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미국(美國, 米國, 迷國)의 교훈

  • 잡초 잡초
  • 600
  • 0

첨부 1


美國, 米國, 迷國의 교훈

머 한 달 동안 미국을 여행하면서 미국에 대하여 얼마나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 라는 회의감이 저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래도 교회에서 안식월을 보내 주었으니, 보고는 해야되지 않겠는가 의무감도 약간 있고 또 짧은 기간동안 미국을 알고 이해했다기 보다는, 미국에 다니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보여주고 느끼게 하시고 깨닫게 하셨던 것들 중 이런 면들은 같이 나눌만한 가치가 있겠다 싶은 것들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미국에 가면서 서울대 국사학과에 있는 박태균 씨가 쓴, 『한미관계의 두 신화-우방과 제국』이라는 책을 들고 갔습니다. 올 6월에 나온 책인데, 주로 해방 이후 한미관계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를 조명한 책입니다.

책의 저자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그냥 무턱대고 자기 목소리만 크게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한미관계에 대한 사료(史料)들을 수집하여 꼼꼼하게 정리하여 객관적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며 저자의 의견을 개진(開陳)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요지는 이런 것입니다. 미국은 우리에게 때론 좋은 우방의 모습으로서 또한 때론 나쁜 제국의 모습으로서 항상 두 얼굴을 보여 왔었는데, 한국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은 미국을 우방으로만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제국으로만 생각하고 이렇게 단면적으로만 생각하니까, 우방으로만 생각하는 한국사람하고 제국으로만 생각하는 한국사람하고 서로 피터지게 싸우고, 한미관계에서 손해를 많이 봤다는 것입니다.

1985년 12월 19일, 김근태 씨가 법정에서 민청련 사건으로 자신이 받았던 고문 사실을 낱낱이 진술을 했습니다. 그날 그의 진술은 방청객들을 통곡하게 했던 것으로 유명하지요. 그의 진술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그들은 내게 고문을 가하면서 ‘시집간 딸이 잘 사는지 모르겠다’, ‘아들놈이 체력장을 잘 치렀는지 모르겠다’는 등 자신의 가족들에게 대한 애정어린 말들을 주고 받았으며 본인에게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떻게 이처럼 고문과 폭력적 행위를 자행하는 자들이 개인의 가족들에게는 인간적인 사랑을 줄 수 있단 말입니까? 이렇게 양면성이 공존할 수도 있단 말입니까?”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개인 사람의 경우도 이렇게 모순되어 보이는 양면성을 보이는데, 하물며 한 국가, 사회의 모습은 어떠하겠습니까? 여러 가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연스럽고 따라서 미국에 대한 이해도 적어도 단색(單色)적인 모습은 뛰어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을 지나치게 우방으로만 생각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제국으로만 생각하는 성향은 민족의 한의 정서, 의존적인 성향 때문이지 않나 추측이 됩니다. 개인 인간관계의 경우도 의존적인 성향의 사람이 일방적인 편향과 차가운 배신의 널뛰기를 하고, 애증(愛憎)의 감정관계를 갖곤 합니다. 

정말 어렵게 살던,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 생존을 위하여 몸부림치던 기성세대의 분들에게는 약소민족의 의존적인 성향으로 말미암아 미국을 천국처럼, 미국사람들을 천사처럼 여기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러다가 역사공부를 좀 하게 되면 미제국의 야만적 모습을 보고, 동경(憧憬)심이 “속았다”라는 증오(憎惡)로 바뀌어서 맹렬한 반미주의자가 되는, 극단적 편향을 보이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스티븐 코비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법칙에서 인간관계의 성숙의 과정을, 의존적 - 독립적 - 상호협력적으로 묘사했듯이, 미국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도 이제는 의존감정의 획일칼라의 널뛰기를 좀 벗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눈에 비춰진 미국의 모습, 다양하였지만, 세 가지 모습으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나라로서의 미국(美國)과 풍요로운 나라로서의 미국(米國)-일본사람들은 미국의 한자표기를 이렇게 하지요- 그리고 어지러운 나라로서의 미국(迷國)의 모습입니다.

쉽게 보여지는 모습, 미국은 풍요로운 나라, 쌀이 많은 나라, 미국(米國)이었습니다. 캘리포니아 평야는 시속 100km로 3시간, 4시간을 가도 계속 지평선이 보이는 끝없는 농장이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세 종류의 금이 나온다고 하지요? Yellow Gold(금), Green Gold(농산물), Black Gold(석유). 정말로 고속도로 바로 옆에서부터 지평선까지 끝없이 농장이 이어지는데, 그 농장 중간중간 곳곳에서 석유를 퍼 올리는 펌프가 작동중이었습니다. 캘리포니아 평야는 일조량도 많고 땅도 기름져서 어느 곳은 일년에 오모작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캘리포니아에 와서 보고 신경질을 냈다고 하지요? 왜 미국 땅은 이렇게 풍요롭고 광활한데 우리나라는 좁은 땅, 그것도 산악지형이 대부분이고 석유 한 방울도 나오지 않고 그러는지 질투가 나서 화를 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왠만한 것은 다 스케일이 컸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무우도 주먹만 하고 과일도 다 작았는데, 미국에서는 고구마도 얼굴만 하고 전복도 제 얼굴만 하고 굴도 손바닥만하고... 나무들도 크고... 농산물도 크고 해산물도 크고 땅이 어떻게 넓은지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비행기 시간이 6시간이 걸립니다. 참 스케일이 큰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모하브 사막은, 이스라엘의 네게브 사막이나 이집트의 시내광야처럼 정말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그런 사막이 아니라, 개간하면 얼마든지 개간이 가능한 땅들이 많습니다. 개간할 필요가 없어서, 인력이 없어서 그냥 놔두고 있는 땅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한 반절은 미국땅에 가서 살면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부동산 문제도 해결될 것같고, 주거환경도 괜찮아질 것같고 미국의 놀고 있는 땅들도 주인을 만날 것같고...

적어도 아메리카 땅은 축복받은 땅인 것같습니다. 이스라엘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캘리포니아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풍요의 나라 미국의 사회는 어지러운 나라, 미국(迷國)입니다. 여행자들에게 제일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나라 1위가 미국이고, 총기사고가 제일 많은 나라가 단연 미국이고, 청소년들의 마약사용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는 곳이 미국이고, 성도덕이 제일 문란한 나라가 미국이고, 평등과 기회균등을 기치로 내걸지만 사실 인종차별의 벽은 두터운 유리벽처럼 존재하고, 자유의 나라라고 하지만 돈과 사회적 신분에 따른 계급사회의 모습이 현저하고, 쾌락과 돈이 최고의 가치인, 말하자면 세속의 본고장입니다.

사람이 죄인인지라 각 나라마다 자기중심적으로 역사를 해석, 왜곡하지만 아마 미국만큼 역사왜곡이 심한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대다수 인디언들을 학살해 놓고도, 다수의 인디언들이 풍토병에 의하여 죽었다고 미화시키고, 멕시코로부터 땅을 빼앗은 수치스런 역사를 알라모 유적지로 미화시키고, 마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을 건국한 것처럼 미화하나 메이플라워호에는 순수한 신앙의 자유의 목적을 위한 사람보다 금을 캐기 위한, 무역을 위한 상인들이 더 많았고 미대륙을 오간 배가 메이플라워호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에 건너간 청교도들이 없지 않았으나, 마치 미국백인은 순수하게 청교도들, pilgrim fathers들로부터 시작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또 미국사람들은 10월 둘째주 월요일을 컬럼버스 데이라고 하여 컬럼버스가 아메리카 땅을 처음 밟은 날을 기념하는데, 사실 컬럼버스는 북아메리카, 지금의 미국땅은 밟지도 않았습니다. 컬럼버스가 4차례 아메리카 대륙을 항해했는데 바하마, 쿠바, 도미니카 등 카리브해의 섬들을 방문한 것이고 그리고 유럽의 역사가들은 컬럼버스를 무역상을 넘어서 사기꾼으로 규정합니다. 그런 컬럼버스를 개척자의 상징으로 미화시킨 것이지요.

과거의 역사도 이렇게 자기 중심적으로 미화시키고 우기는데 오늘의 외교, 무역에서는 얼마나 자기중심성이 강하겠습니까? 미국이 오늘날 유일한 패권국가로서 그들의 외교에서 얼마나 못되게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는지는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입니다. 모두에 언급했던 『한미관계의 두 신화』라는 책에서 저자 박태균은, 짧은 한미관계 역사에서 미국이 한국과의 관계에서 경제적인 이익을 양보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라고 결론내립니다.

“우리가 미국인데 왜 다른 나라들에게 비굴한 것처럼 보여야 하느냐” 이런 패권주의식 인식이 미국 대통령과 관료들의 사고에 뿌리박혀서 자신들은 세계의 보안관 역할을 한다고 자부하지만, 그러나 사실은 세계의 카우보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이 얼마나 어지러운 나라, 못된 나라인지는 제가 다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혹시 아직도 미국을 천국처럼 여기고, 할 수 있으면 미국에 가서 살면 좋겠다고 느끼는 한국인이 있다면, 그 자조적이고 의존적이고 무식한 인식은 벗겨 주어야 합니다.

막연히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서 이민을 온 한국사람들, 미국에서 정말 고생 많이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큰 차 가지고 다녀서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속내는 그렇지 않습니다. 막연히 미국에 와서 고생하며 사는 후배에게, “너는 한국의 좋은 직장 놔두고 뭐하러 미국에 왔냐?”라고 물었더니, “글쎄, 누가 이럴 줄 알고 왔겠어요?”라고 대답해서 같이 웃었습니다.

어지러운 이야기 말고 좋은 이야기를 해야지요. 미국은 풍요의 나라, 어지러운 나라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미국에서 보고 들으며 감동받은 것, 세 가지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텍사스 오스틴에 가면 어바인이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거기에 어바인한인침례교회가 있는데, 한인교인들이 한 150여명 모이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 예배당의 부지, 주차장과 잔디밭을 다 합치면 아마 석관중학교 두 배는 될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큰 예배당을 구할 수 있었을까 의아심이 들어서 물어 보았습니다.

사실은, 미국인교회 예배당이었었고 한인교회가 주일 오후에 몇 시간 빌려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미국인 교회의 교인은 자꾸 줄어들고 한인교회 교인은 반대로 자꾸 늘어나고 그래서 마침내는 미국인 교인들보다 한인교회 교인들이 더 많아지고 하자, 어느날 미국인 교회 목사가 한인교회 목사를 찾아왔습니다.

미국인 교회 목사가 뭐라고 했을 것같습니까? 너희들 이제 독립할 때가 되었으니 나가라고 했을 뻔하지요? 사실은 이랬답니다. “우리는 교인이 적어져서 이렇게 큰 예배당이 필요없으니 너희가 사라. 우리는 작은 곳으로 옮기겠다.” 한인목사가 대답했지요. “우리는 이 땅과 건물을 살 능력이 안된다. 그런데 너희가 얼마에 팔려고 그러느냐?” 묻자, “10달러만 주십시오” 그 예배당 건물과 땅 가치는 아마 200만달러는 될 것입니다. 그런데 10만달러도 아니고 단돈 10달러, 만원도 안되게 팔겠다는 것입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미국인 목사가 하는 말이 미국인 교회에서 회의해서 그렇게 결정했답니다. 그래서 그 넓은 땅과 예배당을 한인교회는 10달러에 샀습니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 들으면, 나한테도, 우리한테도 저런 멋진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지요? 본받아서 줄 것 생각 먼저 안하고 나도 공짜로 그렇게 받는 것 먼저 바라는 마음이 우리들의 마음은 아직도 쪼들리는, 사랑이 적은 증거입니다.

한인교회 대다수가 미국인 교회 예배당을 빌려서 사용합니다. 그런데 그 미국인 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배려를 잘 해주는지 모릅니다. LA의 한 교회는, 한인들이 오전 11시 반에 예배를 드리도록 자기들이 9시에 모여서 성경학교 하고 10시에 한 시간 예배드리고 예배당 본당을 한인교회에 비워줍니다.

대조적으로, 우리 민족이 쪼들리는 심정이 얼마나 보편적인지... 70년대, 80년대 대학 복음화에 큰 공헌을 했던, 교회들에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도입하도록 공헌했던 CCC, 네비게이토, UBF 선교회가 한 7,8년전, 거의 같은 시기에 내분이 일어나서 둘로 딱 갈라지고 어느 곳도 다 맥을 못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각 단체들의 내분의 이유도 비슷합니다.

CCC의 K 목사님, 네비게이토의 H 선생님, UBF의 L 선생님.. 다들 정말 영적 거인들입니다. 영적인 헌신, 열망, 영혼들을 향한 사랑, 정말 놀라운 분들이고 카리스마가 대단한 분들이고 참 존경할만한 훌륭한 분들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의 어떤 공통점, 돈주머니만큼은 당신들이 다 차고 있는 것 때문에 결국 내분이 일어났습니다.

참 헌신적 열심히 있고 탁월한 은사를 지녔던 분들인데, 배려할 줄 모르는 옹졸함이 안타까운 종말을 가져온 듯하여 마음이 아픔니다.

배려는 사랑의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하지요? 우리 민족도 이제는 배려하는 넉넉한 사랑을 본받고 실천해야 하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사실 많이 풍요로와졌습니다. 우리들 마음이 욕심이 팽배해서 여전히 쪼들려서 그러지요~

심령을 쪼들리게 했던 두려움, 의존성을 벗고 큰 마음을 품어야지요. 광대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강건히 하여, 그리스도인들부터 큰 마음을 품어가야지요.

원래 우리 민족이 그렇게 옹졸한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그 후의 극도로 혼란한 현대사의 진통을 겪으며 사람들 마음이 두려움이 많이 습격하여서, 그렇게 옹졸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컨대, 왜 우리 역사에서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나서 그냥 백제땅에 당나라 군대들이 뭉개고 있을려고 하니까, 이번에는 신라가 당나라 군대를 밀어내는, 한판 전쟁을 벌이지요? 그 전쟁에서 신라가 이겼습니다. 백제 땅에 뭉개고 있던 당나라 군대 대다수가 죽고 소수만 배타고 당나라로 퇴각하였습니다. 신라, 우리 민족이 보기에는 당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밉겠어요?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고 이런 사람이 참 밉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전쟁이 끝나면, 대부분은 패전국이 승전국에게 조공을 바치지요. 그런데 당나라를 패퇴시킨 신라, 우리 선조들이 오히려 당나라에게 위로품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너희들 우리한테 맞아서 참 아프지.. 이거 먹고 위로를 좀 받아라 하고.

당나라 사람들이 기가 막히고, 감동을 받아서 고문서에 의하면, 신라인들은 문화민족이라고 지칭한 기록이 있습니다. 영국인들을 gentleman이라고 불렀듯이, 동양에서는 우리 민족이 문화민족, 멋있는 사람들, 존경할만한 사람들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입었으니, 문화민족의 마음을 회복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랑을 드려감으로, 우리들 마음을 더욱 넉넉하게, 큰 마음으로 이끌어 주시는 은혜를 누려봅시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미국에서 제일 살기 좋고 아름다운 도시가 샌프란시스코라고 합니다. 그래서 집값이 제일 비싸답니다. 샌프란시스코 중에서도 제일 아름다운 곳으로 소문난 곳이 Goldengate Bridge 지나서 조금 가면 왼편으로 있는 소살리또(Sausalito)라는 지역입니다. 하도 경치가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서 우리나라 드라마의 배경 촬영지로도 꼽혔습니다.

그런데 그 소살리또 위 언덕에, 소살리또보다 더 전망이 아름답고 좋은 지역이 Goldengate  Baptist Seminary가 있습니다. 이 학교는 학생이 300명 밖에 안됩니다. 캠퍼스가 널럴하지요. 제일 아름다운 땅, 그래서 땅값이 제일 비싼 곳에 신학교가 들어서 있습니다.

건설회사들이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학교를 크고 멋있게 지어줄 터이니 이 땅을 팔라고 해도 학교가 안 팝니다. 왜냐하면, 이 땅 전체가 독지가의 유언으로 기증받았고 이 독지가가 유언하기를 신학교 외에 다른 용도로 팔지 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하도 경치가 좋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Goldengate 신학교 학생들이 공부를 잘 안하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유명한 스탠포드 대학도 금광을 캐서 떼돈을 번 사람이 자신의 전 재산을 희사해서 세운 학교입니다. 하버드 대학 등 미국의 많은 대학들이 자손들에게 유산을 남기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정신문화의 소산입니다.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신이 죽을 때, 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겨주는 것을 수치스러운 일로 여깁니다. 그래서 다 교회와 사회에 기증하고 환원을 합니다.

지난 주가 미국의 추수감사절 주간이었지요? 세계에서 해외선교사를 제일 많이 파송한 교단이 미국의 남침례교단입니다. 국가별로는 우리나라가 두 번째로 많이 파송하여 15,000여명 됩니다. 미국 선교사가 한 40,000여명 되는데, 이 중에 약 85%, 약 33,000여명이 남침례교단 소속 선교사입니다.

이렇게 많은 남침례교 선교사들의 선교헌금의 대부분이 미국 남침례교 교단 소속 교회들의 추수감사절 한 주일 헌금으로 충당이 다 됩니다. Donnation 문화가 발달한 것, 움켜 쥐지 않고 넉넉히 베푸는 정신, 미국 그리스도인들의 아름다움입니다. 이런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드리면, 요새 미국 서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햄버거집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집안이 운영하는 IN-N-OUT 이라는 햄버거집입니다. 맥도날드, 웬디스, 버거킹 등 유명한 패스트푸드점들은 매출이 점점 더 떨어지는데, IN-N-OUT만큼은 호떡집에 불났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햄버거 주문하고 최소 30분 이상은 기다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행복하게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IN-N-OUT은 아직 서부에만 있습니다. 그런데 요새 동부에 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 한 가지가 서부에 가서 IN-N-OUT햄버거 먹어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른 주에서 프랜차이즈 해달라고 통 사정을 해도 프랜차이즈를 안합니다. 이젠 소문이 나서 유명하고 프랜차이즈를 하면 떼돈을 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랜차이즈는 안한다고 공고를 합니다. 일년에 매장을 10개 이상을 내지 않습니다. 그 집안이 직접 가게를 사서 내는데, 그렇다고 그 집안이 떼돈을 움켜쥐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직원들 월급이 다른 가게들에 비하여 월등히 많습니다.

한 매장에서 일하는 경력에 따라 4등급의 매니저가 있는데, 제일 낮은 등급의 매니저의 급여가 연봉 33,000달러이고 제일 높은 등급의 store manager가 되면, 연봉 100,000달러를 줍니다. 그렇게 월급을 많이 주고도 매장이 많아지면서 돈이 많이 남자, IN-N-OUT 기금(foundation)을 조성하여 아동학대방지 등 사회복지에 사용합니다.

전 매장의 직원들을 일년에 한 번씩 피크닉을 갖습니다. 물론 그 비용은 본사에서 다 제공합니다. 최소한 1박2일을 하면서 모든 직원이 가족으로서의 연대감을 갖습니다.

IN-N-OUT의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크리스찬 집안이 하는 가게인지라, 물론 주일은 당연히 쉽니다. 이 가게가 사실은 1948년부터 있었습니다. 미국 서부 지역,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에 현재 매장이 약 180여개가 있습니다. 1975년까지는 17개에 불과하였고 그 이후로 늘어나는 속도가 붙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켜온 원칙이 얼린 고기, 얼린 감자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프렌치 프라이를 만드는데, 다른 패스트푸드점은 이미 얼려놓은 것을 튀기기만 합니다. 그런데 IN-N-OUT에서는 감자를 매장 내 주방에서 직접 껍질을 벗겨서 칼로 썰어서 튀깁니다. 그러니 얼마나 수고롭겠습니까? 그러나 기꺼이 수고를 합니다.

IN-N-OUT에는 햄버거 메뉴가 딱 3개입니다. 더블버거, 더블더블버거, 치즈버거. 많이 팔기 위하여 다양한 상품을 진열하기보다는 맛으로, 질로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높은 질의 단순한 메뉴. 이게 IN-N-OUT의 경영철학입니다.

미국사람들이건, 한국사람들이건, 멕시코사람들이건 IN-N-OUT햄버거를 너무 좋았습니다. 미국 서부에 사는 즐거움 중의 하나가 IN-N-OUT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지경입니다.

저도 두 번이나 먹어봤습니다. 제 입맛이 무디어서 그런지, 제가 보기에는 맥도날드나 별 차이가 없는 것같은데, 사람들의 인식은 맥도날드 햄버거는 소여물이고 IN-N-OUT 햄버거는 왕의 음식처럼 여깁니다.

세속정신의 메카같은 미국이지만, 미국이 아름다운 나라라는 것은 이런 사람들, 세상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곳곳에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회에서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 확실히 구분된다고 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차이가 뚜렷하게 난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갈수록 christian이 적어지는 것이 미국 사회의 문제이지만, 수많은 모순과 갈등의 여지를 안고 있으면서도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이 christian들, 그 사회에서 빛과 소금으로 존재하는 그리스도인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미국사회에 밤문화가 없는 것,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의 문화가 여전히 배어있는 것, blue color의 노동이 천시받지 않고 존중받는 문화는 그 안에 참된 신앙을 지켜왔던 그리스도인들이 남긴 유산입니다.

다수가 세속에 물들어 있고, 힘의 우월로 말미암아 오만한 모습을 많이 보여도 미국사회에는 여전히 세상의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의 교회는 주로 미국(美國)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선교를 받았는데, 이러한 미국 크리스천들의 정신, 가치관을 배우기보다는, 미국(米國)에 의존하려는 성향이 더 많았던 것같습니다. 그래서 미국(美國) 크리스천들의 넉넉한 사랑, 아름다운 정신을 본받기보다, 미국(米國)의 풍요를 사모하다가 미국(迷國)의 세속정신에 어지럽게 시달리고 있는 듯합니다. 

오늘 제가 본문으로 삼은 구절은 잠언의 두 말씀입니다.
“겸손한 사람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받을 보상은 재산과 영예와 장수이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22:4> 부자는 하나님의 축복일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죄인들을 보고 마음 속으로 부러워하지 말고, 늘 주님을 경외하여라”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잠23:17> 모든 부자가 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부러움을 사는 어떤 부자는 죄인일 수도 있습니다.

이 구절들은 똑같은 현상에 대하여 상반된 해석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재물이 많은, 풍요로움이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 반대로 죄인의 형통함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무엇인 것같습니까? 미국의 풍요로움이 여호와를 경외함을 보응인 것같습니까, 아니면 힘을 구사하는 죄인의 형통함인 것같습니까?

그런데 이런 것 아닐까요? 어쩌면, 큰 나라, 세계최강국, 풍요로운 나라 미국이 되게 한 주요인이 여호와를 경외한 보응이냐, 죄인의 형통이냐를 구지 단정하려는 마음에는, 그 천기(天氣)를 캐내어서 나도 풍요를 누리고 싶다는 동기가 더 많은 것 아닐까요? 좋은 수단이든, 나쁜 수단이든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부자가 되는 천기를 캐내어서 나는 기필코 부자가 되겠다고 마음이 맨, 돈의 노예가 된 사람, 이런 사람은 되지 맙시다. 

역사의 해석은 자유이지만, 그러나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하다면, 독단적 해석은 삼가야 합니다. 미국의 풍요로운 모습이 겸손과 하나님을 경외함에 대한 보응인지, 아니면 죄인의 형통함인지 단색(單色)으로 도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풍요로운 미국의 예를 들어서, 예수님 잘 믿으면 부자가 된다, 부자 나라가 된다 라고 피상적으로 보고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반면, 고고한 정신을 강조하며 미국의 풍요를 평가절하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지혜를 가르쳐 주는 잠언에서, 상반되어 보이는 두 말씀을 함께 가르쳐 주고 미국이라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이 상반되어 보이는 두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면, 우리는 차원높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모습, 상반되어 보이는 잠언의 두 말씀이 증거하는 정작 중요한 멧세지는, 풍요로움의 여부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이 아니겠습니까? 풍요로운 미국에 대한 해석이 “하나님 경외함에 대한 보응”이라는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죄인의 형통”이라는 부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두 말씀을 함께 가르쳐 주는 성경이라면, 두 말씀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멧세지에 우리의 마음을 주목하는 것이 참 지혜가 아니겠습니까? 

미국, 미국, 미국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풍요로움의 비밀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의 중요성이겠지요?

미국내 어떤 크리스천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본받음을 통해서, 또는 미국의 어지러움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서, 세상에서의 풍요로움에 연연하는 마음을 떨치고, 하나님을 경외함을 추구하기를 새겨봐야하지 않겠습니까? 그 하나님을 경외함이 재물과 생명과 영광의 축복으로 보응할지, 세상에서 좁은 길을 가는 고난을 감당하는 은혜일지는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께 맡기고 말입니다.

어디 미국 뿐이겠습니까? 우리 앞에 보여주시고 던져주신 수많은 사람들, 나라들의 모습들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들 마음에 깨우쳐 주시고 새겨주시고자 하는 것이 이것 아니겠습니까?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함이란 무엇입니까? <잠8:13> “주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나는 교만과 오만, 악한 행실과 거짓된 입을 미워한다.”

하나님을 경외함이란, 마음을 높은 데 두지 않고 겸손한 것, 어떻게 해서든지 쉽게 꾀부리며 살지 않고 땀흘려 정도를 행하는 것, 자기중심적 생각, 태도를 벗고 자기를 부인할 줄 아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함입니다.

무엇을 보여주든지, 미국의 모습이든, 한국의 역사이든,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여주시든지, 예수님께서 신앙의 기본, 전제로 말씀하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는 말씀에 따라 자기를 잊어버리고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는, 하나님을 경외함의 가치가 중요함을 보고 깨닫고 드려진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정말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며 책임져 주시고 인도하시며 그 친밀함을 나타내 주시지 않겠습니까?

오늘 많은 세상의 모습을 보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세속의 가치로서 신앙, 종교를 가름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의 가치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일 것입니다. 그 눈이 맑아진다면, 미국, 아니 세상이 아무리 여러 가지 색깔의 모습을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의연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의 노예가 되지 않고 오히려 넉넉한 사랑으로 감동을 주는 오스틴 어바인의 미국인교회처럼, 떼돈 벌어서 쌓을 생각을 거부하고 맛있는 햄버거를 제공하여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IN-N-OUT처럼,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자기와 자기 가족만 누리도록 움켜쥐지 않고 넉넉히 사회에 환원하는 그들처럼 우리도 아름답게, 기쁘게 살아갈 것입니다. (이덕재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