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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좁은문 (마 7: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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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문이라면 두 명작이 떠오릅니다.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 과 천국의 열쇠입니다.
앙드레 지드는 프로테스탄트 신앙 즉 개혁 신앙을 이 작품에다 토로해 놓았는데
주인공 알리사가 결혼이라는 지상의 행복보다는
    하나님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수도원이란 좁은문을 택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길에도 항상 이와 같이 선택의 문, 선택해야 할 길이 있습니다.
천국의 열쇠의 주인공 치섬 신부는
친구 밀리 신부의 바티칸의 영달보다는 중국 선교사로서의 고난의 길을 택합니다.
        그러나 천국의 열쇠가 누구에게 주어지겠는가? 라는 것입니다.
신30:19절 [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네 자손이 잘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 고 합니다.
선택을 잘한 사람은 복된 삶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선택을 잘못한 사람은 영원토록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는 잘 선택한다고 했는데 잘못된 선택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앞길에 생명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눈이 뜨여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왜 우리에게 좁은문으로 들어가라고 합니까?
1. 왜 좁은문으로 들어가라고 합니까?(13절)

왜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합니까?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이란 말 - 단순히 목숨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눅12:15절에
[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니라 ]
즉 생명이란 단순히 먹고 마시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1) life 는 삶의 의미를 말합니다.
      2) 영원한 생명, 영생을 말합니다.
사람이 눈이 뜨여지지 아니하면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줄 알고
    대부분 사람들은 눈앞에 물질을 택하는 우를 범합니다.
성경에 대표적인 예가 아브라함의 조카 룻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아브라함과 헤어질 때에
  어느 땅을 택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 졌습니다.
롯은 안목의 정욕 때문에 하나님 보다 물질을 택했던 것입니다.
적어도 롯이 볼 때는 그 땅이 비옥하여 농사나 목축에 유리하여
    단 시간 내에 돈을 벌수 있다는 생각에
그 도시가 죄악으로 가득찬 것은 묵과한체 소돔과 고모라 땅을 택했던 것입니다.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살겠다는 생각보다 앞선 것이지요.
과연 롯은 그곳에 가서 살면서 빠른 시일 안에 돈을 벌었습니다. 
    부자가 되었고 그 성안에 유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생활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가족 식구들에게도 경건 훈련을 제대로 시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이 어디서 드러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성을 심판 하시려고 천사들을 보내어 경고할 때에
그 성안에 사람들은 물론
  정혼한 자기 사위들도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고
  자기 아내마저 귀담아 듣지 않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은 것을 볼 때
신앙생활 어떻게 했으면 가족들마저 그 말을 믿지 않았겠습니까?
결국 롯은 그곳에서 모은 재물 하나 가지고 나오지 못하고
    겨우 몸만 빠져 나온 것입니다. 겨우 부끄러운 구원만 받은 것입니다.
롯은 선택의 기회에 잘못 선택한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데이빗 L. 웨더포드>는 자신의 삶을 통한 경험담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추웠기 때문에 지금 따스함을 즐길 수 있다.
어둠 속에 있었기에 빛을 고맙게 여긴다.
마찬가지로 슬픔을 알기에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선고난 후영광입니다. 좁은문 생명의 길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에 좁은문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2. 우리의 신앙생활에 좁은문은 무엇을 말할까요?(14절)

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좁은문이라 할까요?
1)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바로 천국으로 들어가는 신앙의 입문입니다.
  왜 천국문이 좁은문인가? 하면
막1:15절에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실 때
[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
    회개해야 들어가는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그렇게 싫어하는 우상숭배를 합니까?
특히 바알신을 끈질기게 섬깁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내가 잘살기 위해서
    믿으라! 구하라! 즐거워 하라! 춤춰라! 는 있지만 회개하라는 없습니다.
잘 먹고 잘산다는 말은 있지마는                       
  헌신하라는 말은 없습니다. 너 편한 데로 믿으라고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 책망만 하는데 누가 갈려고 하겠습니까?
    쉽게, 쉽게 믿고 복 받아라 하는데 가기 마련입니다.
오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회개 없는 믿음만 강조하다 보면 기독교의 탈을 쓴 바알 종교로 전략하고 맙니다.
여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구원이 없습니다. 진정한 복된 삶도 없읍니다.
    회개의 좁은문 통과하지 아니하면  천국 들어갈 수 없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흥회를 인도하다보면 회개하는 자는 은혜를 받고 변화되는데
      회개하지 않고 찬송만 하는 자는 조금 좋다가 맙니다.
      그러면 귀만 높아지고 심령은 더 굳어지고 맙니다.
이미 예수 믿기로 결심 했으면 회개의 좁은문도 통과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좁은문이라 할까요?
2) 그것은 축복으로 통하는 기도의 문이기 때문입니다. 

산상보훈은 팔복으로 시작됩니다.
팔복 은 신앙생활의 기본자세입니다.
저는 최근에 깨닫게 된 것이                         
우리가 모든 면에 기본기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경제를 보세요. I.M.F 가 다른 것이 아니고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설려고 하니 대가를 치룬 것입니다.
정부에서 벤처기업육성이니 수출드라이브 정책이니 하지만
      정부가 좀 멀리 내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기초과학이 약한 우리는 선진국을 앞서가기 힘듭니다.
  그러니 중요한 부품들은 선진국에서 다 수입해야 합니다.
  그러니 환율에 따라 경기의 기복이 심합니다.
근간에 와서 대학에서 기초과학 분야를 강조를 하지만
우리 국민의식이 안 바뀌는 이상 똑똑한 학생은 그기에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돈이 안 되거든요.
법관 의사 스타 되려고 하지 기초과학은 공부 안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교육 정책이 안 바뀌면 선진국 되기 힘들지요.

교회 안에도 그런 걸 느낍니다.
신앙생활 잘하기 때문에 투표로 향존직 직분자 되었지요.
그런데 다는 아니지만 직분자가 된 이후에 신앙의 성장이 둔화되거나 멈춥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신앙의 기본자세가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팔복이라든지, 시1: 복 있는 사람 또는 갈5:22절 성령의 열매
  그리고 순종의 수레바퀴 즉 말씀과 기도 성도의 교제 전도하는 삶
      이런 것 다 기본기입니다.
하루에 성경 한 장 안 읽고 기도하지 아니하면서
대구의 장자적인 교회 어쩌구 하면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신앙생활입니다.

산상수훈은 팔복으로 시작되어 집니다.                   
즉 산상수훈은 바로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원리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좁은문은 천국 들어가는 문이기도 하지만
              축복의 문 이기도합니다.
그런데 산상보훈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기도입니다.
마5-7장까지 산상수훈 가운데
    6장 전체가 기도에 관해 말씀하고 있고
    본문 앞부분에서도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하시며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기도를 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야말로 하늘의 문을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러면 기도의 문이 왜 좁은문입니까?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데 힘 든다는 것 그리 문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힘 안 드는 일이 있습니까? 요는 보상이 문제이지요.

한번은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가다가 도로공사로 교통이 정체 되었습니다.
여름 때양 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수신호를 하고 있는 청년이 얼마나 힘들어 보이는지
인사말로“수고합니다. 힘들지요”하니「“도 마이소 죽겠심더” 해요.
그런데 만약 이 청년의 일당이 5만원이 아니고 100만원이라 합시다.
그러면 사장이 “자네 힘들게 보이니 내일부터 그만두게” 해보세요.
틀림없이 `뭐라 캅니까? 남자가 이까지 것 가지고 뭘 힘들어요` 할 것입니다.
문제는 댓가가 어느 정도인냐지 힘든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기도하지 아니합니까? 힘드니깐 안한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눈이 뜨여지지 아니해서 안하는 것입니다.
눈이 뜨여진 사람은 기도합니다.
기도하면 내 노력한 것보다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성도는 기도합니다.
약1:17절 [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서 내려오나니 ] 합니다.
각양 좋은 은사가 우리에게 내려오는 통로가 있습니다.
바로 기도라는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늘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의 문은                               
십자가의 길과 통하는 문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찾지 않습니다.
마26:36절 이하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시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를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올라 갔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밤을 세워 고민하며 땀 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지마는
      제자들은 육신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잠자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주님이 십자가에 못밖혀 돌아가실 때
    제자들은 겁이 나 다 도망 가버렸습니다.
    신앙생활 실패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거치지 않고는
      골고가 언덕의 십자가는 있을 수 없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의 죽음 없이는 부활의 영광도 없는 것입니다.

수학자 <유크리트>가 애굽왕 어전에서 기하학을 강의 하는데
왕이 들어 보니 어렵거든요.
그래서 “좀 쉽게 배우는 방법이 없나” 하니깐
유크리트가 “폐하시여, 학문에는 왕도가 없나이다” 하더랍니다.
학문뿐만이 아니라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문 통과하지 아니하고는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길이 없습니다.
기도의 좁은문으로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정돈해서 말씀드리면
좁은문은 신앙의 입문이기 때문에 이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좁은문은 회개의 길이요 기도의 길이여 십자가의 길입니다만
      영생과 축복을 여는 문이라는 사실에 눈이 뜨여지기를 바랍니다.

반대로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겠습니까?
3.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 크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13절)

사람들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인데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으로 - 즉 욕심으로 눈이 가리어지니
자꾸 자구 쉬운 길을 택하려고 합니다.
왜? 사기를 당합니까? 욕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은행 5-6% 대출 받아서 사업해도 어려운 판국에
가만히 앉아서 20%-30% 이자 준다니 그기에 혹 합니다.
이제부터 고난의 댓가 없는 영광이 없다는 것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
신앙은 다수결이 아닙니다.                         
신앙은 십자가의 길이요 고난의 길입니다.
그러나 고난의 길을 거치지 아니하고는 영광의 길에 들어설 수 없습니다.

곤충학자 <찰스 코우만> 여사는                       
애벌레가 나방이 되는 것을 1년 동안 관찰한 뒤 다음과 같은 애기를 합니다.
“ 맨 처음 번데기에서 나방이 나오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을 때,
  나는 작은 구멍으로 안간힘을 쓰면서 나오려고 하는
    나방이 너무나 불쌍해서 가위로 구멍을 넓혀 주었습니다.
    그러나 큰 구멍으로 쉽게 빠져 나온 나방은 방구석을 기어 다닐 뿐
    가엾게도 날지를 못하고 버둥대다가 죽어버렸습니다”
너무 일찍, 그리고 너무 쉽게 번데기에서 나온 탓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시련이 없는 삶을 동경하며,
    시련이 없는 삶이야말로 축복받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련이 없다면 우리는 온전한 인격을 갖출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련은 오히려 축복일 수 있습니다.

왜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에는 사람들이 몰립니까?
4. 왜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을까요?(13절)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길이 넓다고 합니다.
여기에 넓다는 말 <유뤼크로스>는 육신적으로 편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깐 육신적으로 편한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망하는 길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육신적으로 편한 길 택하다가 망한 사람들 많이 나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삼하6: 에 나오는 베레스 웃사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성물인 법궤는 레위 지파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운반해야 하는데도
        수레에 싣고 운반하다가 웃사가 죽는 낭패를 당합니다.
좀 힘들더라도 하늘의 은혜를 바라보며 기도의 좁은문 들어가기를 축원합니다.     
기네스 북에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도둑은
1920년대에 미국 보스턴에 일명 보석 도둑으로 유명한 <아더 베리>라고 합니다. 
이 보석 도둑이 유명했던 것은
그가 도둑질을 할 때는 경찰들을 멋지게 피할 뿐만 아니라, 
항상 사회적으로  유명한 인사의 보석만 훔치거나,
  대단히 잘 사는 부잣집만 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보스턴의 상류 사회의 여자들 간에는,
아더 베리가 자기 집에 보석 도둑질하러 다녀갔다는 사실 자체가,         
사교계에서 자신의 높은 신분을 나타내는 자랑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유명한 도둑이라도 결국 경찰에 체포당했는데,     
    총알 세  방을 맞고 유리 창문 밖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때 그는 깨어진 유리 조각 위에 떨어지며 이렇게 마음에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다시는 도둑질을 하나 봐라!`
그 후 약 20년간의 감옥 생활을 하고 나와 
그는 뉴잉글랜드 지방의 한 조용한 작은 도시에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거기에서 사는 동안, 
아무도 그가 전직 유명한 보석 도둑인 줄 몰랐습니다.
그는 그 작은 도시에  서 존경받을 만한 사람으로 인정되었고, 
    재향군인의 회장직까지 맡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어떻게 해서인지 소문이 새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자들이 달려와서 어렵사리 비공식 회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 기자가 물었다.
`베리씨, 당신이 그 동안 행한 여러 도둑질 중에서
      가장 큰 도둑질은 누구에게서 한 것입니까?`
모든 사람이 궁금한 표정으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행한 가장 큰 도둑질은 바로 아더 베리라는 사람으로부터 훔친 일입니다. 
내가 만약  진정한 나를 일찍 발견하였더라면,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젊음과 지혜, 건강을 훔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일찍이 귀한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넓은문 넓은길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쉽게, 쉽게 살려고 합니다. 편하게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한탕주의에 매료되어 있습니다.
어디 세상뿐이겠습니까?
    형통의 비결, 축복받는 비결, 영혼이 잘되는 비결,
        비결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좁은문 좁은길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넓은문 넓은길은 자기를 도둑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독일 신학자 본회퍼는                               
“ 값싼 은혜가 우리 교회의 가장 치명적인 원수이다
  우리는 오늘 값비싼 은혜를 위해 싸우고  있다 ” 했습니다.
즉 교인들이 너무 쉽게 예수 믿고 너무 쉽게 축복 받고
  너무 쉽게 천국 갈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교회 교우 여러분 ~!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다고 무조건 따라가는 것은 신앙의 길이 아닙니다.
기도의 좁은문 들어서지 아니하면 축복도 없다는 것
십자가의 길 들어서지 아니하면 영광도 없다는 것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찾는 이가 적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5.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찾는 이가 적은 이유가 무엇입니까?(14절)
좁은문 좁은길 찾는 이가 적습니다.
왜 찾는 이가 적습니까?  문은 좁고 길은 협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문을 들어서야 이 길을 걸어야
    생명이 있습니다. 영광이 있습니다.
폴란드 태생 미국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은
    말할 수 없이 연습과 노력을 기울인 음악가입니다.
지독한 피나는 훈련이 그를 세계적인 대가의 자리로 올려놓았습니다.
루빈스타인은 종종 이런 말을 했습니다.
[ 하루만 연습을 거르면 내가 알고
  이틀만 연습을 거르면 내 친구가 알고
  사흘을 연습을 거르면 내 청중들이 다 안다 ] 
연습과 훈련의 중요성 누가 강조하더라도 다 옳은 말이지요.
그러니 신앙의 대가도 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성경의 믿음의 장자들 보세요.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 바울 등
      다른 이들이 찾지 않는 좁은문 좁은길 걸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속사를 빛내는 인물이 된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강조를 해도 사실은 찾는 이가 적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네요.
[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
그러나 한국교회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든 배후에는
    좁은문을 택한 순교의 신앙을 고수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사의 거장을 꼽으라면 주 기철 목사님을 들 수 있습니다.
1939년 9월 평양에서 열린
제27회 장로교 총회에서 날치기로 일제 신사참배 안을 통과 시켰습니다.
그러나 주목사님이 시무하는 산정현 교회만은 이에 굴하지 아니하고
신사참배를 거부할 것을 끝까지 고수했습니다.
그러니 일제가 산정현 교회를 폐쇄 시키고 주목사님을 체포했습니다.
한번은 몇 날을 굶겨놓고 코앞에 밥상을 두고 손을 뒤로 묶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신사의 모형을 같다 놓았습니다.
고개만 숙이면 절하는 격이 됩니다.
그러나 주목사님은 끝까지 고개를 숙이지 아니했습니다.

잔학한 일경들이 잔혹한 고문을 하다가 안되니
옥에 같힌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못 판을 같다놓고
“너희들이 신사참배 하면 주목사 못 판 위로 걷지 않게 하겠다”합니다 .
그때 주목사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 주기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직 주님지신 십자가만 바라보세요.
  오직 주님의 계명만 다르십시오” 그리고는 못판 위로 걸어갔습니다.
연예인 교회가
주기철 목사님의 일대기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촬영하면서
그기에 모였던 엑스트라 까지 모두 울어서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검거되기 전
    산정현 교회에서 하신 설교가 바로 <일사각오> 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살아도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그리스고인은 죽어도 그리스도인답게 죽어야 합니다. 하시고
        감옥으로 가셨습니다.
  「눈물없이  못가는길  피 없이  못가는길
  영문밖의  좁은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복락  얻으려면  이길만은  걸어야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찬송을 부른 후
그리고 못 판위로 걸어갔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기철 목사님의 신앙의 흉내를 낼 수 있겠읍니까만
그래도 기도의 좁은문 들어서야
      십자가의 길 걸어갈 수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문 들어서지 아니하면 십자가의 길 걸어갈 수 없고
십자가의 길 외면하고 생명력 있는 신앙생활 할 수 없다는 것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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