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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 예수께 받은 사명 (행 20: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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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번 따라합시다. “일어나서 빛을 발하자” 한번 더 합시다. “일어나서 빛을 발하자.”
이번 ‘소망과 회복의 전도 축제’에 귀한 말씀이 되겠는데 오늘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벌써 12월 첫째 주일입니다. 2006년 한해도 한 달 남았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누군가가 이렇게 질문을 해봅니다. 지금까지 열한달 동안 무엇을 위해서 살았습니까? 우리에게 삶의 이유와 목적을 묻는다면 어떻게 분명하게 대답할 것이 있습니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뭔가 성공을 위해서 몸부림치며 열심히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왔는가를 진지하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핸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노예해방운동에 헌신했던 분이 있습니다. 그는 노예법에 항의하는 방법으로 세금불납운동을 펴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의 친구는 랄프 월드 애머슨으로 유명한 사상가요 교육학자입니다. 이분이 친구 소로를 방문했습니다. 철장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애머슨이 농담조로 말을 걸었습니다. “자네 그 속에 들어 앉아 무엇하고 있는가?” 이 때 소로가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자네는 그 밖에서 무엇하고 있는가?” 이 말에 애머슨은 크게 가책을 받고 반성을 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사도바울은 자신의 삶의 목적을 너무나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지금 삼년동안 에베소 교회를 세워서 사역하다가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장차 로마로 가기 위해서 우선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 도중에 밀레도라는 도시에 잠시 머물게 되었습니다.
밀레도는 에베소와 가까운 도시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작별을 고하기 위해서 자신이 세워던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밀레도로 오게 합니다. 장로님 여러분이 밀레도에 와서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를 떠나면서 장로님들에게 교회의 안위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흉악한 이리들이 교회에 들어올 수 있는데 장로님들이 이런 이리들에게 잘 대처하고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라고 권면하는 것이 오늘 20장 내용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그 권면 중의 일부분입니다. 22절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심령에 매임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나를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지만 거기에서 어떤 일을 만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2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여러성을 거쳐서 가는데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바울선생님, 지금 당신이 예루살렘으로 가면 큰 환난을 받게 됩니다. 목숨이 위태롭게 됩니다.” 그러면서 많이 만류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4절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너무 귀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거기 가서 죽을지도 모르고 감옥에 갇히게 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사람이다. 복음 전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인데 이 사명을 이루는 일이라면 나는 이미 목숨을 내어 놓았다. 나의 생명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참으로 사명에 붙들린 사람다운 바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명에 붙들려 사는 사람이 얼마나 귀한 사람인가를 오늘 깨달아야 됩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 이후로 일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입니다. 역사를 바꾼 사람이 바울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있었느냐 하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붙들린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주예수께서 내게 주신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노라. 이것이 바울의 고백입니다. 이 한 가지 가슴 때문에 그는 위대한 생애를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이 예수님 다음으로 이렇게 영향을 끼치는 주의 종이 된 것은 바로 사명감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 사명을 마치기위해서라면 자기의 목숨도 내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명의 푯대를 향해서 끊임없이 달려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아름답고 찬란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일생을 승리할 수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서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 즉 저와 여러분들이 자기의 사명을 알고 사명을 위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을 위해서 사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 사명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인가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사명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입니까!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내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사명을 위해서 지금 얼마나 열심히 달음박질을 하고 계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간에게 사명만큼 귀한 것이 없습니다. 사명은 곧 생명입니다. 여러분 삶에서 사명을 뚝 떼어버리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존귀함은 사라집니다. 그저 동물적으로, 먹고 살다가 그냥 가는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명없이 사는 것은 죽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개의 사명이 뭡니까? 도적이 들어오면 짖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서운 도적이 들면 어떻습니까? 꼬리를 살살 치면서 가만히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도적을 당합니다. 그 개는 있으나 마나한 개입니다. 보신탕 감입니다. 그런데 목숨을 걸고 달려가서 짖어대고 달려들면 그 개는 정말 가치있는 개입니다.

시계의 사명이 뭡니까? 필요할 때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 시계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시계를 보는데 새벽 4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뭐라고 말합니까? “이 시계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시계가 멈추면 “밥주라”고 합니다. 시계가 제 시간을 알려주지 못하면 그 가치가 없다고 해서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이 가치를 못하면 살아있어도 죽은 것과 일반입니다. 죽은 인생입니다. 각 사람은 누구에게나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게서 의미없이 목적없이 여러분을 창조하지 않으셨고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명이 있어서 지으시고 구원해 주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존귀합니까? 에베소서 2장 10절에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걸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나를 통하여 이루시기 위해서 나를 지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따라합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뭐하기 위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구원의 길을 완성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며 아버지께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다 이루었다.” 뭘 다 이루었다는 겁니까?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신 일들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명을 완수하신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우리 각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바울이 거듭난 뒤에 제일 먼저 한 말이 뭡니까?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따라해 봅시다.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내가 할 일이 뭔가? 교회를 핍박하고 주님을 핍박하던 나를 왜 구원해 주셨습니까?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이 뭡니까? 그걸 물었다는 것입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나의 사명이 뭐냐는 겁니다. 아직 사명을 모르신다면 그것을 위해 주님께 기도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사명이 뭡니까?

사업하는 사람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돈버는 것만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왜 내가 돈을 벌어야 하는지를 알고 열심히 사업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그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도 자기의 명예와 권력을 위해서 정치를 해서는 안됩니다. 사명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명예와 권력을 위해서 정치무대에 나섭니다. 자기가 유명해지고 자기 인기를 위해서 정치무대에 나서서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줍니다.
그러나 사명이 바르게 된 정치인은 어떻게 합니까? 오로지 그 사명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정치가로 세워주신 그 사명을 위해서 자기 목숨하나를 던지는 겁니다.

링컨과 같은 정치가가 우리나라에도 일어나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하세요. 그분은 자기 몸 하나 던져서 미합중국이 하나가 되고, 노예가 해방되고, 이 나라가 하나님을 잘 섬겨서 복된 나라로 만드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새벽마다 일어나서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사명을 가진 정치가는 다릅니다.
미국의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가 말하기를 “상속은 자식들의 재능과 에너지를 망치는 것이다. 저 세상으로 돈을 가지고 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카네기가 죽을 때까지 4억 9천 2백만달러의 재산으로 삼천개의 도서관을 건립했고, 8천여대의 오르간을 교회와 학교에 기증했고, 코넬대학을 비롯한 여러 사회단체에 기부를 해서 미국 사회의 기초를 든든하게 했습니다. 사명을 가진 재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 재벌들 중에 이런 사람이 몇 명만 나와도 이 나라의 대학들, 이 나라의 젊은이들, 이나라가 얼마나 좋은 나라가 되는지 모릅니다. 사명감을 가진 지도자가 나오게 하옵소서.
가정용품 유통업체인 홈 디포사를 공동 창업한 카네스 랑군이라는 사람은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면서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부는 거름과 같아서 쌓아두면 썩은 냄새를 풍기지만 뿌려지면 많은 것을 자라나게 한다.” 명언입니다.
부는 쌓아두면 썩은 거름처럼 냄새를 풍기지만 비료처럼 잘 사용하면 많은 것을 자라게 합니다. 이 랑군의 말에 도전을 받은 록펠러도 사회에 많은 재산을 기부했습니다. 또한 미국의 많은 부호들도 랑군의 말에 도전을 받아 풍요로운 미국사회의 기초를 놓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학교에 지원을 해서 수많은 인재들을 키워냈습니다. 돈 없으면 인재를 키워낼 수 없습니다. 실험 기자재를 마련하고, 머리 좋은 학생들 뽑아서 돈 한푼 받지 않고 공부시켰습니다.
한국사회가 이렇게 불안정하고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이 무엇때문입니까? 사명을 가진 지도자가 너무도 적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같이 회개해야 할 일입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만이라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바로 알고 그 사명을 위해서 생명을 쏟아 섬긴다면 이 한국사회는 지상에서 가장 깨끗한 나라요, 희망이 넘치는 축복의 나라로 변화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그 사명을 바로 깨닫는다면, 그리고 사명을 위해서 사도바울처럼 나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직장과 일터에서 헌신한다면 이 나라가 얼마나 축복된 나라가 되겠습니까! 얼마나 깨끗한 나라가 되겠습니까! 얼마나 희망이 넘치는 나라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교인들 중에도 사명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도 적다는 것이 이 시대의 불행입니다.

환경미화원인 김영백집사를 가리켜 사람들은 ‘성자가 된 청소부’라고 부릅니다. 그분은 돈도 없고 시간도 많지 않은 분으로 자신과 가족을 챙기기도 힘든 분입니다. 16평 사유지에 집을 짓고 살고 있습니다. 장남은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사고로 손가락 두 개가 날라가버렸습니다. 차남은 촉망받는 실업축구선수였는데 연습중 허리를 다쳐 치료중입니다. 보통사람들 같으면 하나님을 원망했을텐데 김집사는 환경미화원으로써의 업무가 비는 시간에는 아침저녁으로 두 차례 산꼭대기에 있는 집을 나와 파지와 빈병등 재활용품을 수집했습니다. 어려운 자기집 살림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돈으로 실로암 안과 병원을 통하여 매월 한 사람의 개안 수술비를 후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49명의 앞 못보는 사람들이 광명을 찾았습니다. 십시일반으로... 또 그는 지역의 어려운 학생들을 위하여 매년 4명에게 50만원의 장학금을 주었습니다. 자기도 근근히 사는 사람이...그리고 그 지역의 무의탁 노인들에게 매년 겨울내의 50벌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사는 환경미화원 집사님이 쉬는 날이면 파지와 온갖 재활용품을 거두어 그 돈으로 개안 수술비를 지원하고 지역의 가난한 학생들에게 일년에 50만원씩 후원하고, 지역의 노인 50명에게 내의를 매년 선물하는 생활을 해왔다는 겁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를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돈이 많다고 귀하게 사는 것 아닙니다. 이런 김영백 집사님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을 깨닫고 사는 사람이 이 땅에 많다면 이 땅이 얼마나 희망으로 충만하겠습니까?

인류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중의 한 명인 나이팅게일은 서른살이 되었을 때 그의 일기에 이렇게 썻습니다. “오늘 내 나이 서른이 되었다. 예수님이 그의 사역을 시작한 날이다. 주님, 오늘부터 당신의 부르심을 따라 살겠습니다. 유치했던 생각은 버리고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주님의 목적에 순종하겠습니다.” 어떤 기자가 “어떻게 이렇게 귀하게 살게 되었느냐?”고 묻자 그녀는 “그것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나이팅게일이 유명해 지려고 그렇게 했습니까? 어느날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시고, 예수 믿게 하시고, 나를 존재케 하시는 그 목적과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을 때, 사명을 깨달았을 때 그 사명의 부르심에 순종했을 때 너무나 아름다운 인생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명을 깨닫고 살 때 아름답고 존귀한 인생을 살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라합시다. “사명자는 다른 욕심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사명자는 욕심이 없습니다.” 사명을 깨달은 자의 특징은 욕심이 없습니다. 사명 그것 하나면 족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사명자는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않습니다.” 비교의 의미를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 나는 하나님께 받는 그 사명에 충실하는 일에 모든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슈바이처는 박사학위를 네 개나 가진 사람입니다. 그 아프리카의 구석진 촌락에 들어가서 흑인들과 함께 삶을 나누었습니다.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부러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 하나님께서 내게 맡긴 사명에 내가 충성하고 있기 때문에...여기에 한량없는 기쁨과 가치와 보람을 만끽하고 있기 때문에 돈있는 사람도 부러워하지 않았고, 유명한 정치인도 부러워하지 않았고 오로지 그것으로 만족했습니다.
“박사님, 노벨 평화상이 당신에게 주어졌는데 스웨덴으로 가서 상을 받으시지요?” “아니야. 지금 이곳에 내가 할 일이 있어. 나의 사명은 이곳에 있어. 나는 잠시도 이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
헤럴드와 메리 브리니거라는 노인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분들이 시골에 살다가 시카고의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시골에서 살다가 그 무료한 아파트로 오니까 부부가 늘 다투는 겁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녀도 무료하니까, 인생이 지루하니까 늘 짜증을 내는 겁니다. 늘 다투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날 할머니가 성경을 읽다가 요한복음 15장 16절 말씀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그리고는 남편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간증을 했습니다. “여보, 우리가 서로 간격이 멀어지고 서로 다투는 것은 다 자신을 위해서 살기 때문이 아니겠어요. 주께서 나를 택해 세우셨다는 것을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이 모양으로 사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도 뜻없이 소일할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지금 시작하면 좋겠어요.” 남편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첫 번째 대상으로 발견한 사람은 동네 식당에서 일하는 웨이트리스였습니다. 그녀도 자기네들처럼 타향에서 들어온 외로운 여인이었습니다. 노인 내외는 그녀의 친구가 되어 집으로 초대도 하고 방문도 하며 고독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두 번째 대상은 과부 여인이었습니다. 이런 외로운 분들을 눈여겨 찾아보니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교회 가서 노인들에게 “우리가 이런 좋은 일을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이 일어나 만든 모임이 “우정의 모험”입니다. 그 모임은 크리스찬 노인들만 삼백명이 되었고 많은 전도사업도 하게 되는 놀라운 일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부터는 부부가 싸우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명을 발견하면 행복해지고 싸우지 않습니다. 인생이 지루하고 무료하니까 막 짜증을 부립니다. 할 일을 발견하지 못하니까.

여러분이 잘 기억하는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누구지요? 오드리 햅번. 이 영화를 통해서 햅번 스타일이 유행했습니다. 깜짝 놀랄 정도로 천사같은 예쁜 얼굴입니다. 우리 교회 여자분들도 인물이 보통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햅번의 얼굴은 예쁘다는 느낌은 주었지만 사람들에게 감동은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 햅번이 언제 감동을 주었는지 아십니까? 60이 넘었을때 그녀는 폐암에 걸렸습니다. 그런 그녀가 유티세프의 친선대사가 되어 아프리카의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을 했습니다. 그녀가 젊고 가난했을 때 유니세프를 통해서 배고픔을 면한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 기억이 그녀에게 사명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로 가서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그녀의 사진이 전세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늙고 주름진 햅번이, 뼈만 남은 앙상한 손가락으로 뼈만 남은 아이를 안고 있는 그녀의 사진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젊고 아름다울 때는 사람들에게 “예쁘다”는 느낌밖에 주지 못했지만 늙고 병든 햅번의 사진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왜냐? 사명을 알고 사명에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예수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는 주예수께서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사명이 있습니다. 가장 위대한 사명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혼을 구원할 사명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내 집 근처 전도하지 못하면서 선교라는 화려한 캐치프레이즈 걸고 살지 마세요. 선교를 잘하는 사람은 믿지 않는 영혼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먼저 내 집 근처 다니면서 한 영혼을 위한 사랑과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열정과 사명으로 충만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내 이웃의 죽어가는 영혼들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그 영혼을 향해서 기도하세요. 우리의 믿음이 언제 성장하는지 아십니까? 언제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숙되는지 아십니까? 오늘 그것 하나는 꼭 가지고 가세요.
내 신앙이 가장 그리스도를 닮고 내 인격이 가장 예수님을 닮아가고 내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숙해 가는 길은 전도의 사명을 깨달은 때인 줄로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공부를 많이 했을 때 우리가 변화됩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 복음 전도의 사명이 깨달아질 때 그 시간부터 우리는 깊은 기도의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남편 전도하려면 내가 변화되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동네의 그 사람, 우리 회사의 직원, 동료를 전도하려면 내가 먼저 변화되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 때문에 기도하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주여! 내가 저 사람 전도하려면 내가 먼저 변화되어져야 합니다. 저 영혼 구원하려면 내가 먼저 예수님을 닮아야 하겠습니다.  주여, 나를 도와주소서!” 그 때부터 깊은 기도가 나오고 그 때부터 내 생이 새로워지고, 더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되고, 그 때부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왜 능력을 경험하지 못합니까? 영혼을 위한 사명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도가 내 심령에서 우러나지 않기 때문에 수천번 수만번 기도를 드려도 변화되지 않는 겁니다.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여러분, 주 예수께서 내게 주신 전도의 사명, 다시한번 경험되고 깨달아지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개인적으로 각자의 사명이 다 따로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의 사명은 그리스도인 모두의 공통 사명입니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깨닫고 이 사명감이 내게 뜨겁게 발견되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변화가 됩니다.
이제 한 달 남았습니다. 주여! 내게 바울이 깨달았던 주 예수께 받은 사명, 복음 전하는 사명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이 사명 위해서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명 이루기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주의 종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때부터 은혜와 축복의 문은 열리는 겁니다.
이번 한 달 동안, 이 해가 지나가기 전에 그 사명 깨닫고, 그 사명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능력받아서 여러분을 통해서 귀한 영혼이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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