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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성탄절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마 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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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간데없고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했다가 축의금만 내고 가거나 식사만 하고 가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도대체 결혼식을 보러 온 것인지 아니면 축의금만 내러 온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밥만 먹으러 온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결혼식의 주인공이 누구입니까? 분명히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과 신부입니다. 그런데 남의 결혼식에 와서 축의금은 내고 식사는 하는데 정작 결혼식에 참석도 안 하거나 아예 신랑 신부 얼굴도 안 보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면 이것은 뭔가 잘 못된 일 아닙니까? 물론 너무 바쁜 일이 있거나 또 길일(吉日)이라고 하루에만도 결혼식이 서너 건이나 있어 다 참석을 해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얼굴만 비치고 가야 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이런 사정도 아니면서 이렇게 축의금만 내고 밥만 먹고 바삐 가는 것은 저 사람이 우리 집 결혼식에도 와서 축의금 냈으니 나도 축의금은 해야겠다는 의무 차원에서 나온 행동일 경우가 많습니다. 결혼식이 무슨 의무방어전입니까? 이런 결혼식은 주인공이 빠진 결혼식입니다. 아니, 축의금이, 체면이, 식사가 주인공이 된 결혼식입니다.

어떤 남자가 1주일 동안 해외출장을 갔습니다. 평상시 무뚝뚝해서 출장 가도 집에 전화 한 번 안했지만 이때만은 한번 전화도 하고 힘들지만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일정도 바쁘고 또 새삼스럽게 지금까지 안 하던 짓 하려니 망설여져서 하루 이틀 보내다가 드디어 집에 돌아가기 전 날 용기를 내서 전화를 합니다. “여보, 나요. 애들 잘 지내고? 어머님은 잘 계시나? 강아지는 어때? 화분에 물은 줬나?” 망설이다가 겨우 용기내서 전화하더니 계속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습니다. 이렇게 엉뚱한 말만 늘어놓은 끝에 저쪽에서 아내의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당신 정말 너무하네요.” 그리고 전화는 뚝 끊어집니다. 이 대화의 주인공은 아내인데 그만 아이들, 부모님, 강아지, 화분까지 가다가 결국 주인공은 아예 나오지도 못한 것입니다.

성탄절의 가짜 주인공들

오늘날도 이와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진짜 주인공은 사라지고 다른 주인공들만 가득 넘치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러면 오늘날 성탄절의 주인 행세를 하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_오늘날 성탄절의 주인공 행세는 제일 먼저 백화점이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12월쯤 되면 어김없이 백화점마다 크리스마스 세일을 합니다. 미국 백화점의 경우 추수감사절에서 크리스마스로 이어지는 한 달 남짓 기간에 각종 상품 매출액이 1년 매출액의 25%에서 많게는 40%에 이른다고 하니 이 크리스마스가 1년 중 최고의 대목인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보다 먼저 성탄 장식을 하고, 교회보다 먼저 크리스마스 캐럴을 트는 곳이 바로 백화점입니다. 어쩌면 백화점이 크리스마스를 가장 기다리고 한 술 더 떠서 성탄절 때문에 제일 수지맞는 주인공 노릇을 하고 있지는 않나 싶습니다.

_또 성탄절의 주인공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어린이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는 가정들마다 자녀를 한 둘만 낳아 기르다보니 아이들이 가정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이 귀하신 자녀들에게 크리스마스는 1년 중 가장 큰 선물을 받는 때입니다. 10만원도 훨씬 넘는, 혹은 수십 만 원짜리 장난감과 선물을 아낌없이 자녀들에게 주는 부모들도 많은 것을 보니 성탄절에 제일 수지맞고 주인공 노릇 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_또 오늘날 성탄절에는 산타클로스가 주인공 노릇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카드마다 예수님 대신 산타클로스와 루돌프사슴이 끄는 썰매 그림이 등장하고 TV에도, 광고에도 성탄절 하면 으레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산타클로스가 누군가요? 산타클로스(Santa Claus)란 가톨릭의 성자인 성(聖) 니콜라우스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성 니콜라우스는 주후 270년 소아시아 지방에서 태어났는데 유난히 자비심이 많았고 나중에 대주교가 되어서도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풀었기 때문에 가톨릭에서는 그를 성인으로 숭배하는데, 바로 이 성 니콜라우스에서 나중에 크리스마스이브에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가져다준다는 전설이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산타클로스의 빨간 색 옷과 모자, 긴 흰 수염은 1931년 미국의 코카콜라 광고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즉 성탄절에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본디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사슴이 끄는 썰매와 선물 보따리만 남아버리고, 콜라회사와 백화점의 상술만 남은 것입니다.

바로 이 많은 것들에 가려져 성탄절의 진짜 주인공인 예수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오늘날의 크리스마스가 되어버렸습니다.

성탄절 밤의 주인공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생겼습니다. 당연히 성탄절의 주인공은 아기 예수님이며 그 분만이 영광과 주목을 받아야 함에도 말입니다. 그럼 어떤 것들이 예수님 대신 성탄절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할 뻔 했을까요?

흔히 성탄절에 관한 성극을 하면 등장인물들을 뽑는데 반드시 누가 나와야 합니까? 우리는 으레 마리아와 요셉 배역을 맡을 배우를 먼저 뽑습니다. 그러고 나서 동방박사 배역을 맡을 세 명을 뽑고, 헤롯 임금 노릇 할 사람도 뽑습니다. 그런 후 맨 마지막에 아기 예수님 역할은 사람이 하기 힘들어 말구유 모양 속에 인형을 대신 눕혀 놓거나 베개를 포대로 싸서 대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일이 예수님 탄생 당시도 실제로 벌어질 뻔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마리아와 요셉이 성탄절의 주인공입니까? 분명히 아닙니다. 그러면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들이 주인공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헤롯은 더욱더 아닙니다. 성탄절 밤에는 오직 아기 예수님만이 주인공이요 나머지는 모두 조연일 뿐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 조연들의 태도가 전혀 달랐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 예수님을 낳고 길러주는 부모 노릇을 했지만 결코 자신들이 주인공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가장 귀한 예물을 드립니다. 이런 예물은 왕께만 드리는 것이기에 이 예물을 아기 예수께 드렸다는 것은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스스로 그 신하가 된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만 주인공으로 모시기 위해 기꺼이 자신들은 그 분의 신하요 종을 자처한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예수님께 경배한 후 곧바로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께 경배하는 자신들의 사명을 다한 후에는 기꺼이 사라진 것입니다. 아울러 동방박사들이 주님께 드린 세 가지 귀한 예물, 황금과 유향과 몰약도 주인공은 아닙니다. 아무리 귀한 예물일지라도 아기 예수님만큼 귀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세 가지 예물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인정하고 자신들은 기꺼이 조연이 된 이들과 달리 헤롯 임금은 스스로 성탄절의 주인공이 되려고 했습니다. 헤롯은 로마에게 잘 보여 분봉왕이 되고 성전도 짓고 경제도 살리고 나름대로 성공한 왕이었지만 그의 끊임없는 권력욕과 집착, 음욕은 무서운 결과를 낳아 아들과 부인도 죽이고 세례 요한도 죽이고 가장 존경받는 사람도 죽입니다. 세상의 것에만 집착하고 땅의 것에만 매달리는 전형적인 세속적인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헤롯이 동방박사들에게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바짝 긴장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태어난다는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감히 누가 내 대신 이스라엘을 통치할 왕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분노하고 두려움에 떨던 헤롯은 예수님을 제거하기로 마음먹고 동방박사에게 그 아기를 만나면 자기에게도 알려달라고 회유하지만 동방박사들은 그 음모를 알고 헤롯에게 알리지 않습니다. 이에 헤롯은 더욱 불안해 져서 아예 베들레헴과 그 근처 마을에서 태어난 두 살 이하 아이들 모두를 학살함으로 문제의 씨앗을 제거해 버립니다. 이러한 헤롯의 태도와 행위는 오직 자신만이 왕이 되려는, 그래서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는 모든 것을 제거해버리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탄절의 진짜 주인공인 예수님을 제치고 자기가 주인공이 되려 한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도 이런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리와와 요셉처럼, 특히 동방박사들처럼 오직 주님만이 내 삶의 주인이시고, 그 분만 드러나야 하고, 나는 주님을 위해 할 일 다 했으면 사라져야 한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 가지 예물처럼 내 모든 가치와 능력과 힘은 오직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수단으로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자세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헤롯처럼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하고, 내 얼굴과 이름이 드러나야만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우직 우리 주님뿐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도 그 무엇도 주님 대신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심지어 교회도 성탄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왕비의 무덤처럼

인도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왕이 사랑하던 아내가 죽자 죽은 왕비를 위하여 그 나라에서 최고가는 조각가를 불러 무덤을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만들게 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많은 백성들이 왕후 묘소를 구경하려고 방문하였습니다. 왕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묘소 위에 멋진 정자를 세웠습니다. 정자의 천장에는 조각과 그림을 정교히 장식하여 유명한 기념물이 되었습니다. 얼마 후 왕은 다시 큰 건물을 세우고 주변은 아름다운 정원과 동산으로 꾸몄습니다. 왕은 그 크고 웅장한 기념관 안을 거닐며 여기저기를 살피면서 아주 만족해했습니다. 그런데 한 동안 흐뭇한 마음으로 거닐던 왕의 눈에 한 가지 거슬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아름다운 동산 한 가운데 초라하게 서있는 왕비의 무덤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신하들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저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겨라. 저것 때문에 멋있는 궁전의 분위기가 망가진단 말이야.”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혹시 우리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요? 성탄절의 기쁨과 화려한 분위기에 취해 정작 주인공이신 주님은 온데간데없이 잊어버리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말입니다. 또 우리의 인생에서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고 찬송하며, 지금까지 내 삶이 오직 주님의 인도하심과 돌보아주신 주님 덕에 살아왔음에도 정작 나중에는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오직 나 중심으로, 나 자신과 가족만을 생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만큼 살게 되었으니 이제 예수님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이런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분명 저 사람이 잘 되는 것이 주님의 도우심인데, 병 낫고 건강해진 것 주님의 은혜요, 사업 잘 되고 진급한 것도 주님의 은혜요, 자녀들 잘 되는 것도 주님의 은혜인데 은혜는 다 받아놓고도 정작 나중에 주님을 잊어버리는, 그래서 건강이나 사업이나 돈이나 자녀가 주인공 자리를 차지해버리는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이런 경우를 주객(主客)이 전도(主客顚倒) 되었다, 즉 주인공과 조연이 뒤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주객이 전도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은혜를 모르기 때문에 그 은혜 내게서 다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요즈음 방송국마다 무슨 연예대상, 방송대상 시상을 참 많이 하는데 가만히 보면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을 참 많이들 합니다. 하지만 얼마 전만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합니다. 출연자들은 공영방송에서 특정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압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차범근 감독이 어느 방송에 출연하면서 똑같은 주문을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의 내가 있게 하신 분이 분명히 하나님인데 지금 와서 제가 조금 유명해지고 출세했다고 어떻게 하나님 은혜라고, 그 분 덕분이라는 말을 안 할 수 있습니까? 딴 말은 다 안 해도 분명히 그 말을 해야겠습니다.” 뭘 좀 아는 분 같습니다. 예수님이 내 수준에 걸맞지 않는다고 지금 와서 너무도 초라해 보이는 그분을 치워버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십자가를 부끄럽다고 감추고 내 신앙을 숨기겠습니까? 안 될 일입니다. 근본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오늘 성탄절을 기쁨으로 맞이하지만 과연 우리가 이 성탄절을 어떤 자세로 맞이하고 또 내 평생 어떤 마음가짐으로 주님을 모시고 살아야 할까요? 이 근본적인 신앙의 질문 앞에서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고 결심하는 귀한 성탄절이 되기 바랍니다. 성탄절에만 반짝 주님 생각하고 기뻐하는 삶이 아니라 내 평생에 주님을 기뻐하고 그분의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날마다 아기 예수님이 내 안에 태어나시는 놀라운 경험을 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은혜가, 이 놀라운 체험이 이 귀한 성탄절, 바로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하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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