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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수지 결산서 (대하 15:8~1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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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수지 결산서 (역대하15:8~19, 16:10)

남왕국의 제3대왕인 아사 왕은 선한 왕, 무엇보다도 신앙의 왕으로 분류된다. 모두 20대에 걸쳐 나라를 끌고 갔지만 아사 왕의 재위 기간은 41년으로써 치리기간이 긴 왕으로 전해진다. 아사 왕은 나라에 등극한 때부터 10년이 되던 해, 백만 대군 구스와 싸우는 큰 전쟁을 치렀지만 오직 하나님만 찾는 왕이 되므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승전의 왕이 된다. 아사 왕이 얼마나 하나님을 찾았는지에 관하여는 대하14:11에 기록되어 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아사 왕은 오직 주 밖에 도움이 없다고 탄원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라고 간절히 아뢰인다.

아사 왕은 하나님을 찾는 왕이었다.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는 왕이었다. 하나님만 찾는 아사 왕을 특별히 보신 하나님은 아사 왕을 축복하셔서 대하15:19 “이때부터 아사 왕 삼십오 년까지 다시는 전쟁이 없으니라”고 적고 있다. 41년간의 재위 중 35년까지 다시는 전쟁이 없고 평안히 지낼 수 있는 그 비결이 무엇인가? 한 마디로 하나님만 찾는 신앙인이었다는 점이다. 성령은 알고 보면 간단한 책이다. 복잡한 이야기가 많이 있는 것 같아도 단순한 책이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살아야 잘된다는 원리가 담긴 책이다.

역대하 15장에서 보여주는 아사 왕의 신앙의 단면은 이렇다.

첫째, 말씀 앞에 귀를 기울이는 자다. (대하15:8上)

대하15:8上을 보면 “아사가 이 말 곧 선지 오뎃의 예언을 듣고...”라고 하였다. 아사는 오뎃의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을 강하게 하였으니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확고한 결심을 세웠음을 뜻한다. 선지자 오뎃이 들려준 말씀은 대하15:1~7까지 기록되어 있다. 그 예언의 내용은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하므로 한 마디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난 바 되리라는 것인데 아사 왕은 말씀을 무시하지 않고 그 예언을 업신여기지도 않았다. 아들에게 임한 예언을 오뎃에게 듣고 겸손히 그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말씀 앞에 무릎을 꿇는 신앙, 이것이 평안히 지내는 길이다.

말씀은 다양하게 들려진다. 설교를 통해서, 성경 공부를 통해서, 큐티를 하면서, 예언의 은사가 있는 사람을 통해서 등이 있는데 문제는 그 들려진 말씀 앞에 들으려는 겸손이 중요하다. 그리고 말씀을 들려주는 자가 사사로이 예언을 푸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신, 성령으로 충만한지가 문제인데 우리 자신들의 신앙이 말씀 앞에 겸손해야 함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벧전5:5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적고 있다. 겸손하면 잘 된다. 나아만은 계집 종이 전해 준 말씀 앞에 겸손하여 고침을 받았다.

둘째, 순결한 것을 갈망하는 자다. (대하15:8中)

대하15:8中 “마음을 강하게 하여 가증한 물건을 유다와 베냐민 온 땅에서 제하고 또 에브라임 산지에서 빼앗은 성읍들에서 제하고...”

거룩한 땅에 가증한 물건들이 있어 신앙의 순결을 혼합시켜서는 안된다. 아사 왕은 이 성읍과 저 성읍 피차 고난을 당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하나님만 찾는 신앙이 부족한데서 오는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마음을 빼앗고 신앙의 회의를 가져오는 가증한 물건을 온 지역에서 제거해 버렸다.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갈망하는 자는 하나님이 지배하시고 하나님이 지켜주신다. 하나님은 순결한 성도에게 함께 하셨다.

대하15:9을 보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고 아사에게로 돌아오는 자가 많았음이더라.”

깨끗한 신앙의 삶을 촉구하며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제하는 이에겐 아사 왕의 복이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백성들이 볼 수 있었기에 아사 왕에게 사람들이 모여오는 것이다. 사람들이 멀리 떠났다가도 돌아오는 것이다.

우리도 순결한 갈망을 가지고 가증한 것을 제하도록 하자. 당신의 호주머니, 아니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둔 가증한 것이 무엇인가?

셋째, 하나님의 처소를 사랑하는 자다. (대하15:8下)

대하15:8下 아사 왕은 “또 여호와의 낭실 앞 여호와의 단을 중수하고...”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귀하다. 하나님이 존귀하신 분이기에 하나님의 소유는 모두 다 귀하다. 나폴레옹의 만년필은 나폴레옹의 것이기에 그 가격이 부르는 게 값이고 김대중 前대통령의 지팡이는 아픈 다리를 받쳐주는 막대기에 불과해도 대통령의 지팡이이기에 값이 나간다. 여호와의 집은 마땅히 하나님의 것이다. 그 집의 낭실 앞에 있는 단이 퇴락하고 무너졌으면 다시 중수하는 것은 마땅히 할 일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집의 단이 세워져야 함이 보인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지극히 작은 부분의 마루 한 장까지라도 아무렇게나 버려두지 않는다. 하나님의 처소, 하나님의 집안에 있는 성구, 우리도 하나님의 이름과 관련된 것을 모두 귀하게 여기며 사랑하는가?

故 김춘애 권사님은 제단 위에 성경책을 올려놓는 것을 사랑했다. 故 윤광덕 권사와 오근영 권사는 제단 닦는 것을 사랑했다. 새벽에 나가면 윤광덕 권사가 걸레는 들고 나와 제단을 닦는다. 오근영 권사도 제단 닦는 일을 하고 싶어서 새벽 3시에 일어나 닦았다. 두 분이 새벽 3시와 4시에 번갈아 닦으면서 하나님의 것, 말씀을 강론하는 제단을 귀하게 여겼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나님의 집을 사랑하자. 하나님의 것을 사랑하자. 하나님과 관계된 것은 모두 다 귀히 여기자. 하물며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를 얼마나 사랑해야 하겠는가?

넷째, 전심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였다. (대하15:16)

아사 왕은 백성들과 함께 제사하며 언약을 세웠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하였다. 그리고 아사 왕 자신도 온전히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려 하였다.

대하15:16 “아사 왕의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을 만들었으므로 아사가 그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고 빻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니...”

아사 왕의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목상을 만들었다. 아들은 비록 마아가가 어머니이긴 했지만 그 소위를 용납하지 않았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 하나님 외에 다른 형상을 만드는 것이 우상이요, 참 예배가 아니기에 아사는 어머니 태후의 자리를 폐하였다. 나라의 국모가 아세라 목상을 만드는 것은 나쁜 본보기이다. 아들은 사사로운 정, 모자 관계를 뛰어 넘어 그 우상을 찍고 빻아 기도론 시냇가에서 불살라 버렸다.

때때로 진정한 예배는 가족들이 가로막는다. 가장 가까운 식구들이 경건한 신앙의 삶을 흔들어 놓는다. 그때 아사 왕을 기억하자. 그는 하나님만 예배하려 하였다. 대하15:18을 보면 왕은 또한 구별된 물건, 은과 금과 기명들을 하나님 전에 드리는 사람이었다. 값지고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생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배 정신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에게 나의 전 마음을 드리는 것이다. 나의 귀한 옥합을 드리는 것이다. 그것이 금그릇이든, 은그릇이든 아니면 나의 시간과 재능과 생명이든 하나님에게 소중한 것을 위임하며 봉헌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전심으로 예배하는 자인 것이다. 아사는 세울 것을 알고 버릴 것을 알고 드릴 것을 아는 지혜로운 왕이었다. 성령의 신으로 예언하는 말을 귀담아 듣는 겸손이 오랜 시간 태평  성대, 전쟁 없는 나라를 이룰 수 있었다.

잘 되는 원리는 간단하다. 내가 무엇이든지 간에 왕이든지, 신하든지, 공무원이든지, 농사짓는 사람이든지 말씀을 듣는 일이다. 내가 나를 다스리는 왕이 되려하지 말고 말씀 앞에 서려 하면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되고 잘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역대하 16장으로 가면 이야기가 반전 된다. 우리가 닮고 싶은 아사 왕, 그러나 그 선한 왕도 재위 36년부터 말씀 앞에서의 겸손을 버리고 자기 자신의 생각을 앞세운다. 그는 아람 왕에게 은금을 보내며 외교의 손을 펼치는데 이스라엘 바아사를 치는 일을 아람 왕에게 부탁한다. 아사는 후반기에 아람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자기의 방법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린다. 결국 그 교만함이 선견자 하나니를 옥에 가둔다. 또 사람들을 몇 명 학대하게 된다. 겸손할 때 오뎃의 예언을 듣던 아사가 교만하니 오히려 사람을 옥에 가두고 학대한다. 대하16:11을 보면 아사는 재위 39년에 발병이 나서 중하게 되지만 그는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의원들을 구하고 세상을 떠난다. 이것이 선한 아사 왕에게서 찾게 되는 오점이다.

인생은 누구나 두 가지 마음이 싸운다. 은혜와 죄를 따라 살려는 마음이다. 은혜로 살면 겸손한대 그것을 모르면 교만이다. 교만은 죄의 온상이다. 내가 나를 다스리는 삶의 왕이 되어서는 안된다. 노아는 의인이지만 술취함과 벌거벗음의 실수가 있었다. 다윗도 은혜의 사람이지만 간음하는 실수가 있었다. 히스기야도 신앙의 기도자이지만 과시와 안일함의 실수가 있었다. 그것이 인생이다. 삶에는 언제나 죄라는 것이 기회를 엿본다. 완전한 사람은 없다. 늘 넘어질 수 있다. 하지만 내 인생의 삶 속에 어느 정도 하나님만 찾으며 하나님으로 살 것인가? 그것이 잘 되는 삶의 분량이다. 티와 흠을 줄이고 넘어짐과 불경건과 왕이 되려는 교만을 줄이고 살자. 무결점의 사람은 없다. 온전한 지도자. 실수 없는 스승도 없다. 어떤 거룩한 성인도 오점의 발자취를 남긴다. 하지만 하나님만 찾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아야 되는 신앙의 깃발을 높이 들면 삶은 전쟁과 다툼에서 놓이고 나의 신앙 때문에 복을 누리는 이들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내 삶의 오점들을 실망하지 말자. 성령의 의인들도 오점이 있음을 보면서 다시 힘을 내어 돌이키자. 내 평생에 하나님만 찾고 오직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는 삶의 계획서를 작성하자.

어느 덧 지나가버린 한 해의 마지막 12월을 보내며 새로운 대차 대조표를 만들자. 신앙과 불신앙의 수지 결산서를 만들자.

하나님만 신뢰하는 삶 100%
세상의 사람과 나 자신의 교만을 신뢰하는 것 0%
인생의 여정 동안에 불신앙율을 0%로 낮추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만큼 행복하며 복이 넘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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