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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혼의 나이테 (고후 4: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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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졸업 후 처음 만난 친구들 몇이 끼어 있었습니다. 까까머리 고등학생의 모습이 낯선 중년 신사의 모습들로 변해 있었습니다. 이름이 기억나는 대로 어렴풋이 남아 있는 옛 모습을 더듬어가며 서로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 중 한 친구가 저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네가 0 0 0 니? 그런데 왜 이렇게 늙었냐?” 여러분, 제가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어땠을까요? 당연히 나빴죠. 그래서 저도 되받아쳤습니다. “그러는 너는 왜 그렇게 늙었니?” 그리고는 서로 마주 보고 웃었습니다. “그래그래, 세월이 많이 흘렀지. 우리가 졸업한 게 언제니? 그럴 만도 하지.” 세월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금년이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열한 달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이제 한 달 후면 또 한 해가 지나고 우리는 모두 나이를 한 살 씩 더 먹게 될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이 먹는 것이 반가우면 아직 젊은 것이고, 나이 먹는 것이 반갑지 않으면 늙은 것이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아마 아주 젊은 청년이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 나이 먹는 게 반갑지 않을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건대 우리는 모두 늙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늙어간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육신이 쇠약해지고 많은 것  을 상실해 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유쾌한 일도 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점점 더 하나님께 가까워지고, 영원한 본향 천국에 다가가는 것입니다.

  얼마 전 빌리 그래함 목사의 임종 준비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전도자로 온 세계인에게 칭송을 받는 그이지만 역시 노쇠하여 인생길을 얼마 남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현재 87세인데 전립선암과 뇌수종을 앓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날을 회고하며 말씀 묵상과 기도로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생 가운데 지금이 가장 놀라운 시간이라고 고백합니다.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좋다고도 말합니다. 그리고 죽음이 닥쳐와도 그것이 육신을 떠나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두렵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늙어도 주님을 가까이 하면 이렇게 아름다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런 내용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육신은 나이가 들수록 쇠약해지고 추해질지 모르나 우리 영혼은 날마다 새로워진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육신의 나이테는 거친 모습일지 모르나, 영혼의 나이테는 곱고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이 드는 것이 결코 불쾌한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나이 드는 것이 반가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또 한 해를 정리해야 할 시간입니다. 이 계절에 우리 각자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영혼의 나이테는 얼마나 곱고 아름답게 새겨지고 있는가?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영혼이 더욱 풍성해지고 아름다워지는 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1] 세월의 흐름과 겉사람의 후패

  16절 말씀을 보면, “ ... 겉 사람은 후패하나 ... ” 그랬습니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 있습니다. 육체는 겉사람, 영혼은 속사람입니다. 육체는 태어나서 일정 기간 동안(약 25년 내외) 성장하지만, 그 후로는 노화됩니다. 아무리 건장한 사람이라도 20대 후반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노화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육체적으로 예민한 운동선수들의 경우를 보면 30세만 넘어도 벌써 은퇴 소리가 나오는 것을 흔히 보게 됩니다. 이처럼 육체는 세월이 갈수록 쇠퇴합니다. 후패한다는 말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후패하다’는 ‘낡아지다’ ‘닳아서 해어지다’ ‘썩다’ 등의 뜻을 가집니다. 육체가 이렇게 된다는 겁니다.

  특히 중년을 넘어가면서 육체의 노화 현상이 확연하게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문득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희어지고, 쉬이 피로를 느끼고 신체 기능이 예전 같지 않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성경에도 보면 인간의 육체가 후패하는 모습이 곳곳에 나와 있습니다. 그 중에 노화의 모습을 가장 리얼하게 묘사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전12:3~5입니다.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 노화 현상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들입니다. 집을 지키는 자는 손ꡑ을 가리키는데, 늙으면 무기력해지고 손이 떨리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힘있는 자들은 다리ꡑ를 가리키는데, 늙으면 다리에 힘이 없어진다는 표현입니다. 맷돌질하는 자는ꡐ이ꡑ를 가리키는데, 이가 빠져서 씹기 어려워진다는 뜻입니다.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는ꡐ눈ꡑ을 가리키는데, 늙으면 눈이 어두워지는 것을 비유합니다. 길거리 문들은ꡐ귀ꡑ를 가리키는데 청각이 어두워지는 것을 의미하고, 맷돌 소리가 적어진다는 것은ꡐ이ꡑ가 없어서 음식물을 먹을 때 소리도 나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새 소리에 잠을 깬다는 것은 잠을 깊이 자지 못해 일찍 깬다는 것입니다. 음악 하는 여자들은 ꡐ성대ꡑ를 가리키는데, 늙으면 소리도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노년이 되면 높은 곳, 길에 마음대로 거동하지 못함을 나타냅니다. 살구나무를 봉오리 때는 분홍빛이다가 만개해서 떨어질 때가 되면 흰색이 됩니다. 이것은 머리칼이 희어짐을 묘사합니다. 메뚜기도 짐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몸이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원욕이 그친다는 것은 식욕이 없어지고 매사에 의욕이 없어짐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육체가 후패하니까 자연히 외모나 건강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요즘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화 방지를 위한 식품이나 약품, 화장품 등이 인기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늙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가는 세월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육체의 후패함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좋습니다. 성경은 육체를 부정적으로 말하거나 죄악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이요 선물입니다. 건강관리 잘 하고 최대한 아름답게 관리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만을 전부로 알면 오히려 낙심하게 됩니다. 너무 육체의 후패함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주목 대상이 아닙니다. 18절 보면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게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돌아보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스코페오’인데 목표(스코포스)라는 말에서 유래합니다. 그래서 돌아본다는 것은 곧 주목하는 것,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날로 후패해가는 겉사람을 너무 신경 쓰며 바라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2]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

  인간의 가치는 영혼에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육체도 귀합니다. 기독교는 육체를  죄악시하거나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육체보다 영혼이 중요합니다. 삼상16:9 보면,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영혼을 더욱 중시하신다는 뜻입니다.

  육체는 영혼을 담는 그릇과 같은 것입니다. 그릇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물입니다. 똑같은 그릇이라도 내용물에 따라 달라집니다. 밥그릇, 국그릇, 반찬 그릇 등 ... 똑같은 상자라도 내용물에 따라 보물 상자도 되고, 쓰레기 상자도 됩니다. 그래서 영혼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 육체는 후패하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월이 흘러가도 우리가 잘 하기만 하면 영혼이 더욱 풍성해지고,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신실한 신앙인들은 한결같이 영혼에 큰 관심을 갖고 살았습니다. 바울은 갈4:19에서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 ” 그는 성도들의 영혼이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수 있도록 얼마나 기
도하며 수고하는지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표현합니다. 베드로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벧전3:3~4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비록 우리 육체가 후패해져도 영혼이 이렇게 새로워지면 됩니다. 본문에서도 강조합니다. 17절~18절.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겉사람 육체가 쇠하는 것만 보면 낙심이 되지만 속사람이 새로워지고 영원한 천국에 있음을 생각하면 소망이 있습니다.

[3] 속사람을 가꾸는 사람이 받는 축복

  속사람을 가꾸어감으로 날로 새로워지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① 영생의 기쁨 : 우리 영혼 가운데 예수를 모시고 있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그런데 영생은 장차 천국에 가서 사는 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를 모심으로 이미 우리 영혼에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은 돈 생기는 일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입니다. 더 풍요로운 것입니다. 영생을 얻으면 이 세상에서도 환경을 초월해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평안과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송합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니다 하늘나라!”

  ② 천국의 소망 : 천국은 육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혼을 통해서는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혼이 맑지 않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영혼이 새로워질수록 천국은 가까이 명료하게 보입니다. 그것이 곧 천국의 소망입니다. 이 소망이 넘치면 이 세상에서 겪는 고난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영광을 보면 그 엄청남이 세상의 고난을 가볍게 느끼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③ 육체의 건강과 아름다움 : 영혼이 새로워지면 그것이 육체에도 영향을 줍니다. 외모가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 말 얼굴은 본래 ‘얼꼴’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얼’은 영혼을 의미하고 ‘꼴’은 모양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얼굴은 영혼의 모양이란 뜻입니다. 우리 영혼이 강건하고 아름다워지면 외모도 좋아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보기 좋게 늙을 수 있습니다.

  어느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항상 밝은 표정입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다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나이를 알고 나면 깜짝 놀랍니다. 왜냐하면 10년 이상 젊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주위에서 자꾸 묻습니다. “매력을 유지하는 비결이 뭡니까?” 그분은 겸연쩍어서 대답을 못하다가 하도 성화를 부리니까 하는 수 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쎄요. 저는 특별히 외모를 많이 가꾸지 않습니다. 영혼을 위해 살았습니다. 입술을 위해서는 진실을 말하고, 음성을 위해서는 찬양을 하고, 눈을 위해서는 긍휼을 품고, 손을 위해서는 자선을 베풀고, 얼굴을 위해서는 정직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흔히 자주 분노하는 사람은 인상이 험하게 바뀌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찡그리면 안면 근육 72개가 움직이고, 미소를 지으면 안면근육 14개가 움직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웃으면 주름이 덜 생기고, 생겨도 곱게 생긴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연로해서 주름이 생긴 분들을 가만히 보면 어떤 분은 주름이 웃고 있고, 어떤 분은 주름이 화내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인상이 달라진 것입니다. 영혼에 평안과 기쁨이 있으면 분명히 얼굴이 좋아집니다. 

  건강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건강은 유전적인 요인이나 환경적인 요인이 있으므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영혼의 상태가 육체의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잠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④ 부활의 소망 :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활의 소망입니다. 영혼이 새로워지는 것도 좋지만 육신도 완전히 새로워지는 소망이 있습니다. 썩어지고 흙으로 돌아갈 육신이지만 반드시 부활할 때가 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바로 그때입니다. 빌3:20~21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4] 속 사람을 가꾸는 방법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의 속사람 영혼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을까요?

  ① 마음의 문 통제 : 우리 마음 속에는 세상의 악한 것들이 밀고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의 문을 잘 통제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집에 있을 때 함부로 문을 열지 않습니다. 벨이 울리면 신원을 파악하고 유익한 사람만 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속에 좋은 것들만 받아들여야 합니다. 미움, 질투, 의심, 교만, 불안 등 무익하고 악한 것들을 절대로 들여보내면 안 됩니다. 그럴 때 우리 속사람을 순결하게 보존할 수 있습니다.

  ② 죄악의 잡초 제거 : 마음의 문을 통제하는 것과 더불어 중요한 게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죄성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밖에서 밀고 들어오는 악한 것들을 잘 막아도 우리 속에서 죄악의 잡초가 자꾸 돋아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육체를 갖고 사는 한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농사하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오뉴월 같은 때는 정말 바쁘고 힘들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잡초를 뽑고 돌아서면 금세 돋아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계속 돋아나는 잡초를 제거하다보면 너무 힘들다는 겁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깨어서 죄성의 잡초가 돋아나는 것을 계속 뽑아줘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속사람이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③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 충만 : 마음에 악한 것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마음 속에서 죄가 솟아나는 것을 조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극적인 것입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란 말이 있듯이 신앙도 공격적인 게 좋습니다. 우리는 죄악을 막아냄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할 때 세상의 죄악이 감히 우리에게 엄습해오지 못합니다. 우리가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꾸준히 교제하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고, 거룩한 주의 형상이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시 한번 각자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나의 영혼의 모습은 어떠한가? 육체의 나이테는 세월이 가면 저절로 새겨집니다. 그러나 영혼의 나이테는 저절로 그려지는 게 아닙니다. 10년, 20년 신앙생활을 해도 그냥 한 살, 두 살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계속 경건의 연습(딤전3:7~8)을 해 나아갈 때 비로소 영혼의 나이를 먹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영혼은 육체와 달리 날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영혼의 나이테는 곱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하나 둘 새겨지게 됩니다. 부디 우리 영혼에 나이테가 곱게 새겨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 자신도 풍성한 삶을 살다 천국에 들어가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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