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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쌍히 여김을 받으라! (마 14: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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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말

광야에서 천둥소리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던 세례요한의 목이 헤롯의 칼날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늘의 큰 별이 지고 말았습니다. 샛별이 지면은 반드시 태양이 떠오르는 법, 의의 태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서히 갈릴리에서 복음을 증거하시기 시작하셔서 어느덧 그 이름이 갈릴리 전체에 퍼지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이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갈릴리 전도의 말기였습니다. 어쩌면 본문에 나타난 빈들의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갈릴리 전도를 마무리 짓는 축하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천 명을 위해 갈릴리 지역의 빈들에서 식탁을 차린 “초대형 만찬(Super supper) 이벤트”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의 순교 소식을 들으시고, 갈릴리를  조용하게 빠져 나가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조용하게 빠져 나가시는데 실패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보고 소문을 근방에 퍼트려 인근 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이 호수가로 걸어서 몰려 왔습니다. 갈릴리 전도 말기의 이벤트가 갈릴리 호숫가의 빈들에서 벌어졌습니다. 본문의 기적은 많은 따르는 무리들이 만들어 낸 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인생은 누구나 따지고 보면 불쌍합니다.

인간(human being)은 동물적인 면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느 동물과 다른 점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데 있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역사 이래 내로라하는 많은 현자들이 인간을 논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인간을 정확하게 논하지는 못했습니다.

어떤 랍비가 회당에 가는 도중에 로마 공작을 만났습니다. 공작이 거드름을 피우며 “어디 가나?”라고 물었습니다. 랍비는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공작은 건방진 랍비라고 감옥에 넣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때 랍비가 “내 말은 틀리지 않았는데요. 나는 오늘 아침 일어나 감옥에 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요. 내가 어디로 갈지 모른다고 대답한 것이 틀린 말인가요?”라고 반문했다고 합니다.

인생(human life)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희로애락의 모든 생활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인생살이를 말합니다.

Edmund Burke는 “현대인들의 불평의 원인에 대한 고찰”에서 인간은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하여 불평하고, 현제의 권력자들에 대하여 수군거리고, 과거를 탄식하며, 미래에 터무니없는 기대를 걸어 놓는 것 등은 거의 모든 인류가 가지고 있는 공통된 성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이사야 40:6-7절에서 “①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이까 가로되  ②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③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④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사야가 외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①모든 인간은 풀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풀은 아침에 무성하지만 오후에는 벤바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②인간의 모든 아름다움은 풀의 꽃과 같다는 겁니다. 풀의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하루, 이틀, 사흘을 넘기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③하나님의 기운으로 말미암아 곧 시들어 버리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겁니다.

이사야 41:14절에서는 인간을 지렁이로 비유하셨습니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든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욥25:5-6)고 탄식했습니다. 

최근에 전북 지방에서 번지는 AI(동물독감)의 위험함을 우리는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발병지에서 사방 500m내의 동물들을 매몰 처분하다가 지금은 사방 2km정도 내의 모든 가축을 생매장 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철모르는 수천마리의 병아리들이 주인을 따르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생매장 당하는 가축들은 어차피 며칠 후에는 죽을 목숨들이지만 그 가축들을 기르며, 거기에 희망을 품고 사업을 하던 축산업자들은 참으로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될 겁니다. 축사 안에서 망연자실하는 축산 농민들을 볼 때에 인생의 씁쓸한 맛을 느끼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매장당하는 가축들이나, 공동묘지에 장사되는 인간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단지 다르다면 인간의 영혼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이 동물보다 더 불쌍한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이 동물같이 살수도 없고, 동물과 다르게 살려고 하니 인생이 고달파 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인간의 삶은 세상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에 더 괴로운지도 모릅니다.

2. 주님의 긍휼이 필요 합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여자에게서 받아먹은 후 그는 하나님께 종신형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아담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뽑아내고, 이마에 땀을 흘리며 죗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죽어야 했습니다.

아담이후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벌에 대한 복역(징역살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한 것은 “영원형”이 아니라“종신형”이라는 겁니다. 영원형을 면한 것은 “여인의 후손인 메시아, 즉 그리스도”가 대신하여 형을 자청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 이사야40:1-2절에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유다는 우상숭배와 하나님의 말씀의 불복종 죄로 바벨론에서 “70년 종살이”의 형을 받았습니다. 70년의 종살이가 끝난 후 그들의 죄는 사함을 받았습니다.

오늘도 전 세계의 수십억의 인간들은 하나님이 선고하신 종신형의 징역살이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살이는 징역살이입니다. 그 징역살이를 어떤 이들은 소망없이 살아 갑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 갑니다.

어떻던 인간은 불쌍한 존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불쌍한 존재에 필요한 것은 긍휼입니다. 인간의 긍휼은 상대적인 긍휼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어제의 긍휼이 오늘에 미움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긍휼이 내일에 중단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11: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하나님의 형을 받아 “징역살이”의 복역을 하며 고생하는 자들에게 예수님께로 나오라고 초청을 하셨습니다.

성경 말씀 마14:14절에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병자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overcome with pity, 불쌍히 여김으로 압도되어) 그들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긍휼과 자비로 압도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은혜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한 번연의 “천로역정, Pilgrims progress”라는 책을 보면은 천성을 향해 가는 기독도가 무거운 짐을 지고 쓰러지고,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십자가의 언덕까지 올라갔습니다. 십자가를 붙잡는 순간 등에 매달려있던 무거운 짐이 언덕 아래로 떼굴떼굴 굴러갔습니다. 그때부터 달리기도하고, 뛰기도 하고, 걷기도 했습니다.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자비, 주님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자면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말씀하셨습니다.

3. 빈들에서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바벨론에서 징역살이를 살아갈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메시지가 선포되었습니다.

성경 이사야 40:18-20절에 “①내가 자산에 강을 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②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나무와 화석류와 들 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③무리가 그것을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은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창조한 바인 줄 알며 헤아리며 깨달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한 작고 예쁜 빵 가게가 있었습니다. 10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며 모은 돈으로 겨우 가게를 장만한 주인은 진열장의 빵만 보고 있어도 배가 불렀고, 손님이 많은 날은 행복한 미소가 입가를 떠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가게 진열장에서 빵이 한 봉지, 두 봉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다. 분명히 많이 남았었는데....” 이상한 일이었지만 주인은 잘못 헤아렸거나 이미 팔고도 기억을 못하는 것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의문의 빵 실종 사건은 매일 되풀이 됐습니다. 대체 누구 짓인지 범인을 잡기로 한 주인은 촉각을 곧추세우고 빵 가게에 드나드는 사람을 일일이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의 그 감시망에 걸려든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의 열 살배기 딸아이였습니다. 학원가는 길에 가게에 들른 아이가 엄마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슬그머니 빵을 집어넣는 것이었습니다.  “아니..세상에....” 다음날도 그리도 그 다음날도 아이의 빵 훔치기는 계속됐습니다.

먹고 싶다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빵을 굳이 몰래 가져가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한 주인은 그날도 빵 두 봉지를 가방에 슬쩍 집어넣고 나가는 딸아이의 뒤를 밟아 보기로 했습니다. 한동안 뒤를 따라가던 주인을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아니 제가?” 딸아이가 멈춰선 곳은 미술학원 앞 지하도 입구였습니다. 딸아이는 그곳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소년 앞에 빵 봉지를 내밀었습니다. “고마워. 내 동생은 이 빵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대.”  딸아이는 불쌍한 소년을 위해 날마다 빵을 건네주었던 것입니다.  “휴, 그럼 그렇지”...

딸의 모습을 몰래 지켜본 아버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아예 딸아이가 가져갈 두 봉지의 빵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언제든 가져갈 수 있게 말입니다.

이사야 성경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예수님이 친히 빈들에서 실현해 보이셨습니다. 수천 명이 예수님께로 나와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곳은 빈들이었고, 때는 이미 저물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을 마을로 보내어 음식을 사먹게 하자고 건의했습니다. 그러나 마을로 들어간들 시골 마을에서 갑자기 들이닥치는 수천 명을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게다가 저녁 사먹을 돈을 가지고 온 자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갈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시니 제자들이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마14:17)라고 대답했습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하시고 무리들을 잔디위에 앉히시고 하늘을 향하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습니다. 남자들이 약 5.000명 정도였고, 아이들도, 여자들도 배불리 먹었습니다.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습니다.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시면 육신의 의식주 문제, 우환질고 문제, 영혼 구원과 영생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목적 있는 기적이었습니다.

끝맺는 말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습니다. 회남자(淮南子)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고사 성어입니다. 북방의 변방에 사는 새옹노인이 말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기르든 말이 집을 나가는 경우도 있었고, 집을 나간 말이 준마를 데리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새옹의 아들이 말을 타다가 떨어져 절름발이가 되는 일도 있었고, 절룸발이가 되어 전장에 나가지 못해 살아남게 되는 일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28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문둥병자에게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마8:3)고 말씀하셨고, 백부장의 하인에게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마8:7)고 말씀하셨습니다.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마9:2,6)고 말씀하셨고, 혈루증 여인에게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도다”(마9:22)라고 말씀하셨으며, 두 소경에게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9:29)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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