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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히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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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믿음으로 애굽 세상을 떠났던 모세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세워 가기를 원합니다. 모세의 출생에 관한 기록은 출애굽기 2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의 부모가 모세를 더 이상 숨겨 키울 수 없게 되자 눈물을 삼키며 나일 하수에 띄워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입적이 되어 40년 동안 애굽 궁궐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요게벳으로부터 “너는 히브리 민족이라”는 말이 각인이 되어 겉 사람은 애굽의 왕자인데 속사람은 히브리인으로 살았습니다. 

어느 날 자기 동족을 치는 애굽 사람을 쳐 죽이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애굽 궁궐을 떠나 도망자의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왜 모세가 자기 동족을 괴롭게 하는 애굽 사람을 쳐 죽였습니까? 자기의 힘으로 무엇을 해 보려고 하다가 그런 실수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자기의 힘, 자기의 실력, 자기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려고 하다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고 만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40년 이라는 혹독한 광야 훈련을 받지 아니하면 안 되었습니다. 철저하게 모세의 자아를 깨뜨려 주신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는 모세를 만들기 위해서 그런 과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고통스러운 훈련을 통하여 모세는 출애굽의 영웅이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읽은 본문 속에서 모세가 가지고 있었던 세 가지 믿음에 대해서 생각 해 보려고 합니다.

1. 모세는 믿음으로 애굽을 떠났습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애굽을 떠날 때에 믿음으로 애굽을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떠나야 할 자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만일 모세가 애굽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물론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고 왕궁에서 편안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멸망일 뿐입니다. 몇 년 전에 우리 백암 수양관에 오리들이 약 20여 마리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너 마리를 키웠는데 어느 날 보니 이상하게 한두 마리가 더 있는 것입니다. 철새인 천둥오리가 거기에 온 것입니다. 천둥오리가 집오리가 있는 곳에 와서 보니 늘 먹이가 풍성합니다. 먹이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고, 날갯짓을 하지 않아도 먹을 것이 실컷 있습니다. 연못도 있습니다. 그리고 힘든 날갯짓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이를 주워 먹으면서도 “나는 가야돼! 여기 이렇게 있으면 안 돼!”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먹이를 주어먹는 맛을 떨쳐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먹다보니 이듬해 봄에 날아가야 하는데 나르려고 하니 몸이 무거워져서 뜨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날개를 쓰지 않았기에 날개에 힘이 빠진 것을 몰랐습니다. 결국은 잡아먹히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잠시 애굽에서 누리는 죄악의 낙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잠깐 열락을 즐기는 것은 좋지만 그 결말은 언제나 비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떠나야 할 것을 떠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모세는 애굽 세상을 믿음으로 떠났습니다. 우리가 떠나야 할 애굽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떠나야 할 것을 떠나고,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너의 본토 아비 친척집을 떠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기득권을 포기하고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났기에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명령하시는 주님의 명령에 배와 그물을 포기하고 주를 따를 때에 수제자 베드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인 줄 믿습니다.

방금 전에 찬송을 불렀듯이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네 맘껏 저어 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애굽 언덕에 머물러 있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드시고, 믿음으로 애굽언덕을 떠나시고, 애굽에서 누릴 영광을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창파에 우리 믿음의 배를 띄워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에 마음껏 노 저어 가는 축복을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2. 모세는 믿음으로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했습니다.

당시의 애굽왕은 강력한 통치력을 가진 나라입니다. 중근동지역의 패권(覇權)국입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정도가 아니라 각 나라의 임금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 애굽의 왕을 모세는 두려워하지 아니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담대함을 줍니다. 믿음은 우리 속에 있는 온갖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요일5:4,5절을 보면 “4)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라고 하시면서 믿음이 세상을 이긴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자들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들도 세상을 이기는 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무서운 감정과 두려운 감정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를 지배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없어서라기보다 연약한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라고 하는 사실을 상기하시고 그 믿음으로 두려운 감정과 무서운 감정을 내어 좇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무서운 감정을 극복하고 담대한 마음을 우리에게 심어 줍니다. 모세의 부모도 그러했습니다. 23절을 함께 봉독하시겠습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이것은 모성애, 부성애 때문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그들에게서 두려운 감정과 무서운 감정을 내어 좇은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종교 개혁자였던 존 낙스의 무덤에는 이러한 묘비가 쓰여 있습니다. “여기에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던 자가 누워 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담대함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간은 참 연약합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면, 모세의 부모(父母)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들도 얼마든지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시3:5절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천만 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시27:1절에서는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오.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오.” 바울은 롬8:31절에서 외치기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했던 모세의 믿음이,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오.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오.”라고 담대하게 외쳤던 다윗의 믿음이! “누가 감히 우리를 대적 할 수 있겠느냐!”고 외쳤던 바울의 믿음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믿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3.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모세가 누구입니까? 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었습니다. 애굽의 2인자가 될 수 있는 자리에 있던 막강한 권력자였습니다. 바로의 총애를 받던 자이기에 마음만 먹으면 어떤 정적도 그와 상대가 될 수 없었던 자입니다. 그런 그가 40년 동안 초라함 목동의 생활로 떨어졌습니다. 고달팠습니다. 처량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40년 동안 그 모진 훈련을 잘 극복 할 수 있었습니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와 함께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지키신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시다!”} 모세에게 이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1940년대 우리나라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이성봉 목사님은 늘 오른손을 꼭 쥐고 다니셨다고 합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그 모습을 보면서 궁금하게 생각하고 물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왜 항상 오른손을 꼭 쥐고 다니십니까?” 목사님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예, 저는 제 오른손으로 예수님의 손을 꼭 붙들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다면 어떠한 환난 앞에서도 요동하지 않을 줄 믿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송 중에 470장이 있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입니다. 이 찬송은 찬송가의 욥기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찬송시를 쓴 스패포드 교수는 시카고 대학에서 법리학을 가르쳤던 분입니다. 변호사였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시카고 무디 교회에서 회계 집사로 헌신을 했던 분이었습니다. 1871년 시카고 대 화재 때, 그의 집도 몽땅 타 버렸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 충격으로 몸져누웠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가족들과의 여행을 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유럽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는 먼저 자기 아내와 네 딸을 배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화재에 대한 뒤처리 문제로 그 다음 배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사랑하는 네 딸을 태우고 가던 배가 대서양 한가운데서 다른 배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그 사고로 사랑하는 네 딸은 다 죽고, 그의 아내만 극적으로 구조되었습니다. 그에게 영국의 웨일즈에 도착한 아내로부터 짤막하게 전문이 왔습니다. ‘혼자만 구조되었음.’ 그는 그 전문을 받고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즉시 배에 올라탔습니다. 사랑하는 네 딸을 잃고서 혼자 정신없이 헤매고 있을 그의 아내가 너무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침통한 마음으로 선실에 앉아있는데 선장이 와서 차나 한 잔 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선장은 차를 마시면서 스패포드에게 잠시 후에 사고현장을 지나가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밖은 칠흑같이 어둡습니다. 그는 마음이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다시금 선실로 내려왔습니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괴로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입니까? 새벽 세시쯤 되었을 때,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평안이 그의 마음을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It is well with my soul, 내 영혼 평안해” 그는 배 안에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찬송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그렇게 해서 찬송가 470장이 탄생되었습니다. 우리 함께 찬송을 부르겠습니다. 470장입니다. 스패포드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에게도 주시기를 바랍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그는 자기의 사랑하는 네 딸을 앗아간 바다 위를 지나가면서, 이런 놀라운 신앙 고백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에 그 참을 수 없는 슬픔을, 그 견딜 수 없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모쪼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이 고달프다면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고난과 시련은 축복의 땅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통로입니다. 부디 우리 모두가 모세가 가졌던 믿음을 가지고 그 어떠한 어려움과 시련 앞에서도 두려운 감정과 무서운 감정을 잘 이기며,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사용되어지는 종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귀하신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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