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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의로운 태양이 떠오르면 (말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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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성탄절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각 사람마다 성탄절을 기다리는 이유가 다릅니다. 상인들은 성탄절과 연말연시에 대목을 보기 위해 기다립니다. 어린아이들은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준다고 기다립니다. 젊은이들은 연인들이나 친구들과 낭만적인 추억거리를 만들기 위해 기다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연휴에 여행이라도 하며 즐기기 위해 기다립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잘못된 기다림’이요 ‘헛된 기다림’입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이 단순하고 엄연한 사실을 제쳐놓고 성탄절을 기다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여러분, 이런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주인공이 빠진 생일잔치! 주인공을 빼놓고 객꾼들이 모여서 생일잔치를 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해괴망측한 일인지! 많은 사람들이 그런 해괴망측한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 요즘의 성탄절 풍속도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세상 사람들은 그렇데 쳐도 적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달라야 하는데,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성탄절은 예수님을 만나는 날입니다. 불신자가 예수님을 처음 만나고, 신자가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는 날입니다. 말하자면 복음 전도의 계절이요, 신앙 부흥의 계절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탄절 직전 4주간을 대강절(待降節, Advent)이라 부르는데, 성탄절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그냥 만연히 기다리는 게 아니라 간절히 사모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이 성탄의 은혜를 충만히 받게 됩니다. 시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그렇습니다! 사모하는 만큼 은혜를 받는 법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이지만 다가오는 성탄절을 사모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 오늘부터 다음 주일, 그리고 성탄절 이렇게 세 번에 걸쳐 성탄과 관련된 성경 말씀을 함께 상고하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들이 성탄하신 예수님을 더욱 깊이 만나게 해주는 은혜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첫 번째 순서로 말라기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말라기는 구약 성경 마지막 책입니다. 말라기는 B.C. 430년경 활동한 선지자인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탄생을 사모하도록 권고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도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며 사모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심령 속에,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 성탄의 은혜가 풍성히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1] 말라기의 예언과 권면 : 메시아(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사모하라 

  말라기 시대는 한 마디로 암흑기였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나태해지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말라기는 그들을 경책하면서 장차 오실 메시아(구세주)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을 보면 말라기는 마치 캄캄함 밤을 지나 여명이 밝아오듯이 메시아가 강림할 것을 예언합니다. 그 날을 가리켜 ‘여호와의 날’이라 불렀습니다. 그 날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심판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구원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범죄하는 악인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됩니다. 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그 날에 악인들은 마치 풀무불에 지푸라기가 불살라지는 것 같이 심판을 받게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자들에게는 구원의 축복이 주어집니다. 2절 보면, 예수님의 강림(탄생)을 가리켜 의로운 해가 떠올라 치료하는 광선으로 구원하시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탄생이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은 요한복음에서도 언급됩니다. 
요3:17~18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 라” 예수님이 구원하러 오시지만 그것을 거부하면 그 죄로 인하여 심판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립니다. 그냥 놔두면 죽는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밧줄을 던져 줍니다. 그것을 붙잡으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거부하면 그대로 멸망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에 대한 반응에 따라 상반된 결과가 이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탄을 기다려야 합니다. 마치 캄캄함 밤중에 간절한 마음으로 새벽을 기다리듯이, 여명이 동터오는 것을 기다리듯이, 저 너머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기다리듯이 말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성탄의 은혜가 충만히 임하게 됩니다. 

[2] 의로운 태양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 :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라 

  2절 다시 보면, 예수님이 의로운 태양으로 떠올라 치료하는 광선을 발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광선’이란 단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글 성경에는 빛이란 의미로 광선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원어 성경에는 히브리어 원어로 ‘마르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단어는 본래 ‘날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 중에 이 단어를 날개(wings)라고 번역한 경우가 있습니다. (NIV - the sun of righteousness will rise with healing in its wings.) 이것은 태양 광선이 마치 새의 날개가 나풀거리듯 비추는 것을 형상화시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치유하는 것이 마치 새가 날개로 품고 어루만지듯이 치유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표현이 성경 다른 곳에도 나와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아직 땅이 공허하고 흑암 가운데 있어 정형화되지 않았을 때 성령의 창조 역사가 어떠했는지 창1:2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니라” 여기서 운행한다는 단어가 날개를 나풀거리며 공중에 떠다니는 모양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날개로 품고 어루만지면서 창조하시는 것을 표현한 겁니다. 또 한 가지는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실 때에 나타납니다. 막1:10 보면,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고 나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  육적 치유, 영적 치유, 환경적 치유

  의로운 태양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광선(빛)을 발하시면 어둠이 물러갑니다. 성경에서 어둠은 죄, 사망, 질병, 고통 등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셔서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시는 역사에 관해 세례요한의 부친 사가랴 제사장도 예언한 바 있습니다. 눅1:78~79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그러면 의로운 태양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치료하는 광선이 비취어지면 어떤 일이 생긴다고 했습니까? 2절(하) 보면, 신자들이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뛸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구원 받은 신자들의 감격과 기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3절 보면, 악인에게 승리할 것을 증거합니다. 악인은 신자들의 원수인 죄, 사단, 그리고 세상 등을 가리킵니다.

  이런 것들은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역사를 나타냅니다. 2절에 나오는 ‘치료(치유)’라는 단어는 구원이란 말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종합적으로 치유하십니다. 말하자면 전인 구원 혹은 전인 치유입니다. 이것을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① 육신의 치유 :
  물리적으로도 태양 광선은 살균하고 치료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광선은 훨씬 더 강력한 치료의 능력을 발휘합니다. 예수님은 그 능력으로 우리의 질병을 치료해 주실 수 있습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여호와 라파(출15:26)라고 부르는 것처럼 예수님을 ‘치료자 예수’ 즉 ‘예수 라파’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계시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주신 사례가 나와 있습니다. 그 중에 두 가지만 예로 들어 봅니다. 막5:25~34 보면 12년 동안 혈류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의 옷자락을 잡는 순간 그분의 능력이 빠져나와 치유되었습니다. 막10:46~52 보면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통해 눈을 뜨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한 후에도 그분의 이름을 의지하면 놀라운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행3:1~10 보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로 지내던 사람이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외쳤을 때 치유되어 벌떡 일어난 사건이 있습니다.
  영국의 육상 선수 에릭 리델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1924 파리 올림픽 400 미터 달리기  금메달리스트입니다. 그는 본래 100 미터 달리기 우승 후보였습니다. 그런데 경기가 주일날과 겹치자 예배를 드려야 된다며 출전을 포기했습니다. 그러자 영국 국민들의 비난과 원성이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평일에 있었던 400 미터 달리기에 출전합니다. 그는 당당하게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면서 금메달리스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간증이 그에게 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몸이 너무 허약했습니다. 한번은 심한 고열로 몸져눕게 되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눈물로 밤새 기도했고 고열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고열은 사라졌지만 그 후유증으로 다리가 마비되어 일어서지도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 어머니는 매일 다리를 주무르며 눈물로 기도합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아이가 일어섰고 한 걸음씩 떼게 됩니다. 조금씩 걷고 뛰고 하더니 마침내 그 다리로 위대한 달리기 선수가 된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예수님의 능력으로 이뤄지는 치유의 은총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살아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질병을 치유해 주십니다. 이 성탄의 계절에 우리의 모든 질병을 주님 앞에 내어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질병에서 구원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② 영혼의 치유 :
  물리적인 빛이 우울증에 효과가 있다는 실험 결과가 있습니다. 수년 전 연대 의대 정신과 교수가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다 우울증과 빛의 관계가 밀접하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겨울철에 우울증 증세가 심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이 혹시 일조량과 관계가 있지 않나 실험을 해 본 것입니다. 겨울철 일조량을 보충하는 의미로 아침에 몇 시간, 저녁 무렵 몇 시간 2,500 룩스의 강렬한 빛을 비춰주었습니다. 그랬더니 3일 만에 우울증 증세가 사라졌다는 겁니다. 다음에는 빛을 차단했더니 다시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북유럽 지역은 잘 사는 곳이지만 우울증 환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시 태부족한 일조량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수님이 비춰주시는 광선은 영혼의 치유를 위해 훨씬 더 큰 능력을 발휘합니다. 여리고 세관장이던 삭개오(누가복음 19장)는 로마 정부에 붙어서 돈은 많이 벌고 출세도 했지만 죄의식과 소외감 속에 살았습니다. 로마의 식민 통치 하에 있던 유대인들이 삭개오 같은 세리들을 얼마나 증오하고 무시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났고, 영혼의 치유를 받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합니다. 자기가 그동안 토색한 게 있으면 4배나 갚고,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치유 받고 자유를 얻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얼마나 돈에 집착이 강한 사람인데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사마리아 여인(요한복음 4장)도 마찬가지 예수님을 만나 영혼의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는 6번째 남자와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만족이 없고 오히려 마을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할 정도로 극도의 수치심과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는 정오 시간에 우물가로 나옵니다. 그런데 바로 거기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맨 처음에는 단순히 유대인 남자로 알고 경계하던 그가 대화 중에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의 영혼은 빛을 보았습니다. 그는 기뻐 뛰며 물동이를 놓고 마을로 달려갑니다. 그렇게 피해 다녔던 마을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영혼이 치유 받지 못했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광선이 비춰지면 우리 영혼은 생명을 얻고 밝아집니다. 기쁨과 평안, 천국의 확신과 소망으로 충만해집니다. 이것은 육신의 치유보다 더 놀라운 기적입니다. 세상이 달라집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잠14:32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또 예수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1:25~26 “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부디 이번 성탄절에 의로운 태양이신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영혼의 치유를 받고 평안과 기쁨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③ 환경의 치유 :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 살 동안 아무리 편하게 사는 것처럼 보여도 모두 환경적인 어려  움을 겪게 됩니다.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모든 환경 가운데 예수님께서 함께 해 주시고 승리케 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요16:33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환경을 치유해 주시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는 환경을 변화시켜 주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이길 새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의 예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보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빌립보 감옥에 갇힙니다. 실컷 얻어맞고 고문당했지만 한밤중에 일어나 찬미하며 기도합니다. 그때 지진이 나며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립니다. 물론 바울이 자결하려는 간수를 구하려고 출옥하지 않지만, 놀라운 기적입니다. 다음 날 천부장이 와서 바울 일행에게 제발 나가 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이 역시 놀라운 일입니다. 이처럼 환경을 바꾸어주시는 주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정반대로 빌립보서를 보면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심지어 빌립보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그가 이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빌4:11~12 보면, 그가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습니까?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예수님)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어떤 환경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초대 교부 크리소스톰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복음을 전하다 로마 당국에 체포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쾌재를 부르며 투옥 명령을 내립니다. “여봐라, 그놈을 독방에 처넣어라” 그러자 옆에 잇던 신하가 만류합니다. “폐하! 그건 아니 되옵니다. 기도교인들은 독방을 더 좋아합니다” “왜 그런가?” “독방을 조용한 기도실로 여기고 열심히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악당들이 갇힌 방에 집어넣어라.” “그것은 더더욱 아니 되옵니다.악당들을 몽땅 전도하여 기독교인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러면 당장 끌어내서 목을 쳐 죽이라!” “폐, 폐하! 그건 정말 정말 아니 되옵니다.” “그건 또 왜 그렇단 말이냐?” “기독교인들은 순교를 가장 큰 영광으로 여기기 때문에 아니 되옵니다. 그들은 순교할 때 울지도 않고, 오히려 얼굴에서 광채가 납니다. 그리고 다른 놈들이 큰 자극을 받아 더욱 더 기승을 부를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 놈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황제는 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을 가리켜 뭐라고 부릅니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히 11:38) 어떤 환경도 이겨내는 능력을 가진 대단한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왜 성탄절을 기다립니까? 무엇보다 예수님을 만나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에 의로운 태양 예수님이 떠오르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삶의 현장에 의로운 태양이신 예수님이 떠오르시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치료하는 광선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치료해 주시고, 승리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대강절과 성탄절에 이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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