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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성장의 7가지 걸림돌(2) : 교만 (잠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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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교만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 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쓴 '나의 소원'이라는 글입니다. 조국의 독립을 간절히 염원하는 독립운동가의 마음이 배어있는 글입니다. 그런데 이 글과 내용은 다르지만 비슷한 느낌을 주는 말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첫 번째 훈계가 무엇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겸손이라고 대답하겠다. 그리고 둘째가 무엇이냐고 물어도 겸손이라고 대답하고 셋째가 무엇이냐고 물어도 겸손이라고 대답하겠다." 초대교회의 위대한 지도자 성 어거스틴이 남긴 말입니다. 그만큼 우리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교훈이 바로 겸손에 관한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성경이 가장 경계하는 죄가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설교 준비를 하면서 성경에 교만과 겸손에 대한 말씀이 얼마나 나오는가 찾아보니 끝도 없이 많더군요. 그만큼 교만은 우리를 패망하게 하는 가장 큰 요소요 겸손은 우리의 영적성장에 가장 도움이 되는 미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영적성장의 일곱 가지 걸림돌> 두 번째 시간으로 '교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지난주 설교를 통해 게으름이야말로 우리의 영적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이 게으름에 못지않게 영적인 성장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 바로 교만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교만한 자의 특징이 무엇이며 그 결과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교만의 원인

첫 번째로 성경이 말씀하는 교만의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먼저 재물이 우리를 교만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스겔 28:5에 보면 "네 큰 지혜와 장사함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인하여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고 말씀합니다. 흔히 돈이 많으면 교만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외모 때문에 교만해집니다. 같은 에스겔 28:17에서는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라고 말씀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지식 때문에 교만해집니다. 고린도전서 8:1에 보면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외에도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모두가 자신이 돈이 많다고 생각해서 교만해지고, 잘 생겼다고 교만해지고, 많이 배웠다고 교만해집니다. 즉 내가 남들보다 무언가를 더 가졌다고 생각하고 더 잘났다고 생각하니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즉 재물이나 외모나 지식이나 그 무엇도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아니, 지난주 설교본문인 달란트 비유에 의하면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입니다. 맡기실 때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을 사용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빼앗기게 됩니다. 주인은 게으르고 악한 종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었습니다. 즉 우리가 받은 그 조건들을 본디 목적에 사용하지 않으면 빼앗아 가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재물이든 외모든 건강이든 지식이든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받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결코 교만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남들보다 더 받았기에 남들보다 더 큰 책임을 진 것입니다. 누가복음 12:48은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더 받은 것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교만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교만의 특징

두 번째로 교만의 특징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교만은 바이러스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한번 감염되면 매우 빠른 속도로 전염이 됩니다. 그리고 매우 치명적이어서 우리를 영적인 죽음으로 몰고 가게 됩니다.

최근 전북 익산 지역을 중심으로 조류독감이 발생해서 반지름 3킬로미터 내에 있는 닭과 오리 등 64만여 마리를 모두 살처분 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닭과 오리 수십만 마리를 땅을 파서 생매장하는 것입니다. 이 지역에서 닭과 오리를 사육하던 농민들은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고 허탈하여 눈물만 흘리고 있습니다. 저같이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는 왜 아깝게 저렇게 하는가 싶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이 조류독감 인플루엔자가 삽시간에 퍼져 엄청난 대재앙이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조류독감'이란 닭이나 오리, 칠면조와 같은 가금류와 야생 조류 등에 감염되는 급성 바이러스 전염병입니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이 조류독감이 조류에게만 감염되어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감염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1997년 홍콩에서 6명이 조류독감에 감염되어 사망하였고, 2004년 베트남에서는 16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렇게 무서운 조류 독감 바이러스처럼 교만은 대단히 빨리 퍼져갑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개인뿐 아니라 집단적으로 교만병에 걸린 경우를 많이 봅니다. 성경 곳곳에 이스라엘 백성이나 애굽 같은 이방백성들 모두를 향해 "너희가 교만하다"고 지적합니다. 교만 바이러스가 퍼져 전 사회가, 전 국민이 다 교만병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만은 무섭습니다. 심지어 교회 전체에 교만 바이러스가 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전통도 오래 되고 한국교회를 대표할만한 유명한 교회에 담임목사님이 새로 부임하였습니다. 목사님은 교회가 전통도 오래되고 너무 유명하다보니 당회를 비롯해 모든 성도들이 "우리는 달라, 우리는 특별한 교회야." 하는 생각에 너무 오래 젖어 산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변화를 일으켜보려는 의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최근 급속도로 부흥하는 몇몇 교회들을 보면서 우리도 저런 교회들에게서 장점을 배워야 하니 당회원들이 조를 짜서 그런 교회들을 방문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당회원 대부분의 반대로 그 계획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어떤 교회인데 남들한테 배우냐?"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유명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인데 왜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는 교회에 가서, 최근에 조금 성장했다고 해서 그런 교회에 가서 배워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교회를 사로잡고 있는 교만병의 실체입니다. 당회원 뿐 아니라 온 교인들이 쓸데없는 자존심과 자부심에 사로잡혀 교회성장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데도 정작 자신들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무서운 것은 이 교만 바이러스가 퍼져 교만병이 깊어지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단순히 개인이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류독감보다 에이즈 바이러스보다 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인 잠언 16:18을 보십시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표준새번역성경은 이 말을 쉽게 풀어 "교만에는 멸망이 따르고, 거만에는 파멸이 따른다."고 번역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만병에는 필연적으로 멸망과 파멸이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즉 교만병의 결과는 영적인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조류독감이나 에이즈 바이러스는 사람의 육신만 죽이지만 교만 바이러스는 우리의 영혼을 영원히 죽이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더 무섭습니다.

교만의 증상

셋째, 그러면 이렇게 무서운 교만병에는 어떤 증상들이 나타날까요? 물론 수없이 많은 증상들이 있지만 성경은 대략 다섯 가지의 증상이 나타난다고 말씀합니다. 이 다섯 가지는 제가 장시간 동안 성경에 나온 교만에 관한 성구를 모두 찾아 종합하여 연구한 것입니다. 잘 들으시고 혹시 내가 이 다섯 가지 증상 가운데 어떤 것에 걸리는지 생각하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미 교만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입니다.

1. 교만하면 잊어버립니다.

신명기 8:14은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고 말씀하고 호세아 13:6도 "저희가 먹이운 대로 배부르며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며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즉 교만하면 건망증 증상이 나타나 자꾸 무언가를 잊어버리게 되는데 무엇을 잊어버리는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0에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합니다. 즉 오늘 내가 받은 모든 것도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오늘 나의 나 된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인데 교만병에 걸리면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마치 자기가 잘 나서 된 것처럼,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앞서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그래? 그러면 네 힘으로 어디 한 번 잘 해봐라." 하시면서 그 모든 것을 거두어가시게 됩니다.

2. 교만하면 남을 해치게 됩니다.

악성 바이러스에 걸리면 남에게도 전염 시켜서 남을 해치게 됩니다. 교만병 바이러스도 걸리게 되면 남을 해치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시편 119편 69절과 85절 등에 보면 계속해서 "교만한 자가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주의 법을 좇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우리가 교만병에 걸리면 자꾸 남에게 상처를 주고 남을 힘들게 만듭니다. 교만한 사람은 세상에 자기보다 잘난 사람이 없기 때문에 교만한 사람 옆에 가면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워집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주장만 고집하고 남을 존중해주지 않고 무시하기 때문에 교만한 사람을 만나면 마음에 상처를 받고 없던 병도 걸립니다. 잠언 13:10에도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고 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언제나 다툼과 분쟁을 일으킵니다. 교만한 자 한 사람이 미꾸라지처럼 온 교회와 성도들을 헤집어서 흙탕물을 만듭니다. 반대로 겸손한 사람들은 항상 남을 품어주고 인정해줍니다. 남의 상처를 보듬어줍니다. 그러니 교만한 사람이 되면 남에게 숱하게 상처 주고 병들게 했기 때문에 그 죄가 보통 큰 것이 아닙니다.

3. 교만하면 언어가 달라집니다.

앞의 말과 비슷합니다만 구체적으로 교만하면 우리 언어가 달라집니다. 어떻게 달라지는가? 교만한 사람은 하는 말마다 오만한 말, 함부로 남을 쳐서 판단하고 평가하는 말, 저주하는 말만 하게 됩니다. 사무엘상 2:3은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고 했고 시편 59:12은 "저희 입술의 말은 곧 그 입의 죄라 저희의 저주와 거짓말을 인하여 저희로 그 교만한 중에서 사로잡히게 하소서."라고 말씀하며, 시편 101:5도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시편 31:18도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로 벙어리 되게 하소서."라고 말씀하는데 이 말씀들을 종합해보면 교만병에 걸린 사람의 말은 항상 남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정죄합니다. 왜? 자기는 항상 옳기 때문에 자기 기준에서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러지?" "왜 저렇게 밖에 못하지?"

또한 교만하면 말을 할 때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6:4에서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라고 말씀하는데 교만한 사람은 가는 곳마다 자꾸 사람들과 무언가 이성적으로 토론하기를 좋아하고 그래서 언쟁하는 것을 즐겨합니다. 언쟁을 하고 토론을 하면서 은근히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을 자랑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언어습관은 공동체의 평화를 파괴하는 매우 위험한 증상입니다. 우리는 언어습관부터 겸손한 언어로 바꾸어야 합니다.

4. 교만하면 자기 주제를 모르게 됩니다.

역대하 26:16에 보니 유다 왕 웃시야가 강성하여져서 그 마음이 교만하여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직접 분향하려 한 사건이 나타납니다. 웃시야는 나이 열여섯에 유다의 왕이 되어 처음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습니다(26:4). 그래서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나라가 강성해지고 부유해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웃시야에게 교만병이 찾아온 것입니다. 여러분, 조심하십시오. 잘 된다 싶을 때, 왜 이렇게 잘 나갈까 싶을 때가 제일 위험한 때입니다. 바로 그 때 교만병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했습니다. 웃시야도 너무 잘 나가니까 교만해져서 제사장이 해야 할 성전에 분향하는 일을 자기가 직접 하려고 들다가 그 이마에 문둥병이 들게 됩니다(26:16). 결국 웃시야는 교만병 때문에 문둥병 환자가 되어 평생을 왕궁에 거하면서 나라는 그 아들 요담이 대신 통치하는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교만해지면 흔히 자기 주제를 모르게 됩니다. 자기가 마치 대단한 사람인줄 압니다. 내가 얼마나 연약한 인생인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 잊어버리고 주제 넘는 행동과 처신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는 당연히 패망입니다. 오늘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오직 자기의 상황과 처지에 합당하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엡 4:1). 이렇게 자기 주제와 분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을 하나님은 귀히 보십니다.

5. 교만하면 영적으로 둔감해집니다.

고린도전서 5:2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고 책망합니다. 고린도교인 중에 계모와 동거하는 충격적인 일이 있는데도 고린도교회가 그를 징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이 고린도교인들이 교만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그렇습니다. 교만병에 걸리면 죄에 대해 둔감해집니다. 내가 죄를 짓고도 죄인지 모릅니다. 나는 항상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점점 더 많이 짓고 자기도 모르게 점점 죄에 빠져들게 됩니다. 암이라는 병이 무서운 것이 자각증세가 없기 때문 아닙니까? 다른 병은 걸리면 어딘가 아프고 자각증세가 있는데 암이라는 병은 어딘가 아프고 이상해서 병원에 가보면 벌써 늦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암이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교만이라는 암에 걸리게 되면 죄에 둔감해지고 죄에 대한 자각증세가 없어져 영적 사망에 이르도록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또 시편 10:4에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고 했는데 교만병에 걸리면 영적으로 둔해지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거나 하나님이 잘 모르실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겸손한 사람은 영적으로 민감합니다. 늘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늘 하나님의 뜻을 묻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르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형통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만에서 돌이키라!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이렇게 크게 다섯 가지 증세가 나타나는 교만병은 그 결과가 패망과 영적 사망입니다. 왜 그렇게 되는가? 교만한 자를 하나님께서 친히 꺾으시기 때문입니다(약 4:6). 다니엘 4:30~31에 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왕궁 지붕을 거닐면서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라고 말하는데 바로 그 순간에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내려옵니다.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느부갓네살은 이 말씀을 듣자마자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았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됩니다(4:32~33)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십니다(벧전 5:5). 하나님은 세상에서 잘 난 사람, 똑똑한 사람, 가진 사람, 많이 배운 사람을 들어 쓰시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그래서 위대한 신앙인 중에는 못 배운 사람, 가진 것 없는 사람, 세상에서 못난 사람이 더 많은 것입니다. 위대한 히스기야 왕도 한 때 교만했던 적이 있습니다. 교만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교만 앞에 예외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역대하 32장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자 유다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하나님의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후에 차이가 드러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자마자 자신의 교만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함께 회개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임하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대하 32:26). 누구나 교만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회개하고 겸손해지면 하나님의 진노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임하게 됩니다. 내가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면 하나님이 친히 높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만 앞에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나는 교만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가장 큰 교만입니다. 세계 거짓말 대회에서 1등 한 거짓말은 "나는 평생 한 번도 거짓말을 안 했다"였다고 합니다. 교만 앞에 예외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교만이 영적 무감각으로 깊어지면 다른 이들을 다치게 하고 교회공동체를 파괴함으로 돌이킬 수 없는 영적 사망으로 치닫게 됩니다. 아무쪼록 히스기야 같은 겸손의 사람이 되어 평생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이하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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