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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서주일] 나의 사랑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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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흔히 자신이 제일 잘 하거나 잘 부르는 노래를 일컬어 18번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일본의 대중 연극인 가부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여러 장(場)으로 구성되어 있는 가부키에서 장(場)이 바뀔 때마다 막간극을 공연했는데, 17세기 무렵 '이치가와 단주로'라는 배우가 단막극 중에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 극이 모두 18가지였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18번째가 가장 재미있었다고 하여 십팔번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일제시대에 대중 속으로 들어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애창곡의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내 노래의 18번, 애창곡이 있듯이, 내가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책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서재에 꽂혀있는 많은 책 가운데 가장 사랑하는 책, 18번의 책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 믿는 자에게 가장 내가 사랑하고, 우리 자손에게 길이 물려줄 책이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성경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은 내 인생과 삶에 가장 가치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내 영혼을 살리는 말씀이고, 나에게 바른 삶으로 이끄는 빛과 등불이 됩니다. 또한 성경은 객관적으로 이 세상에서 성경만이 유일하게 'The Book'(그 책)이란 명칭을 얻었습니다. 성경은 현존하는 책 중에서 가장 오래된 책입니다. 오늘날 많은 책들이 서점에 등장하지만 1,000권의 책 중에 5년 이상 살아남는 책은 1권 정도입니다. 20년 이상 남는 책은 10,000권 당 7권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100년 이상 지속된 책은 10만권 당 1권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수 천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베스트셀러입니다. 이 정도라면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본문은 바로 우리처럼 성경을 자기 인생에 가장 사랑하는 책으로 고백한 한 시인의 신앙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47절과 48절에서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말로 나의 가장 사랑하는 책 성경이란 뜻입니다. 시인은 평생 성경이 가장 사랑하는 책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여기에서 성경을 어떻게 사랑했는가를 알려줍니다. 과연 여기 시인처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성경을 지금보다 더욱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우선, 묵상하는 것입니다. 48절을 보십시오. “또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에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를 묵상하리이다” 여기 계명과 율례는 성경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시인은 성경을 묵상하겠다고 말합니다. 특히 ‘내 손을 들고...’ 라고 강조합니다. 여기 손을 드는 행위는 진심으로 받아드린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사랑하여 그 성경을 온 마음과 진심을 다하여 묵상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시편 1편에서도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보통 우리가 성경을 사랑하는 방법을 손가락에 비유하여 말합니다. 검지는 말씀을 읽는 것이고, 중지는 말씀을 듣는 것이며, 약지는 말씀을 배우는 것이고, 애지는 말씀을 암송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엄지는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손가락이 다 중요하지만, 으뜸되는 것이 엄지가 아닙니까?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 다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묵상이 중요합니다. 말씀은 묵상되어야 합니다. 묵상되지 않으면 성경은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묵상 속에서 참된 삶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묵상이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묵상은 깊이, 곰곰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들은 말씀, 읽은 말씀, 깨달은 말씀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묵상은 단순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성경적인 묵상은 '상고하다, 되새김질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7장 11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이것이 묵상입니다. 당시에 묵상은 오늘날과 같이 고요히 앉아 성경 몇 구절을 읽으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말씀을 듣고 또 읽고 듣고 읽고 그렇게 계속 되새김질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을 묵상하는 것이요, 사랑하는 길입니다.

  본문의 저자는 말씀이 잘 묵상되기 위한 실제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말씀을 즐거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47절에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라고 말합니다. 잘 묵상되고, 잘 되새김질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이 즐거워야 합니다. 말씀이 눈에 확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야 깊이 묵상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말씀이 즐겁습니까, 아니면 지루합니까? 말씀을 가까이하면 졸음이 옵니까, 지겹습니까, 아니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고, 거기에 빠져 들어갑니까?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말씀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말씀이 지겹지 않고 즐거워야 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 이 귀한 성경을 이렇게 사랑하면서 성경의 맛을 보시고, 성경의 깊은 세계로 점점 몰입하여 가시기를 소원합니다.

  둘째,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4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저자는 진리의 말씀을 자기의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않게 기도했고, 실제로 그의 삶에 말씀이 떠나지 않고 늘 가까이했음을 간증합니다. 이것이 그가 성경을 사랑한 방법이고, 오늘 우리에게도 잘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 어떤 사람을 사랑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어쩌면 간단합니다. 가까이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좋아해 보십시오. 반드시 가까이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사랑해 보십시오, 반드시 그 사람을 늘 가까이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까이 하면 사랑이요, 그렇지 않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면서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늘 내 곁에, 늘 가까이하는 것이 곧 내가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성경을 사랑하느냐는 얼마나 성경을 가까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을 가까이하면 성경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내 삶에서 멀어지면 성경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성경을 나의 사랑하는 책으로 안다면, 성경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비단 성경만이 아니라 우리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했을 때 그 사랑은 다른 것보다도 언제나 나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한번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가까이 하십니다. 우리가 멀게 느껴지고, 없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 문제이지 하나님은 결코 우리 멀리서 사랑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가까운 곳에 계십니다. 특히 내가 고난 당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는 더욱 가까이 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분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분이 무엇을 기뻐하는지, 그분을 영화롭게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교회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길은 다른 것보다 교회를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멀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에서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교회의 고민이 무엇인지, 기도제목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고, 최선을 다해 교회를 위해 섬기고 헌신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가까이 않고, 진정 교회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법입니다.

  하나님사랑, 주님사랑, 교회사랑, 그리고 말씀사랑 이 모두는 얼마나 가까이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늘 가까이하시면서 사랑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말씀을 가까이하면서, 내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면서 말씀을 사랑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44절과 45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영영히 끝없이 지키리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 이것이 시인이 말씀을 진정으로 사랑한 마지막 방법입니다. 그는 말씀을 지켰다, 지키고 있다, 지킬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말씀을 지키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강조하는지, 항상, 영영히, 끝없이 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지키면서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모두가 말씀을 잘 지키고 있는 그의 중심을 알려주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지키는 것이 말씀을 사랑하는 길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장식으로 준 것이 아닙니다. 그냥 책장에 꽂아 놓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말씀은 우리가 단순히 좋은 감정으로 느끼는 것을 위해 주신 것도 아니고, 우리의 머리에 깊이 새기기 위해 주신 것만도 더더욱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함으로 주신 것입니다. 여기까지 가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모든 책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말씀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것은 결국 얼마나 말씀을 지키느냐로 평가됩니다. 말씀을 지키는 것만큼 말씀을 사랑하는 자가 됩니다.

  성경은 무엇보다도 말씀을 지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을 주신 목적이고, 그것이 인간이 진정 복을 받는 길임을 끊임없이 제시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수1:7-8)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하고 마지막인 계시록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눅11:28) 결정적으로 주님은 진정한 말씀 사랑을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

  요즈음은 어디를 가나 거의 10분 거리 안에 교회당이 있습니다. 밤에 제일 많이 보이는 것이 교회의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좀 더 은혜로운 말씀을 듣기 위해서 이곳 저곳의 교회당을 찾습니다.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우리의 귀에 들려오는 많은 말씀들을 방송과 영상물을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요즘 유명하다는 목사의 뒤에는 심지어 ‘오빠부대’까지 따라 다닌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은혜로운 말씀과 설교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더 타락하고 죄악은 관영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이 듣기는 잘하지만 들은 말씀을 지키거나 순종하는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가르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가르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실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듣고, 읽고, 배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성경을 사랑하는 방법이며, 우리가 잘되고 복을 받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은 일년에 한번 지키는 ‘성서주일’입니다. 성서 주일(The Bible Sunday)은 성도의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기준이 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영감으로 주신 계시인 성경의 본질을 다시금 각성하고 이에 대한 성도의 이해와 자세를 새로이 하기 위한 절기입니다. 성서주일은 다른 절기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지만 믿음 생활하면서 한번 짚고 가야 할 중요한 절기입니다.

  성경은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책입니다. 이제 진정 성경을 사랑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날마다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을 언제나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평생 성경이 가장 사랑하는 책이 되도록 말씀을 묵상하고, 가까이하고, 지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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