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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가 나를 영접지 아니하니 (요 5: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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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튼'(Patton)이라는 영화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독일의 유명한 장군 롬멜이 미국의 명장 패튼과 전장에서 대결하게 되기 전에 자신의 한 정보장교를 통하여 패튼에 대한 신상조사를 하게 합니다. 정보장교가 여러 자료들을 모아서 조사를 마치고 드디어 롬멜에게 보고를 하는데, 그는 우선 "패튼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서 무슨 학교를 다니고 어떻게 군인이 되었고..."라는 식의 의례적인 신상정보를 쭉 늘어놓습니다.
  그러자 롬멜은 그 정보장교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귀관은 패튼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한 가지도 내게 말해주지 않고 있다."라고 질책합니다.
  그제야 그 정보장교는 패튼이 '누구'인가에 대한 보고는 생략해버리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보고, 즉 패튼 장군은 군인이면서도 매우 시적(詩的)인 감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생(前生)을 믿는 사람이라는 등의 사실을 롬멜 장군에게 알려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아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기만 하는 것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천양지차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저 어떤 사람에 관한 백과사전적인 정보만 단순히 알고 있을 뿐 그 사람의 실제와 내면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마치 자기가 그 사람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바로 그런 잘못된 판단과 평가를 받으신 대표적인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 유대 땅에서 공생애를 사시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유명인이 되셨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알든지 아니면 아예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처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까닭에 믿지도 영접지도 아니하는 자들을 향하여 우리 예수님께서 탄식을 금치 못하고 계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 시간 우리는 사람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을 어떻게 바로 파악하고 정확하게 이해해야만 하는지를 함께 상고해보고자 합니다.

  1.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위대한 구세주'이심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 40절에서 "40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셔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셨을 때 그 일을 안식일에 했다고 해서 당신을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유대의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설교하신 내용에 계속 이어지는 문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하나님과 동등하심'을 그들이 자기네 앞에 펼쳐진 많은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지 않고 있음을 39절 이전까지 책망하셨습니다.
  그처럼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끝내 믿지 못한 그들은 예수님께서 '무엇하러 오신 분'이신지에 대해서도 전혀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40절을 다시 번역하자면 "너희들은 내게 와서 영생을 얻으려 하지 아니한다."는 뜻이 되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선포해줍니다.
  그것은 곧 '영생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구세주로 오시되 그 죄인을 그저 용서해주시는 정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영생하도록 해주시는 놀라운 구원을 베풀어주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예수님께서 주려하시는 영생을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전혀 엉뚱한 소원, 아주 유치한 요구들만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저 병고침만을 받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떡 얻어먹는 재미에, 또 유대 교권주의자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표적' 따위를 요구하면서 예수님께 나아왔던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으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처럼 예수님께서 주려 하시는 영생을 받으려 하지 아니하고 다른 것을 바라면서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은 결코 예수님을 바로 믿는 것이 라, 오히려 예수님을 거부하는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그것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아니하고 무슨 사회사업가나 정치적 지도자쯤으로만 낮추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구원을 선물로 주시는 구세주이심을 믿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영접함에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들 중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절대로 틀리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떡'을 주려고 오신 자선사업가가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육신의 병을 고쳐주려고 오신 무료시술 의사가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회정의 구현을 위하여, 혹은 식민지의 독립운동을 위하여 오신 정치 지도자가 결코 아니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이런 식으로 오해하거나 착각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직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저 하늘보좌를 떠나 이 세상까지 친히 찾아오신 구세주이실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이라고 하면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저 내 자녀 대학에 붙게 해주시고 내 남편 직장에서 승진하게 해주시기 위하여 오신 무슨 '무당' 같은 사람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정말 제일 주기 어려운 것, 그러면서도 받는 우리에게는 제일 중요한 것을 공짜로 전해주려 하시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받으려 하지 않고 너무나 유치한 것들만 예수님에게서 얻으려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면서 우리가 그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영생구원을 전해 주려하고 계십니다.
  그야말로 '영생'을 친히 '택배'로 우리 손에 건네주시는 구세주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거부하고 엉뚱한 소원만 남발하는 기복주의 교인들이 있으니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기가 막히시겠습니까?

  미국의 큰 부동산 소개회사에서는 자기네 회사와 거래한 사람들 중에서 무작위로 추첨을 해서 집을 한 채 공짜로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부동산 회사 대표 한 명이 그 사람을 찾아가서 "당신이 이러이러한 추첨에 당첨되었기 때문에 우리 회사에서 집 한 채를 공짜로 줍니다, 받으십시오."라고 집열쇠를 건네줄 것입니다.
  그때 그 사람이 그 사실을 믿지 못하고 "쓸데없이 사람 놀리지 말고 차라리 지금 내가 매달 내는 집세나 좀 내려주시오."라고 고집을 부린다면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많은 교인들이 예수님 앞에서 바로 그런 바보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오늘날 적지 않는 교회들이 이 '영생복음'을 선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육체적 부활을 믿지 않으면서 그저 추상적 부활만을 관념적인 언어를 통해서 설명하는 철학자에게서 영생의 의미를 찾으려 하고, 유전공학자들의 줄기세포나 생명복제라는 것을 통해서 영생의 실현을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목사들이 강단에서 이 예수님의 '영생구원'을 설교하지 않고 그 대신에 온갖 인생 상담으로 때우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교인들은 영생구원 확신의 기쁨은 누리지 못하고 그 대신에 예수님을 자기 인생의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 뒤치다꺼리나 해주는 심부름꾼 정도로 격하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그렇게 오해해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선포하시는 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고서 그 영생구원의 약속 역시 꼭 함께 누리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오신 '유일한 중보자'이심을 우리는 분명히 고백해야 합니다.

  41절부터 44절까지의 말씀에 "41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43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44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라고 기록했습니다.

  지금 유대교권주의자들은 속으로 '저 예수는 자기가 38년 된 중풍병자를 고친 것을 두고 우리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영광 돌려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인데, 웃기지 마라. 우리가 그렇게 멍청한 사람인 줄 아느냐?'라고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그런 속마음을 아시는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라고, 즉 '나도 너희들에게서는 그런 영광 받기를 바라지도 않는다.'라고 응수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음"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입으로는 그렇게 '하나님 사랑'을 떠들어도 자신의 진심으로는 하나님 경외할 줄 몰랐던 그 외식자들로부터는 당신에 대한 그 어떤 인정이나 칭찬 따위는 해준다고 해도 받고 싶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런 유대의 종교 지도자라는 자들이 예수님을 통하여서도 끝내 볼 줄도 인정할 줄도 몰랐던 사실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곧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즉 '성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여기서 어떤 사람의 이름으로 온다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을 대신하는 자격을 가지고 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입고 오셨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서 사람들의 눈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시는 분이심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대사와 같은 자격을 가지고 이 세상까지 찾아오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유일한 중보자가 되어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그 대신에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는 것을 영접"했었습니다.
  여기서 '자기 이름으로 오는' 것이란 자기 자신을 높이고 과시하는 것을 뜻하는데, 바로 거짓 선지자들이나 세속 정치가들이 그러합니다.
  예수님 오시기 이전에도 그런 자들이 많았습니다.
  사도행전 5장 36절에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라고 했고, 이어지는 37절에도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들이 그런 예입니다.

  이처럼 가짜들의 공통점은 '자기 이름으로 와서 스스로 자랑하는 것'과 그렇게 함으로써 오로지 자기 자신이 추앙받게 되는 것만이 목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런 자들에게 미혹당하는 이유는 사람에게는 '사람의 영광을 취하는' 악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라고, 바로 유대 교권주의자들이 그런 악습에 젖어 있음을 책망하셨습니다.
  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자기 자신의 경건을 과시하고 자기네 스스로가 지극히 거룩하고 선한 사람인 체 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발휘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고 '사람의 영광만 서로 취하는' 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그러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라고 탄식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역시 그처럼 '자기의 이름'을 과시하고 '사람의 영광'을 서로 높이는 종교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천주교의 교황을 위시한 사제들은 마치 자기네들만 지극히 거룩하고 경건한 체 과시를 하면서, 교인들로 하여금 자기네들을 '신부'(Father)라고 부르게 하고 자기네들 앞에서 죄고백을 하도록 강요하는 등, 실제적으로 중보자 행세를 합니다.
  좀 착하게 살았다 하면 '성자'니 '성녀'니 하고 사람에게 영광을 입혀 놓고 그 앞에서 촛불을 켜고 기도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불교 역시 무슨 도를 좀 닦았다 하면 고승이니 어쩌고 받들어 모시면서 한번 만나 뵙기 위해서는 먼저 '삼천 배'를 해야 한다는 둥, 사람을 신처럼 섬기게 하는 종교입니다.
  원래부터가 '하나님을 사랑할 줄 모르는' 악한 본성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사람의 영광'만을 서로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고 결국 하나님께로만 돌아가야 하며, 그 어떤 영광도 사람 사이에는 조금도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처럼 예수님 대신에 마리아에게 기도하게 하고 승려 앞에 절하게 만드는 종교는 결코 참 하나님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사람의 영광'만을 취하는 인본주의 종교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오히려 예수님을 오해하게 만드는 이단과 우상종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친히 보여주시는 중보자를 깨닫지 못하고 그 대신에 자기 자신의 득도나 선행만을 과시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영광을 좇아가는 이 '소경놀음'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인간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러 오신 분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보여주려 오신 분이십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그 하나님을 그저 말로만 전달해주신 분 아니라, 우리 육안이 볼 수 있는 '동영상'과 '입체영상'으로 전달해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애매한 추상적 언어가 아니라 '화육강생'이라는 이 생생한 '퍼포먼스'를 통하여 뚜렷하게 보여주시는 예수님만이 죄인이며 탕자된 우리들을 하늘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해주시는 유일한 중보자이심을 분명히 고백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당신의 신분을 증명하시는 '진짜 성자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확실히 믿어야만 합니다.

  45절 이하 47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45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끝까지 당신을 거부하고 오히려 죽이려 하는 유대의 교권주의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성자를 믿지 않는 자들은 당연히 성부께 고소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이기는 하지만, 예수님으로서는 거기까지 갈 필요도 느끼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친히 하지 않으셔도 그런 자들을 고소할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고 하셨습니다.
  유대 교권주의자들은 자기네들이 예수님을 배척하는 행위에 대하여 모세가 자기네 편이 되어서 그 정당성을 뒷받침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정반대라는 뜻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세야말로 예수님을 증거한 대표적인 선지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느니라"고 일침을 놓으시는 그대로였습니다.
  유대 교권주의자들은 성경 읽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기의 율법 지식을 자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니 구약을 잘 안다고 자부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성경의 주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그야말로 '나무를 보되 숲을 보지 못한' 대표적인 자들이었으며, '모세의 제자'로 자부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모세의 증거를 거부한 까닭에 오히려 나중에 모세로부터 고소를 당할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오경만 해도 창세기 3장 15절을 필두로 하여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직접적인 약속들이 곳곳에 가득 차 있습니다.
  또한 전 구약성경에 아담, 멜기세덱,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 등을 통하여 오실 메시아에 대한 '표상'(typology)들이 충만합니다.
  그 외에도 메시아의 탄생 장소부터 시작하여, 그 특별한 생애, 그 고난의 사역과 그 승리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메시아에 대한 직접적 및 간접적 예언들이 구약 성경 전체를 엮어가는 주제가 되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전 구약성경은 오직 한 사람, 그 선지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으며,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세에 대해서도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느니라"(Moses wrote of me.)라고 간단명료하게 단정 짓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그의 글"을 믿는 것과 "내 말"을 믿는 것을 동격으로 취급하셨습니다.
  즉 성경을 믿는 것이 곧 예수님 믿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바꾸어서 한 번 더 강조하자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바로 믿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성경을 읽고 믿는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성경에 예수님을 가리켜 '4대 성인들 중에 한 사람'이라는 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성경에 예수님을 가리켜 무슨 '박애정신의 구현자'라는 표현이 어디에 있으며 무슨 '사회정의의 실현자'라는 증거가 어디에 한 마디라도 있습니까?
  그런데도 소위 성경을 연구한다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나 성경을 즐겨 읽는다고 하면서 수필 따위에 인용하고 있는 소위 지식인들이라는 자들이 예수님을 그런 식으로 멋대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을 읽기는 하지만 성경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 머리를 믿는 자들이며,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을 찾는 자들이 아니라 성경 안에서 자기 사상과 일치하는 구절만 찾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판단도 결국에는 성경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지식과 판단만이 최종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자세는 실로 교만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사람의 판단을 받으실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이 어떻게 자존하시고 자증하시는 하나님을 오히려 판단하는 재판장의 자리에 앉겠다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증명이 필요한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믿어주어서 구세주가 되실 수 있고 우리가 받들어주어야 성자 하나님이 될 수 있는 무력한 존재가 결코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이미 스스로 하나님이셨고 당신의 선하신 뜻에 따라 구세주로서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자존하심에 대한 자증을 이 신구약 66권에 기록해놓으시고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한다.'고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책으로만 따져도 성경에 필적할 책이 없으며 소위 경전이라는 것들조차 성경에는 상대도 될 수 없습니다.
  그 책 중의 책인 성경이 예수님을 가리켜 '어떤 사람'이라고 증거해주고 있습니까?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증거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죄인의 구주'이시며 '장차 다시 오실 심판주'라고 증거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성경을 읽지도 않고 깨달으려고도 하지 않고 자기 지식과 자기 상상으로 멋대로 예수님을 판단하면서, 예수님을 광신자라고 격하시키거나 무슨 사기꾼 교주쯤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실로 백번 심판 받아 당연한 자들이 아니겠습니까?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하고 신분증명서를 눈앞에 보여주는데도, 그것을 읽으려고도 하지 않고 그 대신에 '내가 관상을 보니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요.'라고 우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은 예수님을 믿게 해주기 위한 증거이지만 나중에는 불신들을 심판하기 위한 증거물 제1호가 될 이 성경을 통하여, '진실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바른 신앙을 고백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 예수라는 인물을 배우고 있고 숱한 영화들을 통해서 그 생애에 대해서도 꽤 자세히 알고들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예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오해와 추측만 가득한 가운데 있습니다.
  사실상 예수님만큼 많은 사람들이 따르면서도 예수님만큼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받고 있는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특히 교인이라는 사람들 중에도 예수님을 잘못 이해하고 목사라는 사람들 중에도 예수님을 오도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당신을 가장 잘 알아주어야 할 사람들마저 그런 꼴을 보일 때 우리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영생을 손에 쥐어주려 하시는데도 거부하고 '썩을 떡'이나 기다리는 자들, 당신께서 화육강생을 통하여 친히 하나님을 보여주고 계시는데도 그 영광을 가로채고 스스로 거룩한 체 하는 교권주의자들에게 오히려 미혹당하는 교인들, 신구약 66권을 통해 이처럼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뚜렷이 증거해주시는데도 성경 한 절 제대로 읽을 생각도 아니하고 예수님 안 믿어진다고 불평하는 자들을 볼 때, 우리 주님의 심정이 어떠하시겠습니까?

  왜 사람들은 이렇게 예수님을 격하시켜버리는 것입니까?
  왜 예수님 자리에 대신 앉아 있는 사람들을 오히려 높이는 것입니까?
  어떻게 이토록 무례하게 예수님을 거짓말쟁이처럼 취급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끝까지 예수님을 오해하면 그 사람만 손해일 뿐이지, 예수님은 아무 손해 없습니다.
  민간 암행을 나온 임금을 보고 사람이 못 믿는다고 해서 그 임금의 신분이 어디로 사라지겠습니까?
  그 임금이 어떤 불쌍한 처지에 있는 백성을 보고 그 사람에게 "내가 사실은 이 나라의 임금인데 내일 아침에 대궐 문 앞으로 오너라. 내가 다 선처해주겠다."라고 말씀해주실 때, 그 말을 믿고 따른 사람은 반드시 큰 은택을 입게 되겠지만, "당신 같은 사람이 무슨 임금이란 말이요?"하고 끝까지 불신한 사람은 큰 코 다칠 날이 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깨닫고 진실로 믿어야 그 주님께서 주시는 모든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제대로 알아주지도 않는 자를 구원해주실 리가 만무합니다.
  당신께 억지로 떼나 쓰면서 무슨 종처럼 취급하거나, 다른 사람과 당신을 비교하고 오히려 더 높이거나, 당신을 끝까지 믿지 아니하고 거부하는 자에게는 오직 심판만이 남아 있을 뿐인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을 필적할 사람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입니다.
  석가모니가 사람에게 '영생구원'을 약속해주었습니까?
  마호메트가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습니까?
  공자가 '성경'을 통하여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했습니까?
  그 어떤 성자나 현인이나 교주도 이 예수님에 감히 비길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 '악한 세대' 중에서도 오직 당신을 바로 믿고 진심으로 영접하고 끝까지 순종하는 자들을 부르고 계시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만나고 붙잡고 영원히 놓치지 아니함으로써' 그 '영생구원'의 자리에 함께 이르고 '하나님의 영광'을 친히 목도하며 이 '성자 하나님'을 내 신랑으로 영원히 함께 모시게 되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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