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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네 나이가 얼마냐? (창 4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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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달아나는 시간

옛 그리스 한 도시에 조각가 뤼지푸스(Lysippus)가 만들었다고 하는 동상이 하나 서 있었습니다. 이 동상은 발 밑에 날렵한 날개가 달려 있었으며 앞머리는 풍성한데 뒤는 말쑥한 대머리였습니다.

이 동상 밑에 이런 문답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대 이름이 무엇인가?" "내 이름은 시간." "왜 그대는 발 밑에 날개를 달고 있는가?" "빨리 날아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앞 머리는 왜 그토록 풍성한가?" "내가 다가 갈 때엔 누구나 붙들 수 있도록." "왜 뒷머리는 대머리인가?" "내가 떠나고 나면 아무도 날 붙들 수 없도록." 이것이 바로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 격언 가운데 "시간은 그 앞머리로 잡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옳습니다. 그 누가 지나간 시간을 붙들 수 있으며 놓친 시간을 다시 잡을 수 있겠습니까? 또 2006년 한 해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지나간 2006년을 그 누가 붙들 수 있겠습니까?

시편 90편 12절에 "우리에게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 나이가 얼마인가를 생각할 때마다 인간은 지혜의 마음을 얻게 되더란 말이지요.

금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묻습니다. "네 나이가 얼마냐?"

이 질문은 지금까지 그대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지금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하는 물음입니다. 앞으로 그대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II. 성경의 배경

"네 나이가 얼마뇨?" 이 질문은 요셉이 국무총리로 있던 애굽의 바로 왕이 요셉의 아버지 야곱에게 물은 질문입니다.

일찍이 야곱은 쌍둥이 형제 가운데 동생으로 태어났습니다. 옛 이스라엘의 풍습은 맏아들이 상속권과 축복권을 가지게 됩니다. 야곱은 둘째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축복권도 상속권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형에게 팥죽 한 그릇을 팔아 장자의 명분을 얻었고 눈먼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쟁취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그는 집을 떠나야 했고 평생 길고 긴 세월을 나그네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출발한 야곱은 아들들로부터 끔찍한 속임을 당했습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 요셉이 사나운 짐승의 밥이 되어 죽었다는 거짓 소식을 듣고서 야곱은 피묻은 옷자락을 부둥켜 안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아버지를 속이는 시간은 잠시 잠깐 금방 모든 것이 들통났습니다.

그러나 자식들로부터 속임을 당하는 시간은 무려 20년을 넘게 속아왔습니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아들을 죽은 줄로만 알고 20년 세월을 눈물로 살아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해 7년 세월 고생하여 하룻밤을 자고나서 보니 신부가 바뀌었습니다. 삼촌으로부터 속았습니다. 그는 속이면서 출발했으나 사실은 평생 속으면서 살아왔습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고독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형과의 싸움을 선언한 야곱은 삼촌 라반과의 괴로운 암투로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억지로 빼앗은 축복이 평안할 수가 없었던 게지요. 딸 디나의 수모를 목격해야 했습니다. 아들들이 살인하는 모습을 보아야 했습니다. 맏아들 르우벤의 서모 간통,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죽음...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인생 말년, 죽은 줄로 알았던 요셉이 살아 저 넓은 대국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때는 마침 평생 모은 재산이 두 해 흉년만에 모두다 동이난 처지라 야곱은 서둘러 70인 권속을 거느리고 애굽 땅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들 요셉은 백발이 된 아버지를 보고서 무릎에 매달려 통곡했고 아버지 야곱도 아들 요셉을 만난 감격에 흐느껴 울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를 바로 왕 앞에 모셔 "이 분이 저의 부친이옵니다"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이때 아마 야곱의 얼굴에 산전수전을 겪어온 인생자국이 거칠게 자리잡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대뜸 바로 왕이 야곱에게 묻기를 "그대의 나이가 얼마뇨"라고 했습니다. 그때 야곱이 대답하기를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들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내 나름대로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야곱의 생애를 돌이켜 볼 때 이 얼마나 실감나는 표현입니까?

III. 질문의 의미

여러분의 나이는 얼마입니까? 오늘 아침 여러분은 이 질문에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1. 이 물음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느냐? 즉 과거를 묻는 질문입니다.

땀 흘려 일한 목적과 방법들이 정당했느냔 말입니다.
행여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야곱처럼 상처뿐이었고 아픔의 연속은 아니었습니까?
실패와 고난, 좌절과 이별, 가난과의 싸움 - 험악한 세월은 아니었습니까?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받았던 배신과 상처는 없습니까?

"여러분의 나이는 얼마입니까?" 이 질문에 야곱은 "예 130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그의 생애를 돌이켜 볼 때 간단한 연륜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라고 다르겠습니까?

돌이켜 보면, 부끄러운 것 뿐이요 죄로 얼룩진 흔적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이웃의 따뜻한 후의가 있었기에 오늘 내가 이 땅에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한없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살았지만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하고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이 땅에서 오래 살았다는 것은 내 어머니의 땅 조국에 빚을 많이 진 것밖에 없습니다. 부부간에 서로 오래살았다는 것은 서로에게 빚을 많이 졌다는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지난 날 돌이켜 보건데 어찌 하나님 앞에 고개를 들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지금까지 지나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이 얼마나 실감이 나는 찬송입니까?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느뇨? 나이 값 못하고 살았습니다. 은혜 갚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의 크신 은혜로 지금까지 지나왔습니다 라는 고백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2. "네 나이가 얼마뇨?"

여기서 우리는 우리자신이 나이 즉 시간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시간은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일정한 시간을 주셨기 때문에, 수명을 주셨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시간을 주실 때 시간의 법칙을 만드셨습니다. 소위 이레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엿새동안 부지런히 일하고 이레되는 날은 하나님을 만나고 안식하라는 법칙입니다. 이 이레가 없는 시간은 완성된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 만나는 시간이 별도로 짤려져 있지 못한 인생은 미완성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18절에 보면 짐승의 수, 사탄의 수, 미완성의 수가 나옵니다. 666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6은 완전수인 7에서 하나가 빠진 숫자입니다. 7이 되어야 완전 숫자가 되는데 6만 있으면 불안전 숫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수가 마귀의 수로 끝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한 주간을 삽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6일 세상에서 인정을 받습니다. 때로는 땀흘려 눈물 흘리며 피를 흘리며 살아봅니다. 그러나 이레가 없는 사람의 날은 666으로 끝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썩은 인생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3. "네 나이가 얼마뇨?" 이 말은 당신의 나이가 영원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나이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계신 분이기 때문에 나이가 없습니다. 천국의 성도들은 나이를 묻지 않습니다. "네 나이가 얼마뇨" 묻고 들었다는 얘기는 우리의 생명이 아직 이 땅에 있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이 생명 끝나는 시간이 있습니다.

제가 한 가지 예언을 하지요. 여기 앉아 계신 분 가운데 50년 후에 50% 정도는 틀림없이 이 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아마 제 예언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보다 훨씬 적중률이 높을 것입니다.

모세의 고백과도 같이 "우리의 년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년수와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날아 갑니다."

우리 조상들이 늙음의 무상함을 깨닫고 이런 시를 노래했습니다.

「내 청춘 뉘 주고 뉘 백발 가져 온고
백발이 오고 가는 걸 알았던들 막았을 것을
알고도 못 막는 길 이 길이니 그를 서러워하노라」

「한 손에 가시 쥐고 또 한 손에 막대잡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막으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 길로 오더라」

그래도 백발은 괜찮아요. 빠져버리는 걸 어떡합니까? 빠지는 사람은 백발이 아니라 초록색이라도 좋으니 빠지지만 말았으면 합니다.

때로 우리는 시간의 격량속에서 예견치 않았던 늙음이, 죽음이, 질병이, 눈물이, 실패가 문득 내 앞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이런 인생의 경륜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내 삶의 한계와 주인을 새롭게 깨닫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아무 것도 영원할 수 없습니다. 지속되지 않습니다. 지금 건강하다고 하나 그 건강도 지속되지 않습니다. 지금 청춘이라고 하나 청춘도 지속되지 않습니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하나 소유도 영원하지 못합니다. 생명은 반드시 끝나는 날이 있습니다. 겸손하게 살 줄 알아야 합니다. 내 것이 없습니다. 이 땅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제 나이 쉰 중반을 보내고 있습니다. 배가 고프던 시절에는 학교 길에서 너무나도 배가 고파 시냇가에 가방을 내려놓고 날고기를 잡아 먹은 적이 있습니다. 청년시절에는 배가 고파 기숙사에 누룽지를 퍼 먹은 적도 있습니다. 그때는 돌멩이도 씹기만 하면 소화가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과식이 두려워 집니다.

학창시절 신체검사 때마다 안 보이는 글자가 없어 개 눈이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내 눈 위에 안경이 걸쳐 있습니다. 며칠 전에 약병 하나를 들고 작은 글자가 보이지 않아서 짜증을 부리다가 안경을 벗고 보니 그 글자가 보였습니다. 옆에서 아내가 노안이라고 그랬습니다. 얼마나 서럽던지. 그토록 설탕이 먹고 싶고 단 것이 먹고 싶어 호박 꽃을 따서 빨고 다녔습니다. 깨 꽃을 빨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벌써 단 것이 무서워집니다.

여러분이라고 다르겠으며 어찌 인생 간증이 없겠습니까? 이것이 인생입니다.

미국의 에담스 대통령이 노년에 지팡이를 짚고 언덕을 오르다가 숨이차서 지팡이를 허리에 대고 나뭇가지에 몸을 기댄체 쉬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청년들이 전직 대통령을 알아보고 "폐하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때 에담스 대통령이 청년에게 들려준 유명한 얘기가 있습니다. "이보게 젊은이, 내가 안녕치를 못하네. 내 장막집이 무너지려고 해서 이사갈 준비를 한다네" "아니 폐하 폐하의 집이 무너져 이사를 가다니요?" "자네가 보다시피 내 집은 낡아서 지붕이 다 벗겨져 버렸고, 창은 낡아서 다 찢어지고, 기둥은 흔들거려 언덕을 오를 수 없고, 들보는 굽고,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라네."

당황하는 젊은이들에게 다시 얘기를 합니다. "이보게 내 지붕을 보게나. 머리카락이 몇 개나 남았나. 내 눈이 창문인데 앞이 보이지 않아. 안경을 써도 이제는 더듬거리며 좁은 길을 가야 한다네. 내 인생의 기둥은 두 다리일텐데 이것이 흔들거려 내가 길을 걸을 수가 없어. 들보는 내 허리인데 쇠하여 구부러 졌어. 이 장막 집이 무너지면 저 세상으로 이사가야 할 것 아닌가?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네."

솔로몬은 전도서 12:1-7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젊을 때에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고생스러운 날들이 오고, 사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할 나이가 되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기 전에, 먹구름이 곧 비를 몰고 오기 전에, 그렇게 하여라. 그 때가 되면, 너를 보호하는 팔이 떨리고, 정정하던 두 다리가 약해지고, 이는 빠져서 씹지도 못하고, 눈은 침침해져서 보는 것마저 힘겹고, 귀는 먹어 바깥에서 나는 소리도 못 듣고, 맷돌질 소리도 희미해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노랫소리도 하나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높은 곳에는 무서워서 올라가지도 못하고, 넘어질세라 걷는 것마저도 무서워질 것이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고, 원기가 떨어져서 보약을 먹어도 효력이 없을 것이다. 사람이 영원히 쉴 곳으로 가는 날, 길거리에는 조객들이 오간다.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그릇이 부서지고, 샘에서 물 뜨는 물동이가 깨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부숴지기 전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육체가 원래 왔던 흙으로 돌아가고, 숨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여라"(표준새번역)

여러분 생명의 날들을 헤아려 볼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건강을 잃고 건강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것도 귀하고 늙은 후 청춘의 선물됨을 감사하는 일도 귀중하지만 주어진 모든 것이 선물인 줄 알고 감사하며 사는 일이 참으로 귀한 인생입니다.

우리의 인생 두 번 주어지지 않습니다. 인생은 연습이 없습니다. 인생은 시행착오가 없습니다. 한번 주어진 인생, 한번 걸어가면 그것으로 끝나는게 인생입니다.


IV. 영적인 나이가 얼마뇨?

"당신은 나이가 얼마뇨?" 여기엔 육체의 나이 말고 또 다른 나이 영적인 나이를 묻고 있습니다. 교회다닌지 얼마가 되었습니까? 묻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받은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묻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직분이 무엇입니까? 묻는 것도 아닙니다. 영적인 성숙도를 묻는 것입니다.

인생은 오랫동안 살았는데 나이는 들었는데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만 오래 다니고 신앙의 성숙이 없으면서 연륜으로 자신이 성장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속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교회 안에서도 아직 탄생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거듭나셨습니까? 영생을 얻었습니까?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하면 오늘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신다면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으십니까? 이제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세상살아갈 때 내 욕망, 내 욕심, 자기 이기심으로 가득채웠던 마음의 중심자리에 내려놓고 거기에 만왕의 왕 되신 예수를 내 주님으로 모시십시오. 개도 제 주인을 아는데 하물며 인생의 주인을 모른데서야 인생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온 인류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마음에 모시십시오.

둘째, 영적인 어린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순진하긴 합니다만 모든 일이 자기 중심적입니다. 하늘이 우르르 쾅쾅 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놀려줄려고, 나 놀래라고 하나님께서 저렇게 천둥친다고 얘기합니다. 모든게 자기 중심적입니다. 자기 밖에 모릅니다. 자기고집만 내세웁니다. 이제는 좀 어린아이 티를 벗어버리십시다.

셋째, 영적인 청년들이 있습니다. 힘있게 일을 합니다만 유혹이 심합니다. 노련미가 없어 실수를 곧 잘 합니다. 정욕적이지요.

네 번째, 영적인 장년들, 부모의 입장에 도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가치관이 타인지향적입니다. 자기희생적입니다. 누구나 포용할 줄 압니다. 교회안에서 이처럼 아버지 마음, 어머니 마음을 가진 훌륭한 부모들이 요청됩니다.

"네 나이가 얼마뇨?" 여러분의 영적인 나이는 어디에 도달되어 있습니까?

사랑하는 한소망 성도여러분!
바로 왕은 야곱에게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느냐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시간 우리에게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지나간 2006년 한해동안 여러분이 무엇을 했느냐? 하나님은 다 덮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2007년 바로 내일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V.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네 나이가 얼마냐" 이 질문의 결국은 앞으로 네가 어떻게 살 것이냐를 묻는 질문입니다. 지금까지 그렇다 치고 이제 2007년의 문이 지금 열려지고 있는데 새해는 어떤 첫걸음을 내디딜 것이냐? 어떤 시간의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냐를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스티븐 코비 박사가 성공하는 사람들과 실패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조사해 보았더니 실패하는 사람들은 대게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일, 그러면서도 긴급한 일들에 매여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TV보는 시간이 너무 깁니다. 전화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요. 한시간 반동안 전화하고 난 다음에 끊으면서 얘 안되겠다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 컴퓨터 게임에 너무 매달립니다. 쓸데없는 참견에 너무 시간을 보냅니다. 해결점 없는 고민과 걱정에 사로 잡힙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생을 실패하며 살아가더라는 것입니다.

반면 성공하는 사람들은 긴급한 일이 아니라 가치있고 중요한 일들에 관심과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건강이나 사건이나 예방에 관심을 갖습니다. 지도력을 개발합니다. 주변의 사람들, 윗사람, 아랫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새로운 기회를 발굴합니다. 자신의 인격과 신앙향상을 위해 최대의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긴급성이라는 패러다임에 따라 행동하느냐? 아니면 중요성이라는 패러다임에 따라 행동하느냐? 여하에 따라 이것은 당신의 인생의 결과 - 즉 열매들을 가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하루에 15분의 짜투리 시간을 소중하게 활용할 수 있다면 1년에 책 한권을 쓸 수 있습니다. 1년에 악기 하나를 배울 수 있습니다. 1년에 중급정도의 외국어 회화 실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40년간 하루에 15분을 낸다면 1000권의 책을 읽었을 것입니다. 대학을 5번 다녔을 것입니다. 하물며 하루 1시간 중요한 일들을 위해 시간을 낸다면 여러분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시간은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시간이 돈이라고 하지만 시간은 생명이었습니다. 시간이 피와 같은 것입니다.

1년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암선고를 받고 1년후 죽을 여인에게 물어 보십시오.
1달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1달 먼저 미숙아를 낳은 어머니에게 물어 보십시오.
1주일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주간지 편집자에게 물어 보십시오.
하루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막노동자에게 물어 보십시오.
1분의 소중함을 알려면 1분 차이로 집에 가는 막차를 놓친 사람에게 물어 보십시오.
1초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1초 때문에 교통사고를 면할 수 있었던 사람에게 물어 보십시오.
0.01초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0.01초 차이로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단거리 육상선수에게 물어 보십시오.

"네 나이가 얼마냐?" 이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가까운 사람들을 속이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상처 입으며 살아왔던 야곱에게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썩을 것들만을 위해 살지말고 영원한 가치관, 하늘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 줄 알아야 한단 말이지요.

이 땅의 것들이란 밥을 먹으면 다시 배설물로 흘러가듯이 썩고 없어질 것들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진리와 정의를 위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산 것은 모두 하늘에 쌓입니다. "너희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 여러분의 보물이 무엇입니까? 시간입니까? 몸입니까? 재물입니까? 재능입니까? 하늘 커튼을 활짝 열고 내가 쌓아놓은 하늘 보물이 얼마나 되는가 점검해 보십시오.

세상에서는 성공을 했는데 하나님의 집에 들어와 보니 내 자리가 없습니까? 그것이 먼 훗날 천국 생활의 영원한 모습이 되고 마는 것을.

지난 1년 헐떡거리며 달려온 열매가 무엇입니까? 부지런히 달려온 것 같은데 주머니를 뒤져보니 남은 열매가 없습니다. 급한 것들 때문에 소중한 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현실적인 것들 때문에 영원한 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땅의 것들 얻느라 하늘 상급을 잃지 마십시오. 성공 때문에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이웃을 버리지 마십시오. 세상 때문에 교회와 천국을 상실하여 살지 마십시오. 가치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살아가야 할 때입니다.

지나간 시간 돌아보니 내 재주로 살은 것만 같았습니다. 내가 땀흘리면 잘 살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오늘 내가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거둬 가시니 세워지고 쌓아진 것들이 모두 무너져 버리는 것을.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 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없네
오 신실 하신 주 오 신실 하신 주

< 평양대부흥 100주년 세이레 특별새벽기도회 >
1/1(월) 신년예배
1/2(화) 아브라함: 하나님이 채우시리
1/3(수) 야곱: 무조건 용납하신다
1/4(목) 요셉: 하나님의 방법으로 꿈을 이루라
1/5(금) 모세 I: 불가능에 도전하라
1/6(토) 모세 II: 하나님을 기대하라
1/8(월) 이스라엘: 절망 앞에 기적이 기다린다
1/9(화) 여호수아: 기대했으면 나아가라
1/10(수) 기드온: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기적을
1/11(목) 사무엘: 과거를 치료하면 새일이 보인다
1/12(금) 사울: 하나님께 맡겨야지
1/13(토) 다윗: 하나님 앞에 마음을 크게 열어라
1/15(월) 엘리야: 낙심이 클수록 큰것을 기대하라
1/16(화) 호세아: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1/17(수) 요나: 하나님과 맞서지 마라
1/18(목) 사드락.메삭 아벳느고: 그리아니하실지라도
1/19(금) 예레미야: 하나님은 너를 떠나지 않는다
1/20(토) 에스겔: 희망의 노래를 준비하라

"네 나이가 얼마뇨?" 남은 시간이 많지 못합니다. 나이 값하고 사십시오. 젊은이는 젊은이로써의 인생의 값이 있는 게고 나이든 사람은 나이든 사람으로써의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시간 우리에게 묻습니다. "네 나이가 도대체 얼마냐?"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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