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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쓸모있는 종이 되라! (마 25: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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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말

하나님께 쓸모 있는 종이 되라는 말은 하나님의 일에 유익한 종이 되라는 말입니다. 성경에 “유익한, 쓸모 있는”이라는 말은 “euchrestos”라는 말로서 “eu, well, highly, rightly”와 “chrestos, useful, profitable”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유익한 종, 쓸모 있는 종”이라는 말은 “매우 유익한 종, 대단히 쓸모 있는 종,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종, 반드시 있어야 될 종”이라는 말입니다.

1. 우리는 종의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종”이라는 말이 신구약에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원래 “종”이란 말은 희랍어로 “doulos”라는 말입니다. “doulos”는 말은 “douleuo, 봉사하다, 봉사의 의무를 가지다, 헌신하다, 복종하다”는 말에서 생겼습니다. 봉사나 헌신, 그리고 복종이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이루어 져야할 것임을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론 적으로 접근하면 다 죄인들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그리스도 즉 구속주로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구속주로 모시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이 됩니다. 그 후에는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의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반면에 교회론 적으로 접근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하나님의 포도원의 농부들입니다. 일꾼들입니다. 종들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받아 선포하는 종들이요,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생활에서 실천하는 종들입니다. 모두가 임무는 틀리지만 종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신약시대와 교회시대에는 사도들, 속 사도들, 교부들, 성직자들은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의 진리를 선포하는 종들입니다. 반면에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생활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실천하는 종들입니다.

다같이 하나님의 종들인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기능적인 면에서는 서로 다릅니다. 높낮이가 아닌 기능의 차이입니다. 그것은 우리 몸의 지체와 꼭 같습니다. 우리 몸의 지체는 높낮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능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청교도적인 풍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어떤 지성적 현대인이 한 농부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았습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 전에 농부는 항상 하던 습관처럼 기도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지성인이 농담조로 그것은 18세기 인간들의 낡은 유물이니까 내어버리는 것이 어떠냐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할 수 없이 혼자 기도를 한 다음에 “우리 집에도 당신 같은 식구가 하나 있다”고 말했습니니다. 그러니까 그 지성인이 하는 말이 “그것은 다행한 일이군요. 내 동료가 있어서 기쁩니다. 누군가요? 대학에 다니는 자제분인가요?”하고 묻자 농부가 하는 말이 “아니오, 우리집 돼지 놈들이지요.”라며 하나님께 기도 안하고 밥 먹는 사람은 돼지와 같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기독교인의 의식, 하나님의 종의 의식이 투철한 농부였습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나가기 위하여 하나의 멍에를 메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를 멘 종들입니다. 어떤 이들은 리더의 멍에, 어떤 이들은 순종의 멍에, 어떤 이들은 눈에 보이는 멍에, 어떤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멍에일 뿐입니다. 어떤 멍에이든지 멍에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하나님의 종의 의식이 뚜렷한 자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종의 의식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일에 필요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종의 의식이란 종의 사명의식을 말합니다. 종의 사명 의식이란 말은 “죽도록 충성하는 의식”을 말합니다. 죽도록 충성하고도 “무익한 종”이라는 말만을 할 수밖에 없는 자를 말합니다.☹

2.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13절에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교회는 성령 세례를 받은 지체들의 모임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유대인과 헬라인, 종이나 자유자의 지체들이 모여 절대로 한 몸이 될 수 없습니다.

이어서 12:27절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되었습니다.

지체는 각자가 받은 기능이 있습니다. 각 지체는 자기의 기능을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몸의 지체들은 나는 필요 없다 해도 안 될 것입니다. 나 외에는 다른 지체들은 필요 없다 해도 안 될 것입니다. 몸의 지체들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보이는 지체들은 보이는 곳에서 충실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지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충실해야 합니다. 만일 한 지체가 자기의 구실을 다하지 않거나, 못하게 되면 반드시 몸에 이상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주어진 일이 비록 작고, 적다할지라도 주어진 일에 충실하는 것이 각 지체의 임무입니다. 주어진 일에 충실하지 못하면 오히려 그 지체는 전체의 몸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문에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배나 이를 남겼습니다. 그들은 바로 갔습니다. 순종하는데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주춤거리지 않았습니다. 즉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것으로 장사하였습니다. 그들이 받은 달란트를 활용했습니다. 배나 이를 남겼습니다. 노력한 대가를 얻었습니다.

과자를 굽는 과자집 주인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과자를 직접 구워서 파는데, 손님들은 그 사람의 과자를 사려고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손의 움직임이 얼마나 매끄러운지 과자 굽는 손길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무슨 마술을 보는 듯했습니다.

얼굴엔 항상 평온함이 가득하고, 온 몸짓은 자신감에 넘쳐나서 시무룩하던 이가 그 과자집에 들리면 금새 마음이 바뀌어졌습니다. 그는 일하고 있다기 보다는 아름다운 율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보는이 마다 말했고, 그의 이와 같은 기름칠한 듯한 탱탱한 삶의 모습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다들 궁금해했습니다.

그는 곧잘 말하곤 했습니다. “결코 어제와 같은 과자를 굽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루하루 새 모습으로 살아서, 어제보다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과자에 새겨 넣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그의 과자 굽는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는 일 년에 한두 번 이런 말도 들려주었습니다. “오늘은 기도드리고 싶은 과자가 구워졌어요. 이런 과자를 굽는 것은 1년에 한두 번밖에 없어요. 손님에게 팔기에는 너무 귀한, 하나님께 고이 바쳐서 제사드리고 싶은 과자예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며 사는 삶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받은 달란트대로, 즉시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배의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의 성공의 공식입니다. 맡은 일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은 성경의 원리에서 무엇인가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평가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일에, 하나님의 교회에 보탬이 되어야 합니다. 종들이라는 이름만 가지고는 절대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몸으로 보탬이 되어야 합니다. 재주로 보탬이 되어야 합니다. 물질로 보탬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로 보탬이 되어야 합니다. 관심으로 보탬이 되어야 합니다. 전도로 보탬이 되어야 합니다. 선교로 보탬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을 괜스레 내놓지 않으려고 발부등 칠 필요가 있을까요?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것은 돌아가면서 일하는 기쁨을 나눌 수 있어야 겠지요.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즉시 찾아서 최선을 다할 때에 하나님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십니다.

사회에는 3D 업종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렵고 지저분하며, 생활비가 그리 많지 않은 직업을 말합니다. 내국인들은 기피하는 직업인 동시에 외국인들이 주로 맡아서 종사하게 됩니다.

교회 안에도 5D 사역이 있습니다. 다섯 가지 어렵고도 하기 싫어하는 사역이 있습니다. ①운전 봉사 사역②식당 봉사 사역③보일러 관리 사역 ④전도 심방 사역 ⑤ 기도 구제 사역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역은 돈으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의 생활 철학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하기 싫어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이들이 어쩌면 없어서는 안 될, 하나님의 일에 꼭 필요한 종들이라 하겠습니다.☹

윌리암 케리라고 하면 인도의 선교사로서 크게 성공한 분이며 그를 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높은 존경을 받는 분입니다. 특별히 선교사들에게 있어서는 교과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동시에 언어학자로서 자그만치 34개 국어로 성경을 번역한, 참으로 훌륭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나이 많아진 어느 날 인도를 방문하게 되었을 때, 어느 못되고 교만한 사람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윌리암 케리에게 망신을 좀 주겠다는 심사에서 윌리암 케리가 본래는 수선공이었다는 것을 들추어. “선생님, 선생님은 선교사가 되기 전에는 구두를 만드는 사람이었다면서요.”하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윌리암 케리는 아무런 불만도 없이 싱글 벙글 웃으면서 “아니예요. 선생님이 잘 모르셨습니다. 나는 구두를 만드는 재주는 없었고 구두를 기우고 수선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그렇게 질문한 사람은 몹시 부끄러워지고 말았습니다. 남이 나를 낮게 평가한다고 하여 거기에 맞서 대답할 것이 아닙니다.

문제의 해결은 자기 평가를 보다 낮추는 데에 있습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그보다 한 계단만 더 낮추게 되면 아무런 문제도 없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니라 하고 나오게 되니 여기에 끝없는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최종적인 평가는 하나님만이 바르게 하십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자청하여 한다거나, 남들이 하지 않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는 자들을 위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알아 줄 필요가 있습니다. 높여 줄 필요가 있습니다. 공식기도에 곁들여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험에 들어가면서 서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교회 앞에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교인들도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는 세상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상의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끝맺는 말

주인에게 보탬이 되는 종들에게 주인은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1, 23)라고 칭찬했습니다.

이 성경에서는 우리가 눈여겨 볼 사실이 다음에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인이 “악하고 게으른 종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25:28-29)고 말했습니다. 주인을 위해 작은 일에 충성하여 배나 이를 남긴 자들에게 주인은 본전과 수입 전부를 그들에게서 받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에게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다시 맡겼다는 사실입니다. 게으른 자의 것까지 빼앗아 덤으로 더 주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유익한 종은 하나님께도 보탬이 됩니다. 교회에도 보탬이 됩니다. 자신들에게도 보탬이 됩니다. 이것이 천국의 원리요, 신앙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 꼭 필요한 종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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