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탄절] 평화를 간직하는 성탄절 (눅 2:8~14)

  • 잡초 잡초
  • 223
  • 0

첨부 1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누가복음 2:14) 

  크리스마스는 인류 최고의 축제일입니다. 그러므로 ‘우찌무라 간죠’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우주의 축제일이다.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해방, 자유, 완성을 축하하는 날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이 날이 무엇 때문에 축제일이 되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왜곡된 축제일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하나님께서 죄 아래 살고 멸망의 길에 서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날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신 사건은 우리인류역사의 중심이 되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오심을 중심으로 기원전(B.C ;before Christ), 기원후(A.D; Anno Domini=in the year of our Lord)로 나누어집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인류역사의 중심임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인류에게 큰 기쁜 소식이 되는 중심이 되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아기 예수의 태어나심을 알릴 때에,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쁜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10)고 했습니다.
  천사는 큰 기쁨의 소식을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11절)

  천사의 전하는 이 말은 크리스마스가 어떤 날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날입니다. 인류역사의 중심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크리스마스입니다. 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예배하는 날이기에 그리스도란 말 Christ와 예배라는 말 Mass가 합해져 Christmas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삶의 역사의 중심이 되시도록 해야 합니다. 역사라는 말 영어 ‘History’는 ‘his+story’로 “그리스도 예수의 이야기”임을 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 사건의 이야기 곧, 그리스도에 관계된 이야기가 삶의 역사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실존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의 사건의 우리 인생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인은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삶의 중심이 되어있는 삶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축하하는 사람이 될 때에 평화의 사람이 되고 평화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평화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이렇게 전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그리스도의 성탄을 경배하는 우리는 평화를 간직하는 경배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 성탄에 우리는 어떻게 평화를 간직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 되게 하시기에 평화를 간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의 은총을 간직하게 됩니다. 기독교 교리적 설명으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멸망 받아 마땅  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인 인간을 구원하셔서, 하나님과 화목 되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으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교리적으로 말고 경험적으로 말할 때에도, 이 진리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예수님을 믿고 받아드릴 때에 죄의 용서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 경험을 J. Newton 은 찬송 405장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바울은 이 화목의 역사를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고후 5:18)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에서 용서받았다는 것,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가 되었다는 것, 하나님의 대적 자이며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에서 하나님과 용서와 화목 된 자가 되었다는 확신과 체험은 우리로 평화를 간직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평화는 하나님과 하나 된 데서 나오는 평화인 것입니다.

  찬송 468장은 이 평화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 십자가에 달리 사 날 구원해 주셨으며 주 예수님 고난 받아 나 평화 누리도다. 평화, 평화 하나님 주신 선물 오, 크고 놀라운 평화 하나님 선물 일세”
  우리는 성탄일을 맞이하여 하나님과 화목의 세계를 가질 뿐 아니라 화목의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평화를 간직하는 기쁨을 가져야 합니다.

  성탄을 맞이한 우리는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이러한 믿음 위에 맞이할 수 있기에 하나님과 화목한 자에게 임하는 평화를 간직할 수 있습니다. 성탄의 아침 하나님과 화목 되게 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 된 자임을 확인하심으로 평화가 가득한 성탄의 경배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게 하시기에 평화를 간직할 수 있습니다.
  천사의 전하는 소식 가운데 보면, ‘온 백성에게 미칠’, ‘너희에게 전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이 모든 표현 중에는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 있습니다. 성탄일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는 평화가 있습니다.
  이 땅의 평화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드리고 그것을 서로 나눌 때에만 가능합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임마누엘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화목의 역사이자 그 화목의 역사를 이루신 사랑인 것입니다.

  요한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요일 4:18)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이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 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우리를 이같이 사랑 하셨은즉 우리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4:9-11)

  우리는 성탄일을 맞이하여 그리스도의 오심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보고 그 사랑을 받아드리며 그 사랑 안에 있음으로 평화를 간직해야 합니다. 뿐 만 아니라 그 사랑에 대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함으로 더 큰 평화의 삶을 창조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비극은 사랑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역사입니다. 그러기에 평화를 잃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은 겸손하고 온유하게 하여 평화 안에 있게 합니다. 사랑은 우리를 희생하게 하여 평화의 세계를 소유하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말구유에 태어나시는 겸손과 온유함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러 오셨기에, 그 분이 태어나신 날, 이 땅에 평화가 가득 찬 것입니다.
  이 성탄일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가짐으로 평화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평화 자체이시기에 평화를 간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근원이십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평화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기에 이 땅에는 평화가 임한 것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노라” (요 14:27)
  “나의 평안(my peace)"이란 말씀대로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평안을 주시는 평화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시고 삼 일만에 부활하셔서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먼저 하신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입니다. 예수님의 현존은 평화로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평화로운 사람으로 드러납니다. 
  철저히 예수 안에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보십시오. 우리는 평화의 사람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화를 주시는 분이시기에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은 평화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가난한 루터의 가정은 성탄을 축하하기 위한 그 무엇을 준비할 것이 없었습니다. 우울한 마음으로 성탄을 맞이하게 된 루터는 숲 속을 산책하다가 큰 깨달음을 가졌습니다. 어둠 속에 잠겨있는 전나무 숲은 눈으로 덮이어 있어 달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차갑고 무거운 눈에 눌려 있는 전나무들, 어둠 속에 외로이 서있는 전나무들, 그러나 그것들이 달빛을 받을 때에 아름답게 빛을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루터는 가족들과 큰 기쁨으로 함께 축하 할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 루터는 전나무가 어둠 속에서도 외로움 속에서도 달빛으로 빛나는 것처럼, 예수님의 빛을 받을 때 우리도 빛을 낼 수 있다는 감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탄은 예수님의 빛을 받아드리고 그 빛을 비추어주는 날임을 가족들에게 보여주며 성탄을 축하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므로 루터는 전나무 하나를 베어 들여놓고 그 가지에 촛불을 달고 예수님의 탄일을 맞이했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크리스마스트리의 유래가 된 것입니다.

  성탄은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의 빛을 받아드려 그 평화의 빛을 발하는 우리의 모습을 찾는 날입니다. 이 천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다시 새롭게 맞이하심으로 그리스도의 평화의 빛을 받아드리고 그 빛을 비출 수 있는 평화를 간직하고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탄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기에 평화를 간직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성탄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참된 예배 자가 되심으로 평화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평화의 사람으로 성탄의 참된 예배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김성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