과 교제를 불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허물과 죄로 그 생명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땅의 사람들에게 불신앙과 불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공격하는 3가지 적이 있습니다. 세상,마귀,육체입니다.먼저 하나님없는 사람들은 이세상의지배를 받습니다.

이것은 바로 세상의 흐름 세상의 철학 잘못된 세상의 유행 이세상의 허무한 것들에게 맹목적으로 지배받으면서 살아가게 됩니다.이 세상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세상의 못된 습관들은 대개가 자기중심적입니다. 세상의 모든 가치관들은 오직 자기를 왕같이 높이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다음 마귀의 지배를 받습니다. 공중의 권세잡은 자는 마귀를 가리킵니다.
이 세상에서 구원받기 이전의 사람들은 사탄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탄이 시키는 데로 종노릇하면서 사탄에게 순종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사탄은 때로 우리를 술로 오락으로 춤으로 우상으로 다스리면서 그것에 중독이 되게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탄은 우리를 공격할 때 광명의 천사로 꾸며서 우리를 유혹하여 넘어뜨립니다. 마귀는 우리의 가정을 침투하여 넘어뜨립니다. 마귀는 우리의 교회를 공격하여 넘어뜨리고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삶을 공격하여 넘어뜨리고 있습니다. 특히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부정의 마음을 공격하여 이 사람들은 매사를 부정하고 공격하게 합니다. 그래서 부정의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마귀의 조종에 의하여 주님을 공격하고 교회를 마구 비판합니다.

다음 육체의 지배를 받습니다. 육체는 우리의 보이는 신체가 아니라 죄를 짓게 만드는 우리의 부패성을 말합니다. 이 부패성은 모든 인간들에게 있습니다. 얼마나 인간이 부패할까요? 성경 롬3장 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한사람도 없으며‘라고 합니다. 인간의 부패를 가장 알 수 잇는 것은 그들의 언어와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사람들이 거짓말을 잘합니까? 얼마나 시기와 질투를 잘 합니까? 롬3장 13절에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라고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이전에 이런 세상과 마귀와 육체의 지배를 받으면서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에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10:10에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성경은 또 이이렇게 말씀합니다. 롬6장 23절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누가 이 새생명 영생의 복을 얻습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자입니다.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긍휼을 베풀자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은혜를 받은 자입니까? 바로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입니다.
아무나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선택된 자가 믿습니다. 은혜를 주시는 자가 믿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생명에 이르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복음을 믿습니다.복음이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기쁜의 소식이 되는 것은 바로 구원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합니다.
복음을 믿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십니다. 구체적으로 그 복음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나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소식입니다.

고전15:3-4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 아나신 사실”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 복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께서 값없이 영생의 선물을 주십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노력하고 선행을 행함으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행위를 옳게 여기십니다.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모든 일을 다 해놓으신 십자가의 사건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자마다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성경의 에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기만 구원받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성경을 믿음으로 확신합니다.

디엘 무디 목사님이 집회를 인도하고 나자 어떤 학생이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저는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디”
무디 목사님이 물었습니다.“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예 저는 믿기는 믿는데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자 무디는 그 학생에서 요한복음5:24을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무디가 그 학생에게 이 말씀을 믿느냐고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에게 영생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글쎄요”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말씀을 읽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당신은 믿습니까” “예 믿습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에게 영생이 있습니까”그러자 그 학생이 “제가 그것을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무디 목사님이 소리치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이 무엇인데 하나님을 무시합니까?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다면 있는 것이지” 그러자 그 학생이 “하나님이 있다면 있는 것이지”말에 깨달음을 얻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을 어떻게 우리는 알 수 있습니까?
가장 확실한 증거가 구원의 믿음의 말씀을 내가 믿고 있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때로 내가 구원받았는가 의심이 일어납니다. 마음에 불안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객관적인 구원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구원받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의심했다고 구원을 잃어버리거나 구원이 달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에 약속을 믿을 때 그 믿음을 보시고 한번 맺은 구원의 약속은 영원토록 우리에게 유효합니다. 이 구원의 복은 다시 취소되거나 중간에 소멸되지 않습니다. 한번 구원얻으면 우리는 영원토록 그 구원의 복인 영생을 얻게 됩니다.

2. 구원은 하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4절-6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합니다.
여기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에 앉아 세상을 사는 백성이라고 합니다. 죄인인 인간은 태어나면서 땅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으면서 하늘의 백성으로 신분이 바뀌는 복으 얻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하늘에 앉히는 역사가 일어납니까? 절대로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인간이땅에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비결은 바로 하나님에게 달려있습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사랑,은혜가 우리를 새로운 하늘의 백성이 되게 하셧습니다.
이 3단어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긍휼이란 “어떤 사람을 마땅히 저주해야 하는데 저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노를 쏟으시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노를 쏟는 대신에 긍휼을 쏟으신 것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이 사랑이란 단어는 아가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유익이 아닌 우리의 유익을 구하셨다는 것입니다.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되었을때에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유익을 구하셨습니다.
은혜란 받은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주시는 호의입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선물을 주신 것이 아니고 아무 자격이 없는데 일방적으로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긍휼과 사랑과 은혜로 우리에게 찾아온 선물이 무엇입니까?
구원의 선물 주시고 우리를 하늘에 앉히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이 하늘에 앉히시는 과정을 보십시오.
5절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6절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보면 “함께”라는 말이 3번 반복되어 쓰이고 있습니다.우리들 스스로는 하늘에 갈 수도 없고 앉을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늘에 갈 수 있도록 함께 갈 수 있는 분을 보냈는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그런데 여기서 내가 어떻게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이미 예수님은 과거에 이땅에 오셨고,십자가에서 죽으시고,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그래서 지금 하나님 보자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그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신분적으로는 우리 이름이 이미 그곳에 기록이 되어 기억하신바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가 그분과 연합하여지는 것입니다. 그분이 죽을때 내가 죽는 것이요 그분이 부활할 때 내가 부활하고 그분이 하늘로 올라갈 때 내가 올라가는 복을 얻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순간 즉시로 우리의 이름은 하늘 생명책에 기록됩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는 길 그 길은 오직 예수님 만으로 가능합니다. 사도행전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인간의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늘시민이 되고 하늘의 친백성이 됩니다.하늘 시민은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지식으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감리교를 시작한 존웨슬레라는 유명한 목사님이 계십니다.그 목사님이 깊이 기도하다가 잠이 들어 천국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가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천국 문을 지키고 있던 천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나와 함께 영광스런 메소디스트 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얼마나 천국에 들어와 있습니까?”
그 천사는 잠깐 기다리라고 한 후 명부를 한참 뒤져보더니 ‘미안하지만 감리교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깜짝놀란 웨슬레는 다시 물엇습니다.
“나의 신앙은 잘못된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영광스런 칼빈의 5대교리를 강조하던 장로교인들이 다 천국에 들어온 모양이지요? 그들은 몇 명이나 왔습니까?”
천사를 한참을 뒤져보더니 “미안하지만 장로교인도 한 사람도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종교개혁은 대단한 실수를 했나보군요,그러면 천주교인들이 다 온 모양인데 그들은 얼마나 들어왔습니까?“ 이번에도 천사가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천주교인들도 한 사람도 없습니다“. 웨슬레는 천사의 대답에 큰 소리로 되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왔단 말이오‘.천사는 방긋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천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인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만 와 있습니다“ 하더랍니다.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신 존 뉴톤 목사님께서는 임종 직전에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내가 천국에 들어가는 순간에 놀라는 일이 세 번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천국에서 만나게 될 때이고, 두 번째는 내가 마땅히 천국에 갈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들이 그곳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이며, 세 번째는 내 자신이 바로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깜짝 놀랄 것이다.”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입니까?
하늘에 앉아 세상을 살아가는 하늘나라의 시민이요 장차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얻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그곳을 생각하고 그곳을 소망하고 그곳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라고 합니다. 골3:2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하십니다.
교회는 하늘에 앉아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하늘에 가치를 두고 하늘의 방식대로 구별되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지시기 바랍니다.

3.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활입니다.

7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그 절대적인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나는 새생활을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은혜로 구원받게 하시고 이후에는 구원하신 그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삶을 살게 하시기를 소원하십니다.
어떻게 우리는 그 은혜의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바로 우리 몸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제 그 몸을 통해서 나를 위해서 살지 않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유명한 성 어거스틴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 앞에 돌아온 후,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옛날에 사귀던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 때 어거스틴은 그 여자를 모른 척하고 지나가려고 하는데 그 여자가 따라오더랍니다. “어거스틴, 나예요. 왜 모른 척 지나가는 거예요.” 막무가내로 좇아오는 여자에게 어거스틴은 돌아서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너는 너지만, 나는 내가 아니오. 당신은 당신이지만,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란 말이오. 난 새로운 사람으로 변했소.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알던 내가 아니라는 말이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고 합니다. 표준 새번역성경에 보면 ’우리는 그의 작품이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의 새로운 작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도록 새로운 삶을 살도록 만들어진 새로운 작품입니다. 여기 작품을 헬라어로는 ’포이에마‘라고 하고 영어로는 ’Poem‘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10절 말씀은 ’너희는 하나님의 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시요 하나님의 노래입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단지 죄로부터 건짐을 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단지 지옥을 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의 소망을 갖고 날마다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하나님에게 시같은 인생,노래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시가 되시고 하나님의 노래가 되어질때 하나님깨 영광이 되는줄로 믿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수녀인 이해인의 시를 좋아합니다. 그분의 시를 보면 삶이 곧 시입니다. 그러니까 그분은 단순히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를 ‘살아가는 자’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녀의 시집 중에서 ‘시간의 얼굴’이란 시집이 있습니다. 그 시집 중에 ‘내 안에 흐르는 시’라는 시가 잇습니다.

내안에 흐르는
피와 물처럼
보이지 않게 감추어 둔
생명의 말들

어느날
시가 되어 쏟아지면
밖으로 토해진 만큼
나는 아프고
이로 인해 휴유증이 심해도
나는 늘 행복하고

내 마음의 바다 위에
해초럼 떠 다니는
푸른 시상들

힘껏 건져 올리고 나면
이미 퇴색하는 그 빛깔

끝내
햇볕을 보지 못하고
남아있는 언어들이
하도 많아서

나는 가난하게 살아도
항상 넉넉하구나

여기 시를 보면  말이 곧 시가 됩니다. 생각이 곧 시요 삶이 곧 시가 됩니다. 그래서 그 말과 그 생각을 품고 사는 것으로 행복함을 누립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구원받은 그 삶이 아름답고 착한 한편의 시가 되는 삶이 되어 하나님을 나타내게 됩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모두가 주님의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편지가 되고 영광이 되어 사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가는 말)))))))))))))

구원받기 전의 인간의 삶은 세상과 마귀와 육체를 따라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항상 불신앙과 불순종하며서 불안과 두려움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크신 사랑과 긍휼과 은혜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일으키시고 구원받게 하시면 하늘의 시민이 되게 하십니다. 오늘 초청받은 우리 모든 새가족 여러분들에게 이 구원의 은총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구원받은 우리 모든 성도들은 나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고 자랑하고 노래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춘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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