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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최대선물 (마 7: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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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도에 한 해에 43쇄 출판을 했던 브루스 윌킨슨의<야베스 기도>에
        <존>이란 사람이 천국을 가게 됩니다.
수문장 베드로를 따라 거대한 창고 문 앞에 도달했습니다.
존이 “이 안에 뭐가 있느냐?” 하니
베드로가 “ 안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니 “천국에 무슨 비밀이 있어야 합니까? 제발 좀 봅시다”
그래서 그 거대한 창고 안에 들어가 보니
    바닥에서부터 천정가지 각 선반에는
    빨간 리본으로 묶여진 햐얀 상자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습니다.
“ 어 전부 이름들이 쓰여 있네. ”
그래서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는 상자를 열고 보니
세상에 살아있을 동안에
    하나님이 주기 원했던 많은 복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 아니 이럴 수가? ”
존은 전혀 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약4:2절
[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아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합니다.
기도하여 응답받아 살아가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역사를 살아온 이스라엘 민족에게
    기도는 대단히 중요한 신앙의 행위였습니다.
지금도 예루살렘 통곡의 벽 앞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면     
저들에게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기도의 확신 가운데는
    기도는 아무리 반복하여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기도는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마6:에서 예수님은
기도를 많이 하려고 하다 보니 중언부언하는 외식하는 기도를 비판하시며
모범적인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으며
오늘 본문말씀에서 예수님은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구하라! 찾아라! 문을 두드리라 고 하시며 왜 3번씩이나 반복하여 강조할까요?
1. 왜 주님은 본문에서 세 번씩이나 강조하시면서 기도하라고 하십니까?(7절)
이 말씀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다 알고 계십니다.
마6:8절 [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알아서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은,
  사람들이 기도를 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을 향하여 자기의 마음 문을 열고 자신을 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척척 부어 주신다면,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적극적 사고방식’으로 유명한 미국의 <노만 빈센트 필> 박사는
“누구든지 매일 아침 15분만 기도하면
      인생에서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다”고 말합니다.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공부를 위해 일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것이듯이
영적인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을 정하고 기도하는 습관 바로 신앙생활의 성공의 비결입니다.

<빌리 선데이>라는 사람은 야구 선수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교회에 나갔을 때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 신앙생활에 성공하고 싶은가. 세 가지를 계획하게.
첫째, 날마다 15분 동안 기도하기.
둘째, 15분 동안 성경 읽기.
셋째, 15분 동안 내가 만난 예수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그는 지도자의 충고를 받아들여 평생 동안 실천했습니다.
그는 20세기 초 30년 동안 미국에서 영적, 도덕적 각성을 주도하는         
부흥사로 크게 쓰임 받았습니다. 기도하는 교회, 성도들 되시기를......

둘째로, `구하라, 찾아라, 문을 두드리라`고 하신 것은,       
무엇인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있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무엇이 가로 막고 이상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 장애물을 없애 버려야 비로소
  우리가 원하는 소원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구하라`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부족함을 뜻하는 것이며,     
`찾아라`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음을 뜻하며,
`문을 두드려라’는 것은 문이 닫혀 있음을 뜻합니다.

오늘 내게 무엇이 부족합니까?
오늘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습니까?
오늘 나의 삶에 무엇이 가로막고 있습니까?
우리가 매일 기도해야 할 이유는 이런 장애물들을 청소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면 이런 장애물들이 놓일 시간이 없지만,
    기도를 멈출 때 마귀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계속 장애물들을 쌓아 놓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다가 어쩌다가 기도하면
    우리 스스로 답답함을 느끼는 까닭은
    바로 내 마음에 온갖 잡동사니들로 잔뜩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일 집안을 청소하듯이 기도로 청소를 하면
    우리의 영의 세계가 깨끗하지만,
청소를 게을리 하여 쓰레기가 잔뜩 쌓이는 것처럼
    기도를 게을리 할 때 우리의 영적 세계가
    온갖 세상의 더러운 욕심들로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문제가 계속 일어날 때에는
    여러분의 기도의 생활이 어떠한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매일매일 기도하시므로
      여러분의 영적 생활을 깨끗이 청소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부족함이 없는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는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가로막혀 있는 장벽이 활짝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우 화숙이란 성도의 간증입니다.   
인장업을 하던 장애인 남편과 결혼한 지 7년 만에,
  건물 주인이 바뀌는 바람에 가게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 점포를 얻으러 다녔지만 가진 돈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가 없었고,
      할 수 없이 노점을 찾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성경을 읽다가 마7:7-8절 <아는 말씀이지만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음>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라는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말씀을 읽는 순간, 믿고 구할 것은 기도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일터를 놓고 열심히 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일이 생겼습니다.                     
서울시에서 장애인들에게 할당하는 지하철 매점 운영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부부는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계약기간이 3년이기 때문에 3년 만에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또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지하철공사 음료수자판기 운영권을 신청했는데 당첨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간증하는 말이
[ 생활에 대한 근심은
  하나님 앞에서 믿는 자의 바른 자세가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육신의 모든 필요한 것을 아시기 때문에
  낙심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하면
  모든 것을 책임져주신다는 확신도 얻었습니다 ] 할렐루야.

그런데 예수님은 두 번 강조할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절에 또 한 번 기도에 대해 강조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2. 예수님은 두 번 강조할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절에 또 한 번 거듭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강청하라는 것입니다.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눅11:에서 누가는 더 사실적으로 기도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한 가지 비유를 들어
    구하라, 찾아라, 문을 두드리라 고 거듭 거듭 말씀하시는 이유를 말해 줍니다.
바로 밤중에 친구 집에 찾아가 떡 세 덩이를 빌려달라는 비유인데
눅11:8절에
[ 비롯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 

그럼 강청하는 기도가 어떤 기도입니까?
강청은 뻔뻔스러울 정도로 귀찮게 달라고 졸라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체면상은 구할 자격이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 붙들고 강청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주십니다.
그런데 강청의 의미가 무조건 뻔뻔스럽게 달라고 하는 기도를 말할까요?
우리는 강청의 의미를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친구 됨을 가지고서는 받을 수 없지만,
    강청함을 가지고서는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인데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해 보세요.
친구가 된 그 정도의 관계를 가지고는 끝까지 요구하기 힘들다는 것이고,
    주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끝까지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습니까?               
  바로 자녀가 부모에게 할 때입니다.
아무리 널려 있는 것이 떡과 고기일지라도
    자녀가 아닌 이웃집 아이가 와서 문을 두드리며 달라고 한다 해서     
내 자녀처럼 날마다 줄 수 있습니까?
그리고 그 아이도 자기 부모도 아닌 사람에게 줄 때까지 칭얼거릴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부자간의 모녀간의 친권적인 가족 관계 안에서만
      이 약속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시작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11절에도
[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

이렇게 하나님은 한번의 기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계속하여 끈질기게 기도를 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끈질긴 기도가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끈질긴 기도를 하게 하시므로
      우리를 자기에게로 더 가까이 이끄실 뿐 아니라
      우리로 더 강인한 신앙의 소유자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를 주도한 세력이 있다면 평안도 사람들입니다.       
평안도는 조선조에서 푸대접받은 지역이었는데,
기독교 복음이 그 지역에 먼저 전파되면서 불이 붙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평양이 그 중심이 되었습니다.
오랜 역사적 고난을 헤쳐 온 강인한 성격에 믿음이 들어가면서
뜨거운 신앙의 열정으로 한국 교회를 주도하였던 것입니다.
부흥회나 새벽기도회나 철야기도회가 모두 이들에게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해방 후 남북이 분단되면서 이 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남쪽의 교회들도 이들의 열심을 배워 교회들이 성장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교회가 충현교회, 영락교회였는데,
오늘날 그 충현교회 영락교회의 쇠퇴는
    한국 교회의 기도의 쇠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2) 우리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21:22절 [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 
렙33:33절 [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1980년 2평 남짓한 옷가게 [잉글런드]에서 출발하여           
    이제는 대기업의 회장으로 발돋움한 이랜드 박성수 회장,
그의 기업의 모토는 [투명한 경영, 그리고 기도]라고 고백합니다.
제자훈련 세미나에 와서 목사님들 앞에 이런 간증을 합니다.
지금 이랜드는 뉴코아, 까르푸 등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형 유통기업까지     
연거푸 인수를 하면서 많은 경쟁사에서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 인수 합병 중심에 선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권순문 이랜드 개발 대표이다.
지난 4월 이랜드가 경쟁자인 롯데를 제치고 까르푸를 인수한다고 발표했을 때,   
기업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한때 중저가 의류를 팔아 돌풍을 일으켰던
    패션 그룹 정도로만 알고 있던 이랜드가
    1조7500억 원짜리 까르푸를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의 경영의 가장 중요한 원칙 한 가지가 바로 기도이다.
그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는 매일 새벽기도회 때 한 시간 기도를 마치고     
오전 6시50분이면 회사에 출근한다는 것입니다.
이 회사의 회장인 박성수 회장도
  매일 새벽기도회에 나와 30분 이상씩 기도한다고 합니다.
[ 까르푸 인수 때 네 차례에 걸쳐 금식하며 기도했다] 고 말했다.
그리고 박성수 회장은 이런 간증을 합니다.
{ 앞문이 막히고 옆문이 막히고 뒷문이 막힐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신다} 는 헬렌 켈러의 말처럼
I.M.F 때 부도가 나기 직전에 다행히 외국인 투자자가 들어왔습니다.
이 회사는 현금 5억불을 들고 들어와서
  이랜드에 10분의 1을 투자했습니다.
5억불이면 이랜드 같은 규모의 회사 10개를 살릴 수 있는 큰돈입니다.
그런데 1년간 나머지 돈을 투자하지 못한 채
4억 5천만 불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길래 제가 이상하게 여기고 물었습니다.
[ 지금 사면 헐값에 사들일 수 있는데 왜 사지 않습니까? 지금이 기회입니다 ]
그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외국 투자가도 사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고 싶은데 막상 사려고 하면 장부가 두 개랍니다.
사실 이랜드는 장부가 하나라서 투자했다는 겁니다.
그때 얻은 결론이
[ 정직하면 언제나 손해 본다. 그러나 결정적일 때 정직하면 살아난다 ]
  는 것입니다.
매점을 하던 기업을 하던
    하나님께 기도하는 생업이 되고 정직한 사업이 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지켜 보호해 주시고 성장 번영케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면             
  거듭 거듭 응답해 주겠다고 약속을 해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만큼 말해도 기도 안 하는데       
    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하지 아니하시고
다시 비유를 들어 우리에게 실감이 나는 말씀을 하십니다.
3.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의 응답에 대해 들려주시는 비유가 무엇입니까?(9-10절)
9-11절 
[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
즉 이 말씀은
야, 너희가 나를 믿는다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는 것을 보니
  최소한 부모 자식 간에 가장 기본적인 친권적인 믿음도 없구나.
아무리 악한 부모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줄 아는데     
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너희는 나를 어떻게 보느냐?
  너희 육신의 아버지 수준도 안 되는 줄 아느냐? 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친권적인 믿음을 갖고 있다면
하나님께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여기에 예수님께서 떡과 돌, 생선과 뱀을 대비시켜서 말씀하십니다.
이 둘은 모양은 비슷합니다. 그러나 속성은 정 반대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러한 극단적인 비유를 하고 계실까요?
그것은 육신의 아버지도 절대로 자식에게 해를 기치는 법이 없는데
  하늘에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이런 간증이 있네요.
간증 제목은 < 참 재미있는 하나님 >입니다.
젊은 여집사, 이집사가 추석명절을 앞두고 고민이 생겼습니다.
시댁 식구들이 안 믿으니 제사를 지내러 가야 하는데
    하필 추석이 주일입니다.
시어머니가 교회를 안 나가시니 시댁에 안 갈수도 없고
  그렇다고 주일을 범할 수도 없고
  더구나 교회 주일학교 교사로서 모범을 보여야 할텐데,
어찌해야 하나 걱정을 많이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어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어떻합니까? 성수주일 하게 해 주세요, 제사 안지내게 해 주세요.”
기도를 드리고 나니 곧 안면 근육에 신경 마비가 왔습니다.     
그로 인해 일주일 직장을 휴무하였고 누어있다 보니
시어머니가 와서 보고는 걱정이 되어
금년 명절에는 절대 시댁에 오지 말고 푹 쉬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추석 명절에 두 아이와 함께 주일도 지킬 수 있게 되었고,
자녀들에게 본을 보일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하면서 하는 말이
  “ 우리 하나님 참 재미있는 하나님 ” 이라고 합니다.
농사 중에 자식 농사가 제일이라고 들어 왔는데,
나에게서 자란 성도 중 이런 믿음을 가진 성도가 나왔다는 게
    목회의 큰 보람으로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 하나님! 우리 이 집사에게 더욱 큰 신앙과 건강을 주시고
      한국 교회에 모델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 축복기도해 주었다는 간증

그럼 우리의 기도의 응답에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그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4. 우리의 기도의 응답에 최상의 것은 무엇입니까?(11절, 참조/눅11:13절)
지금까지 예수님의 기도의 비유를 통해 하신 말씀의 요지는
기도는 끈질기게 해라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1절에 여기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은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라는 그 이상의 말씀입니다.
응답 정도가 아니라 응답을 하시더라도
    최상의 것으로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11절에 [ [ 너희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고 하십니다.
여기에 좋은 것은 바로 최상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그 응답은 반드시 최상의 것으로 하십니다.
그 최상의 것이 바로 성령인 것입니다.
눅11:13절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
최상의 것은 성령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떡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혜로 평생 떡을 먹고도 남을 수 있는 경제력을 주십니다.
    돈을 달라고 하면 성령님이 돈을 벌 수 있는 지혜를 주십니다. 
엡3:20절에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 ]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 앞에 기도로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뿐 아니라  넘치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의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 한마리가 런던을 방문 했습니다.
루이스는 런던을 방문하고 돌아온 의기양양한 고양이에게 묻습니다.
[ 푸쉬야, 푸쉬야 너 어디갔다오니? ]
[ 나는 여왕폐하를 만나기 위하여 런던 왕궁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
[ 푸쉬야 거기서 뭘 보았니?]
[ 아! 나는 거기서 여왕이 앉아있는 왕좌 밑에 생쥐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
대단히 풍자적인 이야기입니다.
고양이는 런던의 아름다운 왕궁에 가서 찬란한 궁궐의 아름다움이나
      역사적인 사적을 보지 못하고 겨우 왕좌 밑에 생쥐만 눈에 띈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도 하나님 만나러 교회 와서
    육신의 안목으로 바라보고 기도하다 보니
진정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좋은 것 즉 성령의 은혜는 맛보지 못하고     
육신적인 것만 구하다가 돌아가지 않습니까?
좋은 것 주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정욕적인 것을 채워 주시는 분으로 착각하지 맙시다.
나보다 더 잘 알아 하시는 성령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기도할 때 혹 문제는 해결되지 아니할지 몰라도
          성령 받을 줄 믿습니다.

그런데 많은 교인들이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또한 기도를 한두 번 해봅니다만
    기도가 중심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해도 기도응답 받지 못합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12절입니다.
5.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꼭 유의해야할 것이 무엇입니까?(12절)
[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
우리의 기도와 대접하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 하실지 모르지만
아주 중요한 상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는 문맥은 앞에 말들을 받아서 하는 접속사입니다.
그러니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도 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해서입니다.
기도응답에 제일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는 것은
    먼저 주고받자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들이 기도 할 때 가만히 보면           
    자기가 답을 달아 놓고 거기에다 맞는다고 동의하라 합니다.
    시녀같이 나의 하는 일에 시중을 들라합니다.
    문제만 해결 해 달라 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 항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자꾸 달라고만 하는 것 다분히 정욕적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대한 답을 약4:2절 이하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 ]

어떤 청년이 우연히
    소원성취의 요정이 들어있는 요술항아리를 발견했습니다.
청년이 요정을 불러내자
요정이 나와서 “주인님, 무슨 소원을 들어드릴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나는 돈과 여자와 결혼을 원한다.”
청년의 소원을 들은 요정은 곤란한 듯이 말했습니다.
“주인님, 저는 세 가지 소원을 한꺼번에 들어드릴 수는 없습니다.
한 가지만 말씀하세요.”
세 가지 모두를 갖고 싶었던 청년은 꾀를 내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돈 여자 결혼!”
청년의 짧은 대답을 들은 요정은 “예, 주인님 알겠습니다.” 했습니다.  그
리고 한 달 뒤 그 소원이 이뤄졌는데
    그 청년은 돈 여자(실성한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답니다.

하나님께 기도 하기는 해도 자기 욕심으로 자기생각대로 하는 것
      하나님을 아주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 앞에 순종의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대접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복종의 자세만 되어 진다면
그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여도
하나님은 최상의 것으로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기도하는 교회, 기도하더라도 강청하는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기도하여 성령 받아 최상의 것을 누리며 살아가는 교우들이 되시기를 ....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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