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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거장 화가인 미켈란젤로가 씨스틴 채플의 그 천장 벽화 프레스코를 거의 완성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작품은 이제 끝난 것으로 보여 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천장을 향해서 마지막 그 finish 터치를 위한 손질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도왔던 조수들 가운데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이젠 끝나지 않으셨습니까?" "자네 눈에는 끝난 것으로 보이는가? 내 눈에는 아직 끝나지 않았네" 그리고 몇 달을 더 그는 계속해서 이 작품에 매달렸습니다. 마침내 작업은 완전히 마쳐진 것으로 판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작업 도구를 치우지 않고 계속 천장을 응시하면서 그 장소를 맴돌았습니다. 다시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선생님 이제는 정말 다 끝나지 않았습니까? 그때 미켈란젤로는 이 런 유명한 대답을 남겼습니다. "내 눈에는 끝났는데 주님 보시기에는 어떨지 모르지"

우리 역시 12월을 맞는 첫 주, 저와 여러분의 삶이 "주님 보시기에는 어떨지" 생각하는 시간을 진지하게 가져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우리의 일생을 결산하는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라도 우리는 지나온 시절을 종종 되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지막 후회 없는 결산을 위한 일종의 중간 결산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작업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자! 그런데 인생을 결산할 때 중요한 질문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의 관점에서 내 인생을 평가해야 하느냐 인 것입니다. 누구의 관점에서 인생을 평가해야 할 것이냐는 물음입니다.

1세기의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성도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체험했고 또 성령의 풍성한 은사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는 자라지 못했고 그 사회 속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끝없는 분열과 불화가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일이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자기들의 인생에 대한 '냉정한 결산'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메시지를 씁니다. 자! 고린도 교인들에게 필요했던 인생의 중간 결산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인생이 지금 결산되어야 한다면 어떤 관점에서 저와 여러분의 인생은 결산될 수가 있을까요? 먼저, 바울 사도는 자기의 관점에서 본 결산,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자 3절에 보시면요 바울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이것은 자기의 인생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겠다는 그런 선언이 아닙니다. 판단은 필요한데, 나의 관점에서만 본 나에 대한 판단 그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언제나 극단적인 두 개의 경향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의 극단은 자학입니다. 자기 학대입니다. 이것은 지나친 과도한 자기 비판의 결과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의 한 갤럽기관이 미국사람 들을 대상으로 이런 조사를 했습니다. 이 조사의 중요한 설문 중의 하나가 '당신은 당신의 외모에 대해서 만족하십니까?' 그랬더니 남자들 중 28%가 만족한다고 했습니다. 여자들은 얼마나 될까요? 남자보다 많을까요, 적을까요? 네, 13%가 자기 외모에 만족한다는 대답을 여자분들이 했습니다. 그 다음에 이어서 바꿀 수 있다면 당신의 외모를 바꾸겠는가? 남자들이 94% 여자분들이 99%라는 통계가 나왔어요. 통계가 시사하는 바는 뭡니까? 오늘 이 땅에 살고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의 외모를 포함해서 자기 인생, 자기존재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고 살고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지나치다 보면, 병적인 열등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자기 학대를 낳습니다. 그리고 자기학대는 자기인생을 파괴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런 시각으로 인생을 바라 볼 때 모든 것이 부정적일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극단적인 자기 판단이 있다면 그것은 교만입니다. 이 교만은 지나치게 과도한 자기 사랑의 결과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흔히 이런 판단 속에 빠지는 사람들은 자기가 굉장히 이상적인 인간인 것처럼 판단하고 착각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판단 속에 빠진 사람은 자기 인생에 개선이 불가능해요 성숙이 불가능합니다. 자기 약점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앞에 정직하게 직면해 보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잘못이나 결점을 고치면서 발전해 나갈 수가 없잖아요 이런 사람일수록 이웃에 눈에 있는 티를 보는 일에는 민감하지만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사람일 수가 있습니다. 이 사람 절대로 발전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15세기의 설교자중에 사보나롤라라는 교만을 정의하기를 교만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만이 즐길 수 있는 병이다. 아주 재미있는 말이예요.

바울 사도는 이런 자기 판단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이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4절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노라" 이 말은 "내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자책할 어떤 것을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의롭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내가 아무리 정의롭다고 스스로 주장해도 그것으로 내가 의롭다는 마지막 판단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주관적 판단의 오류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인생의 판단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관점에서만 나를 판단하는 것, 그것은 매우 위험할 수기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의 관점에서 본 내 인생의 결산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자! 그렇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어떤 관점에서 내 인생은 판단되어야 마땅할까요? 4절 하반절을 보면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누가 나를 판단해야 마땅합니까? 주님이십니다. 내 삶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신 바로 그 분, 나를 창조하신 그 분, 내가 아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그분이, 머리털 하나까지도 세시는 그 분이, 나의 신음 마져도 응답하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이야말로 가장 완벽하게 그리고 가장 정확하게 그리고 가장 공정하게 나를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판단하시는 줄 아십니까? 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여러분, 주님이 주님의 자녀들을 판단하실 때 그 의도는 처벌에 있지 않습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를 판단하실 때 그분의 마지막 의도는 처벌이 아니예요. 우리를 처벌하기 위해서 내 마음의 동기를 살피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대한 파괴적인 판단, 파괴적인 비판, 그 정죄, 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이미 그 심판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 함이 없느니라 믿으십니까?

요한 복음 5장 24절에 보시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자 내 말을 듣고 그 다음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세 가지 약속이 있는데 첫째는 뭐에요? '영생을 얻었고' 그렇습니다.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은 모든 사람들 영원한 생명을 이미 얻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약속은 뭐에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그렇습니다.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 결코 주님이 그들을 마지막 형벌의 자리에 던지지 않습니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판단은 뭘까요? 마지막 주께서 주의 자녀들을 판단하실 때 그 판단의 동기는 칭찬에 있습니다. '칭찬할 것 없나?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녀들을 키울 때도 칭찬할 걸 좀 찾아 보셔야 되요. 어떻게 보면, 속상하죠? 화를 내고 싶고, 그냥 야단 칠 것만 보이죠? 그러나 칭찬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칭찬할 만한 뭐가 없을까? 칭찬을 찾고 계신 주님, 그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의도를 읽을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분의 마지막 판단의 의도, 칭찬에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일관성 있는 성경의 가르침가운데 하나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에 보시면 "너의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다시 말하면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세 가지 약속을 하셨어요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 주의 백성들에게 세 가지를 주고 싶어하십니다. 첫째가 뭡니까? 칭찬이고 두 번째는 영광이고 세 번째는 존귀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칭찬하고 싶어하십니다.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고 싶어하세요. 우리를 존귀케 하고 싶어하시는 주님, 그래서 그 분은 우리의 삶 속에 칭찬할 거리를 찾고 계십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그때 주님 앞에 서서 우리가 칭찬 받으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주께서 우리의 삶을 칭찬하실 때에 칭찬할 만한 가장 중요한 quality(요소)는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충성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자 본문의 2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여기 '맡은 자'라는 말은 참 황송한 단어입니다. 이는 우리가 자격이 되어서, 완벽해서 주님의 일을 맡은 것이 아닙니다. 부족하지만, 연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끌어 앉으시고 일을 맡기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전 15:9절에서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라" 고 고백합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 볼 때, 도무지 하나님의 일을 맡을 수가 없는 과거를 가진 자입니다. 그는 믿는 자들을 옥에 가두고 고문을 하였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모독하는 말을 시켰으며, 심지어 그들을 죽이기까지 한 무서운 핍박자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죄가 많아서 사도될 자격이 없으며, 감히 사도의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아무것도 문제로 삼지 않으시고 그를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뭐,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역시 바울처럼 전과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대부분은 예수를 믿기 전에 무슨 방법으로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핍박하던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까? 때로는 하늘 꼭대기까지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향해 주먹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도 이런 죄, 저런 죄를 지으면서 성령을 근심시키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탓하지 않으시고, 죄도 죄대로 갚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못남을 그대로 다루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따지기를 원하셨다면 오늘의 우리가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건강, 몸담고 있는 가정, 그리고 생업을 돌아보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 이상으로 대우하셨지 결코 그 이하로 대우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 이상의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이런 표현이 어울리지 않습니까?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파격적인 은혜를 입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인정하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귀한 직분까지 맡겨 주셨는데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2절을 다시 봅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여기 충성이라는 이 단어는 '피스토스'라는 헬라어로, 직역하면 '믿다', '옳게 여기다', '신실하다', '충실하다' 더 나아가 '순교의 뜻'까지 담고 있는 단어가 충성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있기 때문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충성하는 사람은 진실한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을 위해 죽기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놓는 인생만이 충성을 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그 일이 큰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영국의 설교가 존 버니언은 "심판의 날에 모든 사람들은 마지막 심판을 당한다. 사람들은 심판의 날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열매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 날에는 '너는 믿었느냐? 믿지 아니하였느냐?' 하는 것으로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너는 충성했느냐? 실천했느냐? 아니면 실천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한가지 더 묻고 싶습니다. 이 시간! 주님이 나에게 무엇을 맡겨 주셨기에 이토록 충성을 원하시고 계십니까? 본문에서 주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특별히 한 가지 맡겨주신 것에 대한 충성을 특별히 주님은 주목하십니다. 무엇일까요? 1절 우리 다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중요한 것, 비싼 물건, 보석이나 큰돈을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부부간에도 귀한 것을 맡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비밀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이것은 불신자에겐 주시지 않은 거에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만 주의 백성들에게만 그리스도의 일군들에게만 맡겨주신 중요한 것 하나가 있습니다. 뭐라고 말했습니까? 1절에 '하나님의 비밀'을 맡겨 주셨다' 하나님의 비밀' 'mystery'라고 되어 있는데 이 비밀이 뭘까요? 바울 서신에 보면 바울이 자주 이 비밀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넓은 의미에서 이 하나님의 비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변화 시켜주시고 우리에게 소망을 주었던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었어요 얼마나 이 말씀을 붙들고 사셨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좁은 의미에서는 이 하나님의 말씀가운데서 '십자가의 복음'을 비밀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자기가 사랑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피를 토하듯 외칩니다. 누구보다 힘들었던 시절에 거대한 신상이 들어서 있고, 우상이 듫끓는 도시 한 복판에 세워진 이 교회는 성령의 은사들을 추구하는 남다른 열정을 가진 교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영적으로 자라나지 못한 성도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향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준 비밀 이 복음을 위해 직분도 주시고 은사도 주시지 않았습니까?" 이제 우리가 아직도 유치한 수준에 머물러 있지 말고 주님이 결산할 그 날을 바라보며 복음을 위해 살아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알고 나서부터 전력을 다해 주님을 위해서 일한 사람입니다. 자기를 일꾼 삼으신 그 사랑을 깨달은 그 날부터 변함없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인생을 바칩니다. 그는 고후11:23절과 12:10절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과 능욕과 궁핍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라고 실토합니다. 주님을 위해 이 정도의 헌신한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자기 공로를 내세울 만도 한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도 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겸손하게 고백하며 자신의 삶을 주님을 위해서 아낌없이 드립니다. 그리고 그가 단 한마디 자랑했던 것, 그것은 "자신의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고백합니다. 고달픈 인생이었으나 믿음의 관점으로 회고해 볼 때 불행이나 실패한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달려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이제는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고난과 괴로움 가득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 오히려 승리한 사람에게만 주는 면류관을 기대하고 있다면, 인생을 살피는 우리 자신들의 관점을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1968년 멕시코 시티에서 벌어진 하계 올림픽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올림픽의 꽃이라고 일컬어지는 마라톤 경기가 열렸는데 1등한 선수를 비롯해서 모든 선수들이 다 결승선까지 들어 왔습니다. 우승한 선수들에게 메달을 달아 준 시상식이 끝난 지 한 시간이 지났고 대부분의 관중들 역시 자리를 떴습니다. 드디어 메인 스타디움의 불도 다 꺼지고 스타디움은 썰렁하기만 했습니다. 이 때 한 선수가 한쪽 다리에 피가 흥건한 채 다리를 질질 끌면서 스타디움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탄자니아의 36살 먹은 선수 '잔 스태픈 아크와리'였습니다. 아크와리 선수는 무릎과 발목에 심한 부상을 입어서 도저히 경기를 끝낼 수 없는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완주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기자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 경기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뛰셨습니까?" 아크와리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하고 분명했습니다. "내 조국은 경기를 시작하라고 나를 멕시코 시티에 보낸 것이 아니라 끝내라고 보냈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하든지 끝까지 하는 사람이 위대합니다. 용두사미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처음과 중간에 아무리 잘해도 끝이 좋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환난과 핍박을 견디어 내고 끝까지 잘해서 최후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아침! 묻습니다. 이 한해 주님이 나에게 맡기운 것이 무엇입니까? 만약 오늘이 나의 결산을 해야 할 때라면 그 앞에 당당하게 나는 이렇게 충성했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다시 말씀드립니다. 아직은 자랑도, 후회도 할 때가 아닙니다. 다만, 충성 할 때입니다. 여러분, 성령을 받고 성령의 사람이 되면, 어떤 환경에서도 충성합니다. 비록 내 손에 물맷돌 하나, 마른 막대기 같은 보잘 것이 없는 것이 들려져 있어도 괞찮습니다. 우리가 아직 건강하고 힘이 있을 때,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수고하게 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세상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평생을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허망한 일에 모든 것을 털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작은 일조차 하나님 나라의 곳간에 쌓여지는 알곡이요 우리의 면류관에 달릴 보석들입니다. 비록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작은 일에 쓰임 받을찌라도 그것은 영원히 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올 한해가 빠르게 지나간 것처럼 인생이 그렇게 빠르게 지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다 살고 창조주 하나님 그리고 심판주이신 하나님 앞에 서서 인생을 결산할 때 주께서 후회 없는 인생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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