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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힘대로 (행 11: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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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한 해를 돌아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우리의 삶에도 좋은 때가 있는 반면 어려운 때도 있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런 저런 병에 걸려 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또 평안하게 지낼 때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밤이 되면 잠을 청하게 됩니다. 어느 날은 눕기가 무섭게 잠이 들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한참이 지나도 잠이 들지 않아 뒤척거릴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한번 잠들면 아침까지 세상모르고 잠잘 때도 있지만 어떤 날은 얼마 자지 못하고 다시 잠이 깰 때도 있습니다. 맑을 때가 있고 비올 때가 있듯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변함없는 주님의 은혜가 가운데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 감사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앞에 펼쳐진 어둠의 그림자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힘들게 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어찌 힘들지 않겠습니까? 어찌 고통스럽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함께 하는 사랑은 더욱 값진 것입니다. 오늘은 어려움을 당할 때 힘을 합쳐 함께 극복하는 초대교회의 사랑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언제든 우리들 앞에 닥쳐오는 고난의 날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 살아가면서 좋은 날만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고난의 날만이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처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지으신 다음 사람을 빚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허락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어려움이 생겼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의 모든 것을 다 허락하셨지만 오직 한 가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금하신 그 한 가지조차도 포기하지를 못했습니다.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건만 죽음의 굴레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의 욕망은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난의 여정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욕심으로부터 생겨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여전히 복된 소망의 길을 열어 보여주시며 말씀을 따라 순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 말씀대로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치 않는 자에게 임하는 고난의 여정이 닥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성령 안에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 끝까지 이르도록 증인이 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랐다면 마땅히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흩어졌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냥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다가 스데반의 순교로부터 시작하여 그 호된 핍박을 당했지를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도들과 그 무리들은 누구란 말입니까? 그런데 흩어진 무리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여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지고 특히 안디옥에서는 그리스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 들여 성령이 그들 가운데도 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그곳에 파견했습니다. 안디옥에 도착한 바나바는 그곳에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를 보고 얼마나 기뻤던지 주님이 마지막 주신 말씀처럼 그들을 말씀으로 잘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 제자를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을 다소까지 가서 데려다가 말씀을 가르쳤더니 말씀으로 양육 받은 사람들이 드디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에 있던 예언자 몇 사람이 안디옥으로 오게 됩니다. 그들은 아마도 안디옥에 일어나고 있는 복음의 역사에 대해 듣고 자기들도 안디옥교회에 합류하여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동참하기를 원했던 것이요 그만큼 예루살렘 교회의 형편이 어렵기도 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안디옥 교회에 합류한 예언자 다시 말해서 말씀의 증거자 중에 아가보라고 하는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말씀을 전하는 중에 앞으로 온 세상에 큰 기근이 닥칠 것이라고 선포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글라우디오가 황제가 되었을 때에 기근이 발생하게 됩니다. 여기서 먼저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가 항상 성령으로 충만해서 살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을 미리 알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꿈을 통해 앞날을 알려주셨는데 그것을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요셉이 해석을 해줍니다. 다니엘 역시 성령으로 충만해서 느브갓네살이 꾼 꿈을 전해 듣고는 앞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충만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닥칠 어려움들을 미리 알려주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을 당하고 난 다음에야 아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알려주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런 저런 모양으로 알려주시지만 우리가 그 하나님의 음성과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깨닫지 못하느냐 하면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보여주시고 알려주시는 뜻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이미 주신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될 때 당하게 될 어려움들을 알려주십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말씀으로 돌이켜 바로 살도록 권면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는 말씀의 사역자들과 주의 종들의 권면을 통해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경고를 주십니다. 아니면 우리 주위에 펼쳐지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통해서 알려주시기도 하고 우리 마음의 소리를 통해서 우리를 깨우쳐 주시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미리 알려주시는 것을 깨닫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라도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분들은 자기에게 닥친 그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밝히 분별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요 그래서 이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 자유함을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어려움이라고 하는 것은 힘들게만 느낄 것은 아닙니다. 그 어려움으로 인해서 우리는 좀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이 있기에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사모하게 됩니다. 더욱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되고 우리의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을 돌아보며 바로 세워나가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가운데 우리의 어려운 사정을 주님께 아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어려움으로부터 복된 삶으로 바꾸시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못하고 있다면 이보다 어리석은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들에게 닥치는 어려움과 고난의 날들을 생각한다면 그래서 어떤 사고를 당한다든가 물질적으로 힘들고 지쳐있다든가 아니면 육신의 고통을 당한다든가 우리의 계획하고 이루고자 하는 일들이 어긋날 때 우리는 빨리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어야 하고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자녀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멸하시려고 하는 분이 아니라 복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시고 계십니다. 내가 간절히 복 받고자 하는 마음보다도 나에게 복 주시기를 주님이 더 원하시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러기에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깨어 주님 앞에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복 받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잘 살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이 더 내가 잘 살기를 원하신단 말입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살라고 하십니다.

아가보를 통해서 온 세상에 큰 기근이 있으리라고 하신 것은 그 기근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호되게 당하여 보라는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요셉을 통해 기근을 대비하도록 하신 것처럼 노아를 통해 홍수의 때를 준비하라고 하신 것처럼 미리 알려주시는 것은 고난의 때를 견딜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깨어 준비한 사람만이 그 고난의 때에 힘들지 않게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서 오히려 고난의 날에 더욱 복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웃의 어려움을 보고 들을 때 우리는 힘대로 도와야 합니다.

아가보가 선포한 대로 큰 기근이 닥쳐왔을 때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들은 자기 형편대로 헌금하여 유대에 사는 형제들을 돕기로 결정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돈을 모아서 바나바와 사울 편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의 장로들에게 보냅니다. 온 세상에 임한 큰 기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안디옥에는 기근이 없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자기들도 기근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리 준비한 그들에게는 오히려 기근의 때를 이기고 나갈 힘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자기들의 형편대로 헌금하여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유대에 사는 형제들을 돕기로 결정하였다고 했습니다.

누가 이렇게 도울 수가 있습니까? 준비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말씀으로 양육 받아 은혜로 충만하였기에 언제든지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풍족하다고 해도 돕고자 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도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제와 선교가 그냥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는 마음으로 준비된 사람 다시 말해서 은혜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이렇게 도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지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아 은혜 아래 사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주님께서 감동하실 때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향남교회를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따라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재정의 50%를 나눌 수 있는 것도 그리고 또다시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는 것도 바로 우리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감동하심대로 순종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순종하기에 하나님께서 향남교회와 모든 성도들을 복된 길로 계속해서 인도하고 계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잠언 19장 17절은 “가난한 자에게 베푸는 일은 여호와께 빌려 드리는 것이니, 그분이 후하게 보상하신다.”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히브리서 13장 16절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는 일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것을 서로 나누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입니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구제와 선교야 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후하게 보상해 주신다고 한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구제와 선교에 힘쓰는 향남교회와 온 성도들을 복 주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가운데 아직도 어려움 속에 살아가는 분들이 계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마음에 주시는 감동하심대로 어려움 당하는 형제들을 돕는 일에 힘을 합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 어려움 당하는 이웃이 있는 것을 보고 듣게 될 때 그때야 말로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후하게 보상해 주시기 위해서 그 사실을 알게 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땅히 어려움 당하는 이웃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가 있습니까? 형편대로 돕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헌금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후하게 보상하신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럴만한 형편이 못된다고 하시겠습니까? 극한 가난 가운데서도 형제들을 돕기 위한 연보를 했던 마게도냐 교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나도 어려운데 하나님이 도우라고 하시는 것은 나로 하여금 어려움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후하게 보상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이 세상에서 100배로 갚아주실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작은 것으로 도와도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100배로 갚아주신다고 했으니 이보다 더 신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물질로 돕는 것으로 내 할 일을 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기도로 도와야 합니다. 병상의 친구나 이웃들을 위해서 우리는 축복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그들을 직접 찾아서 위로도 하고 격려도 하여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내게 건강도 주시고 평안도 주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살아가기가 너무도 힘든 분들이 계십니까? 먼저 하나님 앞에 힘써 엎드리십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십시오. 그리고 내 작은 것이나마 힘을 다해 나처럼 어려운 사람들 또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기억하여 그들을 힘써 도우며 또한 축복하도록 하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100배로 나에게 갚아 주심으로 말미암아 나의 형편을 바꾸어 풍족한 삶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 교회의 정성을 다한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교회까지 가서 장로들에게 전달합니다. 지금 그들이 안디옥 교회에서 하던 일이 무엇입니까? 성도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로서 마땅히 이 심부름은 다른 성도들에게 부탁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들은 직접 이것을 가지고 예루살렘까지 찾아갑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귀찮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안디옥 교회에서 할 일이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들입니다. 성도들을 가르치는 일만도 벅찰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기꺼이 이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어려운 때 돈을 가지고 여행한다고 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언제 강도를 만날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가까운 길도 아닙니다. 안디옥으로부터 예루살렘까지의 길은 상당히 험하고 먼 길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기쁨으로 이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누가 참된 지도자입니까? 이렇게 앞장서서 섬기는 사람입니다. 누가 참된 하나님의 일꾼입니까? 이렇듯 모든 일에 본보기가 되는 사람입니다. 나중 바나바와 사울이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최초의 선교사로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저들이 이렇듯 먼저 섬길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복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삼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어떤 직임을 맡기십니다. 우리들에게 어떤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복 주시고자 해서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나를 힘들게 또는 귀찮게 하기 위해서 일을 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도 나를 복 주시고자 원하시기에 그 하나님의 뜻대로 나를 복 주시고자 하여 나로 하여금 어떤 직분을 맡겨 일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내게 맡겨주신다고 할 때 나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라고 할 때 기쁨으로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곧 복 받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새롭게 이런 저런 직분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기실 터인데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놀랍도록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 되도록 어떤 일을 맡겨주시든지 기쁨으로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어려움 당하는 이웃들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시는 이유는 그들을 돕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100배로 후히 갚아주시고자 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기쁨으로 어려움 당하는 이웃들을 돕고 그들과 마음으로 함께 하는 이 일에 동참하는 우리 모두가 되심으로 놀랍도록 갚아주시는 하나님의 상급을 다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홍인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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