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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시므온의 성탄 축하! (눅 2: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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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말

성탄의 분위기는 교회보다는 술집, 호화 룸살롱, 대형 음식점, 대형호텔, 대형백화점, 심지어는 골목의 치킨 생맥주집같은 곳에서 먼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성탄은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기회요, 육체의 괘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탄절에 아기 예수 대신에 술집에서 술잔을 들고, 룸살롱에서 아기 예수 대신에 여자들을 품고 고급양주를 마시며, 어스륵한 골목의 생맥주 집에서 아기 예수 대신에 치킨을 입에 물고 뜯으며, 대형 백화점에서 유명 브랜드의 외제 상품을 쇼핑하면서 성탄절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최근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체코 같은 곳에서 반 산타크로스 운동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산타는 크리스마스 상징인데 왜 그렇겠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탄의 주인은 아기 예수님이지 산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산타문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콜라회사의 상술로 만들어진 산타 캐릭터가 진정한 크리스마스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산타는 세속주의와 상업주의 합작품입니다. 산타의 효시로 알려진 인물은 AD 270년 경 옛 터키 항구도시였던 파라다에서 태어난 “성 니콜라스”입니다. 그는 결혼 적령기에 이른 세 자매가 돈이 없어 거리의 여인으로 팔려갈 곤경에 처했다는 것을 알고 금이든 자루 세 개를 몰래 갖다 주었는데 이 자루의 사연이 “산타의 양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산타의 모습이 등장한 것은 1931년 미국의 콜라회사에서 삽화를 그렸던 “선드블롬(1899~1976)”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는 “Saturday Evening Post”지에 게재된 광고를 통해 오늘날의              <성 니콜라스>
산타의 이미지를 선보였습니다.         

산타의 트레드 마크인 빨간 옷과 부푼 흰 수염은 바로 콜라 로고 색과 거품을 상징했습니다. 산타옷의 빨간색은 콜라의 붉은 색소를 상징했고, 흰 수염은 흰 거품을 상징했습니다. 코카콜라회사의 브랜드가 산타크로스로 둔갑을 하게 된 겁니다.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은 코카콜라 브랜드의 상징물인 산타크로스가 크리스마스의 중심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산타크로스가 오히려 성탄을 오염시키고, 성탄의 의미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말입니다.

2006년12월15일에 이스라엘의 베들레헴 시장 “빅터 바타르세흐”시장은  “베들레헴의 크리스마스를 구해주세요”라고 전 세계 기독교를 향해 호소를 했습니다. 바타르세흐 시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독 형제들은 베들레헴 도성을 잊지 말고 이곳을 방문해 굳건한 연대를 보여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2000년대만 하더라도 베들레헴에는 기독교인이 80%, 이슬람이 20%였는데 지금은 그 비율이 정반대가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슬람이 베들레헴 구석구석마다 차지하면서 기독교인들은 급속히 베들레헴을 떠나고 있다고 합니다. 베들레헴의 성탄교회도 성탄 추리는 커녕 “샬롬이나, 웰컴”이라는 글자조차도 찾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어쩌면 2000년 전 요셉이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베들레헴을 떠났던 것처럼 지금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모시고 베들레헴을 떠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성탄을 뜻있게 맞이했던 예루살렘의 경건한 성도 한 사람이 소개됩니다. 그는 “시므온” 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1.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를 데리고 성전으로 갔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태어나신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으셨습니다. 할례 받으시는 날 유대인의 규례를 따라 그 이름을 “예수”라고 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수태하기 전에 천사가 지어준 이름이었습니다.

모세의 법대로 마리아의 결례의 날이 찼습니다. 결례는 정결케 되는 규례입니다. 모세의 법에 결례는 출산한 여인에게 요구되는 정결의 법입니다. 남아를 낳으면 40일 만에, 여아를 낳으면 80일이 지난 후에 번제와 속죄제를 드림으로 정결 예식을 치러야 했습니다(레12장).

요셉과 마리아는 주의 율법에 쓴 대로 첫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한 대로 아기 예수를 주께 드렸습니다. 어머니의 결례와 아기의 헌신은 유대인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의식이었습니다.

부유한 자들은 양으로 번제를 드리고, 비둘기나 반구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반구(들비둘기) 한 쌍으로 번죄와 속죄제를 드리려고 한 것을 보면은 요셉과 마리아의 형편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둘기로 드리는 번제는 아주 가난한 자들만이 드릴 수밖에 없는 제사였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베들레헴의 마구간 출생, 말구유 요람,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비둘기 결례, 산비둘기 헌신례와 같은 것을 보아 이것이 바로 성탄의 주인공인 아기 예수님과 요셉과 마리아의 형편이었습니다. 게다가 헤롯의 칼날은 점점 더 잔인하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가슴조이는 성탄이었지만 요셉과 마리아는 그 와중에서도 모세의 규례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모세의 법규를 어기지 않았습니다. 할례를 정한 날짜에 받게 했습니다. 결례의 정한 날짜를 넘기지 않았습니다. 헌신례를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성탄절은 오밀조밀, 치밀 완벽했습니다. 생략한 거나, 건너뛴 것이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요셉과 마리아의 품에는 언제나 아기 예수님이 안겨져 있었다는 겁니다. 잠시라도 아기 예수님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의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품안에 아기 예수님은 항상 쌔근쌔근 숨 쉬고 계셨습니다.

2.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으로 성탄을 맞이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눅2:25)고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오신 메시아도 몰라 봤는데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진정으로 위로할 자는 “메시아 즉 그리스도”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의로움은 하늘에 닿았고, 그의 경건은 땅을 덮었습니다. 마리아의 태중에 아기 예수님을 잉태케 하셨던 성령이 시므온과 함께 계셨습니다.

시므온은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눅2:26)라고 말했습니다. 시므온은 성탄에 대한 계시를 성령을 통하여 받았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이 그 위에 계셨고,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시므온의 성탄절은 성령과 함께 하는 성탄절이었습니다.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가 있었습니다. 최소한도 시므온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성탄절이었습니다.

3. 성령의 감동으로 아기 예수님을 찬양했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라고 오는지라”(눅2:27)고 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이 그 위에 계셨고, 성령의 지시를 받았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성령, 성령, 성령이 시므온을 압도했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으로 성탄절을 맞이했습니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①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 도다 ②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나이다  ③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④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⑤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2:28-32)라고 찬송했습니다.

끝맺는 말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성탄을 축하했습니다. 시므온의 성탄 축하는 가장 성경적인 성탄 축하행사입니다. 이미 40일이 자난 성탄 축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실 2000면이 훨씬 지난 성탄축하가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도 성령이 우리위에 계시고, 성령의 지시대로 움직이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아기예수님을 품에 안고 성탄을 축하드린다면 분명히 큰 은혜를 받으리라 믿습니다. 성탄이 우리들에게 큰 축복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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