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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목자들의 성탄, 오늘 우리의 성탄 (눅 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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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탄의 계절

저는 지난 한 달간을 정말 바쁘게 보냈습니다. 지난 주일날, <경배와찬양큰잔치>를 끝내고, 밤늦게까지 장로님들과 ‘2007년도 정책 당회’를 하고서, 그 다음날인 월요일을 무척이나 피곤하게 맞았습니다. 정말 피곤했는데요. 그러다가 제가 묵상한 말씀이 성탄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즉 이 땅에 오신 예수님, 그리고 그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첫 번째 성탄을 묵상하는데, 갑자기 힘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야, 예수님이 오신 것이 내게 힘이 되는구나! 나를 회복시키는 것이 되는구나!”

그래서 오늘 저는 성탄절을 한 주간 앞두고, 한 해의 삶을 힘들게 살아오신 여러분들에게, 이 땅에 오신 주님이 얼마나 큰 은혜와 사랑을 주시는 분인지, 힘들고 어려운 분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고, 나아가 회복을 주시는지를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전하고자 합니다.

2. 목자들에게 전해진 빅뉴스

이스라엘의 기후는 대체적으로 4월부터 10월 사이는 덥고 건조한 긴 여름철이며, 11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는 겨울로서 온난다습(溫暖多濕) 합니다. 덥고 건조한 4월부터 10월을 건기(乾期)라고 하고, 비가 거의 오지 않는 11월부터 3월을 우기(雨期)라고 부릅니다.

비가 내리는 우기, 즉 겨울철에는 사방에서 풀이 자랍니다. 이때 양을 치는 목자들은 주로 집 안에 있거나, 비가 잠시라도 그치면 양떼를 이끌고 들이나 산으로 나갑니다. 그렇게 집이나 마을 주변에서 양을 치다가, 우기가 끝이 나면, 집이나 동네 주변에서부터 풀을 먹이기 시작하여, 점점 마을로부터 멀어져서 산이나, 골짜기 험한 곳, 그리고 더 멀리는 광야나 오지로 양떼를 이끌게 됩니다. 가까운 곳에서 양을 먹일 때는 그 날 그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지만, 점점 멀리 가게 되면 당일에 돌아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목자들은 들이나 산이나 광야에다가 양 우리를 만들어 거기서 양과 함께 밤을 지새웁니다. 이렇게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밤을 지새워도 별 무리가 없는 것은 그때가 주로 비가 오지 않는 여름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라고 말씀이 있습니다. 목자들이 양떼를 이끌고 마을로부터 먼 곳으로 왔기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목자들은 유대 광야의 어느 골짜기나 혹은 산기슭에서 밤이 되자 양들을 임시 우리에 들이거나 아니면 몇 마리씩 떼를 지어 들에서 잠을 자게 하고는 자신들도 노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대로 망을 보면서 파수를 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때가, 즉 우리 예수님이 태어난 때는 겨울철, 즉 우기입니다. 바로 지금 이맘때라는 말이죠. 날씨도 춥고, 비도 많이 오는 계절이기 때문에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밤을 지샐 필요가 없는 계절이라는 말입니다. 왜 목자들은 낮 평균 기온이 약 8도로서 쌀쌀하며 밤이 되면 기온이 엄청나게 내려가는 겨울에, 비가 많이 오는 계절이기에 집 주변이나 동네 가까이에도 풀이 많은 계절에, 왜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진 광야로 와서 양들과 함께 노숙을 하고 있을까요?

우선 당시 목자들의 신분이나 삶에 대해서 역사가 말하는 자료를 봅시다. 우리가 성경에서 만나는 ‘목자’는 제법 근사해 보입니다. 그런데 2천 년 전의 목자는 소위 ‘3D’, 즉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로서, 이 일을 하는 사람이 적었고, 게다가 일반 유대인들로부터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당시 사회는 목자들을 무시했고, 그들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 하여 법정에 증인으로도 세우지 않았습니다. 또 상당수 목자들은 집도 없이 살았고, 양도 자기 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양 주인들로부터 고용되어 양을 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별다른 소망이 없었고, 언제 해고될지도 모르며,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해야 했고, 신분도 불안했으며,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는 떠돌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형편이 이렇다 보니, 비록 풀이 많이 나는 우기라고 해도 집이 있어서 집 주변에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자기 마을이 있어 마을 주변에서 양을 칠 수 있었겠습니까? 사람들이 양고기나 양털을 좋아하면서 양을 치는 것은 더럽다고 여기고, 자신들을 우리의 옛 백정 보듯이 하며, 또 양의 주인들은 일을 못한다면서 안달복달을 하니 차라리 멀리서 양을 치는 것이 더 편해서 그렇게 먼 광야로 나갔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목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미래가 불확실하고, 앞날에 대한 설계를 세우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들, 죽도록 고생해도 대접받지 못하고, 사람들 틈에 있느니 차라리 양들과 함께 캄캄한 밤, 들에서 노숙하는 것이 더 편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이 정말 은혜로운 것은 이와 같이 가난하고 약하고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목자들에게 첫 번째 성탄의 소식이 전해졌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첫 번째 성탄절의 감격을 제일 먼저 경험한 사람들은 권력자도 부자도 군인도 아니었습니다. 겨울밤 혹독한 추위에 떨며 자신의 양들을 지키던 목자들이었습니다. 복음의 소식, 세상의 구주가 나셨다는 소식은 본질적으로 모든 인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10절)”입니다. 그러나 그 기쁜 소식을 들으며, 또 그 소식의 기쁨에 동참하도록 하나님께서 우선권을 주신 사람들은 그 추운 겨울밤,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에 떨며 양을 지키던 목자들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절의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내일의 소망 없이, 누구 하나 관심 가지고 다가오지 않는 외로운 사람들, 문제와 고통과 어려움과 질병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다가가신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어떤 모습이든지, 영적으로나 그 삶의 현실이 외롭고, 가난하고, 병들고, 괴로운 사람들, …. 바로 그들에게 주님께서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아파하는 사람들, 외로워하는 사람들,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 고통과 환난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셔서 기쁜 소식, 복된 소식을 주는 분입니다.

3.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광야에서 양떼를 먹이면서 밤을 맞은 목자들에게 주님의 천사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천사가 나타났을 때, 목자들은 자신들에게 신비한 하늘 빛이 두루 비치는 것을 보았고, 그것을 본 그들이 크게 무서워 떨고 있을 때에 자신들에게 천사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지금 그들에게 일어나는 이 신비한 일은 겁을 주거나, 뺏길 것도 없는 그들의 재산이나 생명을 앗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좋은 소식”이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식이 좋은 소식인 것은 “큰 기쁨”을 주는 소식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목자들만이 아니라, 인간 모두에게 기쁜 소식이자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큰 기쁨”이 될 “좋은 소식”은 무엇입니까? 그 내용이 11절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오늘 여러분에게 좋은 소식은 무엇입니까? 자녀들의 수능시험이 전국 상위권이라는 소식, 우연히 구입한 복권이 당첨되었다는 소식, 자신도 모르게 상속된 땅이 있었는데, 그 값이 엄청나게 올랐다든지, …. 뭐 그런 것들이 여러분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될 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 사회에는 가장 바라고 바라던 소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수 백 년 된 나라 잃은 슬픔, 이방인에 의해 국토가 더렵혀지고 심지어 성전까지 짓밟힌 상황, 지독한 가난으로 굶어 죽어가는 상황, 이 서럽고 가난하고 불쌍한 상황이 끝날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오매불망 메시아를 고대해 왔습니다. 이것은 목자들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일수록 더욱 간절한 소원이었습니다. 따라서 메시아가 오셨다는 것은 큰 기쁨의 소식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아가 다름 아닌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에 나셨다는 것은 성경이 예언대로 된 것이며, 특히, 그 고을 출신인 목자들에게는 더욱 더 큰 기쁨이었습니다.

기쁨이 없고, 온갖 핍박을 받으며 살아왔으며, 가난과 차별대우와 천대와 불이익을 받으며 살아왔고, 나라를 잃고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상태, 온갖 부조리와 무질서와 불법 속에서 죽지 못해 사는 상태, 영적으로는 죄와 죽음의 노예가 되어 어쩔 수 없는 상태에 있는 인간에게 구주가 나셨다는 것 이상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아가서 주님이 오신 것은 가난하고 외롭고 소외된 목자들에게만 이 소식이 좋은 소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나심은 큰 기쁨이요 좋은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근원적인 영적인 문제에서부터 살아가면서 만나는 크고 작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주님이기에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때처럼 가난한 자이든, 외로운 자이든, 병든 자이든, 핍박과 서러움을 당하는 자이든, 아니면 부유하고 건강하고 별 문제가 없어 보이든 자들이든, 그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최고의 뉴스는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셨다는 것은 최고의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임하신 주님으로 인하여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해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확인해 보면 더욱 더 분명해지는 소식

그런데 성도 여러분, 목자들의 입장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천사의 말을 믿는 것이 쉬웠을까요? 천사는 이 소식을 전한 후, 어리둥절해 하는 목자들을 두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분명하게 일러준 것이 있었습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즉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이론적으로나 말로만 큰 기쁨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기쁨이신 예수를 직접 만나 보도록 일러주었습니다. 쉽게 믿어지지 않는 일이기에 그것을 “표적”이라고 하면서요. 정말 천사가 말한 대로의 사실이 일어났는가를 알아보고, 그것이 사실이면 그 천사의 말은 믿을 만한 것, 즉 진정으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목자들은 지체할 수가 없어서 즉시로 베들레헴으로 달려갔고, 수소문하여 마굿간의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를 발견했을 때, 천사들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오늘 본문이 주는 세 번째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오신 것, 우리 주님의 복음은 이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TV나 라디오로 보거나 전해 듣는 소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실일 뿐 아니라,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이기에, 모든 사람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본문의 이 세 번째 장면이 정말 좋습니다. 우리 주님과 주님이 주신 약속은 그 약속, 그 말씀만으로도 충분한 은혜가 되고 감동이 되지만, 그러나 주님과 주님의 복음의 진정한 가치는 내가 그 현장에서 그것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천사들로부터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마치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던 베드로와 제자들처럼 곧바로 일어나 제법 먼 길인 베들레헴으로 달려갔습니다. 말씀을 확인하고, 그 기쁨을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강한 소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이 이 목자들과 같이 되시기를 권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들처럼 주님과 그 말씀을 직접 경험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들처럼 그렇게 적극적으로 주님께로 달려가고, 말씀으로 달려가면, 그들이 확인하고 즐거워한 그것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설교를 시작하면서 제가 굉장히 피곤했었는데, 이 본문을 묵상하다가 힘을 얻었노라고 했습니다. 가난하고 외롭고 서러운 목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 확인한 후에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20)”고 하는 것처럼, 주님과 그 말씀을 경험하면, 지난 밤 한 숨도 못자고 베들레헴으로 마라톤을 했다가 다시 돌아가는 새벽 시간에도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것처럼 제게도 그런 새 힘이 솟아난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 차례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님과 주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새 소망과 새 힘과 새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5. 예수 오심은 최고의 선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탄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을 해마다 반복되는 축제로만 여긴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크리스마스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날입니다. 태초부터 계셨고,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한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왜 인간이 되셨습니까?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성육신이 필요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오늘 본문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가난하고 외롭고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 오직 하늘로부터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임하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조건이 어떠하든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주시고 그들을 좋게 행복하게 만드시기 위하여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은 이 사실은 단순히 선포되는 말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믿는 자들에게는 곧바로 그의 현실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임하셨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성탄절에 목자들이 받았던 선물이요, 오늘도 주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성탄 선물입니다. 오늘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목자들이 경험한 첫 번째 성탄의 감격이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고, 그대로 경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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