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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증거를 후대에 전하리로다 (시 7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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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8 장 1 - 8 절]

[1] ♠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2] ♠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3] ♠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바라 [4] ♠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5] ♠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6] ♠ 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 자손에게 일러서 [7] ♠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8] ♠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


이번 특새의 표어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은 우리들이 대를 이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말씀하실 때에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자손 대대로 계승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올려드리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오늘 말씀의 목적은 역사의 교훈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다.

3,4절을 보자.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시편 기자는 열조로부터 들은 것을 우리의 자손에게 다시 전하라고 말한다.
5,6절을 보자.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 자손에게 일러서’ 또한 기자는 하나님의 법도를 후대에게 알리고 전하라고 말한다.

시편78편은 아삽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그는 당시의 찬양대 Leader였고 레위인이었다. 예배의 리더는 당시의 백성들의 영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런 위치에 있으면서 이같은 영적 계승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의 가슴 속에는 다음 세대를 향한 불이 타고 있었다. 성전 안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 은혜를 잃고 하나님께 올려드릴 영광이 끊긴다면 예배 자체가 끊기는 것이다. 그리고 예배가 끊긴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그 나라의 영성과 소명이 죽는다는 것을 아삽은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 올려드릴 영광은 날이 가면 갈수록, generation to generation, 더욱 더 커져야 한다.

시편78편은 72절로 구성되는 긴 말씀이다. 하나님이 역사를 통해서 주시는 역사의 증거와 역사의 교훈을 깨닫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님이 주시려는 교훈은 과연 무엇인가?

(1)하나님은 준비된 그릇을 쓰신다.

9절에서는 이스라엘의 대표적 지파인 에브라임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요셉의 아들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요셉은 대단히 중요한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두 아들이 모두 12지파로 선택되었다. 특히 에브라임은 12지파 중에서 가장 큰 지파에 속하게 되었다. 야곱의 두 손자가 이스라엘의 지파로 편성된 것이다. 창세기 마지막 부분에서는 요셉이 아들 에브라임을 축복하였고 그는 이스라엘의 대표적 지파가 되었다. 그러나 10절에서 그의 자손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고 율법을 준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적 leadership을 그 자손으로부터 옮기신다. 67-68절에서 하나님은 영적 leadership을 에브라임에서 유다로 옮기시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이것을 알아야 하고 이 사건에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 가운데 준비된 그릇을 사용하고 싶어하신다. 하나님의 역사는 늘 진행형이다. 사실, 이것은 우리의 구원과는 상관없는 것이지만 기왕에 구원받은 자라면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사용을 받는 것이 의미있는 것이다. 우리는 준비된 자로서 하나님의 사용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이 leadership을 옮기시는 일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일어날 수 있다.

우리 시대의 선교지도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 시대의 선교 leadership은 이제 독일과 영국과 미국을 지나서 아시아, 특히 한국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준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가 지금 잘 준비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독일과 영국과 미국을 pass over하셨던 주님이 우리를 pass over하시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깨닫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자손과 함께 철저히 준비되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훈련을 위한 훈련이 되어서는 안되며 거룩한 목적이 있는 훈련이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을 멋있게 수행할 수 있는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신 말씀을 기억하자. 에브라임은 많은 것들을 이미 잘 갖추었다. 그러나 그들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계시록2장5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치 않고 바로 서지  않으면,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과감하게 옮기신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고 훈련하며 꿈을 갖고 upgrade되어야 한다. 원하기는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이 하나님 앞에서 잘 준비되어 하나님의 사용을 받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2)축복 가운데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참된 영성이다.

17절부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에서 엄청난 기적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18-19절을 보자.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었고 시험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강한 팔로 이루시는 수많은 기적들은 목격하였다. 홍해가 그들 앞에서 갈라졌고, 반석에서 나오는 생수로 온 백성이 목마름을 해갈하였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되었으며, 수많은 산적과 동물들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그들이야말로 연속적인 기적을 체험한 유일한 세대였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정욕을 가지고 더 많이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힘이 들고 어려울 때에 하나님께로 나온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잘 될 때에는 당연한 결과로 여기고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리고 더욱 더 큰 욕심을 내기도 한다. 이렇게 인간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는 것이다.

내가 동부에서 공부할 때에는 지하철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러다보니 지하철 안에서 공부도 하고 자기도 하고 서서 자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그런데 서서 잘 때에는 빈 자리를 기다리게 되고, 어쩌다가 자리에 앉아서 자다보면 눕고 싶어서 주위의 사람들이 내리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리고 누워서 자다보면 왜 이렇게 자리가 좁고 딱딱한지 편안한 내 침대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인간의 욕심은 정말로 한이 없고 그 게으름도 끝이 없는 듯하다. 우리는 오직 은혜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에녹을 보자. 그는 한 평생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한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늘 한결같았고 변함이 없었다. 하나님 앞에서 한결같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 가장 큰 기쁨이 된다. 편안할 때에 감사하고 자족하라고 이 말씀을 주신 것이다. 세상은 점점 더 편안해지고 점점 배부르며 모든 것이 풍요로와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더욱 더 잊혀져가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가나안으로 입성하기 전에는 그래도 하나님을 찾았다. 그러나 가나안 입성 후, 그들의 생활이 풍요롭게 되고 난 후부터 그들은 암흑의 사사기 시대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축복과 은혜 안에 살고 있다. 이 때에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훈련과 헌신과 섬김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고 이를 우리의 자손들에게 계승해야 한다. 에녹처럼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3)열매 없는 회개를 삼가해야 한다.
34절을 보자. ‘하나님이 저희를 죽이실 때에 저희가 그에게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계속 시험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했다. 그래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울부짖으며 회개를 하는 듯 했다. 그러나 36-37절을 보자. ‘그러나 저희가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라’ 그들은 살려달라고 간구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보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에서 거짓말을 보실 수 있는 분이다. 열매 없고 중심이 없는 회개의 기도를 두고 구역질 난다고 하신다. 진정한 회개의 기도에는 나의 죄악에 대한 애통함이 있어야 하고 전환이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아야 한다. 그것이 회개이다. 우리는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고 죄악에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CCC의 창설자이신 Bill Bright목사님은 참으로 충격적인 말을 하였다. 그는 ‘God kill me before I sin against my wife’라고 하였다. 자신의 아내를 배반하기 전에 나를 죽여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생명을 걸고 죄와 싸우려는 모습이다. 오늘 날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담대한 결단과 각오가 함께 하는 회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회개의 영성을 우리 자녀들에게 계승해야 한다. 백 년 전의 평양 대 부흥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를 진지하게 고백하는 회개에서부터 일어났던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열매가 있는 회개의 운동으로부터 부흥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오늘 날 부흥을 일으키는 진정한 회개가 있기를 원한다.

(4)구원의 감격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 본문 중에서 key가 되는 구절은 42절이다. ‘저희가 그의 권능을 기억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구속하신 날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42절에는 이스라엘 민족과 에브라임 족속이 하나님을 실망시킨 원인이 담겨 있다. 본문에는 그들이 두가지를 기억하지 못한 것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사실은 한 가지이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 권능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가 우리 생활 중에서 사라지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끝이다. 십자가의 감격이 사라지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우리는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죄 가운데 죽었는데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향하신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구원에 있어서 우리가 한 일은 단 1퍼센트로 없다.

지난 주에 사랑의 목장에서 나누었지만, 교회 성도 중 할머니와 손자가 차를 타고 가다가 아주 심각한 사고를 당하였다. 나무와 충돌하는 사고로 인해서 할머니는 운전대 앞에서 정신을 잃었고, 12살 된 손자는 안전벨트가 그의 몸을 파고 들어갈 만큼 꽉 조이고 있어서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그 때에 차에는 불이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이 상황을 보고 있으면서도 할머니는 손자를 위해서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이미 불이 붙어 있는 차량이기 때문에 위험했지만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위험을 무릎쓰고 들어와서 할머니와 손자를 구해주었다. 정말로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밖에 있었던 구원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두 사람의 생명은 끝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참 뜻이다. 나로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 나로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일, 이 일을 누군가 찾아와서 나를 위해서 이루신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 교육학, 심리학, 과학이 할 수 없는 일을 우리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혈과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감격되고 가슴이 뛰어야 한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이제 많이 연로하셨다. 그러나 그 분은 오직 보혈과 구원의 감격만은 죽는 순간까지 전하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다른 것은 전할 힘도 없고 전하고 싶지도 않다고 하신다. 주님의 십자가에는 능력이 있다. 자녀들에게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을 전해야 한다. 그 보혈에 관하여 들으면 들을수록 은혜가 되고 감격이 될 것이다. 교사들도 학생들에게 이것을 전하라. 순장들도 순원들에게 이것을 전하라. 나같은 죄인을 살리신 주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나의 죄에도 불구하고 보혈로 의롭다하신 그 십자가의 은혜를 전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영성이 마르지 않고 은혜의 강물이 흘러 넘치게 된다.

(5)죄의 결과는 멸망이다.
우리는 죄를 너무 가볍게 보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그렇다. 얼마 전 미국 복음주의 교계의 대표자인 Ted Haggard목사께서 너무나 끔찍한 스캔들로 인해서 넘어진 사실을 기억한다.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더욱 슬픈 것은 그가 그 죄를 지난 3년 간 숨기며 지속했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교계의 대표자로 사역하면서 3년 간 그 죄악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죄에 대해서 경박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죄의 결과가 사망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 54절부터 보면 이스라엘 민족들이 40년 간 광야 생활을 하다 약속의 땅으로 입성하게 된다. 그런데 그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후에 그들은 더욱 완악해 지고 만다. 58절을 보면 광야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감사하지 못하는 죄를 범했지만 약속에 땅에 들어간 후에는 우상을 섬기는 죄로 더욱 타락하게 된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 이것이 죄의 결과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심령과 영혼을 강퍅하게 만들어 하나님을 버리도록 유도한다. 그 후에는 오직 저주와 심판만이 따른다.

1997년 프랑스에서 어떤 귀족이 자기 집에서 사자를 애완동물로 키웠다. 그러다 그 사자 새끼는 점점 자라서 이윽고 장성한 사자가 되었다. 어느날, 항상 그렇게 했던 대로 그 사자를 화장실로 들여보내서 재우려 했는데 그 순간에 사자는 야성이 발동되어서이지 그 주인을 물어 죽였다. 죄는 이와 같은 것이다. 애완동물이라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그것이 결국에는 나를 죽이게 된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죄는 네 문에 엎드리고 있다. 그 죄를 다스리라, 아니면 그 죄가 너를 다스리리라. 죄의 결과는 사망이요, 완전한 사망이다’ 이것을 우리 자녀들이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

(6)하나님 안에서는 새로운 시작이 항상 가능하다.
이 시편의 결론은 65절부터이다. 지금까지는 이스라엘 민족이 실족하는 모습만이 보였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다시 일어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신다.에브라임 대신에 유다를 세워서 새로운 역사를 만드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소를 그 땅 위에 세우신다. 그리고 다윗을 택하시어 그 나라의 신실한 목자로 세우신다. 그리고 그 혈통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새로운 시작, New beginning을 허락하신다. 지금부터는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전개된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신실함으로 끝난다. 하나님 안에는 늘 새로운 시작, 즉 New beginning이 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역사 안으로 던질 수 있다.

오래 전 영국의 한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 마을은 양떼들로 유명한 곳이었다. 어느 한 해에 유난히도 가뭄이 심했을 때에도 이 마을만은 비교적 풍요롭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 옆 마을의 도둑들이 건너와 양을 훔치는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었다. 이 때에 마을의 지도자들은 심한 법을 내리지 않으면 도둑들이 계속 올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 날부터 양 도둑으로 잡히는 자마다 이마에 ‘양 도둑’이라는 문자를 낙인으로 태울 것이라는 법을 선포하였다. 그렇게 해서 낙인이 이마에 찍히게 되면 그는 평생동안 수치를 안고 살 것이며, 사회에서 출세할 수 없는 인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 후 양을 훔치려다 잡힌 청년이 있었다. 그는 법정으로 끌려와 크게 ST라는 문자를 이마에 낙인 찍히게 되었다. ST란 Sheep Thief라는 말로 ‘양 도둑’이라는 말의 약어였다. 이 청년의 소식을 들은 후, 양 도둑들은 다시는 그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사건 후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 마을에는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한 할아버지가 살고 계셨다. 그 할아버지의 인격과 선행을 모두가 알고 칭송하였다. 어느 날 한 할머니와 어린 손녀가 손을 잡고 길을 가다가 그 존경하는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려는 순간, 바람이 불어와서 그 할아버지의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이마가 드러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마에는 ‘ST’라는 문자가 적혀 있었다. 그 때 손녀는 너무  이상해서 할머니께 그 문자의 뜻을 물어보았다. 할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ST라는 문자는 SainT(성자)라는 말의 약어란다.’ 한 때에 양 도둑질을 하다가 잡힌 청년은 평생 Sheep Thief라는 낙인을 가지고 살아야 했지만 그는 그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그 청년은 양 도둑(Sheet Thief)에서 성자(SainT)의 삶으로 완전히 변화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New beginning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양 도둑을 성인으로 만드시는 분이다. 우리가 지금은 죄로 인한 더러움이 있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로 우리를 의인으로 바꾸시기를 원하신다. 이것을 대대로 이어서 계승해야 한다. 하나님은 준비된 그릇을 찾고 계시며, 참된 영성과 열매 있는 회개를 찾으신다. 그리고 우리들이 구원의 감격과 죄의 심각성을 늘 깨우치기 원하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십자가의 보혈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이것을 다음 세대에 전하기를 원하신다. 앞으로 이주일 동안의 특새를 통해서 기도하는 삼대가 되고, 대를 이어 주님의 영광을 이루는 거룩한 믿음의 계승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김승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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