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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사 51: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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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는 주전 8세기 중엽부터 그 세기말까지 예루살렘에서 예언자로 활동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서 중 “위로의 책”이라 일컫는 40-55장에서는 이사야의 활동시기보다 두 세기 후에나 일어날 일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유다 왕국을 멸망시킨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과 그 군대에 의해 포로로 잡혀와 바벨론 땅에서 살게 된 유다 백성을 향한 위로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 내용은 유다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상태에서 해방될 것과, 본국으로 귀환하게 될 것과, 파괴된 예루살렘의 재건입니다.

  그 가운데서 오늘 본문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남왕국 유다의 비참하고 절망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17절부터 보면 “여호와의 손에서 그의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은 일차적으로 예루살렘 성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겠지만 상징적으로 을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 예루살렘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노의 잔을 받아 마셨다는 것입니다. 왕이 내리는 잔은 거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받아 마셔야 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잔은 분노의 잔입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분노하시게 해서 그 벌로 받은 잔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 왕이 내리곤 한 사약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마시고 즉사하는 죽음의 잔을 내리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백성은 머나먼 낯선 땅에 끌려가고 남은 백성은 가난과 학대와 수치와 울분 속에서 살아야 하는 잔을 내리셨습니다. 22절에서 “네 주 여호와, 그의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네 하나님”이라고 한 것 보면 예루살렘이 정복자 바벨론에 의해 많은 억울함을 당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23절 앞부분에서 “그 잔을 너를 괴롭게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한 말도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많은 괴롭힘을 받았음을 짐작케 합니다. 그 괴롭힘의 한 가지 예를 우리는 뒤따르는 말 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일찍이 네게 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던 자들이라. 너를 넘어가려는 그들에게 네가 네 허리를 땅과 같게, 길거리와 같게 하였느니라.” 이방의 정복자들은 그들이 지나가는 길거리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엎드리게 하고 그들을 짓밟으며 그 위를 지나가곤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당한 치욕과 고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고대의 유적들이 정복자가 피정복자에게 그러한 잔인한 짓을 자행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사실로 미루어 예루살렘도 실제로 그런 가혹행위를 당했을 수 있다는 것은 짐작되고도 남습니다. 나라는 없어졌고 이런 학대와 수모 속에서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아갈 방향이 어딘지를 알지 못한 채 소망도 비전도 없는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해야 했습니다. 비틀걸음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셨다는 것은 바로 이런 예루살렘의 실상을 표현한 말입니다. 술에 만취하여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갈 지 자 걸음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인 것입니다. 회한과 무력감과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있는 백성의 모습인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처했던 상황을 19절은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는 말로 요약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황폐와 멸망과 기근과 칼로 묘사된 예루살렘의 처지는 같이 슬퍼해줄 사람도 없고 위로해 줄 사람도 없는 그런 처지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닥쳤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누가 너를 위로하랴?” 아무도 위로할 자가 없고 누구도 같이 슬퍼해 줄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예루살렘에게 그러나 무엇보다도 심각하고 치명적인 것은 백성을 이끌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슬픔과 절망에 빠진 백성에게 위로와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인물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18절을 봅니다: “네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너를 인도할 자가 없고 네가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너를 이끌 자도 없도다.” 20절을 또 봅니다: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 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도다.”

  그런데 이렇게 갈 데까지 갔고 망할 대로 망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언자는 외칩니다. 본문 첫 절입니다: “여호와의 손에서 그의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 비웠도다.”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을 만큼 무너진 예루살렘에게 일어서라는 것입니다. 비틀걸음치는 방황의 잠에서 깨어나라는 것입니다. 후회와 비탄과 절망과 체념의 늪에서 빠져나오라는 것입니다. 고통과 절망으로 인한 방황의 시대는 끝이 났다는 것입니다. 17절 하반절을 다시 봅니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 비웠도다.” 하나님의 분노의 잔을 이미 다 마셔버렸고 더 이상 마실 분노의 잔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큰 분노의 잔을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을 억울하게 하며 괴롭힌 정복자에게 돌리시리라는 것입니다. 22절 하반절부터 23절 상반절을 봅니다: “보라 내가 비틀걸음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네가 다시는 마시지 못하게 하고 그 잔을 너를 괴롭게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예루살렘이 깨어 일어나야 하는 이유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하나는 예루살렘이 마실 하나님의 분노의 잔 즉 징벌의 잔, 고난의 잔을 다 마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견책을 받을 만큼 받았고 하나님의 분노가 그쳤다는 것입니다. 20절의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 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도다” 한 말 중 뒷부분의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도다” 한 것은 가득 찰만큼 찼고 그래서 그칠 때가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깨어 일어나야 하는 다른 이유는 예루살렘이 당한 억울함과 괴로움에 대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배은망덕과 우상숭배와 온갖 죄 때문에 바벨론을 통해 징벌하셨지만 이방 바벨론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한 지나치고 부당한 가혹행위를 묵과하지 않으려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게 부으신 분노의 큰 잔을 이제는 그들 바벨론에게 돌리시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난의 세월을 마친 예루살렘은 이제 깨어나고 일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유다를 멸망시켰던 바벨론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유다로 돌아가고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하게 하셨던 것입니다(스:1-4).

  이렇게 예루살렘이 새 시대를 맞고 깨어 일어서게 되는 역사로부터 우리가 다시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 당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긍휼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의 죄를 그저 묵과하지 않으시지만, 그렇다고 당신의 백성을 영원한 형벌과 멸망에 처하지는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의 잔이 영원히 마르지 않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같은 이사야서 54:7-8에서 우리는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당신의 형벌을 받고 있는 백성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당하는 억울함과 괴로움에 눈을 떼지 않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백성의 억울함을 기억하시고 반드시 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보다 조금 앞서는 49:15에서는 여인이 자기 태에서 난 젖 먹는 자식을 잊어버리는 일이 혹시 잊을지는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잊지 아니하실 것이라 했습니다. 당신께서 무너뜨리시고 납작 엎드려지게 하신 백성이지만 그래도 때가 되면 그 백성을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이끌 자 없는 백성이라 할지라도 깨우시고 일으키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슬퍼해주고 위로해주지 않는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시고 위로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면서도 동시에 당신의 택하신 백성에 대해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참된 위로는 오직 이 하나님으로부터만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멸망하고 황폐해졌던 예루살렘이 새 시대를 맞고 깨어 일어서게 되는 역사는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긍휼에 대한 백성의 응답에 따라 일어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루살렘이 마신 분노의 잔이 하나님의 손에서 온 잔임을 백성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그 분노의 큰 잔을 받게 된 이유도 그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들이 행한 배은망덕과 우상숭배와 온갖 죄를 깨닫고 있었기에 그들은 회한과 탄식 속에서 눈물의 세월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깨어 일어서라는 외침에 응답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그래서 훗날 예루살렘 성벽의 수축과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 위로의 말씀과 예루살렘 회복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 국민에게, 특히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의 메시지로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나라는 옛 예루살렘의 상황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나간 수년은 우리에게 마치 술에 취하여 제정신을 잃고 비틀거리며 잃어버린 세월이라고 여기는 국민이 대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에게 치명적으로 결여되었던 것이 바로 된 지도자였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이제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황폐화입니다. 요즈음 쉬지 않고 막말을 쏟아내는 대통령이나 이에 맞받아치며 그와의 결별을 서두르는, 지난 수년간 그를 떠받들고 그의 충직한 나팔수와 거수기 노릇을 하며 권력을 나누어먹었던 무리들이 벌이고 있는 온갖 굿판은 단적으로 우리나라 정치의식과 풍토의 황폐화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정치의 황폐화만이 아닙니다. 굳이 경제상황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국방과 안보의 황폐화, 공정한 방송언론의 황폐화, 교육의 황폐화, 윤리의식의 황폐화 등 황폐해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대통령은 부동산문제 말고는 꿀릴 게 하나도 없다고 큰 소리쳤지만 그 말을 수긍할 사람은 제정신 가진 사람 중에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직도 일 년 이상 안고 가야 하는 이 상황을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분노와 견책의 잔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불충에 대한 분노와 견책의 잔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이 나라를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고 갈 수 있는 지도자를 분별할 줄 몰랐던 어리석음에 대한 분노와 견책의 잔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선거권을 무책임하게 행사한 과오에 대한 분노와 견책의 잔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가운데서도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긴 잠에서 깨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더 이상 분노의 잔을 마시며 비틀걸음치고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더 이상 무너질 수도 없이 무너졌고 더 이상 무너져서도 안 됩니다. 일어서야 합니다. 깨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의 부르심에 결연히 응답하여 나서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분노하게 하고 암울하게 만든 세월은 오늘 2006년의 마지막 날로 끝내야 합니다. 내년은 할 일이 많은 해입니다. 아주 중요한 해입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해입니다. 우리나라와 민족의 장래의 명암이 걸린 해입니다. 잃어버린 세월, 잊고 싶은 악몽의 해들을 끝내고 역사적인 대반전의 해로 만들어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새로 태어나는 해로 삼아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어지럽히고 뒤흔들며 황폐케 한 세력들이 소멸하기 시작하는 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로 분노의 잔을 돌리실 것입니다. 새해를 교회가 다시 부흥하는 원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압박하고 선교와 교육의 자유를 박탈하려는 세력들이 하나님의 분노의 잔을 받고 사라지는 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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