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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성장의 7가지 걸림돌 다섯 번째 : 습관화 (딤후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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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되는 음식점, 안 되는 음식점

음식점에 가서 식사를 하다보면 참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제가 사는 이동만 해도 수백 개의 음식점이 있는데 하루에도 몇 개의 음식점이 문을 닫고 또 새로 생깁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갈비 집이었는데 문을 닫고 새로 인테리어를 하고 며칠 지나보면 어느새 갈비 집이 회집이 되어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워낙 많은 음식점이 밀집되어 장사를 하다 보니 잘 되는 집이 있고 안 되는 집도 있습니다. 안 되는 집 주인은 매상이라야 집세도 못 낼 정도밖에 안 나오니 고심 끝에 새로운 장사를 시작하거나 아예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리는 것이지요.

잘 되는 집을 가봅니다. 뭔가 다릅니다. 안 되는 집보다 음식 맛이 좋을 뿐 아니라 식당 안도 깨끗하고 손님을 맞는 종업원의 자세도 전혀 다릅니다. 안 되는 집 종업원들은 손님이 나타나도 시큰둥합니다. 심지어 몹시 귀찮은 표정까지 짓습니다. 그런데 잘 되는 집 종업원들은 손님이 나타나면 생글생글 웃으며 90도로 머리 숙여 인사합니다. 표정도 밝고 손님 맞는 자세가 잘 훈련되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집은 주인도 뭔가 자신에 찬 표정을 짓고 직접 손님을 맞이합니다. 저는 이런 음식점들을 보면서 우리 교회도 똑같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교회에 처음 찾아오는 분이 음식점 손님과 같다면, 그 분들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는 설교도 좋아야 하고, 시설도 좋아야 하지만 무엇보다 그 분들을 맞는 저와 여러분의 태도와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교회에 처음 찾아온 새 신자가 주차가 불편하거나 화장실을 찾는데 몇 분 이상 걸리는데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으면 다시는 그 교회를 찾아오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음식점 이야기 조금 더 하지요. 방금 말씀드린 대로 음식점도 잘 되는 집, 안 되는 집이 있는데 그 가운데 참 이상한 현상을 하나 보게 됩니다. 처음 생겼을 때는 손님이 그야말로 바글바글합니다. 점심시간 저녁시간에 가면 줄 서지 않고는 밥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이나 몇 년 지나서 가보면 손님이 확 줄어서 장사가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그새 주인이 바뀐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 집 음식 맛에 싫증이 난 것도 아닙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긴장감이 떨어져서 그렇습니다. 장사가 잘 되다보니 긴장감이 떨어져서 손님이 찾아와도 귀한 줄 모르고 무덤덤하게 대합니다. 긴장감이 떨어지니 음식 맛도 예전만 못해집니다. 손님이 얼마나 예민한데요. 금세 이 변화를 알아차리고 발길을 끊는 것입니다. 반면에 몇 년이 지나도 몇 십 년이 지나도 늘 여전한 곳도 있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음식 맛이 안 변할 뿐 아니라 모든 자세나 태도가 처음 시작할 때와 똑같기 때문입니다. 이런 집은 낡아도 사람들은 늘 바글바글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지금 우리는 우리의 영적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게으름, 교만, 상처, 차가움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그 다섯 번째로 습관화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방금 음식점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음식점 하나도 습관화가 되면 큰일 납니다. 아무리 처음에 장사가 잘 되었어도 세월이 흐르면서 습관화가 되고, 긴장감이 떨어지면 반드시 손님도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 때문에 장사가 안 되는데 식당 주인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더 큰 문제입니다. 장사가 안 되는 이유가 자신들의 자세 때문인데 그것도 모르고 경기가 안 좋으니 뭐니 하면서 계속 남 탓만 하는 것입니다. 보세요. 요즈음 아무리 경기가 안 좋으니 해도 잘 되는 음식점 가보면 여전히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경기가 안 좋아서 손님이 끊어진 것이 아니요 바로 나 자신의 태도가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한 이 음식점은 곧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영적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일까요? 어떤 분들은 교회나 목회자를 탓합니다. 교회 분위기가 안 좋아서 내 신앙도 안자란다, 목회자의 설교가 약해서 안자란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나 목회자에게도 큰 책임이 있습니다. 교회 분위기나 목회자의 영적인 능력이 성도들의 영적성장을 절대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환경이나 남 탓하기 전에 가장 먼저 자신의 자세를 돌아보아야 함을 잊지 마십시오. 자신에 대한 영적 점검 없이 남 탓만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영혼은 영원히 성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왜 지금 신앙에 슬럼프가 왔는가? 처음 예수님 믿을 때 얼마나 열심이고 얼마나 뜨거웠는데 왜 지금은 뜨거움도 열심도 다 사라지고 마음은 냉랭하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려도 무덤덤하고 아무 감격도 없는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잘 들으십시오. 오늘 설교는 처음 교회 온 사람들보다는 교회 다닌 지 오래 된 분들에게 더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교회 다닌 지 오래되면 오래 된 분일수록, 교회에서 중직을 맡은 분일수록 더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물론 처음 교회 나오신 분들이나 이제 겨우 서리집사 된 분들도 언젠가 내게도 해당될 날이 올 것이기에 마찬가지로 귀 기울여 들으셔야 합니다.

교회 오래 다니고 직분이 무거워 질수록 조심해야 할 것, 그것은 바로 습관화입니다. 형식화입니다. 교회 다니니까 그냥 계속 다니는 것입니다. 가니까 계속 가는 것, 그것을 관성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무거운 추를 실에 매달아 좌우로 흔들면 그 다음부터 계속 그 추가 움직입니다. 무게 때문에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어 별다른 자극이나 외부의 힘이 가해지지 않아도 계속 움직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오래 다녔기 때문에, 주일이면 교회 가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그것이 습관화 되어 교회를 계속 왔다 갔다 하게 되는 것, 그것이 곧 신앙의 관성의 법칙이요 습관화요 형식화입니다. 이렇게 되면 영적인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신앙은 자라지 않고 제자리걸음인데, 영적으로는 메마르고 은혜도 감격도 없고, 신앙생활에 대한 기쁨도 사라지고 말았는데 문제는 긴장감까지 사라지고 보니 뭔가 이렇게 지내서는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면 식당은 문 닫고 인테리어 다시 해서 다른 업종으로 바꾸면 되는데 우리는 그렇게라고 할 수 없으니 더 큰 문제입니다. 어떤 성도가 교회를 다니다가 다른 종교로 갔습니다. 여러 해 신앙생활 하며 직분도 받았는데 삶은 나아질 줄 모르고, 답답한 마음도 해결되지 않고, 하는 일마다 자꾸 꼬이고 힘들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이러는 것입니다. “그러지 말고 종교를 한 번 바꿔보지 그래? 이 근처에 용하다는 절이 있는데 나하고 한 번 가서 스님 만나보자고.” 그래서 불교로 종교를 바꾸었습니다. 이 분에게는 기독교가 ‘종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기독교가 수많은 종교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 종교에서 안 되면 저 종교로 업종을 바꾸고 신장개업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신앙’입니다. 바꿀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 문제지요. 습관화, 형식화를 해결하지 못하면 방법이 없기 때문에 더 큰 문제지요.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말세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경고합니다. 1절부터 볼까요?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이해되도록 개역개정판을 인용하면 말세에 사람들이 하나님 대신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이것이 안 믿는 사람들 이야기가 아닙니다. 불신자들이 아니라 바로 신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말세가 되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같은 성도들이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고 돈과 쾌락과 악한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세가 다가올수록 참 믿음을 찾아보기 힘들고 정말 제대로 된 성도를 찾아보기 힘들어집니다. 예수 제대로 믿기가 이만저만 힘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취미생활 수준으로 믿고 살기가 쉬워지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가장한, 신앙생활을 가장한 취미생활이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이 미국에 가서 살면 참 외롭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 다니던 분이 미국에 가서 교회 나가는 일이 참 많습니다. 저의 형님 한 분도 그래서 교회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신앙생활 하는 곳인 동시에 한국 사람끼리 만나 친교도 하고 함께 공동식사도 하면서 소식을 나누는 교민들의 회합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외로워서 사람들 만나려고 교회 갔다가 잘 믿게 되는 분도 있지만 수십 년 교회 다녔어도 주일이면 교회 한 번 가서 사람들 만나고 밥 먹고 소식 듣고 돌아오는 수준으로 신앙생활 하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마치 1주일에 한 번 나가서 사람들 만나는 친교클럽처럼 말이지요.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는 주일날 교회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가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드리고, 은혜를 체험하고, 사람들을 만나 격려하고 아직 믿음이 약한 분들을 양육하고, 나도 힘을 얻어서 1주일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힘을 얻는 그런 신앙생활이냐, 아니면 그저 사람들 만나러 가는 친교수준이냐? 사탄은 오늘날 우리에게 교회 가지 말라고 하기보다 교회 가도 이런 친교수준으로 다니라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하나님 사랑하기보다 저 자신을 더 사랑하고, 다른 것들을 더 소중히 여기기에 교회 와서도 경건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 오래 다니다보니 겉모양은 그럴듯하게 됩니다. 기도도 오래 다니다보니 시키면 미사여구를 사용해 그럴듯하게 할 수 있고, 성경도 교회 오래 다니다보니 성경퀴즈 수준의 단편적인 지식은 많이 가지고 있고, 교회에서 사용하는 용어에도 익숙하고, 교회의 독특한 습관이나 분위기에도 잘 적응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건의 모양은 있는지 몰라도 정말 경건의 능력은 체험하지 못하는 불행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5절 말씀에 보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읽어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체험하지 못하는 자니 나도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리라.”

지금은 공룡이라는 존재에 대해 어린아이들까지 다 알고 있지만 지구상에 공룡이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19세기가 되어서였습니다. 1882년에 영국의 의사 맨텔이 왕진 갔다가 우연히 돌 속에서 커다란 동물의 이빨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공룡의 이빨 화석이었는데 사람들이 이때부터 이 엄청나게 큰 동물에 관심을 가지고 화석을 수집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공룡의 존재가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지금 박물관에 가보면 거의 온전한 복원된 공룡 뼈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 공룡이 2억 천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 분명히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것은 화석일 뿐, 공룡이라는 동물은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약 6500만 년 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공룡은 지구상에서 완전히 멸종하여 지금은 화석만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이런 글을 썼습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엄청난 크기와 교세를 자랑하지만 이대로 가면 수십 수백 년 후면 공룡처럼 지구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출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교회 건물을 짓고, 천만 명이 넘는 성도의 수를 자랑하지만 지금처럼 불신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큰 건물과 교세에만 의지하여 공룡처럼 덩치만 크지 민첩하지도 못하고, 세상에 영향력도 끼치지 못한다면 점점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게 되어 결국 교회는 이 땅에서 사라지고 이 큰 교회당은 박물관으로 바뀌고, 성경은 그 박물관에나 전시될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화석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 무시무시한 말이요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교회뿐 아니라 어쩌면 우리 신앙도 공룡화석처럼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비록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지만, 아니 적어도 겉으로 볼 때 경건의 모양이라도 갖추고 살지만 이대로 살다가는 우리 자녀들 대에, 또 그 자녀들 대에 신앙의 맥은 끊어지고, 그래서 우리 후손들이 볼 때 부모의 신앙, 조상의 신앙이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화석 같은 존재가 되어 “우리 부모 옛날에 잘 믿었단다.” “우리 할아버지 장로였단다.”고 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화석화요 습관화요 형식화의 무서움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 무서운 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습관화를 벗어나려면

요한계시록 2:4에서 주님은 에베소교회를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라고 책망합니다. 에베소교회는 당시 모든 교회를 대표할 만큼 유명한 교회였기에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중에서도 제일 먼저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보실 때 이 훌륭한 에베소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입니다. 에베소교회가 처음 세워졌을 때 가졌던 열정과 그 순수한 신앙을 잃어버렸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욕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베소사람들은 처음에는 우상에 대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이 욕망이 예수님에 대한 욕망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주님을 가장 뜨겁게 사랑하고 가장 잘 섬기는 교회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이 예수님에 대한 뜨거움, 예수님에 대한 욕망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왜 잃어버렸을까요? 에베소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예수 오래 믿고 교회 오래 다니다보니 신앙이 형식화 되고 뜨거움이 다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에베소교회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강력하게 책망하고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를 회복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안 그러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촛대’란 교회를 뜻하므로 만약 에베소교회가 회개하고 처음 사랑과 행위를 회복하지 않으면 심판이 임해서 에베소교회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 것인데 실제로 지금 에베소에 가보면 에베소 도시의 유적은 찬란하게 남아있지만 교회의 모습은 겨우 돌 몇 개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회개하고 처음 사랑 회복 안 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이 습관화되고 형식화되고 화석화되면 절대 신앙이 성장하지 못합니다. 경건의 모양만 남지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능력 있는 신앙은 체험하지도 못하면서 “나도 알 건 다 안다. 내가 교회 한 두 해 다녀봤냐?”는 식으로 교만해집니다. 그저 남들 눈에 내 신앙이 어떻게 보일까만 신경 쓰고, 신앙의 겉모양과 형식만 그럴듯하게 유지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할 뿐 아니라 에베소교회처럼 아예 신앙 자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 흔적은 남겠지요. “나도 옛날에 잘 믿었다.”고 말입니다. 습관화나 형식화가 무서운 것은 내가 지금 얼마나 심각한 상태에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영적 무감각 상태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교회 다니다 절로 옮긴 사람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목사라도, 장로 권사 집사 누구든지 예외가 아닙니다. 꼭 바른 신앙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주님은 이 무서운 습관을 버리려면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습관화되고 형식화되어 처음 예수 믿을 때의 그 열정과 순수함을 잃어버렸다면, 그래서 기도하며 눈물 흘린 적이, 말씀 들으며 내 마음이 뜨거워진 적이 까마득한 옛날 일이라면 속히 되찾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당장 내 신앙상태를 점검하고 조금이라도 습관화의 기미가 보이고, 경건의 모양은 남아있지만 능력은 찾기 어려운 상태라면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오늘, 지금 당장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리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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